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 너머의 연인-23화 (23/110)

#23. 사냥대회 (4)

세리아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사막, 오아시스, 라일 꽃이 뒤엉킨 꿈속엔 바이샤가 있었다.

태양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제대로 내쉴 수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밤이 찾아왔다.

지면 가까이 내려온 커다란 보름달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꿈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던 세리아나는 오아시스 속에 몸을 담그고 서 있는 바이샤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일었다.

빨리 그에게로 다가가 이 마음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무친 말이 오아시스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녀의 말은 바이샤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도 세리아나는 계속해서 제 마음을 고백했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제발 아주 작은 소리 하나라도 그의 귀에 닿기를 소원했다.

발목을 붙잡는 무거운 물을 헤치고 그에게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으나 그와의 거리는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세리아나는 애가 탔다.

그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다리가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이샤! 잠시만, 가지 말아요. 내게서 멀어지지 말아줘요!’

지면에 닿을 듯 내려 와있던 보름달이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가고 바이샤와 오아시스가 멀어져 간다.

세리아나는 손을 뻗어 그와 오아시스를, 그리고 그림자를 붙잡아보려 했지만 빠르게 멀어지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바이샤!”

그리고 그 순간 세리아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바이샤를 붙잡으려 뻗었던 손이 허공을 헤집고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그녀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것인지 그녀가 머무는 천막 안에 작은 램프가 켜져 있었다.

“라누아? 괜찮으신가요?”

세리아나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빠르게 다가온 치아린이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으응, 꿈을…… 꾼 모양이야.”

“피곤하셨나 봐요. 오늘은 그냥 이대로 쉬시겠어요?”

“아니야. 정말 괜찮아. 이제 움직이는 거야?”

“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응.”

치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세리아나는 차갑게 식은 양손을 주물렀다.

멀어지는 그를 붙잡기 위해 꿈속에서 절박하게 움직인 탓인지 차가워진 손바닥 가운데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그것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쉰 세리아나는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당겨 안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꿈에서도 고백은 할 수 없는 거구나.”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리아나는 그의 필요 때문에 라누아가 되었고 바이샤는 그런 그녀를 존중하겠다고 맹세해 주었다.

그 맹세에 사랑을 더해달라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리아나는 울적해지는 마음을 쉽사리 달랠 수 없었다.

“바이샤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인걸.”

그가 아니었다면 늙은 후작의 침실에 갇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내야 했을 세리아나였다.

여기서 욕심을 더 부렸다간 정말로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시 천막으로 돌아와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치아린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지금은 사냥대회만 집중하는 거다.

뭐든…… 아주 작은 짐승이라도 한 마리 잡아 그의 선택이 아주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무사히 돌아가자.

세리아나는 잠시 쉬기 위해 내려두었던 단검을 손에 쥐며 그렇게 다짐했다.

해가 진 후 치아린과 함께 세리아나가 거점을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람은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아눌라의 천막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천막 안, 아눌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던 그녀는 아눌라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서 있는 하누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인간은 그냥 버리시는 게 어때요, 아눌라 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보고 온 거나 말해.”

“검은 바위 지대로 향했어요.”

하누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긴 람이 아눌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대답했다.

반달 모양으로 접힌 눈가가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았지만 아눌라는 하누를 향해 한 번 더 확인해 보라 눈짓을 할 뿐이었다.

“확인해 보실 필요도 없다니까요, 아눌라 님.”

“내가 확인하라 하면 하는 거야. 불만이니?”

“아, 아니요. 죄송해요.”

아눌라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숙인 람은 천막 밖으로 향하는 하누의 발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았다.

저 우중충한 여자보다 자신이 백만 배는 더 유능하고 쓸모가 있는데 그 사실을 몰라주는 아눌라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곧 표정을 정리한 그녀가 다시 웃는 얼굴로 아눌라를 바라보았다.

시카는 쿠드라의 총애를 받는 부족이었고 아눌라는 그 부족의 후계자이자 족장의 가장 사랑받는 첫째였다.

야망이 큰 아눌라의 측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그녀 역시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눌라 님. 검은 바위 지대로 향한 것이 맞습니다.”

“라갈은?”

“……준비되어 있어요.”

슬쩍 아눌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려던 람은 어느 순간 천막으로 돌아와 아눌라에게 보고하는 하누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눈치도 없는 년. 그것이 하누에 대한 람의 평가였다.

“그 말라깽이 여자가 타고 있는 말이 실은 쿠드라께서 직접 골라 선물한 말이래요.”

람은 사나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눌라를 보며 마음속으로 미소지었다.

