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라젠에서 온 사신 (6)
세리아나가 지금 느끼고 있는 슬픔과 비참함, 그리고 부끄러움은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바이샤가 내리는 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세리아나.”
“네, 쿠드라.”
“나의 라누아.”
“……네?”
그러나 몸을 떨며 엎드려 있던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건 다정한, 아주 다정한 바이샤의 목소리였다.
노여움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세리아나의 이름을 불러오는, 그리고 아직도 그녀를 라누아라 부르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이 차이툰에 당신이 머리를 조아릴 상대는 아무도 없다고.”
“무슨…….”
“거기다 죄인처럼 엎드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군.”
“쿠드라?”
다정한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손길이 세리아나의 몸을 일으켰다.
홀리듯 엎드렸던 몸을 세워 앉은 세리아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호박색 눈동자에 담긴 온기에 더더욱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당신과 처음으로 오아시스로 향했을 때를 기억해?”
이 궁에 도착한 첫날 밤이었다.
그녀는 그 모든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라누아를 닮은 라젠의 왕녀가 필요하다 하셨어요.”
“그래. 정확히는 ‘라누아를 닮은 연보랏빛 머리카락과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라젠의 왕녀가 필요하다고 말했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못마땅한 듯 말을 끊은 그가 두 손으로 세리아나의 뺨을 감쌌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세리아나. 뭐가 중요한지 알겠어?”
“……모르……겠어요.”
“내게 필요했던 건 라젠의 왕녀가 아니라 라누아를 닮은 당신이었다는 소리야.”
“……네?”
바이샤는 세리아나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그녀의 몸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침대 위 이불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작고 가느다란 몸이 힘없이 끌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당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라누아와 닮기만 했다면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다는 소리야.”
“저, 저는…….”
“이건 곧 당신이 라젠의 왕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라누아로 맞이했을 거라는 뜻이지.”
“하, 하지만 저는……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을 한 쪽은 라젠의 칼슨 데이어 B. 다르미안이지. 당신은 그자에게 이용당한 피해자고.”
세리아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온기가 아니었다면 꿈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속인 거짓말쟁이를 바이샤는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걸까? 세리아나는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며 따뜻한 품 안을 벗어났다.
“어떻게…… 어떻게 저를 용서하실 수 있나요? 거짓말을 했어요. 감히 당신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니까.”
바이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연둣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오아시스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당신을 내 라누아로 존중하고 아끼겠다 했어.”
“하지만 저는 가짜인걸요!”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왕녀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
“나는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며 맹세했어. 기억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주지. 죽음이 찾아와 당신과 나, 둘 중 하나를 먼저 망자의 강으로 이끌더라도 나의 라누아는 오직 당신뿐이야.”
기적일까?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세리아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태어나 지금껏 단 한 번도 제 것이 아니었던 행운이 모두 이 순간에 쏟아지는 듯했다.
“용, 서해 주시는…… 건가요?”
“헬라임의 자식인 쿠드라와 라누아를 벌하고 용서할 수 있는 건 오직 헬라임뿐이지.”
“저는…….”
“거기다 당신은 내게 죄를 지은 적이 없어.”
“…….”
“당신이 내 곁에서 내 손을 잡고 붉은 길을 걷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세리아나 당신은 오로지 이 차이툰의 라누아일 뿐. 과거에 무엇이라 불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쿠드라…….”
“그래도 정 내게 사과하고 싶거든 이리 와서 당신의 남편을 좀 안아 줘. 헬라임께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당신을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못난 남편이지만 나의 죄를 벌할 수 있는 건 헬라임뿐이시니 나는 나의 라누아께 사과를 할 수도 없거든.”
“바이샤……!”
눈물을 터트린 세리아나가 두 팔을 벌리고 앉은 바이샤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그의 가슴 위로 흘러내렸다.
바이샤는 그런 세리아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드디어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군.”
“흑, 바이, 샤, 흐흑.”
“그래, 세리아나. 나의 라누아.”
바이샤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세리아나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사신들이 쿠드라의 홀을 떠난 이후 마주했던 ‘손님’을 떠올렸다.
라젠 사신단의 한 일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풍만한 몸을 풍성한 옷으로 감싸고 있었고 손에는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쿠드라.”
“그 모습으로 계속 있을 건가?”
“이게 생각보다 다시 뒤집어쓰기가 까다로워서요. 라누아를 뵈러 간 일행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어쩔 수 없지요.”
“카얀, 네 아우가 능글맞아진 것 같지 않나?”
“저 녀석은 본래 저랬습니다, 쿠드라.”
