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 너머의 연인-6화 (6/110)

#06. 사막의 신부 (1)

사람들은 흔히 ‘사막’을 두고 모래뿐인 메마른 땅을 떠올리지만 사실 사막은 바위와 자갈, 그리고 모래로 이루어진 황무지에 가까웠다.

물이 고일 수 있는 장소엔 식물이 자랐고 짧은 우기엔 바위와 모래에 잠시 고인 물을 빨아들여 생명이 일시에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땅.

사막은 메말라 있기는 했지만 언제든 싹을 피울 수 있는 생명을 품고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바이샤는 그런 사막을 사랑했다.

모래언덕 위에 서서 달리고 싶어 안달이 난 말의 귓가를 긁어주는 바이샤의 얼굴은 가라앉아 있었다.

본래라면 라누아를 맞이해 그녀와 함께 오아시스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아시스로부터 급한 연락이 날아들었고 그는 신부와 함께 사막을 건널 수 없었다.

“내 라누아께선 잘 오고 계실지 모르겠군.”

세리아나의 곁엔 치아린이 있었다.

혹시 몰라 카얀까지 그 곁에 두고 왔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두 사람을 곁에 남겨두고 왔지만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불안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생 남 걱정은 안 해보고 살았는데 내 라누아라서 그런가?”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투레질하는 말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린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이었다.

이런 날 우루 부족은 그들 부족의 특기를 살리지 못한다. 제압하려면 오늘이 기회였다.

“쿠드라, 전사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는 확실히 했겠지?”

“다들 날뛰고 싶어 안달입니다.”

바이샤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전사를 바라보았다. 저기 저 모래언덕 너머 오아시스로 향하고 있을 이들에게 마음이 절로 흘렀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여기에 있었다.

“상처라도 달고 돌아갔다간 카얀에게 잔소리를 듣겠지?”

“누가 감히 쿠드라께 상처를 입힐 수 있단 말입니까.”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카얀 그 녀석이 영 미덥지 못하다는 눈으로 쳐다봐서 말이지.”

“쿠드라의 종께선 걱정이 많으시니까요.”

전투가 벌어지면 카얀보다도 앞서 날뛰는 이가 걱정 없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오랜 시간 함께 전장을 떠돈 그들은 서로를 자기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쿠드라, 라누아께 축복을 받고 이동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왜? 새삼 두렵나?”

“그럴 리가요. 그저 그간 아무도 받아보지 못했던 라누아의 축복을 최초로 받는 이가 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아서, 나의 라누아께서 가장 먼저 축복할 이는 나다.”

장난스러운 바이샤의 말에 남자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큰 전투를 앞두고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그들의 왕은 그 존재만으로도 축복 그 이상의 힘을 주는 사내였다.

두 사람이 한가로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정비를 마친 전사들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눈을 빛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자신의 전사들을 바라보는 바이샤의 호박색 눈동자 또한 그들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우루를 정리한다.”

“네!”

“그리고 우리는 다친 곳 하나 없이 우리의 새로운 라누아가 기다리고 계실 오아시스로 돌아간다.”

“네!”

“오래 기다렸군. 이제 마음껏 날뛰어라.”

“우어어어어!”

바람 한 점 없는 모래땅에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 믿을 수 없는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돌풍의 가장 선두엔 가장 크고 가장 사나운 말을 탄 사막 제일의 전사 바이샤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리아나를 태운 작은 마차는 비교적 단단한 모래가 쌓인 땅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낙타라는 동물이 끄는 작은 마차는 햇빛을 막기 위해 넓은 지붕을 가진 대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사방이 훤히 뚫려 있는 형태였다.

그 덕분에 주변의 경치를 살필 수 있게 된 세리아나는 저 멀리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모래언덕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여전히 신기하신가요?”

“응. 바람이 산을 움직이는 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사막의 바람은 가끔 태양도 이긴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몇 겹의 얇은 천을 겹쳐 만든 커튼을 사이에 두고 마차의 난간에 걸터앉은 치아린이 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모래 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세리아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처음엔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말을 놓는 것도 어려워했던 세리아나였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제법 편안하게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좋은 상황에서 만난 게 아니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을 열어 주셨어.’

