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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73화 (73/84)

73화. 상주실 키스

질래의 상기된 입술에 은우의 뜨거운 검지가 눌렸다.

“잠시만 가만히 있어, 나도 참고 있으니까.”

돌아보면 은우에겐 수많은 전적이 있었다.

13년 만에 나타나 다짜고짜 사하라 여사 빈소에서 첫 키스를 하질 않나, 닭발집. 미술관,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저의 원초적 본능을 끌어냈던 남자 아니었던가.

혹 그때처럼 일을 벌일까 싶어, 질래는 그의 목을 포박하고 있던 손을 얼른 풀어냈다.

그러면서도 거칠어진 남자의 숨결에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곤란하게 할 만큼 바보는 아니야.”

은우는 저를 경계하는 여자를 제 가슴에 끌어들인 후 그녀의 체향을 빨아들이며 귀엣말로 속삭였다. 한 손으로는 질래의 젖은 머리칼을 부드러운 손길로 따스하게 쓸어줬다.

“안고 싶어서 그래, 우니까 마음이 아파서.”

며칠 동안 홀로 악몽에 시달렸던 질래의 상한 마음을 은우가 조금씩 치유해줬다. 제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 그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점점 더 기대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육체의 반발이 시작된 것은.

어느새 은우의 입술이 그녀의 냉각된 이마에 뜨끈하게 뭉개졌다. 질래의 양 뺨을 남자가 부드럽게 그러쥔 채로 그녀의 상기된 얼굴에 제 입술을 봄비처럼 내렸다.

이마에서 콧대로, 능글능글하게 내려가더니 콧등에서 입술을 곧바로 직진했다. 이상했다. 남자의 데워진 호흡에 슬픔도 죄책감도 함께 쓸려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질래의 인중에 머물렀던 남자의 숨결이 어느새 윗입술로 다가와 어르듯 빨아냈다.

완강하게 닫혀 있던 여자의 잇새가 그만, 슬며시 갈렸다.

“하아.”

그렇게 망설일 땐 언제고, 또 엮였다. 또.

그의 육체가 까슬까슬한 여자의 속살과 만났다. 이런. 맞물린 입술 사이로 서로의 살덩이가 녹진하게 얽히고설켰다.

상주실 침대 위에서.

이성은 빨간불을 켰지만, 육체는 초록 불이었다.

진득하게 감쳐 물린 틈새로 남자의 뭉근한 혀가 질래의 치아와 체액을 샅샅이 훑어냈다.

은밀하게, 좀 더 강렬하게. 섞이고 또 섞였다.

흡입력과 압력의 적절한 조화가 두 사람에게 환락을 베풀었다.

깊이깊이, 서로의 동굴 속 젖은 속살을 야살스럽게 파고들더니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야한 신음을 흘리며 야들야들한 서로의 입술을 격렬하게 빨고 삼켰다.

침대의 걸터앉은 남녀의 맞닿은 손바닥이 손가락에 의해 꾹 물렸다. 손톱이 서로의 손등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어떡하지?

상복 안 은밀한 샘이 젖어 들고 있다는 고민도 잠시.

슬픔의 크기만큼이나, 며칠 동안 굶주린 만큼이나. 질래의 입안을 핥고 빠는 남자가 준 달콤한 유희를 누리고 싶었다. 남자의 혀에서 내는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됐다.

서로가 토해낸 열기를 농염하게 주고받는 동안 질래는 어느새 그의 허벅지에 올라타 있었다.

몽롱한 정신 때문에 현실을 망각한 듯 질래가 와이셔츠 밑으로 단단하게 물오른 남자의 흉근을 쓰다듬었다.

은우는 여자의 상복 앞섶을 느슨하게 풀어낸 후 속치마 위로 동산을 이룬 둥근 젖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그래도 장례식장 상주실은 아니지 않나?

이성과 본능 사이, 그 괴리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찔한 장소가 사람을 그리 만든 건지 사랑에 중독돼서 이러는 건지 희한하게도 그와의 접점은 천연 각성제라 불리는 도파민을 과하게 분출시키나 보다.

쾌락 중추가 중독되면 마약 중독자의 뇌 활동과 비슷해진다더니 나는 지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걸까.

은우와 혀가 섞이는 순간 오르가슴을 향한 욕망이 습관처럼 분출됐다. 이대로 모든 악몽을 잊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터벅터벅, 누군가가 신발을 벗고 빈소로 들어오는 소리가 이성을 되돌려 놨다는 것이다.

질래는 은우 위에서 재빨리 내려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은우도 흐트러진 와이셔츠를 정리한 후 정장 바지 위로 핀 막대기를 드로즈 안으로 최대한 꾹 눌러 넣었지만, 젠장. 자라도 너무 자랐다.

발기 전 물건이 바지 안에서 이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이건 분명 기네스북감이리라.

어쨌든 상주실로 들어온 의문의 남자에게 야한 짓은 걸리지 않았다. 입술이 필러를 맞은 것처럼 오동통하게 부어올랐다는 것 외에는 딱히 거슬리는 것도 없었다.

“하! 둘이 되게 잘 어울리네, 기분 더럽게.”

가시눈으로 상주실에 들어선 남자는 침대 앞에 어색하게 서 있는 커플을 보자마자 숨기고픈 진심이 내뱉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우린 이렇게 달라지는 게 없지? 일부러 사람들 피해서 왔더니 또 둘이야? 또 둘이 상갓집에서 그 지랄을 한 건가? 왜 침대 앞에 있지? 빈소는 텅텅 비우고.”

“그게….”

‘제가 쓰러졌었어요.’

이렇게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상주실 키스를 정당화할 명목은 되지 못했다.

