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 너머의 연인-14화 (14/110)

#14. 사막의 신부 (9)

세리아나가 치아린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시작한 그 시각에 바이샤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세리아나와와 마찬가지로 쿠드라의 종인 카얀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이샤 앞에 오늘 가마를 짊어졌던 세 명의 전사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 남자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마터면 쿠드라와 라누아의 신성한 결혼식을 망칠 뻔했다.

만약 라누아의 몸에 상처가 생겼거나 그녀의 몸이 붉은 길에 닿았다면 그 자리에서 세 남자는 목이 잘렸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사라진 악타르가 맡은 가마채에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점검 이후 손을 쓴 듯합니다.”

바이샤가 욕조에 등을 기대고 누워 느긋하게 묻자 카얀이 빠르게 답했다.

눈을 감고 있는 쿠드라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 방 안에 모인 이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들의 왕은 제 안에 품은 사람들을 다정히 살필 줄 아는 성군이었으나 상과 벌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왕이었다.

그렇기에 사막의 전사들은 모두가 바이샤를 존경하며 동시에 두려워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그들은 이렇다 할 분노를 내비치지 않는 그를 보면서도 함부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재미있군.”

낮은 그의 목소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세 남자가 동시에 바닥에 이마를 찍으며 죄를 청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추락한 명예를 끌어안고 죽을 수는 없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으나 전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바닥에 이마를 찍고 있었다.

“악타르는?”

바이샤가 무심한 얼굴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질문했다.

여전히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호박색 눈동자에 분노가 서려 있는 것을 확인한 카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행방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의 누이 역시 사라진 상태인 거로 봐선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 같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나와 내 라누아의 결혼식에 수작을 부린 내 전사가 사라졌다? 카얀, 내가 이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지?”

“죄송합니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서늘하게 답한 바이샤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자 카얀이 다가와 수건을 건넸다.

구릿빛 피부에 맺힌 물방울들이 보기 좋게 갈라진 근육의 골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무심한 눈빛으로 수건을 받아 몸을 닦은 그는 알몸 위에 가운을 걸치고 허리띠를 묶으며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때까지도 전사들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찾아라. 찾아서 산채로 내 앞으로 데려와.”

“네!”

“네!”

“네!”

마지막 기회를 얻은 전사들이 피를 흘리며 물러가고 소리 없이 들어온 시종들이 바닥의 피를 닦아 냈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기 위해 다가오는 시종 하나를 물린 바이샤가 카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하지 않은 걸 말해.”

“……시카 아눌라가 의심스럽습니다.”

“이유는?”

“악타르의 죽은 어미가 시카 출신입니다. 일찍 남편이 죽고 악타르와 그의 누이를 홀로 키우며 종종 시카의 원조를 받았다 합니다.”

“원조를 받았다…….”

“네, 그녀가 죽기 전까지 보인 시카의 족장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여러 방법 중 시카는 유목의 삶을 택한 부족이었다.

그들은 사막을 떠돌며 염소를 길렀고 다른 부족들과 교류했다.

그러는 사이 부족이 다른 남녀의 혼인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치아린의 경고가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누라비에게는 통했을 겁니다. 아눌라가 듣지 않았을 뿐.”

“시카의 족장은 제 후계자를 다룰 힘이 없는 모양이군.”

“……누라비는 제 후계자에게 종종 약한 모습을 보이니까요.”

“종종?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쿠드라께서 아껴 사용하는 자가 아닙니까. 어느 정도의 허물은 모르는 척해야겠지요.”

사막의 부족 중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바이샤의 발등에 입을 맞춘 누라비는 사막의 통합을 앞당기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사막을 떠돌며 여러 부족과 교류하며 쌓아온 ‘정보’가 그의 힘이었다.

바이샤가 사막을 하나로 모으기는 했으나 아직 반발하는 부족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당분간은 시카의 힘이, 누라비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시카의 힘을 누를 기회다. 확실하게 꼬리를 잡아. 진짜 아눌라의 짓이라면 네 말처럼 후계자를 끔찍하게 아끼는 누라비이니 큰 약점 하나를 쥘 수 있을 거다.”

“그에겐 쿠드라께서 베푼 자비가 두 번이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그럼 누라비의 손에 쥔 패 하나가 사라지는 거다. 어느 쪽이든 손해는 아니야.”

“원하시는 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카얀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그의 주인이 원하니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신의 아들이자 쿠드라의 이름을 이은 ‘왕’의 특권이었다.