처음부터 라젠의 왕녀를 노리고 시작한 전쟁이었다.

마치 전리품처럼 라젠 왕실로부터 빼앗아온 그녀가 끝까지 자신을 경계하면 어쩌나 고민했던 치아린은 세리아나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형이 이렇게 계속 변하면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해?”

말을 편안하게 놓는 것부터 어려워하던 세리아나가 이제는 이렇게 질문도 한다.

치아린은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솟아오르는 광대를 애써 누르며 침착하게 답했다.

“사막에선 땅의 길을 보지 않아요.”

“그럼?”

“하늘길을 봐야죠.”

“하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는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트려 버린 치아린이 마차 안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자신과 동갑이라 들었는데 어째 있지도 않은 여동생을 바라보는 것만 같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처음 바이샤가 라젠의 왕녀를 라누아로 삼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미약한 거부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섬겨야 할 주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순수했으며 똑똑한 사람이었다. 치아린은 사막을 건너는 동안 그것을 확인했고 세리아나가 누구보다도 훌륭한 라누아가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막과 오아시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호의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매정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땅은 바람에도 쉽사리 변하지만 하늘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낮엔 태양을 보고 밤엔 별을 본답니다.”

“아…….”

“나중에 제가 하늘길을 보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정말?”

“라누아의 종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세리아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끗해 준 치아린이 다시 몸을 뺐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한가운데 오른 태양이 제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이었지만 풍족한 땅에서 자란 세리아나에겐 이것 역시 신기한 사막의 일부일 것이다.

“저…… 치아린?”

“네, 라누아.”

“쿠드라의 오아시스는 얼마나 더 가야 해?”

“이 속도라면 이틀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구나…….”

세리아나는 일행의 가장 선두에 선 카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바이샤가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그는 반기를 든 부족 하나를 정리하기 위해 먼저 라젠을 떠난 이후였다.

세리아나는 결혼식 직후 뜨거운 첫 키스의 여운에 취해 그에게 간단한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차이툰에 도착해 그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쿠드라께선 괜찮으실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누아. 그분은 강하고 뛰어난 전사랍니다. 이 사막에서 그분 이상으로 강한 자는 없을 거예요.”

“그럴 거라 생각했어.”

“네?”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세리아나는 거울을 통해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치아린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의아한 듯 바라보는 치아린의 눈길을 무시하며 세리아나는 자신이 탄 마차 뒤를 따르는 수레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라젠의 왕녀가 가지고 가는 혼수품들이 실린 수레였다.

급하게 이루어진 결혼이라는 핑계로 간소하게 준비된 혼수품들 대부분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세리아나는 그 물건들 사이에 섞여 있을 자신의 마법 거울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직접 챙긴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다.

‘이제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거울이 비춰주던 이름 모를 첫사랑이 이제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그의 이름과 목소리를 알고 있고 더불어 그의 체온까지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세리아나는 거울을 버리고 올 수 없었다.

그를 비춰주던 고마운 거울이기도 했고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받아들인 물건이기도 했다.

‘차이툰의 궁에서도 천을 덮어둬야겠지?’

바이샤와 함께 있을 때 거울이 그의 모습을 비추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세리아나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거울이 그를 비춰주는 시간이 달이 높게 뜬 저녁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오아시스에서 차이툰의 방식으로 또 한 번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임시’가 아닌 ‘진짜’ 부부가 될 것이고 그와 밤을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이 세리아나에게는 아직은 버겁기만 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데 밤을 어떻게 함께 보낸단 말인가!

“라누아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아. 응. 그냥 좀 더워서…….”

걱정하는 치아린의 모습에 그녀의 눈을 피하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시작한 세리아나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바이샤의 얼굴을 지우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를 떠올리면 피부뿐만 아니라 몸 안쪽의 어딘가가 함께 뜨거워져 몸의 열을 식히는 것이 힘겨웠다.

“쿠, 쿠드라는 그러니까…… 강한 분이시지? 음, 저기…… 강하고 또…… 음…….”