마치 들켜서는 안 될 불륜 현장을 들켜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민망함은 어떻게 진화시킬 수 있을지 당장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상주실에서 은우와 입술을 교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잡아떼려 해도 비정상적으로 불뚝 튀어나온 은우의 하체가 모든 정황을 설명했다.

태윤은 은우의 하체를 본 순간 주먹의 핏줄도, 미간도 동시에 꿈틀댔다. 대체 저 자식은 부족한 게 뭔가 싶어서, 저 커다란 살덩이 맛에 제 약혼자를 빼앗겼나 싶어서, 악취 나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이 온몸에 쫙 퍼졌다.

그래서 여자 앞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하라 여사 빈소에선 모른 척 넘어갔지만, 오늘은 한소리 하고 싶네요, 가질래 씨. 지금 상황 몰라서 이렇게 경솔합니까. 좀 조심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그렇게 힘듭니까? 내가 여길 어떤 심정으로 왔는지, 이해가 가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제 기준에 윤태윤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천하의 나쁜 놈, 내 여동생을 건드린 개새끼였다.

하지만 질래 역시 잘한 건 없었다.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뻔히 알면서 저 혼자 쾌락을 취해 상주복 치마폭에 은우를 넣을 뻔했으니 말이다.

일단은 침착하게 상주로 돌아온다.

“우리 줄래를 위해서, 용기 내서 와주신 거 고맙습니다.”

질래는 윤태윤에게 처음으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 역시 저지른 죄의 무게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지 싶어. 혹 우리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저처럼 피해자로만 살지 않았을까 싶어서. 꼭 그를 망친 게 질래의 아버지, 가정만 회장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조금은 미안했다.

“보고….”

질래의 고맙단 말에 감사 표시를 하려던 태윤이 두 단어를 언급한 후 입매를 야무지게 옹 다물었다. 이내 도드라진 목젖을 한 번 꿀렁인 후 뜨거운 눈빛으로 질래를 주시했다. 묵직하게 닫혀 있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싶었습니다. 가질래 씨.”

침대 앞. 다른 남자 옆에서 흐트러진 상복 앞섶으로 저를 맞이하고 있는 여자. 한때는 제 아내라 믿고 싶었던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마주해야 하는 남자의 심정은 어떨까. 은우는 태윤이 처음으로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역시 가질래를 얼마나 진심으로 원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 질래가 다른 남자의 혀를 빨고 젖가슴을 내어준다면 어땠을까.

그래. 승자의 겸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은우는 이번만큼은 태윤에게 날카롭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반면 질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은 태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파리에 갔을 때부터 이미 생리 기간이었음에도 혈을 분출해내지 못했다. 단순히 심적 부담을 느껴 미뤄졌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살면서 한 번도 생리 주기가 틀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우야, 나 윤태윤 씨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 잠시 나가 있으면 안 돼?”

은우가 고개를 도리질한다. 오히려 질래의 손을 꼭 붙든 채로 굳건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질래가 은우를 향해 다시금 제 목소리를 냈다.

“네가 들으면 아플 수도 있어.”

질래의 오밀조밀한 얼굴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영롱한 눈동자가 은우에게 나가달라 부탁해왔다. 하지만 질래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은우도 대충은 예상이 됐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와 함께 모든 진실을 감당하고 싶었다.

솔직히 모르고 지나갔으면 싶은 이야기였지만, 그녀가 듣기를 원한다면 같이 책임지리라.

“괜찮아.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윤태윤 앞에서 비겁하게 질래를 두고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떠한 답이 나오든 의연하게. 그래, 태연하게. 남자답게 질래를 감싸주자.

은우의 저 자신만만한 태도가 태윤을 더 가슴 시리게 했다. 날카로운 창칼이 무자비하게 제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이젠 곧 죽어도 이길 수 없는 놈. 어쩌면 저보다 더 가질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놈.

아프지만 태윤은 쓰라린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태윤은 마지막으로 이 둘에게 잠시 동안 지옥을 선물하고자 한다.

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 부러워서, 한 번 더 악역을 자처했다.

“우리 잤는데, 꽤 쿨하네.”

윤태윤의 그 한마디에 질래는 망부석처럼 딱딱하게 응고됐다.

“잊을 수가 없을 만큼, 나는 좋았는데. 질래 씨는 기억 안 나나 보죠?”

질래의 다리가 휘청거리자 은우가 그녀의 허리를 제 쪽으로 기대게 했다.

“하긴, 사고 이후 기억을 잘 잃는다지?”

태윤은 분명히 은우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포착했다. 동공 역시 좀 전보다 확장돼 있었다.

통쾌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빼앗겼을 때 그 당혹감. 다른 사람이 범했다는 고통이 어떤 건지 잠시라도 알려준 것 같아서, 태윤은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저와 잤다는 한마디에 사시나무 떨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의 반응이 쓰라렸다.

“가질래 씨는 저랑 잔 게 그렇게 싫습니까? 왜 제가 좋은 건 다 그쪽한테 아픈 거죠?”

‘나는 한 번도 가질래 씨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왜 우린, 아닐까요?’

태윤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질래는 그가 잤다고 말한 순간부터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안색이 잿빛으로 변하다 못해 이내 하얗게 질려버렸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점점 공포의 싱크홀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설마. 그 한 번으로 태윤의 아이를 임신한 건 아니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멍해지던 그때 제 손을 잡고 있던 남자가 나섰다.

“내가 엄청 구석구석 열심히 씻겨 줘서 우리 질래한테 당신 흔적 따윈 없어. 그니까 그런 얘기 한 번만 더 꺼냈다간, 죽여 버릴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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