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냥대회 (6)
해가 지고 달이 뜬 이후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세리아나는 사막 위를 쩔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라갈을 상대하며 군데군데 찢어진 옷 사이로 뜨거운 태양 아래 화상을 입은 듯 발갛게 익은 피부가 드러났다.
이대로 계속 사막의 뜨거운 태양에 노출된다면 조만간 수포가 올라오고 껍질이 벗겨질 것이다.
그러나 피부의 화상보다도 심각한 것은 그녀의 발목이었다.
짐승의 이빨에 당한 상처에 열이 오르고 부어오른 발목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한번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통증으로 식은땀이 후두둑 흘러내렸다.
“윽……!”
발을 내디딘 자리의 모래가 무너지며 발목에 바로 통증이 찾아왔다.
세리아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상처 부위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고통으로 두 손이 덜덜덜 떨려왔다.
붕대 대신 발목에 감아 상처 부위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임시로 막는 데 사용한 하얀색의 천은 머리에 썼던 터번을 풀어낸 것이었다.
처음 머리에 썼을 땐 새하얗기만 했던 천은 붉은색으로 얼룩져 본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기절한 사이 멈췄던 피가 무리하게 걷는 동안 다시 터져 흐르고 있었다.
세리아나는 두 손으로 발목을 쥔 채 이를 악물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모래, 모래, 모래.
온통 모래뿐인 사막 위에 세리아나와 별들 그리고 밝은 달 하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말이 날뛰는 동안 방향감각은 상실해 버린 지 오래였다.
거기다 쉼 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 탓에 말의 발자국마저 사라져 되짚어 돌아갈 길 또한 잃어버린 상태였다.
사막의 여왕이 사막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세리아나는 그것이 꼭 자신에게 라누아의 자격이 없다고 사막이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치아린은 무사할까?”
그녀의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말이 날뛰기 시작한 탓에 그것의 등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치아린은 괜찮을 거야. 무사히 도망쳤겠지…… 그랬을 거야. 응. 말은…… 말도 괜찮겠지?”
바이샤가 그녀를 위해 직접 골라준 말이었다.
똑똑한 녀석이니 오아시스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세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만약 무사히 오아시스로 돌아가 말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름을 지어주리라 다짐했다.
“움직여야, 윽! 움직여야 해…….”
세리아나는 신음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사막의 짐승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라고 치아린이 말했었다.
이 모래뿐인 사막에 어떤 짐승이 살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피 냄새를 풍기며 계속 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세리아나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그늘이 생길 만한 곳을 찾아야 해.”
이 장소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아침 해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늘 하나 찾을 수 없는 모래사막을 이 다리로 건너야만 했다.
체력이 깎이는 것은 둘째치고 말 그대로 사막의 태양 볕에 타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 허리에 차고 있던 물주머니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일.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세리아나는 몸을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그녀의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발목의 상처에서 시작된 열이 온몸에 퍼진 듯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고 부어오른 상처 부위는 색이 변하고 있었다.
애써 상처가 난 발목 쪽을 무시하며 걷고는 있었지만 통증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사이 사막에 해가 떠올랐다.
어떻게 방향을 잘 잡은 것인지 발을 디딜 때마다 무너지던 모랫바닥이 점점 단단해지며 드문드문 앙상한 나무와 키 작은 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리아나가 찾는 태양 아래 몸을 숨길 만한 그늘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허억, 허억…….”
물기를 잃은 메마른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발을 끌며 힘겹게 걷고 있는 세리아나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바로 잡으려 두 눈에 힘을 주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누가 제발…….’
그늘은 아직 찾지 못했고 점점 가벼워지던 물주머니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목이 바싹 말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사막이 드디어 자비를 베풀기로 한 모양인지 비틀거리며 걷던 세리아나의 눈에 멀리 작은 나무 하나가 들어왔다.
앙상하게 마른 가지를 가지고 있던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듬성듬성 나뭇잎을 두른 작은 나무 아래엔 세리아나가 그토록 찾던 회색빛 그늘이 져 있었다.
세리아나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밤부터 쉼 없이 걸어온 탓에 발바닥엔 물집이 잡히고 상처 입은 발목에선 계속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아…….”
그렇게 도착한 그늘엔 작은 선객이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기보다는 말라 죽어 가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그것은 작은 새였다.
성체라 보기엔 아직 털이 부슬거리고 새끼라 보기엔 눈의 테두리가 선명한 그 작은 새는 숨을 할딱이며 천천히 죽어가는 중이었다.
“……괜찮니?”
세리아나가 마른 입술을 움직여 질문했다.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혼잣말의 연장이었을 뿐이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혼잣말에 새가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새의 노란 눈동자와 세리아나의 연둣빛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너도…… 살고 싶은 거구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떨군 새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들어 올려 품에 안으며 그늘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안에서 몸을 떠는 작은 새는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으나 특이하게도 꽁지깃 하나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너도 헬라임께 붉은색을 허락받은 존재니?”
그늘진 자리에서 휴식을 처한 것만으로도 살아나는 듯 약간의 힘이 솟았다.
여전히 목은 말랐으나 아까처럼 죽을 것 같은 고통은 없었다.
세리아나는 부리를 벌리고 쉼 없이 헐떡이는 작고 검은 새의 몸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말랐구나.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니?”
작은 새의 몸은 뼈와 가죽, 그리고 깃털만 남은 듯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세리아나는 그런 작의 새의 검은 깃털과 노란색 눈동자를 보며 바이샤를 떠올렸다.
