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거울을 보는 레이디 (3)
“내가 쿠드라인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인가?”
작게 읊조리는 바이샤의 목소리 뒤로 그를 찾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남자의 잘생긴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요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걸까? 그는 고요한 화원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치아린인가?”
“치아린의 목소리는 저리 경박하지 않습니다, 쿠드라.”
“그럼 나를 마중 나온 라젠의 누군가겠군.”
“갑자기 사라져 버리셨으니 저쪽에선 난리가 났겠죠.”
“벌써 귀찮아지는군.”
바이샤가 짧게 혀를 찼다.
숨이 턱턱 막히는 왕성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왕성을 가득 채운 라젠의 인간들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떠나야겠다 카얀.”
“이곳에서 치를 결혼식은 아주 간단히 준비되었다 들었습니다. 쿠드라가 원하시는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럼 나의 라누아. 곧 다시 보도록 하지.”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바이샤가 느긋한 걸음으로 후원을 벗어났다.
그리고 세리아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직도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왕녀님 괜찮으십니까?”
시녀 하나가 다가와 세리아나를 살폈다.
가짜라고는 하나 어쨌든 라젠의 왕녀가 무례한 야만족에게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왕녀님!”
바이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후 세리아나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양산을 든 시종이 다급하게 다가와 그늘을 만들고 시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의원을 찾았다.
“바이샤 쿤 쿠드라…….”
시끄러워진 주변의 소리를 무시하며 세리아나가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읊조렸다.
바이샤, 바이샤 쿤 쿠드라.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의 이름이었다.
거기다 그가, 거울 너머의 그가 차이툰의 왕이었다.
그런데 그와 내가……결혼?
세리아나의 새하얀 피부가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온몸이 붉게 변한 그녀를 보며 시녀들이 기겁하며 다시금 의원을 찾았지만 지금 세리아나의 귓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감싸고 있던 우울과 절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올리는 것인지 모를 감사 인사를 하며 세리아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 사람의 신부.”
맹세하건대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 * *
바이샤는 왕성의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라젠의 건축가들은 태양이 주는 축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머리 위에 해가 떠 있음에도 어둡기만 한 실내라니…….
바람조차 제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구조에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 넘긴 바이샤는 조금 전 화원에서 보았던 꽃의 향기를 품은 새하얀 여인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당겼다.
“그분이 제법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상당히 마음에 들어.”
라일 꽃을 닮은 연보랏빛 머리카락과 여린 새싹을 닮은 연둣빛 눈동자, 태양 빛을 반사하는 듯 새하얀 피부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누가 보아도 라누아라 부르기에 충분한 모습이지 않았나?”
“네, 그건 확실히 저도 놀랐습니다.”
“누라비의 정보가 제법 쓸 만하군.”
사막의 전설이 이르는 ‘여신 라누아’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외형을 갖춘 신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바이샤가 미소지었다.
누라비에게 처음 들었을 땐 머리카락 색만 기준에 차도 다행이라 여겼던 그였다.
그런데 눈동자 색부터 새하얀 피부, 그리고 품고 있는 꽃향기마저 여신과 같았다.
가만히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환히 빛이 나는 듯한 여인이었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곳은 어떻게 찾아가신 겁니까?”
“라일 꽃향기가 나더군.”
“이곳에서요?”
“그게 신기해서 쫓아갔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면 사막의 오아시스에서만 피어나는 라일 꽃의 향기를 이곳에서 어찌 맡을 수 있냐 타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샤의 충실한 종이자 그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카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쿠드라께서 맡으셨다 하면 맡으신 거겠지요.”
“카얀, 너는 맡지 못했나?”
“이곳의 고약한 냄새에 코가 마비된 모양입니다.”
“하긴…….”
사막의 메마르지만 따뜻한 공기와 다르게 라젠의 왕성 곳곳에선 물비린내를 닮은 고약한 악취만이 가득했다.
그것이 사람에게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왕성에서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예민한 코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곳에서 잘도 살고 있군.”
“쿠드라의 오아시스가 그리울 따름입니다.”
진심을 담아 말하는 카얀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바이샤가 주변을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부를 살핀 것은 아니지만 왕성 곳곳에서 마주한 라젠의 인물들은 모두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저 몸뚱이들은 뭐지? 비곗덩어리에 나무작대기를 박아놓은 건가? 사막에 던져놓으면 하루라도 버틸까 모르겠군.”
