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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3화 (3/122)

신이 도운 걸까.

설산을 넘어서도 찾지 못했던 해답은 우습게도 바로 그 아래 강이 얼지 않는 지역에서 틀어박혀 살던 연금술사가 가지고 있었다.

“술식은 인간을 되살리겠다는 강한 소망을 기반으로 하고, 그걸 담을 그릇도 필요합니다. 시체를 얼려두셨다니, 잘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충족이 되었군요.”

“그럼 알폰소를 되살릴 수 있다는 건가?”

“그릇도 마련되었고, 술식도 준비가 되었지만 연료가 부족합니다. 강한 술식에는 많은 연료가 필요한 법.”

연금술사의 손가락이 샤를로트를 가리켰다.

“연료는 강한 소망을 가진 자의 목숨을 사용합니다.”

“…….”

“지금이라도 돌아가십시오. 부인께서는 가진 것이 많지 않습니까. 늦지 않았으니 새 사람을 만나-”

“내 목숨,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샤를로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낯에 떠오른 것은 확연한 기쁨이었다.

“알폰소를 살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목숨일 테지.”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에게 목숨 하나 내어주는 게 뭐 그리 아깝다고.

어차피 그가 죽은 뒤에는 의미도 없던 삶이니 이렇게라도 쓰이면 마땅하리라.

“나를 죽여서 그를 살려줘.”

분명 알폰소도 그토록 싫어하던 여자가 죽었다고 한다면 기뻐할 것이다.

샤를로트의 죽음을 깊이 들여다볼 이유도 없을 테니, 적당히 사고사로 꾸며내면 되겠지.

“당신은 우연히 저택 근처를 지나다 이야기를 듣고 알폰소를 살린 것으로 하지. 보수는 에두아르트에서 충분히 챙겨줄 거야.”

“……좋습니다. 하지만 부인, 전언은 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붙은 조건에, 샤를로트가 미간을 슬쩍 좁혔다.

“이유가 뭐지?”

“술식은 부인의 소망을 기반으로 합니다. 결과가 그를 되살린다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만, 부인의 소망에 따라서 어떤 결과로 그가 되살아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샤를로트는 잠시 상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연금술사의 추상적인 경고가 곧장 와닿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챈 연금술사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살아나더라도, 부인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되살아나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에 치중하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쩌면 끔찍한 결과가-”

“난 또 무슨 말이라고.”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샤를로트가 표정을 풀며 픽 웃었다.

“그거라면 괜찮을 거야. 나는 그가 되살아나서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니 당신의 술식이 내 소망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는 분명 괜찮겠지.”

알폰소가 자신과의 결혼으로 인해 잃은 것들을 돌려주고 싶었다.

목숨도, 행복도.

그의 행복한 미래에 자신이 없더라도 괜찮았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해주기만 한다면.

샤를로트의 대답에 서린 확신을 읽은 연금술사가 착잡한 낯을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술식의 기한은 1년까지입니다. 그 안에 소망을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겁니다.”

술식의 제물인 샤를로트가 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알폰소를 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인께서는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다는 겁니까?”

“그래.”

샤를로트가 주저 없이 대답하자, 연금술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으신 모양이시군요.”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가.”

단지 목숨을 던져서라도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뿐이다.

알폰소를 살리기 위해 헤매온 지난 시간.

얼마나 울부짖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내가 끔찍하게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알폰소. 이 결혼은 내 가문을 위한 일이니까. 날 원망하고 싶거든 좋은 술을 한 병 꺼내 놓고 부르세요. 술맛이 좋거든 뺨을 때리는 것도 허락해 줄 테니.

-알폰소, 다음 주가 생일이랬던가요? 미리 축하할게요. 난 그때 여기 없을 테니까. 생일날에는 내가 안 보이는 게 당신한테도 좋을 거 아니에요.

-당신이 보낸 목걸이를 왜 차지 않느냐고요? 볼품없기에 창고에 넣으라고 했는데요. 그럼 나더러 뻔히 날 싫어하는 사람이 보낸 물건을 걸고 헤실거리는 멍청이라도 되란 말인가요?

어떤 기억을 떠올려도, 알폰소에게 독설을 퍼부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얕보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 때문이었다.

‘사실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

이런 식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생일날에 살갑게 둘러앉지는 못해도 소박하게나마 축하해주고 싶고.