“그건 그렇고 카얀.”

“……왜 그러십니까?”

카얀은 순식간에 방 안의 온도가 변하는 것을 느끼며 슬쩍 바이샤의 눈치를 살폈다.

공과 사가 분명한 그의 주인은 어린 시절부터 이렇듯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첫날밤을 앞둔 나에게 해줄 말은 없나?”

“없습니다.”

“대답이 너무 빠른데?”

“충분히 교육받지 않으셨습니까?”

“무희들의 춤을 보았을 뿐이야. 그마저도 지루했고. 그래서 경험자의 조언을 좀 듣겠다는데, 불만인가?”

“불만입니다.”

“그러지 말고 뭐든 도움이 되는 걸 말해 봐.”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뭔데?”

“본능에 충실하되 이성을 잃지는 마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야?”

“닥치게 되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어서 옷부터 갈아입으시고 준비하십시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카얀의 말에 창밖을 힐끗 바라본 바이샤가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겼다.

아주 조금 긴장이 묻어나는 그의 모습에 카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카얀.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는 후회가 아니라 내 선택이 최선의 것이 되도록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네, 쿠드라.”

“나는 내 라누아를 사랑할 수 있을 거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야.”

바이샤의 말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다가와 그의 몸에 남은 물기를 제거하고 향유를 정성 들여 바르기 시작했다.

카얀은 자신의 걱정은 이쯤에서 접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쿠드라의 방을 나섰다.

지금 중요한 것은 쿠드라와 라누아가 함께 시간을 보낼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궁의 경계를 강화하는 일이었다.

* * *

세리아나는 창문가에 서서 까맣게 어두워진 밤하늘과 그것을 비추는 오아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그의 진짜 신부가, 아내가 되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미칠 듯 빠르게 뛰던 심장은 간신히 본래의 박자를 되찾았다.

그러나 조만간 다시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요동칠 것이다.

“……어쩌지? 책이라도 좀 읽어둘걸.”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미리 짐작한 치아린의 생각과 다르게 세리아나는 첫날밤에 대한, 정확히는 남녀가 밤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미리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심한 어머니라 할지라도 성인이 된 딸에게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지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세리아나가 거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갖 뿌리 없는 소문들이 달라붙는 세리아나였다.

그런 그녀가 암만 의무적인 교육이라 할지라도 코르티잔을 불러들여 남녀 간의 색사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말들이 범람했을 것이다.

책을 고를 때에도 신중해야만 했다.

남녀 간의 성애를 다루는 책 근처로는 다가가지도 않았고 누구나 흔하게 읽는 로맨스 소설마저 피했다.

그 어미에 그 딸.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나름 필사적으로 애쓴 결과였다.

“무슨 걱정을 하고 있길래 그런 한숨을 내쉬는 거지?”

“쿠, 쿠드라!”

얼마나 생각이 깊었으면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걸까?

바이샤가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세리아나는 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하얀 바지와 허리를 묶지 않은 가운을 걸친 바이샤의 모습을 확인한 세리아나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앞섶이 벌어진 가운 사이로 바이샤의 넓은 가슴과 탄탄한 복근이 가릴 것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시선을 피하는 세리아나를 보며 멋쩍은 듯 손가락으로 볼을 긁은 바이샤가 카얀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건네준 유리병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색함을 없애 줄 것이라고 했던가? 뭐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바이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세리아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흠흠, 혹시 술은 좀 마실 줄 아나?”

“……조금은…….”

“다행이군. 우선 한잔하겠나?”

“……네.”

세리아나는 바이샤의 손에 들린 목이 기다란 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술은 잘하지 못했지만 그가 권하는 것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바이샤가 먼저 키가 작은 테이블 앞에 주저앉고 그 뒤를 따르듯 세리아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앉은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선인장의 열매로 만든 술이야. 달콤한 편이라 여인들도 즐겨 마시는 술이지.”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바이샤였다.

유리컵에 붉은색의 음료를 따라 세리아나에게 건넨 그는 제 몫의 술도 컵에 따른 후 잔을 들어 올렸다.

세리아나도 살짝 손을 떨며 그를 따라 잔을 집어 들었다.

먼저 맛을 보라는 듯 눈으로 재촉하는 그의 모습에 세리아나가 잔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가벼운 샴페인쯤은 라젠에서도 마셔 보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세리아나가 눈을 질끈 감고 붉은빛을 술을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었다.