“반나절도 못 버틴다는 것에 제 검을 걸지요.”
“……그 검 내가 선물한 것 아닌가?”
“치아린이 선물한 팔찌를 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팔찌 언젠가는 꼭 걸도록 만들어주지.”
“헬라임의 품에 안긴 이후에도 그럴 일은 없습니다.”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바이샤가 고개를 돌렸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공간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왕 온 것이나 할 일은 제대로 하고 돌아가야 했다.
“쟈캄은?”
“숨어들 구멍을 찾고 있습니다.”
“당장은 정보를 얻지 않아도 좋다. 의심을 사지 않고 확실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라고 전해.”
“명을 받습니다.”
라젠과 차이툰의 사람들은 확실하게 구별이 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세작을 심는 데 분명 커다란 장해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샤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전사들은 눈에 보이는 장애물쯤은 얼마든지 치워 버릴 수 있을 만큼 유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라젠의 왕녀를 라누아로 삼는 일 말인가?”
“누라비가 무슨 생각으로 라젠의 왕녀를 추천했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쿠드라와 일생을 같이할 라누아가 아닙니까.”
라젠과 다르게 차이툰은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 헬라임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이 부부의 인연이었다.
그래서 카얀은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주인이 필요하다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었지만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은 일이었다.
“사막의 여러 바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야. 그것에 도움이 된다면 난 무엇이든 한다.”
“쿠드라.”
“거기다 라누아의 자리가 너무 오래 공석이었어. 하루라도 빨리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맞아.”
“…….”
“네 걱정이 뭔지는 안다, 카얀.”
바이샤가 카얀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의 친구이자 충실한 종은 자신이 불행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냥 순서가 바뀐 것뿐이야. 그렇게 생각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곁을 장식할 라누아뿐이었다.
라누아의 자리가 공석일 때에도 잘 싸워 온 그와 그의 전사들이었지만 옛 여신과 꼭 닮은 라누아가 나타난다면 분명 차이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에 비한다면 사랑 없는 결혼쯤은 큰일도 아니었다.
“라누아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다 보면 그 마음이라는 것도 생기겠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자.”
“네, 쿠드라.”
그 이전에 새로운 라누아와 라누아의 고향인 라젠은 철저하게 분리할 것이다.
‘보기엔 제법 얌전해 보였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사막에도 있었다. 하물며 이 정체 모를 악취가 가득한 라젠이라고 다를까?
바이샤는 자신을 바라보며 흔들리던 연둣빛 눈동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었으나 그 속이 어떨지는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어설프게 곁을 내어주고 내부의 정보를 흘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샤는 그렇게 다짐하며 멀리서 달려오는 라젠의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흘러내리는 식은땀, 그리고 흐트러진 옷매무새가 시종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런 머저리들이 가득하다는 소린 없지 않았나?”
“옛 차이툰이 분열되고 백 년 동안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겠죠.”
“누라비에게 좀 더 많은 정보를 모으라 전해. 쟈캄의 일은 비밀로 하고.”
누라비는 바이샤 앞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시카 부족의 족장이었다.
사막을 유랑하던 부족답게 사막 곳곳의 정보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지금은 마치 바이샤의 책사처럼 굴고 있는 그를 정작 바이샤는 신뢰하지 않았다. 아직 제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바이샤가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대부분은 차이툰의 오아시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었다.
“쟈캄에게도 누라비의 눈을 조심해 움직이라 전하겠습니다.”
쟈캄은 카얀의 동생이었고 바이샤가 신뢰하는 남자였다.
그라면 분명 바이샤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바이샤는 라젠의 시종이 달려와 제 앞에서 숨을 고르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잊고 있던 악취가 다시 바이샤의 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악취 속에서 피워낸 라일 꽃 향기라…….’
꽃 무더기 속에서도 제 향기를 잊지 않고 서 있던 가느다랗고 작은 여인이 떠올랐다.
당분간은 그 여인에 대한 생각으로 이 악취를 몰아내야 할 것이다.
바이샤는 저를 안내하는 시종의 뒤를 따르며 라누아가 될 왕녀와의 다음 만남을 진심으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온 세리아나는 가벼운 빈혈이라는 진단을 내린 의원과 함께 주변의 모든 시녀를 물렀다.
