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0화 (10/122)

멜리아는 결혼 발표를 취소하기 위해 서둘러 돌아갔다.

아직 연회가 무르익기 전이었으니, 서둘러 마벨 후작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큰 소음 없이 일을 무마할 수 있을 터였다.

노하의 이름이 엮여 있으니 두려워서라도 샤를로트와 한 약속을 깨진 못할 것이다.

물론 알음알음 혼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온 이들은 헛소문에 속았다고 생각할 테지만, 어쨌든.

‘이번 연회는 사실상 멜리아의 데뷔탕트나 다름없었으니까.’

연회장을 메운 손님의 절반은 혼담에 대한 소식을 확인하러, 그리고 절반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마벨 가의 외동딸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멜리아는 예법 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특유의 활달함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아마 가만 두면 어련히 혼담이 들어오리라.

‘멜리아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중요한 건 알폰소와의 혼담을 취소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멜리아는 울면서 연신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니.’

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약점을 쥐고 협박한 상대에게 감사 인사라.

‘뭐, 무르게 굴긴 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폰소를 위해서였다.

‘그러니 감사 인사를 들을 상대는 굳이 따지자면 알폰소일 텐데…….’

샤를로트의 시선이 연회장 쪽으로 향했다.

멜리아를 상대하는 동안 내내 무감정하던 녹안에는 얼핏 그리움이 서렸다.

‘아마 알폰소는 저 안에 있겠지.’

그를 마주칠까, 차마 두려워 연회장을 둘러보지도 못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이토록 떨리는데.

알폰소의 얼굴을 보기라도 한다면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아서.

‘마벨까지 혼담을 파투 냈으니, 다음 차례는 아델린이겠지.’

그리고 알폰소는 또다시 아델린을 사랑하게 될 테니, 어렵지 않게 행복을 맞이할 터.

샤를로트는 죽음이 제 앞으로 껑충 다가온 것을 느꼈다.

기꺼운 일이었다.

샤를로트는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상념을 정리하곤,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샤를로트 노하.”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만 없었더라면.

* * *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기 전부터 샤를로트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

꿈에서조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목소리인데.

‘알폰소.’

어떻게 그가 여기 있는 걸까.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그토록 피해 다녔는데.

‘도망갈 수도 없어.’

도망가기에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아예 호명을 듣지도 못한 척 걸음을 옮겼어야 했는데, 그녀는 너무 눈에 띄게 굳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멜리아와의 대화를 들은 건 아닐 테니.’

굳이 수상하게 굴 필요 없다.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요. 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나 싶어서 되짚어 보느라.”

결국 샤를로트는 표정을 펴고 몸을 돌렸다.

되도록 미소를 짓자.

그게 가장 쉬우니까.

그녀는 숱하게 해 온 다짐을 몸을 돌리기 직전까지도 되새겼다.

그러나 그 다짐들은 알폰소와 눈을 마주친 순간 모두 잿더미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샤를로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하염없이 알폰소의 파란 눈을 바라보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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