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 너머의 연인-26화 (26/110)

#26. 사냥대회 (7)

바이샤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세리아나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그의 뒤로 사라졌지만 바이샤의 호박색 눈동자는 사막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능숙하게 살폈다.

치아린이 세리아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검은 바위 지대에서 하얀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빠짐없이 모두 살핀 그가 말의 고삐를 당겨 멈춰 섰다.

‘바로 움직여야 했다.’

치아린이 그녀를 놓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움직여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바로 말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면 바로 그녀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에 전사들에게 수색을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세리아나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세리아나!”

그는 큰 목소리로 세리아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 근방 그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세리아나가 답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바이샤가 세리아나의 이름을 외쳐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래바람 소리뿐, 그녀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세리아나를 태운 말이 달려나가고 그 뒤로 라갈 한 마리가 따라붙었다고 했었다.

만약 그 라갈에 당한 것이라면? 말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녀도 무사할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세리아나가 말 위에서 떨어졌고 빠르게 달아나는 말 대신 라갈이 그녀를 사냥감으로 삼은 거라면? 그런 거라면 분명 그의 작고 여린 라누아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자.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치아린의 증언을 따라 달려 도착한 곳은 모래사막이었다.

바이샤는 그것에 희망을 걸었다.

라갈은 모래 위를 오래 달리지 못하는 짐승이었다.

거기다 이곳은 ‘하얀 사막’, 다른 곳보다 더 작고 고운 모래알갱이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라갈이 제대로 달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바이샤는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거친 모래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다시 주변을 살펴보자. 아직 살펴보지 않은 곳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말의 고삐를 당겨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오아시스로 돌아가 누라비와 아눌라의 목부터 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움직이던 그의 눈에 붉은 화살 깃이 들어온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하얀 모래 위 작은 피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남은 흔적이었다.

이 차이툰의 사막에서 붉은색의 화살 깃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쿠드라인 그와 라누아인 세리아나, 단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이샤는 말에서 내려 그 화살이 꽂힌 장소로 다급하게 뛰어갔다.

“이건……!”

비스듬하게 꽂힌 화살의 모습을 살피던 그는 화살이 꽂힌 자리 아래가 봉긋한 것을 보곤 무언가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쉼 없이 바람이 불어 하루가 멀다고 모래언덕이 이동하는 하얀 사막이었다.

분명 모래바람이 ‘무엇’을 덮은 흔적이리라. 바이샤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앉아 천천히 손을 움직여 모래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무엇’의 정체를 알아차린 바이샤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것은 라갈이었다.

미간 사이에 박힌 것은 라누아의 화살이었으니 분명 세리아나가 사냥한 것이리라. 움직이지 않은 과녁은 제법 잘 맞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제 몸집만 한 라갈을 잡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활로 잡은 것이 아니야.”

화살과 라갈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이것이 활을 쏘아 잡은 것이 아니라 화살을 직접 두 손으로 박아넣은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냥에 도가 튼 그였으니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활을 쏘든 두 손으로 박든 어떤 방식을 이용했던 그녀가 라갈을 잡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내 라누아의 첫 번째 사냥감이군.”

그는 세리아나의 첫 사냥감을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좋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재미있겠군. 경고도 될 것이고.”

작게 휘파람을 불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말을 불러들인 바이샤는 라갈의 미간에 박힌 화살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시체를 말의 등허리에 올리고 끈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말이 그런 그의 모습에 불만스러운 듯 투레질을 했다.

바이샤는 그런 말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혹시나 더 남아 있을지도 모를 세리아나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라갈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뜻하지 않았던 물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리아나의 활이었다.

라갈의 몸 아래 깔려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활을 쓰다듬던 세리아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라일 꽃의 향기가 진해졌던 것을 기억한다.

아니, 침대 위에서 눈물지을 때 그 향기가 가장 진했던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녀를 찾아 확인하면 될 문제이리라.

“세리아나, 어디에 있지?”

바이샤는 세리아나의 활을 챙긴 후 다시 말 위에 올랐다.

바이샤가 혼자 탈 때보다 라갈 한 마리만큼의 무게가 더 늘어났지만 튼튼한 그의 말은 별 무거운 기색 없이 주인을 맞이했다.

그는 말의 갈기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주변의 모습을 살폈다.

여기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했으니 다시 여기서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했다.

“가능성이 높은 건 이쪽인가?”

사방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었다.

그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하루 정도. 세리아나는 걷고 있을 테니 이 방향이 맞다면 오늘 안에 분명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바이샤의 희망사항이었지만 그녀를 습격했던 라갈이 죽었고 세리아나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으니 아주 가능성이 없는 바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고삐를 단단히 쥔 채 말을 옆구리를 차며 바이샤가 소리를 내자 그를 태운 말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세리아나는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오아시스를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참을 걷고 있음에도 오아시스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멀어지는 오아시스를 붙잡으려는 듯 한쪽 손을 허우적거렸다.

품 안에 안긴 새가 경고하듯 삐- 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낼 때마다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다 흐려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발목의 상처에서 시작된 열이 세리아나의 온몸을 덮은 듯했다.

앓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고통 또한 인지할 수 없었다.

