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따져보자면 샤를로트가 알폰소를 사랑하게 된 것이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샤를로트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 이용할 대상으로만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누군가는 지독하다고, 또 누군가는 비정하기 그지없다고 침을 뱉어도 별수 있나.
도태되는 이는 혈육이라도 가차 없이 가문의 이름을 빼앗고 내쫓는다는 비정한 가문, 노하에서 나고 자라며 배운 것이 그뿐인데.
‘썩 사랑받을 만한 성격은 아니지.’
샤를로트는 제 본성을 덤덤히 긍정했다.
그러니 알폰소를 불가항력으로 사랑하게 된 이후에도 그에게 사랑받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폰소가 매번 그녀를 보고 미간을 찡그려도, 싫다는 말을 뱉을 때에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에도.
‘아델린 라베루즈라고 했던가.’
알폰소가 사랑하게 된 여자.
샤를로트는 그녀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밀색의 단발을 가진, 웃을 때면 보조개가 폭 패는 것이 귀여웠던 여자.
날카로운 인상에, 긴 적발을 가진 샤를로트와는 머리길이부터 조금도 겹치는 것이 없는 여자였다.
‘알폰소와 네 번째로 혼담이 오갔던 여자였지, 분명.’
그 여자와의 혼담을 파투 낸 직후 추문을 퍼트려 자신과 결혼하게 만들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결혼 후 아델린의 가문, 라베루즈에서 하는 보석 사업 때문에 알폰소와 말을 트더니 점차 둘이 함께 있는 광경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자주 만났던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저 후원을 거니는 알폰소와 그 여자의 모습이, 부인인 자신보다도 더 잘 어울려 보였다는 것만이 샤를로트의 기억에 남았을 뿐.
그래서 한 번은 샤를로트가 직접 알폰소의 집무실에 찾아가 물어보았다.
“좋아 보이던데요, 알폰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여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진 샤를로트의 말에 알폰소의 입매가 일자로 다물렸다.
“……그 여자, 사랑해요?”
‘그 여자’가 누굴 의미하는지는 굳이 문답이 필요치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알폰소의 낯이 그대로 구겨졌으니까.
마치 몹시 고통스러운, 그리고 괴로운 말을 들은 것처럼.
“……지금, 그걸 묻는 저의가 뭡니까.”
“궁금해서요. 사랑하는 건지.”
“사랑한다고 하면? 추문이라도 퍼트릴 겁니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물어본 것뿐인데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겁니다.”
“상관없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맞는 표현이겠죠. 아닌가요?”
“샤를로트.”
알폰소가 그만하라는 듯 노기 어린 낯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끝끝내 그는 한 마디 부정도 하지 않았다.
샤를로트를 끔찍한 무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응시하다, 그 끝에 괴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
“……나를 그만, 불행하게 만드십시오.”
그보다 더한 고백이 있을까.
가능하다면 묻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건가요?’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물음을 내지는 못했다.
그 물음에 대한 긍정을 들을 것이, 그를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연모의 마음을 가져버린 스스로의 모순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날 샤를로트는 알폰소와의 이혼을 결심했다.
화가 나서는 아니다. 단지,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함이었다.
또한 알폰소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내가 알폰소와 이혼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알폰소도 불행하지 않을 테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을 터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로써 알폰소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알폰소와의 결혼을 명령한 건 아버지였지.’
하지만 다행히 아버지, 도미닉은 그 3년 사이 죽고 샤를로트를 끔찍이 아끼는 이복오빠 퀸시가 가주가 된 상태였다.
그러니 이혼하는 데에 큰 문제도 없을 터.
샤를로트는 이혼을 추진해 달라는 편지를 퀸시에게로 보냈다.
편지를 보내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 분명 그랬다.
그로부터 보름 뒤.
알폰소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에 당해 죽기 전까지는.
* * *
“송구한 말씀이오나, 부군께서는 가망이 없으십니다.”
“용의자에게서 배후를 알아내려 했으나 심문하기도 전에 자결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범인을 알 수가…….”
정체도 알 수 없는 독. 심문도 하기 전에 자결한 용의자.
손쓸 틈도 없이 떠나 버린 알폰소까지.