그의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미안, 나도 가진 물이…… 아……!”
헐떡이는 새를 내려다보며 미안하다 중얼거리던 세리아나는 새의 부리 모양을 확인하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의 뾰족한 노란 부리는 분명 안으로 갈고리처럼 휘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피오르 백작가의 저택에서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 중에는 동물도감도 몇 권 섞여 있었고 그 책 안에는 분명 새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부리가 갈고리처럼 안으로 휘어진 새는 대부분 육식성이었어.’
단단한 나무의 열매를 주식으로 삼는 새들 역시 부리가 안쪽으로 휘어 있었지만 그런 새들의 부리는 육식성 조류보다 크고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과 비교하면 지금 세리아나의 품에 안긴 새의 부리는 그것보다는 작고 짧은 형태로 휘어져 있었다.
‘먹을까?’
어떻게든 이 작은 새를 살리고 싶었다.
이 새를 보며 바이샤를 떠올렸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모아 그 위에 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말에서 떨어지는 와중에도 용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도를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이것의 존재를 더 빨리 떠올렸더라면 라갈을 상대하기가 조금 더 수월했을까? 세리아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려하게 장식된 검집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윽……!”
그리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단검의 날카로운 칼날을 손바닥에 대고 빠르게 긁어내렸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잘 버려진 칼날은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손쉽게 베어냈다.
붉은 피가 빠르게 흘러나왔다.
세리아나는 피가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살짝 손바닥을 오므려 그것을 새의 부리 근처로 가져갔다.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손바닥에 고였던 피 대부분이 팔뚝을 따고 흘러 팔꿈치 아래로 뚝뚝 떨어졌지만 몇 방울은 그녀가 의도한 대로 새의 부리 근처에 떨어졌다.
‘먹으렴…… 당장은 이거라도 먹어야 해.’
처음에 떨어진 피 몇 방울은 새의 부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리아나는 부리 사이로 스며드는 피조차 삼키지 못한 새가 안쓰러워 피가 흐르지 않는 한쪽 손을 움직여 새의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축 늘어져 헐떡거리던 새는 세리아나의 손바닥을 타고 제 부리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피를 그제야 힘겹게 삼키기 시작했다.
“힘내렴.”
그녀의 응원을 알아들은 듯 따뜻한 피를 삼키던 새가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갈증과 배고픔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탓인지 새의 날갯짓에선 아까와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기왕 흐른 피니 네 배가 찰 정도로 먹어도 괜찮았을 텐데…….”
새의 얼굴과 부리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닦아낸 세리아나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인 소맷자락을 잘라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감쌌다.
뒤늦게 상처 부위가 쓰라려 왔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새의 노란색 눈동자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세리아나는 새를 그늘진 바닥에 다시 내려놓았다.
야생의 새가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져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 작은 새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날개를 퍼덕이며 세리아나의 무릎 위로 기어이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좁은 나무 그늘에서 새와 세리아나의 작은 실랑이가 일어났다.
몇 번이고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계속해서 무릎 위로 날아오르던 새가 다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세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작은 새를 무릎 위에 올리곤 검지로 새의 매끄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도 고집이 세구나?”
그녀를 어미로 착각이라도 한 것일까?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도 아니었으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먹을 것을 주어서? 고작 그 정도로 야생의 새가 사람을 따를 수 있나?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세리아나는 그 의문의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뜨거웠다.
그늘에서도 느껴지는 더위에 잠시 잊고 있던 갈증이 다시 몰려왔다.
하루를 꼬박 굶은 상태로 잠도 자지 못한 채 피까지 흘린 탓인지 현기증이 찾아와 그녀의 시야를 흔들었다.
이대로 잠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없었다면 진즉 정신을 놓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사막에 홀로 떨어진 경험이 없는 그녀는 조난자에겐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도 체력도 바닥이 났다.
머리는 생각하기를 포기했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세리아나는 본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 세리아나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로 움직여야 할까? 아마 새도 함께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 작은 새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움직이자. 어떻게든 오아시스로 돌아가야 해.”
바이샤의 오아시스는 이 사막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분명 멀리서도 그 푸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새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리고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 끝에 푸르른 오아시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평선의 끝자락에 일렁이는 푸른빛은 분명 바이샤의 오아시스였다.
아까 이 그늘을 찾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지만 세리아나는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오아시스가…… 맞아!”
눈을 몇 번이고 비벼보아도 사라지지 않는 오아시스를 확인한 세리아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젠 눈에 보이는 저곳을 향해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눈으로 가늠해 봤을 때 반나절만 힘을 더 낸다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리아나는 목적지가 눈에 보인다는 사실 하나에 힘을 얻었다.
생각보다 오래 걷게 되더라도 도착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바이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오아시스를 보여 줄게. 너도 분명 그곳을 사랑하게 될 거야.”
세리아나는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새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아 무서웠다.
그녀는 그늘에서 일어나 오아시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늘을 벗어났을 뿐인데 삽시간에 주변 온도가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다시 그늘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영원히 오아시스에 닿지 못할 것 같았다.
‘밤이 오기 전에 오아시스로 돌아가야 해.’
세리아나는 하얗게 트고 메말라 버린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걷자. 걸어야 한다.
걸어서 오아시스로…… 바이샤의 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세리아나는 그 사실 하나만을 떠올리며 움직이지 않는 발을 있는 힘껏 움직여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