무뚝뚝하게 답하는 카얀을 보며 ‘손님’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피부색부터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바이샤는 그를 카얀의 아우라 부르며 손짓으로 그를 가까이 불러들였다.
“할 만한가?”
“그럭저럭 적응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라젠의 사람들은 우습게도 신분 차이가 조금만 나도 그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더군요. 뭐 자세히 봤더라도 이걸 뒤집어쓰고 있는 이상 들킬 일은 없지만요.”
남자는 자신의 하얀 얼굴 피부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게 당기는 대로 쭈욱 늘어나는 피부는 괴이한 몰골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바이샤와 카얀은 놀라지 않았다.
“쟈캄, 이만 보고를.”
“상단으로 위장해 라젠에 스며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가면 덕분에 의심 자체를 하지 않더군요.”
쟈캄은 카얀의 동생으로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과 주변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으로 라젠에 숨어든 첩자였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움직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그 가면이었다.
점성이 짙은 나무의 수액과 밀랍을 섞어 만든 가면은 보통 사람의 피부와 똑같은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위에 눈썹을 심고 적당한 화장을 더해 만들어낸 얼굴은 아주 가까이서 살피지 않으면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아주 정밀했다.
다만 얼굴에 붙였다 떼어내는 과정이 번거로웠기에 쟈캄은 평소엔 피부가 약하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가면을 덧쓰고 생활하며 얼굴을 보여야 할 때만 이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몸을 비대하게 보이도록 일부러 몸 안에 천을 여러 겹 덧대고 장갑으로 미처 바꾸지 못한 손의 피부색을 가린 그는 특유의 언변과 돈으로 이번 사신단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쟈캄은 처음 바이샤의 명을 받았을 때 스며들 구멍이 많다는 카얀의 말에 고개를 저었었다.
암만 그래도 한 나라의 중심에 스며드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없는 건지 믿음도 돈으로 살 수 있더군요.”
정말 우스울 정도로 쉬웠다.
그래도 첩자인지라 경계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앞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어찌 지내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실 테고…….”
“쟈캄. 쿠드라 앞에서 가벼운 언행은 삼가라 했을 텐데?”
“형님은 너무 딱딱해서 재미가 없다니까.”
“쟈캄.”
“네네. 최우선으로 알아보라 하신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왕녀’에 대해 보고하자면…… 보고할 게 없습니다.”
“뭐?”
쟈캄의 말에 카얀이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전 경고를 했음에도 그의 동생이 이 중요한 일로 장난을 치는가 싶어 화를 내려던 찰나, 쟈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왕녀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다 할 정보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말을 끝내고 고개를 숙인 쟈캄은 바이샤가 무서운 눈빛으로 저를 쏘아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대로 설명해라, 쟈캄.”
“네, 쿠드라.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왕녀는 우리 차이툰의 서신이 도착하고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라젠의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가짜 왕녀라는 소리인가?”
“엄밀히 말하면 반만 그렇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이전에 이름은 세리아나 피오르. 백작가의 영애로 그 어머니인 엘라이어 피오르는 현 라젠 국왕의 애첩입니다. 국왕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첩을 백작과 결혼시켜 그 사생아를 백작 영애로 키운 것을 라젠에서 모르는 이가 없더군요.”
카얀은 앉아 있는 자신의 주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가 자신의 주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상상할 수 없었다.
“계속 말해라.”
“사교계에선 천박한 엘라이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국왕의 첩이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랑하듯 ‘사생아’를 품에 안고 여러 사교모임과 파티에 나섰다는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쟈캄의 말은 기가 막힌 수준이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세리아나 주변의 모든 것들은 뒤틀려 있었다.
“구어슨 백작이라고 했나? 이번 사신단의 대표로 온?”
“네, 구어슨 백작과 알베토 후작이라는 늙은이가 ‘세리아나 피오르’의 신랑 후보였습니다. 쿠드라의 서신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었다면…… 아마 그 둘 중 하나와 결혼식을 올리셨을 겁니다.”
사실 알베토 후작으로 거의 결정되다시피 하는 분위기였다고 들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바쳤다고 했던가? 욕심 많은 라젠의 국왕이 후작에게서 더 받아낼 것을 계산하는 사이 바이샤의 편지가 도착했다고 했다.
“아주…… 불쾌하군.”
바이샤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카얀과 쟈캄은 흠칫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저 살기가 쏟아지는 방향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쟈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내 라누아께선 언제 아셨지?”
“네?”
“자신의 핏줄에 대해서.”
“아…… 그것이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아주 어린 시절인 듯합니다. 엘라이어 피오르가 그분과 함께 사교모임에 처음 나섰을 때 갓 걸음을 뗀 어린아이였다 했으니까요. 주변에서 여러 소리가 들려왔겠죠.”