각진 관 뚜껑을 여는 손이 덜덜 떨렸다.
죽은 남편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 모든 수법이 지나치게 익숙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관 속에 편안히 누운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
샤를로트는 더 이상 그 무엇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노하에서 나고 자란 샤를로트라면 모를 수가 없는 수법이었다.
알폰소를 죽인 건 노하였던 것이다.
샤를로트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노하로 달려왔다.
눈물이 뺨을 그어 내리고, 샤를로트의 마른 입술이 벌어졌다.
“……왜 죽였어?”
뱃속에서 더운 분노가 불길처럼 확 피어올랐다.
“대체 왜? 죽일 만큼 위협적인 인물이었어? 우리 가문에게 대들었어? 왜? 무슨 이유가 있었는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다.
퀸시는 샤를로트가 아끼는 유일한 가족이었기에, 애써 그렇게 믿어보았다.
무언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편지에도 썼잖아. 알폰소를 사랑한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왜 그를 죽여야만 했나.
앞에서는 내가 싫다 매정하게 말해도 마차에서 내릴 때 손 잡아주지 않은 적 한 번 없었던 남자인데.
모두가 내 면전에서 악녀라며 손가락질 하는 걸 서슴지 않을 때에도 내게 악녀라는 말 한 마디를 입에 올려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인데.
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그 앞에서는 한번 제대로 웃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어째서…….
“네가 이혼하고 싶다고 했잖니, 샤를.”
“……뭐라고?”
“그냥 이혼하면 위자료니 뭐니 문제가 많을 테지. 죽여버리고 에두아르트까지 가지면 간단한 것을.”
“……고작, 그런 이유라고?”
“고작이라니? 이건 노하의 방식이다.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사랑한다고 했잖아.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냉정하게 생각해, 샤를. 이건 너를 위한 일이야. 네가 그를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네가 그걸 알고 있었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됐지.”
샤를로트가 말을 씹어 뱉었다. 독기 어린 눈동자가 뱀처럼 퀸시를 쏘아보았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선 이의 눈이었다.
“알면서, 다 알면서 죽였지. 아니까 죽였지! 그러고도 나를 위한다는 말을 지껄여?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가문을 위한 거였겠지!”
감히 어떻게, 내가 몸 바쳐 온 가문이 내 남편을 죽일 수가 있을까.
내가 그를 깊이 사랑하노라고 편지에 몇 번을 적었는데.
뺨을 그어 내리며 생긴 눈물자국이 불에 덴 듯 마냥 화끈거렸다. 눈물 방울방울마다 제 고혈을 쥐어짜내는 기분이었다. 울음이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
누군가의 죽음이 이다지도 끔찍한 일이었던가.
차라리 제게서 흐르는 것이 피였으면 했다. 그럼 자신 혼자 아프고 말 일이니까.
차라리 죽은 것이 자신이었으면 했다. 그럼 알폰소는 아직 이 시간, 이 땅에서 숨 쉬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알폰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알폰소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알폰소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 텐데…….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듯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샤를로트는 으득 입술을 깨물었다.
“죽어 버려, 퀸시.”
노하의 악명을 이어받아 악녀라는 호칭으로 빈번히 불려온 일생에도 단 한 번 부정해 본 적 없는 제 핏줄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긴 모든 순간이 죄스러웠다.
때때로 사랑은 비극이기도 하다. 뇌리에 아로새겨진 속삭임이 왕왕 울렸다.
내 사랑이, 그를 죽였다.
샤를로트는 그날 목이 쉬도록 울었다.
알폰소의 시체를 꽁꽁 얼려 방부 처리를 하고, 그를 되살릴 방법을 찾아 온 대륙을 떠돌았다.
그 어떤 단풍보다도 아름다웠던 적발이 온통 희게 새어도, 손톱 끝까지 관리되어 있던 고운 손이 망가져도 샤를로트는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을 때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숨통을 졸라 와서.
-나를 그만, 불행하게 만드십시오.
처음으로 제게 사랑을 알려준 남자의 목소리는 이토록 선명한데, 그 당사자는 죽고 없다는 것이 사무쳐서.
샤를로트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생명을 되살리는 데에는 아주 큰 대가가 필요합니다, 부인.”
해답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