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골목길, 질래와 함께 캉캉 춤을
이제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시야가 둔해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그때, 질래의 가냘픈 몸이 야속하게도 본능대로 바르작댔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남자의 부드러운 손길이 지독히도 다정해서 꽉 동여맸던 질래의 이성의 끈이 무장 해제됐다.
여자의 풀린 눈매가 어찌나 색스러운지, 한쪽 입매를 씰룩이던 은우가 질래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아냈다.
초코 크림으로 범벅됐던 질래의 입술이 물랭루즈 풍차 색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맞물린 연인의 입술 위로 낙조가 떨어졌다. 그 신비로운 색감이 둘의 얼굴을 타고 내려와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던 몽마르뜨 언덕에서의 어느 저녁.
발그레한 볼로 색색거리는 여자를 내려다본 남자는 이 모든 게 파리의 야살스러운 석양 때문이라며, 속내를 꺼냈다.
“못 참겠어, 질래야.”
도로가 여섯 길로 갈라진 교차로. 여기서 못 참으면 어쩔 건데.
질래는 묻고 싶었지만, 저를 좁은 골목길로 데려가는 은우에게 묵묵히 끌려갔다. 아무래도 조금 미친 것 같았다. 이미 사람이길 포기한 듯, 인간에서 막 각성한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아무래도 몽마르뜨의 언덕, 그 어느 골목길에서 우린 기어코 일을 낼 모양이다.
이성과 욕정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시작점에 선 질래는 끝끝내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했다. 줄 위로 한 발을 내디디고 만 것이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성으로는 안 된다면서도 묵묵히 끌려가는 이 아이러니함.
쿵쾅대는 심장이 원하는 대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음부의 속삭임대로.
원초적 본능 따라 항해하던 남자가 드디어 닻을 내렸다.
“거리에서 은밀한 캉캉 춤, 어때?”
“캉캉?”
한 번도 춰보지도 않은 캉캉 춤이 웬 말이냐, 질래의 휜 눈썹이 물음표를 그렸다.
다만 파리까지 와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은우는 생각보다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점이었다.
늘 알 수 없는 논리로 설득하는데 묘하게 납득 당했다. 어느새 그의 손끝 하나에도 홀린 사람처럼 은우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봐봐! 섹스 용품 숍이랑 유기농 숍이 나란히 있다니까.”
실제로 그랬다. 참, 이질적인 그림이었다. 한쪽에는 섹스 숍이, 한쪽에는 웰빙을 추구하는 신선한 유기농 먹거리 점이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는 캉캉 춤을 즐겨보는 곳이 파리라고. 원래 여기가 홍등가였던 건 알지?”
맞는 말이긴 했다. 물랭루즈가 있는 이곳. 과거에 비해 많이 정리됐지만 여전히 외설적인 성문화가 거리 곳곳에 넘쳐났다. 붉은 풍차 좌우로 술집과 누드쇼 클럽, 섹스숍, 성인비디오방이 쭉 거리를 메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번엔 질래가 마음속 언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게 왜?”
“내가 야한 발차기로 가질래 한번 유혹해 보려고.”
“뭐?”
“질래와 함께 캉캉 춤을. 어때?”
동시에 은우의 시선이 바지 위로 부풀어 오른 가운데 다리로 향했다. 탄성력이 떨어지는 울 소재 슬랙스 위로 힘차게 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그 아이.
질래는 일시에 분홍빛 로제와인 색으로 귓불까지 달아올랐다. 홀로 와인 한 병을 원 샷 한 듯 홧홧한 취기가 얼굴 가득 퍼졌다.
유럽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저 글로벌스러운 육중한 각선미. 은우의 분신이 그녀를 얼마나 갈구하는지 얇은 천안에서 은밀하게 캉캉 춤을 추며 구애 중인 남자의 다리가 훤히 보였다.
“언제까지 낭만 타령… 어머.”
