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배의 꽃-68화 (67/94)

<☆68>깜

그녀는 관계를 할 때 소극적이거나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민한 몸만큼 잘 느끼고, 자신이 느낀 만큼 내게도 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종종 그녀는 내 것을 만져 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손이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그녀의 손은 약간의 굳은살과 보드라운 부분이 대비되어, 그녀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을 선사했기에 그 손이 내 것을 만질 때마다 나는 허리를 흔들고 싶은 걸 참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키스해야 했다. 그녀가 내 안달 난 모습을 보지 못하게.

그 손이 지금 스푼을 쥐는 게 보였다. 내 성기를 쥐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 더 부드럽게 쥔다. 그녀가 스푼으로 수프를 떠서 먹는 게 보였다. 그녀에게 내 것을 입으로 애무해 달라 요구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그녀의 입에 넣는 그 행위가 어떨지. 그녀의 입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내 것에는 확실히 작은 사이즈였다. 아마 입가가 찢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넣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상상 속의 나는 왠지 무참하게도 그 입에 내 것을 넣고 있다. 그녀는 나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면서도 내 것을 빤다. 아이가 젖을 빠는 것처럼 빨면서 스스로의 가슴을 애무한다. 내 것을 빨며 즐기는 그녀를 보며 나는 허리를 흔들어 그녀의 입을 범한다. 아, 이 상상은 정말 위험한데.

“전하.”

그녀는 내가 흥분하는 얼굴을 안다. 아마 그 얼굴과 내 평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얼굴에 감정이 거의 티가 안 나니까.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녀를 잡아먹고 싶어 할 때마다, 그녀의 옷을 찢어발기고 양다리를 벌리고 싶어 할 때마다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식사하셔야지요.”

그녀가 웃으면서 식사를 권했다. 어린애를 다루는 듯한 말투가 열받는데, 한편으로는 관능적이다. 그녀가 나를 다루는 것이 좋다. 그녀는 존대를 하면서도 나를 어린애 다루듯이 하고 나는 그녀를 침대 위에서 어린애처럼 다룬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다루고 사랑스러워한다. 그게 마음에 든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날 애 취급 하겠다고? 리, 나는 네 남자잖아. 네 팬티를 벗기고 성기를 쑤셔 박아도 되는지 허락받을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권리를 가진 자야.

“전하.”

“이렇게 건전한 맛은 절대 아니지.”

나는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내 웃음에 그녀가 난봉꾼에게 농락당한 소녀처럼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나는 그녀를 대상으로는 신관보다는 난봉꾼인 쪽이 좋다.

난 어제 그녀를 안지 않았다. 실리가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아니었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나는 이제 그녀가 지친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을 보면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걸 쉬이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그녀는 마음이 조금 약하구나.

그녀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강력한 사람이고, 그 강대함을 세상이 다 안다. 세상에서 그녀를 마음 약하다고 칭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다소 유하게 타고난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다정하고, 매사에 상냥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에게 당연하게도 이 모든 상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걷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여자. 그래서 더 안쓰럽고 더 끌어안게 되는 내 여자.

“송구하지만 저는 오늘 숙모님을 배웅해야 합니다.”

“숙모면, 그 제온 사리안의?”

“예.”

한없이 세상에게 무른 내 여자는 또 픽 웃고 있었다. 커피 두 잔과 오믈렛 반절을 먹은 그녀는 먼저 자리를 비우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가 먹고 남긴 것에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식사도 별로 안 한다. 말랐나? 그녀의 몸을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정염을 지우고 냉정하게 그 몸을 체크해 보니 마른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마른 몸을 내게 들키지 않기 위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약간 풍성한 셔츠에 자칫하면 속을 뻔했다.

사람을 배려하는 게 뼈에 새겨져서 모든 걸 혼자 짊어지는 게 당연해진 모습은 늘 내 마음을 쓰리게 한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잘 가라는 듯 손 키스를 날려 보였다. 그녀가 멈칫했다가 조금 웃었다. 허점을 찔린 듯이 웃는 모습이 소녀 같았다.

“다녀오겠습니다.”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신문에 시선을 주었다. 신문은 늘 그렇듯 왕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여러 이슈들로 빼곡했다. 신문을 보는 건 매일의 습관이다. 그녀를 따라 하게 된 습관. 하지만 오늘은 봐야 할 것이 있었다. 광고란 구석에 쓰여 있을 하나의 광고.

