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 너머의 연인-8화 (8/110)

#08. 사막의 신부 (3)

마차가 드디어 궁 앞에 도착했다.

치아린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세리아나는 저를 호위해 온 카얀이나 다른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천을 허리에 두른 전사들을 발견했다.

이중 삼중으로 거대한 문을 만들어 출입하는 이들을 통제하는 라젠과 달리 차이툰의 궁에는 그러한 문이 없었다.

대신 잘 훈련된 전사들이 지키고 선 길을 따라 궁 안으로 들어간 세리아나는 문지방 하나 차이로 확연하게 떨어진 온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돌이라는 치아린의 말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 그녀는 슬쩍 벽으로 다가가 우둘투둘한 벽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거친 바위의 표면이 그대로 느껴졌다.

“바위와 돌, 그 사이를 메꾼 것 역시 바람 사막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것입니다.”

“돌로 만들었다고?”

“네, 그것들을 부숴 만든 가루로 만든 것이지요.”

“돌가루가 이렇게 변할 수 있어?”

“돌가루에 잘게 자른 지푸라기와 물을 섞어 진흙처럼 만든 거예요. 다른 돌은 안되고 바람 사막의 돌로만 만들 수 있답니다.”

세리아나는 라젠의 건물이 어떻게 지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차이툰의 건축기술이 라젠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세리아나는 차이툰을 야만족이라 헐뜯는 라젠의 귀족들에게 이 궁을 보여 주고 싶었다.

“라누아의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응.”

치아린이 내민 손을 잡자 그녀가 세리아나를 천천히 앞으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단층으로 지어져 천장이 낮은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높고 넓게 지어진 궁이었다.

미로만큼 길을 찾기 어렵지는 않으나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은 필요할 것 같았다.

궁의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도착한 라누아의 방에는 문이 없었다.

대신 화려한 무늬의 아름다운 천이 여러 겹으로 늘어져 문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었다.

천을 한쪽으로 젖힌 치아린이 세리아나를 그 안쪽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선 세리아나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얇은 갈대를 촘촘히 땋고 얽어 만든 가림막과 화려한 색의 소파였다.

접었다 펼칠 수 있도록 다섯 개의 면으로 만들어진 가림막을 배경으로 놓인 낮은 소파 위로 색색의 쿠션들이 굴러다녔다.

소파의 높이에 맞춘 테이블 위엔 싱싱한 과일과 꽃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음에 드시나요?”

치아린의 손을 놓고 방 안을 살피기 시작한 세리아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창문을 가린 얇고 하얀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녀를 환영하는 듯했다.

“가장 안쪽이 라누아의 침실입니다.”

가림막 너머 살랑이는 하얀 캐노피를 본 순간 세리아나도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을 목적에 맞추어 하나하나 작게 나누는 라젠과 다르게 커다란 방 하나에 모든 것을 두고 가림막으로 용도를 나누는 것이 차이툰의 풍습인 듯 보였다.

“푸른빛이 모자란 것 같아 화분을 몇 개 준비했는데…… 어떠신가요? 더 채울까요?”

“아니, 창밖의 오아시스로 충분한 거 같아.”

“다행입니다.”

세리아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치아린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을 불러들였다.

먼저 거울이 침대 옆 한쪽 벽을 차지했고 이어서 비어 있는 공간마다 세리아나가 가지고 온 혼수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문을 가린 두꺼운 천 너머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라누아가 되실 분께 인사를 올리겠다는 겁니다. 막을 이유가 있나요?”

“방문객을 받지 말라는 쿠드라의 명입니다. 그분의 명을 거역할 생각입니까, 아눌라?”

안쪽으로 들어가겠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와 그것을 막는 카얀의 목소리였다.

불청객을 상대하는 그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상대하는 이의 목소리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나는 누라비의 첫째입니다. 쿠드라가 아끼는 시카의 후계자로 인사를 올리겠다는 것이니 그분도 이해하시겠지요.”

“쿠드라의 마음을 멋대로 짐작해 움직이는 것은 불경한 일입니다, 아눌라.”

세리아나는 여자의 말에 섞인 한 단어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는 분명 자신을 ‘시카의 후계자’라고 말했다.

‘분명 어디에서 들어봤는데……?’

미간을 살짝 구기며 생각에 잠겼던 세리아나는 곧 치아린에게 들었던 ‘시카 부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이샤가 전쟁을 선포하고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 부족. 바이샤의 적극적인 아군으로 사막을 하나로 모으는 전쟁에 여러 공을 세웠던 부족이 바로 시카였다.