당신이 보낸 목걸이는 너무 아름다워서, 도리어 내가 초라해지는 것만 같아 도저히 찰 수가 없었노라고.

‘그 말 몇 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고작 얕보이는 게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나는 그에게 그리 모진 말밖에는 하지 못했나.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차마 뱉지 못한 말이 이토록 사무칠 줄 알았다면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텐데.

한 번쯤은 솔직하게 웃어 주었을 텐데…….

“……나는 평생 이기적으로 살아 왔어. 그러니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택하고 싶은 거지.”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치다니, 세간에서 들은 것과는 영 다르시군요.”

“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 이곳은 변방일 텐데.”

“예전에는 떠돌이 생활을 했으니 수도에 머물렀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들은 바로는 이토록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실 분은 아니었는데요.”

“뭐, 사랑이 그런 거지.”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남자를 사랑해 목숨을 던지려 하다니.

누군가의 눈에는 분명 자신이 무척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혹자는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

샤를로트 또한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알면서도 사랑해 버린 걸…….’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도 숭고한 감정이 있다면 분명 사랑이리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바보짓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는 바보짓이 훨씬 낫지 않을까.

설령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대도 괜찮다.

알폰소와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없대도 괜찮다.

그저 알폰소 당신이 살아 있다면. 행복하다면.

‘그렇다면 난 충분히 만족스러워.’

그것이 샤를로트의 속죄이자 사랑이었다.

연금술사는 그런 샤를로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며 약을 내밀었다.

“이 약을 드시면 술식이 발동될 겁니다.”

그는 내심 샤를로트가 마음을 돌리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샤를로트는 주저 없이 약병을 받아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득한 고통이 밀려들고, 의식이 희미해지기까지는 찰나가 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샤를로트는 웅성거리는 말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밝은 방 안.

익숙한 노하 저택의 천장이 보였다.

“……가씨,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연금술사의 술식이 성공했다.

그녀는 알폰소와 결혼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 * *

‘벌써 그게 일주일 전이던가.’

쾌청한 하늘의 겨울 정원을 보며, 샤를로트는 흔흔한 기분으로 회상했다.

그녀는 아직도 처음 돌아왔던 그 직후를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다.

하녀에게 날짜를 묻고 나서, 충격에 그대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로 달려갔던 그때를.

“……말도 안 돼.”

정말 성공한 건가?

전신 거울 속, 네글리제 차림의 여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탓에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음에도 거울 속 여자는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끝이 살짝 말린, 길고 선명한 적발. 살짝 올라간 눈매 안에 담긴 눈동자는 한여름 햇살 아래의 녹음을 닮아 있었고, 거울을 짚은 손끝은 상처 하나 없이 부드럽게 관리된 상태였다.

미친 듯이 알폰소를 살릴 방법을 찾아 헤매던 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거야.’

비록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것도 되살리긴 한 거니까.’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몇 번이나 이것이 꿈은 아닐지 확인했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나니 오히려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다니, 이만한 행운이 또 어디 있겠는가?

‘연금술사, 생각보다 유능하잖아?’

그저 알폰소가 되살아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니.

샤를로트는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옆의 하녀를 끌어안고 춤을 출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샤를로트가 눈을 뜬 시점이 사고 직후였다는 것이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심하게 굴러떨어진 이후라고 했던가?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샤를로트가 갑자기 피를 토해도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샤를로트만 빼놓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다니. 과거에는 그런 일이 없었단 말이지.’

당연히 걸핏하면 피를 토할 정도로 몸이 약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돌아온 부작용인 걸까?

‘자세한 건 연금술사를 만나 봐야 알겠지만.’

연금술사의 종적이 묘연했다.

그녀가 연금술사를 만났던 곳으로 사람을 보내 보았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대답만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본인 입으로 떠돌아다녔다고 했으니, 찾기는 힘들겠군.’

하지만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술식의 기한은 1년까지입니다. 그 안에 소망을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겁니다.

바로 연금술사가 누차 당부했던 이 말.

‘술식의 제물로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분명 소망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샤를로트의 소망은 알폰소가 되살아나서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술식은 그 방법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선택했다.

덕분에 알폰소를 되살리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알폰소가 행복해져야 술식이 완성될 거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시간은 원래대로 돌아가 알폰소도, 샤를로트도 모두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간단하지.

술식이 발동된 이상 그녀는 어차피 1년 뒤에 죽을 운명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면.

‘내가 알폰소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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