[  하녀 구함. 그로스랜 출신, 금발, 55세 이상, 조용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길 원함, 추천장이 반드시 필요함. 왕궁 근처 저택의 입주 하녀로 근무 예정. 단, 아이가 없고 남편은 있는 여성이길 바람.  ]

아주 이상한 광고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55세 이상의 하녀를 구하는데 아이는 없고 남편은 있어야 한다니. 대부분은 반대이지 않겠는가? 그렇다, 이 광고는 애초에 하녀를 구하는 광고가 아니라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조용하고’는 날짜를 뜻한다. 2주 뒤다. ‘사려 깊은’은 시간이다. 밤 12시. 왕궁 근처의 저택은 스틸라드를 말한다. 즉 그들은 내게 방문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추천장이 반드시 필요함’이라는 건 누군가를 데려오겠으며 나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누구를 데려오겠다는 걸까.

조금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머리에서 지워 버렸다. 어쨌든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테니.

***

내가 떠나기 전, 하스트레드에서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장로들 중 일리드 사리안의 남은 혈육들, 즉 실리의 삼촌들이 모두 장로에서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 형태는 자발적인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타의에 의한 것일 거라는 추측이 강세였다. 누가 봐도 삼촌이라는 작자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실리는 무표정했으니까. 패자와 승자가 확연히 나뉘어진 그림이었다.

실리는 하스트레드를 정비해야 한다며 조금 더 남겠다고 하여 나만 배로 돌아왔다. 나는 약속된 시간까지 돌아가야 했다. 실리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녀와 같이 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있기만 해선 결국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될 뿐이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녀를 먼 곳에 두고 나 혼자 돌아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같이 돌아가자는 말이 계속 혀끝을 쿡쿡 찔렀다. 그녀에게 아닌 척하려고 해도 힘들어하는 티가 나는 것 같았다. 남자가 되고 싶은데, 어린애가 되기 싫은데, 그건 정말 큰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내가 배에 타기 직전 그녀는 나를 한 번 끌어안아 주려는 듯하다 결국 그러지 않았다. 대신 평소처럼 내 팔을 몇 번 쓸어 주었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임을 안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스칠 때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멈칫했지만 곧 순순히 끌려왔다. 입술이 맞닿았다. 내 입술이 그녀의 것보다 뜨거웠다. 사실은 아주 진하게 키스하고 싶었다. 혀를 얽어서, 그녀가 느끼는 곳 구석구석을 핥아서 그녀의 무릎이 꺾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정중한 부부의 키스로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대기만 하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손을 놓아야 할 때 심장이 서걱, 썰리는 기분이었다.

“곧….”

그녀도 내 마음을 조금쯤은 아는지, 나를 달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난처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지킬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그녀다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을 알아. 그것으로 우린 충분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한 번 넘겨 주었다. 그걸 신호로 그녀는 내게서 물러났다.

헤어짐은 고통이었다. 억지로 등을 돌렸다.

배를 타고 옌선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배가 침몰하면 어떻게 될까. 내 계획이 잘못되어 역모죄로 잡혀 들어가면 그때 실리는 도대체 어찌 되는 걸까. 그녀는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없는 세상에 그녀만 남는 것인가.

나는 어린 게 분명하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는 만큼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그녀를 생각하는 것도 괴로웠다. 그녀가 나보다 더 그녀와 어울리는 남자와 재혼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늘 잔도를 걷고 있었다. 벼랑에 댄 나무판자 길을 걷는 기분으로 살고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은 당연한 일이었다.

옌선에 돌아왔을 때는 더욱 심해졌다.

“이자가 기억나십니까, 전하.”

라스타니프의 심복 중에는 하스웰이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대신관 라스타니프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질 낮은 종자인데 옌선의 뒷골목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밤의 왕. 그렇게 불리는 그는 라스타니프의 주 자금원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손발이기도 했다. 왜 그가 라스타니프에게 그토록 헌신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와 그 사이에 대단한 신뢰 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하스웰이 데려온 남자를,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누군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여러모로 내게 ‘처음’이라는 경험을 많이 선사한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수영을 하겠다고 나간 나를 납치한 범인, 그리고 내 뺨을 처음 때리고 내게 첫 채찍질을 가했던 인물, 내 얼굴에 침을 처음 뱉었던 자이기도 했다.

내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어떤지 남자는 나를 빤히 보면서 표정을 확인하려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흠칫 굳었다가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우스운가. 그는 포박되어 무릎이 꿇려 있고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땅바닥에 있는 그를 보는데도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덜컹하는 이 기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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