맥락에는 맞지 않는 말이었으나 분명 아눌라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누보다 자신이 더 뛰어난 수하임을 알리기 위해선 이런 작은 모험도 필요했다.

물론 그녀를 자극 한 이후엔 아주 달콤한 말도 던져줘야 한다는 것 역시 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눌라 님, 라갈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으세요?”

“내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는구나.”

“아뇨, 그냥 조금 더 완벽히 하자는 말이지요.”

기회를 잡은 듯 목소리를 높인 람이 하누를 밀치며 아눌라 곁으로 다가갔다.

“가끔이지만 눈먼 화살이 날아와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잖아요. 그 눈먼 화살이 아무런 표식이 없는 아주 평범한 화살일 확률도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람, 그건……!”

“조용히 하렴, 하누.”

“……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한발 물러나는 하누를 비웃은 람이 눈을 반짝이며 아눌라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쓸모를 이제야 알아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을 텐데.

아눌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뻔한 람을 향해 손을 뻗어 그 어깨를 살짝 도닥여 주었다.

이렇게 제 주제도 모르면서 날뛰는 단순한 녀석은 한번 쓰고 버리기에 알맞은 패였다.

“람.”

“네, 아눌라 님.”

“내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것 같구나.”

“맡겨만 주세요, 아눌라 님. 마침 아무런 표식이 없는 화살 하나를 저도 모르게 챙겨와 버렸거든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람은 제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각오를 다진 얼굴로 아눌라의 천막을 빠져나갔다.

람이 떠나간 후 아눌라는 다시 화살촉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 곁에 서 있던 하누는 입을 달싹거리다 한숨을 삼키기를 반복하며 아눌라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람이 실수라도 한다면 아눌라 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실수를 하면 그 실수와 함께 람도 치워버리면 그만이야.”

“…….”

“너는 람의 화살 하나를 챙겨둬.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네.”

한층 더 어두워진 하누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아눌라가 정비가 끝난 화살을 한데 모았다.

아직 사냥에 나서기 전이었지만 이번 사냥대회에선 아주 특별한 사냥감을 잡게 될 거라는 기대감에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라젠의 짐승은 무슨 색 피를 흘리려나?”

아눌라의 아몬드 빛 눈동자가 일렁이는 촛불 아래 붉게 빛나고 있었다.

* * *

사냥터를 살피고 돌아와 잠시 잠에 빠져들었던 세리아나는 몇 시간 후 그녀를 깨우는 치아린의 목소리에 눈을 떠 천막을 빠져나왔다.

이른 새벽에 움직이기로 한 것은 세리아나와 치아린뿐만이 아니었는지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여인들이 자신의 말을 살피고 있었다.

“움직이십니까?”

“아, 자라하.”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 특기인지 어느새 다가온 자라하가 세리아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인 것인지 자라하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대도 움직이는 건가?”

“저는 돌아오는 길입니다.”

“벌써?”

“사냥터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있어서요.”

세리아나는 자라하가 피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눌라일 것이라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사냥대회 도중엔 고의든 아니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어서요. 바라의 이름을 걸고 참여한 이상 부족에게 피해를 줄 만한 일은 참아야지요.”

세리아나는 그녀가 부족의 이름을 걸고 참가하지 않았다면 개인의 명예를 바닥에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아눌라에게 해를 끼칠만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과는 있었나 보구나.”

“득도 실도 아닙니다.”

자라하의 말이 짊어진 것은 왕도마뱀 두 마리의 사체였다.

단번에 미간을 꿰뚫은 것이 분명한 왕도마뱀의 사체를 보며 흠칫 몸을 떤 세리아나는 무덤덤하게 답하는 자라하의 화살집에 남은 활의 수를 세어 보았다.

깃의 중간 부분을 푸른색의 염료로 물들인 화살의 수는 다섯 개였다.

“겨우 다섯 발로 저렇게 큰 걸 두 마리나 잡다니…….”

“큰 짐승일수록 미간 사이를 노리면 쉽습니다. 저는 다섯 발씩이나 썼지만요.”

“……그게 쉬워?”

“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답하는 자라하의 모습에 세리아나는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라젠의 남자들도 쉽사리 사냥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왕도마뱀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그녀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일어났다.

“……목표 지점까지 일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곡선?”

“네, 곧장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화살이라도 완만한 곡선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아…….”

세리아나가 자신의 충고를 되새김질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쑥스러웠는지 작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던 자라하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치아린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정된 세리아나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애써 무시하며 치아린을 향해 먼저 말을 건넸다.

“치아린 님, 함께 움직이시는 겁니까?”

