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가 떠난 뒤에 남겨진 것 (149)화 (149/156)

#외전 12화

캐롤라인 일행은 노르티움에 도착하자마자 입원 수속을 밟았다.

이디나는 남부에서는 받지 못했던 정밀 검사를 받은 뒤 일주일 뒤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디나가 수술을 위해 컨디션 관리를 할 동안 캐롤라인과 브리오는 수술의 주의 사항을 몇 번이고 새겨들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이디나의 수술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엄마, 보여요?”

“…….”

“응? 대답해 봐요. 이거 몇 개?”

캐롤라인은 붕대를 푼 이디나의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쳐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이디나에게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안 보여요?”

설마 수술이 잘못된 건가. 철렁하는 마음에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이디나가 그녀의 손을 잡은 건 그때였다.

“손 조금만 더 멀리 떨어뜨려 봐. 조금만.”

캐롤라인은 이전보다 한 뼘 정도 더 떨어진 거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 보이는구나. 보여.”

“……!”

“두 개인가? 세 개? 몇 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네 손이 보이긴 한다.”

옆에서 무언가를 기록하던 의사는 이디나의 눈에 맞춰 제작한 안경을 건넸다. 안경을 쓴 이디나의 눈이 이내 커다래졌다.

“세 개, 세 개구나.”

“…….”

“우리 딸 얼굴도 보이네. 눈물 참느라 얼굴이 복어처럼 불룩해진 얼굴 말이야.”

“엄마!”

캐롤라인은 이디나의 품에 안겼다.

실명 전에도 이디나의 세상은 흐릿했다. 안경을 써도 색깔 정도만 구분할 수 있던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색뿐만이 아니라 사물의 형상, 더 나아가 신문에 써진 굵직한 글자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디나는 새로 얻은 눈으로 제 주위의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애런 말대로 캐롤라인은 까만 콩이 됐고, 브리오는…….”

말꼬리를 흐리는 이디나에 브리오는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 그의 울렁이는 목울대를 본 이디나는 장난꾸러기처럼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브리오는 이렇게 생겼구나.”

“…….”

“손으로 만져 봤을 때도 잘생겼을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미남이네.”

“아줌마.”

늘 건조하기만 했던 브리오의 눈가 역시 눈물로 촉촉해졌다. 이에 두 사람을 보는 이디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은 되도록 참는 편이 좋습니다. 빨리 회복하시려면요.”

“네…….”

이디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했다.

“밝은 빛을 직접적으로 보는 건 눈 건강에 해롭습니다.”

“아이고, 네.”

“당분간은 낮에도 꼭 커튼 치시고요. 이 특수 안경도 잊지 말고 착용하셔야 합니다.”

감격할 겨를도 없이 의사는 주의 사항을 권고했다. 이디나와 브리오, 캐롤라인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의사의 말을 경청했다.

의사는 오늘은 빛을 그만 보는 것이 좋다는 판단하에 이디나에게 안대를 씌웠다. 그러곤 가족만의 단란한 시간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비워 주었다.

“저도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왜? 어디 가려고?”

“전화기 좀 쓰려고요. 걱정하고 있을 텐데 애런한테도 말해 줘야죠.”

캐롤라인은 브리오에게 이디나를 맡긴 뒤 병실에서 나왔다.

“흡…….”

탁,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문에 기대 한참을 히끅이던 캐롤라인은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혹여 병실 안까지 제 울음소리가 들릴까 염려되어서였다.

“다행이다…….”

병실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와서야 캐롤라인은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뗐다. 그러자 입에서 꺽꺽거리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흐윽, 정말 다행이야…….”

이디나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시력을 잃는 것일 줄 알았다면 캐롤라인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녀를 말렸을 터였다.

남매를 키우느라 제대로 쉬어 본 적 없었고, 자식들이 다 큰 후에는 남편을 잃었다. 좋은 집에 시집가 잘 살 줄 알았던 딸은 산송장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잘 보이지 않는 눈을 하고서도 매일같이 병든 딸을 보살폈다.

캐롤라인은 그게 너무 미안했다. 이디나가 시력을 잃은 게 꼭 자신 탓인 것 같아서. 그녀는 이디나가 점자책을 읽을 때마다, 혹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 수 없었다. 시한부였던 자신 때문에 이디나가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면 참아야 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다들 괜찮아지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도. 모두 더 나아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 테니 오늘 하루쯤은 울어도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마음먹은 캐롤라인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울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 건 하도 울어 눈가가 따끔거릴 무렵이었다. 캐롤라인은 손바닥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왜 울고 있어?”