“후훗.”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세리아나를 보며 치아린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놀란 세리아나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라젠의 사람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시원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사막의 여인답게 짙은 색의 피부를 가진 그녀는 세리아나와 비교해 무척이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와 팔, 그리고 배를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은 치아린의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군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라누아. 귀여우셔서요.”

“네?”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 이후 라누아의 마지막 질문은 늘 쿠드라에 관한 것뿐이니까요.”

“내가…… 그랬, 나?”

“네, 그러셨어요.”

“아……!”

세리아나의 하얀 피부가 다시 붉게 물드는 것을 바라보며 치아린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바이샤에 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세리아나의 모습이 참으로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마음을 숨겨보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이 감정은 단순히 세리아나가 치아린이 오매불망 기다려온 라누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누가 있더라도 분명 치아린과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이 아름다운 주인을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쿠드라가 특별히 ‘적당히 잘’ 돌보라 명령하지 않았어도 치아린은 모든 정성을 다해 주인을 돌보았을 것이다.

물론 차이툰의 일행 모두가 치아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막을 경험하지 못한 라젠의 왕녀를 모시게 된 전사들은 매서운 모래바람보다도 그들이 호위해야 할 세리아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라젠의 귀족들은 허약하고 엄살이 심한 이들이었다.

분명 열 걸음도 가지 않아 덥다 칭얼거릴 것이고 또 열 걸음을 디디기도 전에 불평불만을 쏟아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새로운 라누아는 사막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드러내지 않았고 불평 또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막의 모든 것에 흥미를 보였고 바이샤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보다 빠른 그들의 이동속도는 전부 세리아나의 그런 태도 덕분이었다.

물론 작은 의문도 존재했다.

라젠의 귀족이나 왕족 모두가 자신들을 야만족이라 비하하고 있다는 것은 차이툰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라젠의 왕녀가 저리 순순히 쿠드라에 대한 호감을 보이고 사막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거부감이 없는 것보다 더 의아한 것은 세리아나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국경을 넘기 전에 따라온 시녀와 시종들을 전부 돌려보낼 때였나?’

말로는 라젠 왕의 명령이라 그럴 수 없다며 미지근한 태도로 버티던 이들을 직접 쫓아낸 것은 치아린이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할 라젠의 왕녀에게는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서 쿠드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세리아나는 아직 정식으로 헬라임에게 인사를 올리지 못한…… 힘을 가지지 못한 라누아였다.

‘분명 불안해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오히려 기뻐했었지?’

두려움을 비추는 것이 당연한 순간에 분명 세리아나는 가볍게 미소짓고 있었다.

마치 따라온 시녀와 시종들이 떠나는 것이 기쁜 사람처럼.

그리고 떠나는 이들 역시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왕녀를 홀로 떠나보내면서 아쉬워하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빠르게 등을 돌렸다.

마치 쫓아내 주길 기다렸던 사람들처럼.

‘이상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고 찝찝해.’

치아린은 일단 그 찝찝함을 마음속 한구석에 잘 갈무리해 두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는 죽는 그 날까지 라누아를 섬겨야 하는 라누아의 종이었다.

세리아나의 곁에 있다 보면 이 의문을 풀 날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드디어 만난 ‘라누아’에게 집중하자.

치아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세리아나를 불렀다.

“라누아. 쿠드라의 오아시스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응.”

“헬라임의 붉은 길 위를 걸어 내려오면 그 위험은 자연히 사라지겠지만 그전까진 조심하셔야 해요.”

“조심할게.”

“그리 긴장하실 필요까진 없어요. 이 치아린이 라누아의 곁을 지킬 테니까요.”

“……고마워.”

어쩐지 먹먹해져 고개를 숙인 세리아나가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녀의 어미조차 내어준 적 없는 단단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생겼다.

그것이 감격스러워 어쩐지 치아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라누아. 그렇게 고개 숙이지 마세요.”

“치아린…….”

“쿠드라 외에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헬라임의 딸이자 이 사막의 여신인 라누아이시니.”

“나는…….”

“그리고 그리 하나하나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하게 누리시고 숨 쉬듯 명령하세요. 당신은 그래도 되는 분입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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