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외전 4. 사미아 쿤 (1)
“나는 분명 주워 온 자식일 거야.”
사미아의 진지한 헛소리에 아미시는 또 시작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배움터의 스승인 나카의 눈치를 살폈다.
쿠드라의 어릴 적 스승이자 제 양모인 치아린의 스승이기도 한 나카는 손이 무척이나 매서운 사람이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걸 들켰다간 등짝에 시뻘건 손도장이 새겨질 것이 분명했다.
“사미아 님. 나카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한 번만 더 딴짓하다 들키면 바로 쿠드라께 보고를 올리겠다 하신 걸 잊으셨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주워 온 자식 같다니까?”
손에 들고 있던 목검마저 바닥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은 사미아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한숨을 삼킨 아미시가 나카의 눈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사미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또 왜요.”
“생각해 봐. 어머니랑 나랑 닮은 부분이 하나도 없잖아! 비슷한 거라곤 이 눈동자 색 하나뿐인데!”
“…….”
아미시는 오랜만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끼며 삼키기만 하던 한숨을 결국 내쉬고 말았다.
고작 열두 살에 두통이라니……. 몇 년 후 정식으로 그녀의 종이 되면 이 두통을 지병처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머니처럼 피부가 하얗지도 않고!”
오아시스의 다른 이들보다 피부색이 밝은 사미아다.
그런 그녀의 피부가 아미시보다 짙은 색을 띠는 것은 오로지 사미아 그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온 사방으로 날뛴 결과였다.
온종일 밖에서 그리 뛰어다니는데 햇볕에 피부가 그을리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것 봐! 머리는 얼마나 뻣뻣해!”
그건 사미아가 조금 전까지 목검을 들고 휘두른 덕분이다.
열심히 휘두른 덕분에 손에 땀이 가득했고 그 땀을 닦아 내지 않고 머리카락을 만졌으니 뻣뻣하게 느껴질 수밖에.
실제로 사미아의 굽이치는 단발머리는 관리를 잘 받아 실크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거기다 이 손! 굳은살이 가득하잖아! 어머니의 손은 엄청 부드럽단 말이야!”
아버지보다 더 강한 사막의 전사가 되겠다며 검과 창, 활을 놓지를 않는 사미아였다.
손바닥이 부드러우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거기다 그녀의 어머니인 세리아나의 손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보일 뿐이다.
여유가 생기면 활부터 잡아 온종일 연습에 매달리는 세리아나의 손이 마냥 부드러울 리 없었다.
“어머니는 앉아만 있어도 우아함이 넘치는데 난 뭐야! 그냥 왈가닥이잖아!”
그건 그냥 타고났다고 봐야 한다.
사미아에게 세리아나처럼 우아한 모습을 강요했다간 오아시스의 궁이 뒤집힐 것이다.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은 그냥 심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미아 님은 의외로 자기객관화가 뛰어나시다니까요.”
“응? 뭐라고 했어?”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아미시는 제 앞에 저와 같이 쪼그려 앉은 사미아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 사막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짙은 피부, 반짝이는 눈동자와 언제 어느 때고 사라지질 않는 자신만만한 웃음.
본인은 주워 온 자식이 분명하다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얼굴마저 그녀의 부친인 바이샤를 빼닮은 모양새였다.
“라누아를 닮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쿠드라를 닮으신 거잖아요.”
“누가 누굴 닮았다고?”
“……이번엔 쿠드라께 골을 부리는 중이시군요.”
“나는 그런 분 모르거든!”
분명하다.
이 진지한 헛소리는 제 아비에게 골을 내기 위한 떡밥이었다.
다음 대 신의 종으로 예정되어 오아시스의 궁으로 들어온 것이 아홉 살. 같은 목적으로 들어온 바샨타와 함께 사미아와 붙어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 저 속을 모를까.
“궁으로 달려가 아버지께 여쭙기 전에 말씀하시죠?”
선대의 종이 후대의 종의 양부모가 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차이툰은 결혼하지 않은 이의 입양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살아서는 결혼식을 올릴 수 없는 치아린과 카얀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세리아나와 바이샤의 배려로 이번 대의 종은 헬라임의 품에 안기기 전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결혼식을 올렸다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의 종은 몸의 2차 성징이 나타난 순간부터 꾸준히 어떤 약을 먹는다.
그것을 1년에 걸쳐 꾸준히 섭취하게 되면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는 것이다.