또다시, 프레져였다.

* * *

프레져는 수도에 돌아가서도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걱정은 두 번째 문제였다. 장모의 병을 이용해 아내를 유인하려 했던 스스로의 과거가 너무도 끔찍해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무얼 믿고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벌였을까.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자신을 붙잡고 뺨이라도 갈겨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비 오던 극장 앞, 애런이 쓴 편지를 읽던 캐롤라인의 모습이 좀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던,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줄기도.

그 여자는 지금도 분명 그때처럼 울고 있겠지.

홀로 울고 있을 캐롤라인을 생각하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프레져는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노르티움으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캐롤라인을 발견했을 때, 그는 심장이 저 발끝 아래까지 추락하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으니 캐롤라인이 흘리는 눈물은 감격의 눈물일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운다면 그것은 다행인 일이 아니었다.

프레져는 캐롤라인이 눈물을 그칠 때까지 어르고 달렸다. 우는 사람을 달래 본 경험이 없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설프게 등을 토닥여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캐롤라인은 금방 눈물을 그쳤다.

“왜 왔어요?”

캐롤라인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을 눈가에 매단 채 물었다.

“이러고 있을까 봐.”

“……누굴 울보로 알아.”

“이젠 좀 괜찮아? 머리는 안 아프고?”

“킁, 멀쩡해요.”

캐롤라인이 코를 훌쩍이자 프레져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콧물 더러운데.”

“당신 콧물은 하나도 안 더러워.”

“그렇게 말하는 거 진짜 적응 안 돼요. 예전처럼 말해 봐요.”

“……푸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데.”

말을 마친 프레져는 다급히 캐롤라인의 안색을 살폈다. 혹 자신의 빈정거리는 말투가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이편이 덜 어색하긴 하네요.”

“……내가 이렇게 재수 없게 말했단 말이야?”

경악에 찬 프레져의 얼굴을 보며 캐롤라인은 팽, 하고 코를 풀었다. 구겨진 미간과 떡 벌어진 입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요. 여기까지 와 주고 또 웃게 해 줘서.”

그녀의 웃음에 프레져는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았다. 그녀가 웃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표정도 지을 수 있는 그였다.

“잠은 좀 잤어? 집이 아니라서 자기 불편할 텐데.”

“스테파니네서 자서 괜찮아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2년 전에 살던 그 집 말하는 거야?”

“네.”

고개를 끄덕이는 캐롤라인에 프레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가 남의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는 것도 걱정인데, 그 좁은 집에서 편히 지내지도 못할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거기 말고 호텔로 옮겨서 자. 여기서 가깝고 넓은 데로 예약해 줄게.”

“됐어요.”

“그럼 어머님을 더 좋은 병실로 옮기는 건?”

“그건 좋은 생각이네요.”

프레져는 부은 눈을 식히기 위해 열심히 손부채질을 하는 캐롤라인을 보며 입매를 굳혔다. 평소보다 거뭇해진 눈가와 건조해 보이는 뺨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자 그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가족에 관한 일엔 저리 공을 들이면서, 왜 자신의 일엔 신경을 안 쓸까.

“어머님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잘 쉬어야 해. 알잖아.”

“스테파니네서도 충분히 잘 쉬고 있어요. 거기가 얼마나 편한데.”

“스테파니랑 에릭도 편할까?”

자꾸만 거절을 하는 캐롤라인에 프레져는 강수를 두기로 했다.

“둘이 곧 결혼할 거라며. 그때 당신 말 들으니까 아예 살림을 차린 것 같던데.”

“…….”

“매일 붙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손님까지 와 있는데 과연 정말로 편할까?”

캐롤라인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에릭이 잠시 들렀다 갈 때면 아쉬운 듯 손을 흔들던 스테파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테파니에게는 직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디나를 간호하느라 바쁜 캐롤라인과 브리오를 위해 늘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출근하곤 했다.

자신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스테파니와 에릭의 배려 덕인 것이었다.

“생각이 짧았네요. 당신 말대로 호텔로 옮기는 게 낫겠어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이 근방에서 제일 가까워. 거기로 가자.”

캐롤라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로 돌아갔다. 프레져는 이디나와 브리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병실을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럼 브리오, 네 짐도 내가 미리 호텔로 옮겨 둘게. 교대 시간에 맞춰서 돌아올 테니까 엄마 좀 잘 부탁해.”

“알았어요.”

지금은 오후 2시. 그리고 브리오와 교대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8시. 캐롤라인은 짐을 옮긴 뒤 남은 시간엔 낮잠을 잘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예상처럼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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