그런 부족의 후계자가 단순히 인사만을 위해 그녀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겠지. 그게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세리아나는 그 답을 알아차리기에 자신이 이곳 차이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고민해 봐야 소란만 길어질 뿐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세리아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치아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치아린.”

“네, 라누아.”

“그냥 들어오라고 해.”

“무시하셔도 됩니다.”

“첫날부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치아린은 공손히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키지는 않으나 라누아의 명령이었으니 따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시카의 아눌라를 안으로 들여도 좋다는 라누아의 명이십니다.”

밖의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문을 가렸던 천을 젖히며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누아가 되실 분께 시카의 아눌라가 인사 올립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이는 초콜릿색의 건강한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말총처럼 일자로 총총히 땋아 어깨에 두른 여자는 붉은 기가 섞인 아몬드 색 눈동자로 세리아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하군요, 아눌라. 라누아의 허락도 없이 고개를 들다니요.”

“아직 라누아가 된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쿠드라께서 직접 맞이한 라누아이십니다.”

“헬라임의 허락은 아직입니다.”

치아린의 날카로운 말을 받아넘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세리아나는 긴장으로 떨리기 시작한 손끝을 기다란 소매 아래로 가리며 아눌라를 바라보았다.

치아린과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아눌라의 눈동자엔 그녀를 향한 선명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눈빛과 말에는 충분히 단련되어 있는 세리아나는 그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이런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크든 작든 자신에게 곤란한 일이 생긴다는 것쯤은 라젠의 사교계에서 충분히 배운 세리아나였다.

“라누아께선 제 인사를 받아 주지 않을 작정이신가 봅니다?”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라젠의 왕녀이자 쿠드라의 라누아…….”

“아직 라누아는 아니시지요.”

순간 말문이 막힌 세리아나가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아눌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마치 작은 겨루기에서 승리라도 한 것 같은 그녀의 눈빛에 치아린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아눌라, 경을 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라누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게 좋을 겁니다.”

“치아린, 내가 당신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인연을 봐서 유하게 넘어가 주시는 건 어떠합니까?”

“아눌라, 그대에게 나를 종으로 부릴 기회 같은 건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쿠드라께서 제 아비를 그리고 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 단언하지 마세요.”

점점 날카로워지는 분위기에 세리아나가 이를 악물었다.

차이툰의 모든 백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사막의 전사들이었다.

거기다 치아린과 아눌라는 그중에서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사들로 두 사람의 기운은 세리아나가 버텨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라누아가 되실 분께선 많이 연약하시군요.”

세리아나의 상태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아눌라였다.

세리아나의 곁에 선 치아린과 다르게 그녀와 마주 본 채 서 있던 아눌라는 하얗게 질린 세리아나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에 정신을 차린 세리아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살피는 치아린을 본 순간 세리아나는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굴라고 했어.’

전사들과 함께 세리아나보다 한발 앞서 사막으로 떠나야만 했던 그와 헤어져야만 했던 그 날. 일행을 잠시 물리고 단둘이서 모래땅의 경계를 걸었다.

단단한 흙과 바스러지는 모래가 공존하던 그곳에서 바이샤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이끌었었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워. 그렇게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어.]

[네?]

라젠에서 따라온 시종들을 돌려보내기 전이었다.

그녀를 주시하며 모든 것을 간섭하고 모든 것을 제어하려 드는 시종들에게 짓눌려 세리아나는 쉽사리 한숨을 내뱉지도 못하고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바이샤가 그런 자신의 상태를 눈치챘을 줄은 몰랐던 때였다.

[아 저는…….]

[주인조차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머저리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어.]

당황해서 아무 변명이나 내뱉으려던 세리아나의 입이 닫혔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것이 분명했으니 이럴 땐 입을 다무는 게 현명했다.

갈아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차이툰의 옷을 입고 점점 더 모래땅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렇게 바이샤를 따라 부드러운 땅을 밟으며 세리아나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 누구도 당신을 흠집 낼 수 없어. 당신은 나의 라누아고 이 사막의 주인이니까.]

때마침 걸음을 멈춘 그가 뒤돌아서 눈을 맞추었다.

진지하게 말하는 바이샤의 호박색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농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혼자 남겨질 신부를 배려해 뱉은 말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샤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세리아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당하게 굴어. 그 누구도 당신을 깔보지 못하도록. 만약 누군가 당신을 깔본다면…….]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하도록 그 목을 잘라버리라고.