카얀과 치아린은 헬라임의 품에 안기기 전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었음을 알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두 사람이 바샨타와 아미시를 양자로 받아들인 것은 세리아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겐 부모가 필요해.]
신의 종으로 바쳐진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제 주인과 앞으로 섬길 또 하나의 주인만을 위해 교육받고 살아가게 된다.
모래사막 안에서 살아온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세리아나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혹한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두 아이의 부모를 궁 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두 아이에게 궁과 집을 오가며 생활토록 할 수도 없었다.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임과 동시에 주변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두 아이는 미래에 쿠드라와 라누아의 가장 측근이 될 이들이었다.
머리가 다 자란 어른도 감언이설에 흔들릴 수 있는데 다 여물지 못한 아이들이라면 더할 것이다.
처음엔 세리나아가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고자 했다.
진짜 자식만큼 마음을 줄 수 없을지는 모르나 제 아이처럼 함께 마음으로 품어 키우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과하다는 치아린의 말에 제외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고민하던 두 사람에게 그럼 그냥 치아린과 카얀이 입양하면 되질 않냐고 말을 던진 것은 바이샤였다.
조금 늦게 라누아의 방에 도착한 카얀은 그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치아린과 세리아나를 끌어안은 채 치아린을 무시하고 있는 바이샤를 발견했다.
[왜 말이 안 되지?]
[저는 라누아의 종입니다! 아이를 가져선 안 된다구요!]
[낳으면 안 된다고 했지 입양하면 안 된다고 했나?]
[무슨 억지를 부리시는 거예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부부다. 나와 나의 라누아가 그 증인이지. 그러니 문제없다.]
[쿠드라!]
[너도 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잖아.]
[그, 그건……!]
그 한마디에 치아린은 입을 다물었다.
딱 한 번이다.
궁에 들어온 첫날, 구름이 달을 가렸던 그 밤에 아무도 몰래 훌쩍인 걸 어찌 알고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그리고 이제 그만 나가지? 언제까지 방해할 생각이야?]
감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세리아나와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으니 어서 썩 꺼지라는 눈빛에 어린 시절처럼 볼을 부풀리고 여전히 상황 파악을 끝마치지 못한 카얀의 손을 이끌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치아린과 카얀은 바샨타와 아미시를 양자로 맞이했다.
친부모자식처럼 온전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어색했던 부분을 맞춰 가며 진짜 가족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짜 아버지께 여쭤요?”
“……또 졌단 말야.”
무릎 사이에 얼굴을 숨기며 힘없이 대답하는 사미아의 모습에 아미시가 다시 한숨을 삼켰다.
매번 바이샤에게 도전하고 깨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사미아다.
뭘 새삼스럽게 심술을 부린단 말인가?
“내가 진짜 자식이면 한 번은 져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쿠드라가 일부러라도 져 주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사정에 따라 다른 거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이! 한 번만 이겨 보겠다고 덤비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정없이!”
“……사미아 님은 일부러 져 주면 그거 좋다고 하실 분도 아니잖아요.”
“어쨌든! 난 친자식이 아닌 게 분명해! 분명 주워 온 거야!”
그렇게 주장하기엔 심술 난 얼굴이 완전 판박이다.
아미시는 차마 뱉지 못한 말을 한숨과 함께 삼키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일단 목검부터 내려놓고…… 바샨타를 불러야지.’
바샨타와는 운명공동체다.
그는 거부하겠지만 한 부모 아래 형제로 묶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그는 함께 움직이고 함께 혼나야 한다.
“나카 선생님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데 이제 그만 나오지?”
아미시의 손짓에 멀리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바샨타가 조금 망설이다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배움터의 중간에 서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두 눈이 어느새 두 사람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이들에겐 한 번도 휘두른 적 없지만 그녀가 허리에 찬 도끼가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듯했다.
“진짜 부모님을 찾아야겠어!”
“……저건 또 뭔 헛소리냐?”
“늘 하시던 거잖아. 그리고 사미아 님께 저거라니. 아버지한테 이른다?”
“난 어머니한테 말씀드릴 거야. 훈련 안 하고 계속 딴짓한다고.”
“어머니는 날 좋아해서 괜찮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아버지야.”
“누가 뭐라니?”
“너희 둘……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주지?”