객기를 부려봤지만 베이지 슬립온을 신은 여자의 발이 하체를 세운 남자 손에 이끌려 위험천만한 항해를 시작했다.
머리로는 은우의 논리가 허점투성이임을 파악했음에도, 도르래에 매달린 추처럼 그에게로 몸이 끌려갔다. 마치 외설적인 야한 춤사위에 매료돼 쫓아가듯. 뭐에 씐 사람처럼 질래는 은우에게 견인 당했다.
신기한 건 우리를 맞이하고 있던 고요한 골목길의 풍경이었다.
사람이 있는 길과, 없는 길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왼쪽, 오른쪽 그 미묘한 차이일 뿐인데, 인적이 드문 길은 마치 죽은 거리처럼 정적이 흘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은우가 인적이 사망한 거리를 택했다는 점이었다.
그 골목길에서도 좁은 벽 틈. 사람 둘이 들어서면 꼭 맞는 틈새를 어찌 알고 그 안에다 질래를 끼워 맞췄다. 오른쪽 벽에 있는 초록색 대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문….”
“이 건물 비상구일걸?”
“여기서 사람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리가.”
질래가 저가 갇힌 좁은 틈새를 구경하는 동안 은우가 제 길고 널찍한 몸으로 입구를 가렸다.
“뭐, 뭐 하려고. 어머!”
은우가 질래를 바닥에 놓인 커다란 바위 위에 조심스레 올려뒀다. 어쩌다 보니 둘은 지금 같은 방향, 막힌 담 쪽을 나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은우의 다음 동작이 예상됐다.
“미친 짓이야!”
“나만 미친 건 아닌 거 같은데?”
“…….”
“가질래 위해서 내가 한 번 무희가 돼 보려고.”
설마가 역시가 되는 순간.
펄럭이는 원피스 안 사타구니 속으로. 그의 손이 뱀처럼 기어들어 와 혓바닥처럼 날름댔다.
소음순에 눌어붙은 습윤한 팬티 위. 둔덕이 생긴 휴전선 따라 찌익, 검지로 그었다.
“어때?”
“하아, 하아.”
주체할 수 없는 달뜬 호흡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질래의 턱이 은우의 가슴 쪽으로 살짝 쳐들리자 그가 제 등을 바짝 밀착시켰다.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바위 때문이라며, 질래는 어쩔 수 없이 막힌 담에 제 손을 짚었다. 그러자 원피스 위로 야살스럽게 그려진 동그라미 두 개가 은우 쪽으로 향했다. 그 육감적인 히프에 불뚝 선 페니스가 불쑥 들어갔다. 오동통한 빵에 낀 소시지처럼 순식간에 핫도그가 완성됐다.
이젠 어쩌지. 이미 몸은 반응해 놓고, 끝까지 이성 있는 척. 질래가 본능에 사로잡혀 폭주 중인 남자를 한 차례 말렸다.
“네가 여자야? 무희는 무슨.”
“모델도 영감이 필요해, 내 뮤즈가 되어 달라고, 하! 나만 좋은 거 아닌 거 같은데.”
“으흐읏.”
그래. 알면서도 따라온 거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표방해 왔던 삶이, 어쩌다 보니 이은우를 만나면서 끝났다. 스킨십 거부증도 세이 굿바이다.
흔들리는 바위 위, 들러붙은 원피스 사이로 뻗어 내린 여자의 매끈한 다리가 섹시했다. 막힌 담에 기대어 가늘게 떠는 여자가 애처로우면서도 사랑스럽다.
그런 질래를 은우가 뒤에서 휘감았다. 제 목선에 코를 묻은 남자의 콧김마저 음탕하게 느껴지는 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캉캉 춤의 유혹에 흠뻑 빠져버렸다는 증거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은우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질래가 바위 위에 올라섰음에도 혹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엔 은우의 뒤태만 보일 것이다.
다행히 길은 여전히 정숙했다. 이곳에서 되바라진 거라곤 질탕하게 엮인 은우와 질래 뿐이었다.