바이샤는 그렇게 말했었다.

세리아나는 자신을 비웃고 있는 아눌라를 바라보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먹에 힘을 줬다.

그의 말처럼 그녀의 목을 자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세리아나는 걱정하는 치아린의 손을 살짝 붙잡으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눌라가 저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 방을 나서서는 안 된다.

바이샤의 당부도 있었지만 그녀가 이 기 싸움에서 승리한 채 방을 나서는 순간 세리아나는 라젠에서 지낼 때와 다를 게 하나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세리아나 자신만의 문제라면 괜찮았다. 들리지 않는 척, 모르는 척. 참고 견디는 것은 라젠에서도 그녀가 늘 해오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녀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라누아의 종이라 자랑스럽게 말하는 치아린도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녀가 치아린의 주인이니까. 주인이 비천하면 그 아래의 것들은 더 비천해지는 것이 세리아나가 아는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러니 세리아나는 여기서 절대로 아눌라에게 밀릴 수 없었다.

‘당당해져야 해.’

세리아나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자신을 비웃는 아눌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카의 아눌라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대의 말처럼 연약한 내가 라누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대의 아비 덕분이라 들었어. 누라비라 했던가?”

그 순간 아눌라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들어 갔다.

세리아나는 자신이 잔뜩 겁먹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눌라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치아린이 말하길 나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고 하던데.”

“……진짜 라누아가 되신다면요.”

“조만간, 일 거라고 생각해. 간소하지만 나는 라젠에서 쿠드라와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하고픈 말씀이 뭔가요?”

“그대의 아비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

“…….”

“내가 라누아가 될 수 있었던 건 시카의 누라비의 공이니 꼭 기억하겠다는 말도.”

좀 전 치아린과의 대화에서 아눌라가 바이샤의 옆자리를 욕심내고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기에 일부러 뱉은 말이었다.

그런 세리아나의 판단이 정확했던 것인지 기세등등하던 아눌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말은 나중에 직접 전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니 아눌라, 그대가 꼭 전해 줬으면 좋겠어. 나중에는 필요 없는 말이 될 테니까.”

헬라임의 허락을 얻어 진짜 라누아의 이름을 받게 된다면 그들이 세리아나를 위해 해온 모든 일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니 ‘나중에’ 그녀가 라누아가 된 뒤에는 감사의 말을 전할 필요가 없다.

그 말뜻을 알아들은 것인지 눈을 사납게 빛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눌라를 보며 세리아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승리감에 취해 버렸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다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와 다툼을 한다는 선택지조차 가지지 못했던 세리아나에겐 정말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과연 라젠의 비옥한 토지와 맞바꾼 왕녀님이시라 생각하는 게 남다르시군요.”

“……무슨…….”

“이 사막에서 살아가기에 너무 연약하신 분을 억지로 모셔 온 게 아니실까 걱정이었는데 제 걱정이 과했네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승리감은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

아눌라는 지금 세리아나를 ‘전쟁의 전리품’이라 비아냥거리는 중이었다.

세리아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상대가 바이샤라 기쁘게 받아들였을 뿐 그녀는 팔려 온 신부가 맞았다.

“아눌라, 오늘의 무례는 시카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세상에 치아린. 고작 이런 일로 항의라니요.”

“아눌라!”

“라젠에서 식을 치렀다고는 하나 헬라임께는 아직 고하지 않은 ‘임시’가 아닙니까. 라젠의 왕녀에게 시카에 항의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눌라가 세리아나를 향해 과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다기보다는 조롱에 가까운 몸짓에 그것을 지켜보는 치아린의 두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무사히 헬라임께 라누아의 이름을 허락받으시길 진심으로 빌어 보지요, 라젠의 왕녀님.”

세리아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아눌라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안의 소란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카얀의 얼굴이 무섭도록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아눌라는 무시했다.

아니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제 아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던 희멀건 한 계집의 건방진 얼굴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말라비틀어진 라젠의 왕녀 따위가 감히 라누아의 자리를 탐내겠다고? 절대로 용납 못 해.’

쿠드라의 곁에 서는 고귀한 이는 바로 아눌라 자신이 되어야 할 터였다.

‘시카가 쿠드라의 발등에 입을 맞춘 그 순간부터 그 자리는 내 것으로 정해져 있었어. 순순히 빼앗길 것 같아?’

사납게 발을 구르며 궁을 벗어난 아눌라는 곧장 말에 올라 아비가 머무르고 있을 저택을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아직 그녀에게 기회는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아비를 설득해 그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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