바이샤는 세리아나를 여전히 자신의 라누아라 부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은 쟈캄은 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시종이 치아린의 방문을 알려왔다.
잠시 고민하던 바이샤가 손짓으로 허락하자 치아린이 방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쿠드라를 뵙습니다.”
“사신들과 만남이 끝난 건가?”
“네, 쿠드라.”
“그런데 라누아 곁에 있어야 할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라누아께선 잠들어 계십니다.”
“벌써?”
해가 기울기는 했어도 아직은 낮이었다.
요 며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세리아나의 모습을 떠올린 바이샤의 미간이 걱정으로 살짝 구겨졌다.
“몸이 안 좋은 건가?”
“사신과 만남이 끝난 후 실신하듯 쓰러지셨습니다.”
“뭐?”
“곧장 치료사를 불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피로하신 상태라 하십니다.”
쟈캄은 자신과 그의 형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보고를 이어가는 치아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의아하기는 했으나 라누아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으니 그의 종인 치아린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역대 모든 라누아의 종들은 그들의 주인을 목숨으로 섬겼었다.
라누아는 그들의 삶의 이유였기에 대부분의 종은 그들의 주인에게 집착을 보였다.
그리고 치아린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맹목적인 종이었다.
치아린의 대모였던 전대 라누아의 종은 젊은 나이에 명을 달리한 주인을 따라 목숨을 끊었고, 그녀를 대신해 치아린의 대모가 된 야안은 따라 죽지 못한 제 주인에 대한 죄스러움과 애정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자라난 치아린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제 주인에 대한 애정보다도 상실감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가져본 적도 없는 대상에 대한 상실감은 쟈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라젠의 것들과 무슨 일이 있었지?”
“사신단의 대표인 구어슨 백작이라는 자와 독대하신 후 급격하게 안색이 나빠지셨습니다.”
치아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바이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구어슨 백작이라면 지금 막 자신에게 상당한 불쾌함을 선물한 작자였다.
“어째서 그자와 내 라누아께서 독대한 거지?”
“그자가 라젠 국왕의 개인적인 메시지가 있다며 라누아께 독대를 청하는 바람에…….”
바이샤는 결혼식이 끝난 후 속 시원한 모습으로 궁을 떠나는 신부를 배웅하던 라젠의 국왕을 떠올렸다.
‘그 웃음이 거슬렸던 이유가 있었군.’
쟈캄의 이야기 속에서 세리아나는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난 불쌍한 여인이었다.
‘나는 그런 여자에게 그녀를 이용하겠다고 면전에 대고 선언한 거로군.’
쓸데없는 솔직함이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지만 할 수 있는 것이 후회뿐이라 바이샤는 화가 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
“……죄송합니다.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세리아나의 명으로 물러난 것이었지만 치아린은 변명하지 않았다.
바이샤도 치아린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라누아의 종인 그녀에게 화를 내고 벌을 내릴 수 있는 건 세리아나뿐이었으니까.
“단순히 이 상황을 전하러 날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말해.”
“구어슨 백작이라는 자…… 꼭 살려서 돌려보내야 합니까?”
치아린의 날이 서린 말투에 쟈캄은 숨을 삼켰다.
사신을 죽이다니…… 전쟁이라도 하자는 소린가? 아니 그보다도 바이샤는 저 말에 왜 저리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것일까? 지금 치아린의 저 말을 듣고 고민할 이유가 있나?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질 리는 없지만 그래도 전쟁은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가볍고 경솔하게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살려서 보낸다.”
다행히 바이샤는 아직까지는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 같았다.
‘일단’이라는 것이 조금은 걸렸지만 어쨌든 사신은 목숨을 건져 라젠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진심으로 분해 하는 치아린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쟈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죽이려는 건데?”
“뭐야, 쟈캄이잖아.”
“……나 좀 상처 입었어. 집 나갔던 개가 돌아와도 그렇게 차갑게는 말 안 해.”
“지금 네 형수의 기분이 아주 많이 안 좋단다?”
“형수는 무슨…… 어쨌든 그놈은 왜 죽이려고?”
“눈빛이 더러워서.”
“뭐?”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게 저건 진심이다.
치아린의 진심에 쟈캄은 황달에 걸린 개의 눈알과 닮은 구어슨 백작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기분이 나쁘기는 한데 죽이고 싶을 만큼 더러운 눈은 아니었다.
“라누아를 위아래로 훑던 눈이 아주…… 더러웠어!”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내 라누아를 어떻게 봤다고?”
흡사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바이샤의 목소리에 방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