호기롭게 친부모를 찾겠다 외쳤던 사미아는 아미시와 바샨타의 실랑이에 어쩐지 소외되는 기분을 맛보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치아린과 카얀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면 끔뻑 죽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양자인 아미시와 바샨타에게선 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요. 어디에서 그 친부모라는 분을 찾으실 건데요?”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내려놓으며 몸을 푸는 바샨타가 물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하기 위해선 몸을 충분히 풀어 둬야만 했다.
준비도 없이 사미아를 따라나섰다 경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의 사전 준비는 꼼꼼했다.
“가타한으로 갈 거야!”
“네?”
“사미아 님?”
“오아시스를 다 뒤져도 내 친부모는 없었잖아! 그러니 이번엔 가타한이다!”
그러곤 달려나간다.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순식간에 멀어지는 사미아를 바라보던 바샨타와 아미시가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저 진지한 헛소리를 무시하고 내버려 뒀다간 정말로 수습할 수 없는 사고를 치고도 남는 사람이 바로 사미아였다.
어쨌든 곁에 붙어 막는 시늉이라도 해야 나중에 감당할 것들이 줄어든다.
“사미아 님! 어디 가십니까!”
“나카! 내가 친부모님을 찾으면 함께 인사하러 돌아올게!”
“나카 님 죄송해요! 사미아 님 뒤를 따르는 게 제 운명이에요!”
“……저 두 멍청이를 돌보는 건 제 임무입니다!”
당장 돌아오라는 나카의 목소리와 이번엔 꼭 성공하라는 배움터 아이들의 응원이 섞여 배움터에 울려 퍼졌다.
이런 식으로 배움터를 탈출해 사고를 치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모두가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놈들! 핑계 삼아 놀지 말고 훈련을 계속해!”
“하지만 선생님! 세 분의 목검을 회수해 와야 하지 않나요?”
“저 어딘가에 얌전히 놓여 있을 테니 그 핑계로 도망칠 생각은 말아라.”
“쳇.”
혀를 짧게 차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미아가 배움터에 합류한 이후 한동안 얌전하던 이 지긋지긋한 두통이 다시 생겨났다.
참고로 이 두통이 처음 생겨난 것은 과거 바이샤가 배움터에 합류했던 그 시점이었다.
“어째 가면 갈수록 쿠드라를 닮아 가시니.”
순하게 생긴 외모에 속은 것은 잠깐이다.
생긴 것만 세리아나였지 속은 바이샤였다.
아니, 바이샤의 어린 시절보다 더했다.
보통의 아이들이면 엉덩이라도 때려 주련만!
“궁에 사람을 보내라. 사미아 님께서 또 도망치셨다고.”
“네.”
“꼭 라누아께 전해야 한다. 쿠드라께 전해 봐야 크게 한번 웃고 마실 분이시니.”
“꼭 그러겠습니다.”
심부름꾼 하나를 궁으로 보낸 나카가 팔짱을 끼며 배움터의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소란은 잊은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다른 감정을 배제한 듯 보였다.
겉보기엔 그렇게 보였다는 소리다.
담담해 보이는 나카의 머릿속은 조만간 잡혀서 배움터로 돌아올 세 아이를 위한 특별한 훈련 방법으로 가득한 상태였으니까.
* * *
“사미아가 또 배움터에서 도망쳤다고?”
“네, 라누아.”
“바샨타와 아미시는?”
“함께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알았으니 물러가렴. 나카에겐 내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 꼭 전하고.”
“네, 라누아.”
배움터에서 온 심부름꾼을 돌려보낸 세리아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미아가 이런 식으로 도망치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다른 때와 다르게 이번엔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한 번쯤은 져 줘도 괜찮잖아요.”
“절대로 안 돼.”
“바이샤.”
“쿠드라의 이름을 가진 이상 암만 사랑스러운 딸이라도 봐줄 순 없지. 거기다 조만간 내 길을 택할지도 모르는 아이인데 그건 그 아이를 기만하는 짓이야.”
아직 해가 머리 중앙 위에 떠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쿠드라의 방에서 자기 일을 보고 있을 바이샤였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라누아의 방에서 여유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사납게 내치는 건 아니죠.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요.”
“우리 자식이야. 그 정도론 안 다쳐.”
“바이샤.”
“……다음번엔 살살 해보도록 하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세리아나의 손을 잡아 부드럽게 잡아당긴 바이샤가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어젠 진짜 왜 그러셨어요? 평소보다 대련이 거칠었잖아요.”
“때가 되었으니까.”
“네?”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며 고개를 들어 올린 세리아나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바이샤는 그런 세리아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