남자는 정말 파리 길바닥에 사정이라도 하려는 걸까.
읏. 질래의 눈썹이 순시에 지붕을 그렸다.
뒤에서 저를 결박한 남자가 여자의 귓불에서 지분대자 찌르르한 전율에 그녀의 허리를 곧추세웠다. 꼴깍, 마른 침을 넘기는 소리마저 적나라하게 들린다. 입에서 샌 신음이 민망할 정도로 골목길은 얌전했다.
도리어 그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뜨거운 날숨이 더 자극적일 만큼, 조릿조릿한 긴장감에 장기들이 믹서에 갈리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아랫배가 홀쭉하게 쪼그라들었다.
잔뜩 움츠린 여자와 달리 은우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제 품에 쏙 들어온 여자의 작은 몸이 가냘프면서도 보드랍고 한없이 노글노글한 게 좋았다.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 은우는 그 조그마한 마론 인형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을 쓸어 넘긴 후 새하얀 뒷목에 키스를 퍼부었다. 바르르 떨리는 목선을 치아로 질겅질겅 씹은 후 날카롭게 세운 혀로 마무리하듯 진득하게 핥아 냈다.
으흐읏, 야릇하게 목선을 타고 내려간 혀가 어느 지점에선가 뚝 멈춰 선 후, 퍼버벅, 원피스의 지퍼가 내려갔다.
번쩍, 가로등이 켜졌다. 어둠이 찾아온 골목길 어딘가에서 길을 밝히는 가로등. 그 어슴푸레한 빛이 여자의 매끈하게 굴려진 어깨를 아름답게 내리쬈다.
“하, 너무 예뻐.”
은우는 성난 페니스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고운 어깻죽지를 초옥 촙, 정신없이 맛보며 빨아대는 남자의 양손은 이미 말랑말랑, 탱탱볼 같은 여자의 녹녹한 가슴을 짜부라뜨렸다.
무르고 보드라운 두 공 사이, 옷 위에 머문 손이 속옷 아래로 피어난 유두를 정확히 공략했다.
한껏 예민해진 여체가 꾹 눌린 열점에 반응한다. 여자의 입술에서 토해내듯 드센 신음이 쏟아졌다. 톡톡, 빙그르르, 남자가 주는 유려한 자극에 젖꼭지가 발딱 섰다.
“커졌어. 이제 다 느껴져.”
그의 입술과 손끝에서 전해오는 선연한 감각에 하루 종일 가슴에 날벼락이 꽂혔다.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저릿한 감각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부르르 떨게 했다.
돌연 은우는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질래를 180도 돌려 벌어진 입술로 가늘게 숨을 고르는 여자의 입술을 물었다. 친절한 손은 어깨에 걸쳐진 원피스를 허리까지 쭉 내렸다.
“으, 으누야.”
“하, 어쩌지 너무 좋은데?”
거리에 벗은 여자. 캉캉 춤으로 단련된 그 어떤 무희보다도 나신의 곡선이 아리따운 여자였다.
속옷 가게의 쇼윈도에 서 있는 마네킹이 아니었다. 말랑말랑, 만지는 대로 이지러지는 여인은 제법 서늘한 날씨에도 손난로처럼 뜨끈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래의 체온이 끝도 없이 상승했다. 그와 접촉된 곳곳에서 피어오른 후끈한 열감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나는, 떨려.”
부르르르, 질래의 전신이 미세하게 떨었다.
‘밖에서 벗고 있다니.’
브래지어에 떠받든 풍만한 반원이 오르락내리락, 숨이 가쁜 여자의 가슴골이 매혹적이길래 은우가 제 코를 그 속에 처박았다.
그저 남자의 입술의 열기가 닿았을 뿐인데 그 저릿함에 움찔움찔, 질래의 몸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이 모든 상황에 태연한 남자가 신기할 만큼 질래는 온몸으로 그를 느끼고 있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사정, 사정해보라며.”
“…….”
“말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