“콜록 콜록!”

바이샤의 말처럼 무척이나 달콤했지만 세리아나가 마시기엔 독한 술이었다.

입 안에 담긴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화끈거리는 알코올의 기운이 삽시간에 온몸에 퍼져 가벼운 현기증마저 일었다.

“괜찮나?”

“콜록, 괘, 괜찮…….”

당황한 바이샤가 세리아나 곁에 바짝 붙어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기침은 빠르게 멎었지만 이번엔 그의 손길이 스치는 등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 열이 나기 시작했다.

바이샤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품 안에 기대고 있는 세리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충동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았다.

“세리아나 쿤 라누아.”

“네?”

“당신의 이름이지. 기억하고 있나?”

“네.”

“그럼 내 이름은?”

“기억해요. 바이샤 쿤 쿠드라.”

고작 술 한 모금을 삼켰을 뿐이다.

그러니 이 열기는 술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이 원인일까? 세리아나는 생각했다.

그가 불러 준 자신의 이름이? 아니면 그녀가 소리 내어 부른 바이샤의 이름이? 갑작스러운 현기증에 머리가 핑 하니 어지러워졌다.

“세리아나. 나의 라누아.”

낮은 목소리. 세리아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바이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연둣빛 눈동자는 몽롱하게 열이 올라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이샤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조심스러운 입맞춤은 이내 물기 어린 소리를 내며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뜨거운 입술이 서로의 살갗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두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세리아나의 입술을 탐하던 바이샤가 그녀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림막 뒤의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몸이 떠오른다 싶었던 순간 등 뒤로 닿는 푹신한 이불의 감촉에 놀란 세리아나가 눈을 떴을 땐 침대 끝에 선 바이샤가 가운을 벗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근육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를 가두듯 침대 위로 올라온 바이샤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침대 위에 어질러진 세리아나의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입을 맞추었다.

머리카락에 이어 이마와 눈꺼풀 둥근 코끝에 순서대로 입을 맞춘 바이샤가 다시 세리아나의 입술을 삼켰다.

바이샤의 뜨거운 손이 그림을 그리듯 그녀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세리아나의 입술을 삼키던 바이샤의 얼굴이 아래로 미끄러지며 목덜미에 닿았고 그 자리에서부터 붉은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세리아나는 열이 올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몸이 들썩이고 호흡이 헝클어졌다.

제 숨을 전부 삼키려는 듯 집요하게 달라붙는 바이샤의 입술이 뜨거웠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몸과 호흡, 귓가에서 부서지는 바이샤의 숨소리가 어지럽게 뒤엉키고 있었다.

* * *

아눌라는 하나둘씩 불이 꺼지기 시작하는 궁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고작 라젠의 말라비틀어진 왕녀 따위에게 가장 높고 고귀한 자리를 빼앗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눌라 님, 밤이 늦었어요.”

“악타르는 깨끗하게 처리한 거겠지?”

“……네, 말씀하신 대로 처리했어요.”

긴 머리의 끝을 둥글게 묶어 늘어트린 우울한 인상의 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눌라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죽은 자의 입은 무거운 법이다.

증거는 모두 사라졌으니 누구도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하리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어차피 쿠드라의 칼에 목이 잘릴 것이 빤한데 누가 죽이든 그것이 문제가 되니?”

악타르의 누이를 시카의 이름으로 불러내 인질로 잡고 그가 바이샤를 배신하도록 종용한 자는 아눌라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깔끔하게 잊은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시카의 후계자는 절대로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인물들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이번에 악타르를 처리하기 위해 아눌라를 대신해 움직인 것은 지금 아눌라 뒤에 그녀의 그림자처럼 서 있는 여인, 하누였다.

“왜? 그가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니? 슈라처럼?”

“저는…….”

“어리석고 불쌍한 하누.”

궁을 바라보고 있던 아눌라가 몸을 돌려 하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화사한 미소가 가득했으나 그 눈빛은 궁을 노려보던 때와 같이 사납게 빛이 나고 있었다.

하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파라간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여동생도 버린 네가, 악타르를 불쌍히 여길 리 없지. 안 그래?”

“……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인 하누의 목소리가 아눌라의 두 귀에 닿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고개를 돌려 궁을 바라보았다.

“두고 봐. 누구보다도 고귀한 자리에 오르는 건 결국 나일 테니까.”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달콤할,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쓰디쓸 사흘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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