걷는 걸음마다 파삭 하며 건조한 흙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세리아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성은 마비되었고 오로지 오아시스로, 바이샤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남아 그녀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발을 움직이던 그녀가 단단한 바위처럼 보이던 흙뭉치를 밟았다.

그리고 그것이 부서지며 세리아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새가 위험을 느끼곤 크게 날갯짓을 하며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그 덕분에 잠시 정신을 차린 세리아나는 온몸에 힘을 줘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네 덕분이야.’

이번에도 새의 울음소리에 흐릿한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세리아나는 새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으며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메마른 땅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듯 점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새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벼랑 끝을 걷는 사람처럼 몇 번의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정신이 흐릿해지면…… 이번에야말로 새의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할 것이다.

세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 이샤…….”

메마른 목을 타고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멀어지는 오아시스가 마치 그곳엔 그녀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한 세리아나는 다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바이샤…….”

보고 싶어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세리아나는 목이 갈라져 더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바이샤의 이름을 불렀다.

“세리아나!”

그녀의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아니면 환청인 걸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바이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리아나는 풀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세상이 기울어졌다.

실상은 그녀의 몸이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지만 세리아나는 세상이 기울어졌다고 생각했다.

“세리아나!”

다시 들어오는 바이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리아나는 미소지었다.

만약 이것이 세상을 떠나는 그녀를 위한 신의 배려라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노라 신을 만나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세리아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정신을 놓아버렸다.

* * *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몸을 감싸는 포근함에 잠시 자신이 사막 위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사실을 잊은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아주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주변은 이미 밤이 내려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따뜻했다.

마치 바이샤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 앞에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꽃을 피워올리는 모닥불은…….

‘모닥불?’

세리아나는 뻑뻑한 눈을 빠르게 감았다 뜨며 눈앞의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녀가 심지어 정신까지 잃은 상태로 저것을 만들어 냈을 리 없었다.

잠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세리아나는 곧 새 한 마리를 떠올렸다.

정신을 놓기 전까지 저의 품 안에 얌전히 안겨 있던 그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새, 새는……!”

“쉬이, 가만히 있는 게 좋아.”

약간은 잠겼지만 생각보다는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새를 찾으며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던 세리아나는 귓가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절대로 들려올 리 없는 목소리가 바로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쓰러지기 전 들려왔던 환청이 다시 들려오는 걸까? 그런데 환청이 이토록 선명하다고?

“바이샤?”

“갑자기 움직이면 상처가 덧날지도 모르니 가만히…….”

“바이샤!”

세리아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몸을 반쯤 틀어 시선을 뒤로 돌렸다.

밤하늘을 닮은 까만 머리카락과 태양을 닮은 호박색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튼 상태 그대로 바이샤의 목에 매달렸다.

잊고 있던 발목의 상처가 쓰라렸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물을 아껴, 세리아나. 당신의 몸은 아주 많이 지친 상태야.”

“바이샤. 흑, 바이샤!”

“그래. 나야.”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가슴에 얼굴을 묻은 세리아나는 울고 있었다.

바이샤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울음소리는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도닥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헬라임의 인도가 있었던 것인지 그가 죽은 라갈을 발견하고 처음 잡았던 방향이 정말로 세리아나에게 이어졌다.

멀리 휘청이는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전투에서 이겼을 때도 하지 않았던 감사의 인사를 신에게 올렸다.

그리고 저의 부름을 듣지 못한 듯 바닥에 쓰러져 버린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품에 안았을 땐 태어나 처음으로 신께 간청했었다.

부디 이 사람을 데려가지 마시라고.

“진정했나?”

“……네.”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는 세리아나의 이마에 바이샤가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몸을 반쯤 비튼 자세로 제 품에 안겨 있는 그녀의 몸을 바로 해 등을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정신을 차린 세리아나가 처음 느꼈던 포근함은 바이샤의 품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세리아나는 저를 아프지 않도록 부드럽게 끌어안는 바이샤의 팔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꿈인 줄 알았어요. 바이샤의 목소리는 꿈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꿈은 아냐. 그대가 쫓던 것이 환상인 건 맞지만.”

“네?”

“오아시스를 본 거지?”

“……네.”

걷고 또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던, 오히려 멀어지던 오아시스를 떠올리며 세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샤는 그의 거친 손이 그녀의 상처 난 팔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세리아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이 본 건 신기루야.”

“아……!”

“신기루를 아나?”

“책에서, 읽어 본 적은 있어요.”

세리아나는 거울 속의 바이샤를 좀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선 신기루를 존재할 리 없는 장소를 마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사막의 마법이라고 설명했었다.

그걸 읽을 때만 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이샤의 말처럼 그녀가 본 오아시스가 신기루라면 과연 그것은 마법이라 불릴 만하다.

세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을 찾아서 다행이야.”

새가 모이를 쪼듯 머리카락과 머리 위에 떨어지는 입맞춤 속에 바이샤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닿기를 반복하는 것을 느끼며 세리아나는 눈을 감았다.

가슴 한쪽이 빠듯하게 부풀어 올라 숨을 쉬는 것이 힘겨울 지경이었지만 싫지 않은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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