“종이 주인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럼 검은 바위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세리아나와 자신의 말을 끌며 다가온 치아린은 자라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은 바위 지대는 그녀도 오늘의 사냥터로 생각하고 있던 장소이긴 했다.

그런데 자라하가 왜 그곳을 추천하는 걸까? 전날 함께 움직이자는 권유를 거절했던 그녀였기에 자라하의 말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눌라가 회색 덤불 지대로 이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

“상대하기 까다롭지 않은 사냥감이 있는 곳은 검은 바위 지대와 그곳뿐이니까요. 아눌라가 있는 곳으로 일부러 움직일 필요는 없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라누아.”

“이른 시간부터 고생했어. 푹 쉬도록 해, 자라하.”

“부디 조심하시길…….”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자라하가 소리 없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세리아나는 치아린으로부터 말고삐를 넘겨받았다.

아직 하늘은 짙은 남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해는 순식간에 떠오를 것이다.

활을 몇 번이나 당길 수 있을까? 초조해진 세리아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 모습도 어여쁘셔서 바라보는 저는 좋지만 사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으, 응. 노력해 볼게.”

“그럼 앞장서겠습니다, 라누아.”

“응.”

웃는 얼굴로 세리아나를 안심시킨 치아린이 먼저 말을 몰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말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한 세리아나는 어두운색으로 물든 사막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를 태운 말이 한 번 발을 굴릴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뒤로 멀어져 갔다.

얼굴에 부딪혀 오는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얼마든지 계속해서 달릴 수 있어.’

라젠에서 배운 승마는 시종의 손에 말의 고삐를 맡기고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이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달리는 정도의 말 위에서 머리에 쓴 보닛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 세리아나를 감쌌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멀리 우뚝 솟은 검은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밟을 때마다 부서지던 모래사막에서 어느새 단단한 바닥이 느껴지는 황무지로 넘어온 것이다.

모래만 있던 곳과 다르게 드문드문 낮게 자라난 수풀과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달렸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사막의 경계는 사람의 손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서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요. 여기에서 조금 더 달려가면 다시 모래사막이 나오니까요.”

달리던 말의 속도를 늦춰 세리아나와 나란히 말을 몰기 시작한 치아린이 답했다.

구역이 정확히 나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세리아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바위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사냥하는 거야?”

“네, 상대적으로 순한 짐승들이 터를 잡은 곳이거든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지만 다른 곳의 짐승들보다는 잡기가 수월해요.”

“아까 말한 회색 덤불 지대처럼?”

“네.”

그때 세리아나의 머리 위로 작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세리아나는 사냥감을 찾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치아린을 향해 질문했다.

“저기, 치아린?”

“네?”

“작년까지 사냥대회에서 우승한 건…… 아눌라였지?”

“주인 없는 자리에서 차지한 반쪽짜리 영광이었죠.”

“아눌라가 그렇게 뛰어난 전사인 거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눌라는 활을 쏘는 것을 포함해서 사냥 그 자체에 능숙해요. 쿠드라께서도 그녀를 보고 능숙한 사냥꾼이라 칭찬하셨거든요.”

그 칭찬 한 번에 기고만장해져선 더 날뛰기 시작했던 아눌라를 떠올리며 치아린은 이를 갈았다.

바이샤가 섬겨야 하는 왕이 아니었더라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등짝을 때려주거나 귀를 세게 잡아당겨 줬을 것이다.

본인은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일지 몰라도 듣는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확대 해석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아눌라는 왜 그곳으로 간 걸까?”

“네?”

예상치 못한 세리아나의 질문에 치아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눌라라면 분명 이번 사냥대회의 우승도 노리고 있지 않을까? 공개적으로 나를 망신 줄 기회잖아. 라누아의 이름으로 열리는 사냥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라누아라니…… 안 그래?”

“라누아, 그건……!”

“나는 내 실력을 알아. 나는 절대 우승하지 못해, 치아린.”

“…….”

“그런데 왜 아눌라는…… 왜 우승과는 거리가 먼 사냥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걸까?”

세리아나의 질문에 치아린은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아눌라와 같은 공간을 피하는 데만 집중했던 탓이었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아눌라와 그녀의 추종자 중에 그 사냥터를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아눌라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실력이 모자란 자는 경멸했다.

그래서 그녀의 파벌에 속한 이들은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도 않고 아주 못 봐줄 정도도 아닌 딱 중간 정도 수준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냥대회 때면 아눌라의 승리를 위해 몰이꾼 역할을 맡았다.

분명 이번 사냥대회에서도 이전과 같은 방식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곳으로 향한 걸까? 불길한 기운이 치아린의 뒤통수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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