아직도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바이샤 쿤 쿠드라.”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의 이름을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다.
꿈이면 어쩌지? 아니 내가 이렇게 행복한 꿈을 꿔본 일이 있던가? 꿈이라도 행복할 거야.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좋겠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세리아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리아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 제 얼굴이지만 장미 꽃잎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는 모습은 그녀도 처음 보았다.
어떻게 이런 꿈같은 일이, 마법 같은 일이 제게 일어난 것일까? 거울 너머 훔쳐보기만 했던 그 남자가, 이름도 그 목소리도 모르는 채 사랑에 빠져버렸던 그가 어떻게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걸까?”
첫사랑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그녀조차도 이제야 알아차린 마음이었지만…… 첫사랑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취해버리는 것도 잠깐, 걱정이 다시 그녀를 덮쳤다.
그녀의 짧지 않은 인생에 이렇게 기적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이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일까? 당장이라도 왕의 시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결혼이 취소되었으니 백작가로 돌아가 늙은 후작과 결혼할 준비를 하라 외칠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며 문을 바라본 세리아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제 기도를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는 신이었지만 매달릴 곳이 달리 없었다.
‘제발 그의 신부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바이샤의 아내가 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인지 아니면 신이 그녀의 불행에 무심해진 것인지 차이툰의 왕과 라젠 왕녀의 결혼식이 번복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이툰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단장하는 동안 세리아나는 몇 번이고 마법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저 마법의 거울을 처음 발견한 것이 여덟 살, 거울 너머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 날과 같았다.
자신이 백작가의 영애가 아니라 왕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다 숨어든 창고 구석에서 먼지가 가득 쌓인 마법의 거울을 발견했었다.
거울 위에 두껍게 쌓인 먼지를 걷어낸 것은 한참 울고 난 후 제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창문을 넘어 스며든 보름달의 달빛이 거울에 닿았다.
‘처음엔 귀신인 줄 알았었지.’
난데없이 거울이 빛나고 그 너머 세리아나가 아닌 다른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때 놀라 소리를 질렀다면 사람들이 몰려왔을 테고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거울이 사실은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마법을 품은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까.
물빛 드레스를 걸치고 마지막 점검을 마친 시녀가 세리아나의 머리 위에 작은 티아라를 올렸다.
그 덕분에 회상에서 깨어난 세리아나가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혈색이 좋아 보였다.
그를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국왕 전하와 왕비 전하를 기다리게 하실 작정이 아니시라면 움직이셔야 합니다.”
“응.”
“명심하세요. 왕녀님이 가짜라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됩니다.”
“……알고 있어.”
시녀의 냉랭한 말에 들떴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침착해졌다.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세리아나의 흥분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시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결혼식 전의 축하연이었다.
그 속내가 어찌 되었든 그 축하연의 주인공은 세리아나와 바이샤였고 주인공이 도착하지 않으면 파티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가자.”
“모시겠습니다.”
에스코트는 없었다.
야만족이라 경멸하는 차이툰에 시집가게 될 가짜 왕녀를 위해 한쪽 손을 내어줄 기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부탁한다면 백작가의 저택에 남아 있을 그녀의 양오빠가 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이툰과의 전투에서 패해 가까스로 귀환한 기사였다.
그의 동료를 죽이고 저마저 모욕한 차이툰의 왕비가 될 세리아나를 에스코트할 마음 따위는 없을 것이다.
세리아나는 저절로 빨라지는 걸음을 애써 누르며 천천히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연회가 열릴 펄킨 홀은 그녀가 머무르는 궁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기에 걸어서 이동할 수는 없었다.
마차의 움직임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감 때문일까? 속이 울렁거려 세리아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맞은편에 앉은 시녀의 불편한 눈빛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내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저는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왕실의 시종이 내미는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린 세리아나는 잠깐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라젠의 많은 귀족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 두려움, 혐오, 비아냥, 그리고 아주 약간의 동정. 익숙하다면 익숙한 시선들이었고 절대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눈빛들이었다.
세리아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펄킨 홀의 거대한 문 앞으로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리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문 앞에선 세리아나를 확인한 시종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연회장의 문을 열었다.
“세리아나 위니 다르미안 왕녀님 드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