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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7화 (7/84)

7화. 참았다 무너지는 거

여자가 무언가를 판단하기도 전에 돌연 질래의 등과 종아리에 제 팔을 끼워 넣더니 번쩍 들어서 안아버리는 이 남자. 너무 놀란 나머지 촉촉해졌던 질래의 눈동자가 결빙되어 흰자를 가득 채울 만큼 그 둘레가 급격히 커져 버렸다.

“그래서, 어디 가는데?”

그때 또 은우의 옷 어딘가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것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질래 역시 태윤의 전화가 계속 신경 쓰이긴 마찬가지였다.

“내 재킷 주머니에 손닿지? 못 간다고 문자 보내. 그 새끼한테 보낼 생각 이만큼도 없으니까.”

“왜 네 멋대로 정하는데?”

“멋대로 살아왔으니까.”

“오늘은 너무 늦었어. 내일 만나, 그럼.”

“싫은데? 안 재울 거야!”

“뭐?”

그래, 이건 대화도, 협상도 아니었다.

남자의 일방적인 선전포고였다. 질래가 그의 품에서 발버둥 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벗어나기엔 남자의 힘은 너무도 강하고 견고했다.

인적마저 소멸된 시커먼 골목길. 여자를 안은 채 눈길에 제 큼지막한 발자국만 남기면서, 남자는 청담동의 한 빌딩 반지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계획된 동선처럼.

“벗자.”

“미쳤어?”

은우의 한마디에 질래는 양손으로 제가 입고 있던 캐시미어 코트를 꽉 부여잡았다. 그사이 남자는 침대 옆 탁상에 놓인 전기 포트 버튼을 꾹 눌렀다.

“코트 완전히 젖었던데. 벗겨줘?”

“나 가야겠다. 오늘 반가웠어.”

“누나.”

“자꾸 헷갈리게 부르지 마. 안 속을….”

“나 이러고 살아.”

“…….”

그제야 질래의 눈에 주변 환경이 들어왔다. 대충 둘러보니, 안 쓰는 사무실을 개조해서 쓰는 듯 누추하면서도 필요한 살림살이만 놓인 그런 집이었다.

그사이 남자는 선물 받은 듯한 고급 티백 세트 포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노선 정해. 동생이야, 납치범이야?”

“동생이 납치하면, 죈가?”

“응, 죄야.”

질래가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만 하던 남자가 방에서 흰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은 후 제 옷을 챙겨 갖고 나왔다. 이내 제 침대에서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여자 옆에 그 옷을 놓았다.

“입어.”

“…….”

“입혀줄까?”

“내가 애니?”

“응, 꼬맹이네. 그렇게 컸던 누나가.”

남자의 손이 여자의 젖은 정수리를 느릿느릿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의 애매한 행동에 질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실 그녀도 은우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 집에선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혈기왕성한 남자보다 더 위험한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은우가 싫어서가 아니라, 이 상황이 숨 막혀서 질래는 눈썹 사이를 좁혔다.

“그렇게 같이 있는 게 싫어? 표정이 너무한데?”

“장례식 때도 궁금했는데, 정말 원하는 게 뭐야?”

“그 코트부터 좀 벗지? 침대가 다 젖었네. 이불도 하나밖에 없는데.”

실제로 질래의 코트에서 떨어진 물기에 이불이 조금 젖어 있었다. 질래는 코트를 벗는 대신 침대로부터 한 발짝 물러섰다.

“일단 차 한 잔 마셔.”

은우가 티백 하나를 들고선 질래에게로 서서히 다가온다.

안 돼! 오지 마! 돌아서야 해!

따뜻한 실내에서 생기를 되찾은 여자의 붉은 입술이 급히 떨어졌다.

“길래야! 나 이제 네 인생 지켜줄 만큼 능력 생겼어. 뭘 원하는데? 집부터 사줘?”

“원하면 정말 다 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나라고 너 그렇게 보내고 마음이 좋았는 줄 알아?”

“일단 이은우라고 불러.”

“알았어, 이은우. 그러니까….”

분명히 경고했는데, 남자가 또다시 다가온다. 질래 앞으로 점점,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덕분에 질래의 입안이 바싹 마르다 못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뭔데, 거기서 말해. 더 이상 다가오지 마.”

“가질래.”

“뭐?”

“내가 원하는 건… 가질래.”

어느 틈에 은우가 제 코앞까지 다가와 뒷걸음친다는 게 그만 여자의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앗!”

여자가 침대 쪽으로 넘어지면서 팔꿈치로 전기 포트를 건드렸나 보다.

모든 건 찰나였다.

끝끝내 젖은 코트로 침대 위에 철퍼덕 누워버린 그녀 위로 은우가 제 몸을 날렸다. 덕분에 끓기 직전의 뜨거운 물이 남자의 팔에 스치듯 떨어졌다.

“어… 어떻게, 괜찮….”

“안 괜찮아.”

여자는 남자의 표정부터 살펴봤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그의 얼굴엔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 뜨거운 물에 덴 사람 맞아?

“이거 벗고, 어디 봐봐! 얼마나 데였는지… 저기.”

순간 누나 마음이 발동되어 걱정하는 질래를 보며 제 한 손을 그녀의 뺨 위로 지그시 갖다 대는 남자. 그녀의 고운 살결을 지켜내서 다행이란 생각도 잠시였다.

“장례식장에서도 약혼자 주먹에 맞을까 봐, 걱정됐었어?”

“그때 그건…. 나도 몰라. 그냥 네가 동생 같으니까.”

남녀가 침대 위에 얽혀버린 이 애매한 자세가 그의 숨길 수 없는 본능을 자극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한쪽 손이 코트로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도 동생 같아?”

너무도 거대한 남자가 제 위에 오두막처럼 견고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일까. 숨쉬기조차 불편할 만큼 딱딱하게 굳어버린 심폐기능이 문제일까. 질래는 조각처럼 잘생긴 남자의 손길을 머리로는 수십 번도 더 밀어냈지만 도통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그저 남자의 위험한 선포가 떨어졌을 뿐.

“먼저 누운 것도 너야.”

“뭐?”

“먼저 벗으란 것도 너고. 그러니까 내 잘못 아니라고.”

또 남자의 입술이 다가온다. 동시에 여자의 입술이 다급하게 떨어졌다.

돌연 질래의 투명한 눈동자가 있는 힘껏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남자가 그녀의 동그란 눈 속 세계에 다 담겨질 만큼 놀란 질래는 은우 밑에 갇힌 채로 그대로 얼어버렸다.

“뭐 하는 거야?”

얼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질래가 남자의 야릇한 행위에 다급하게 목소리를 뱉었다.

남자의 입술이 질래의 귓바퀴를 물고 빨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멈춰 세워야 할지 여자는 당황스러웠다.

찌걱찌걱, 제 귀속을 혀끝으로 유영하는 적나라한 소리에 놀란 나머지 또다시 목석처럼 꼿꼿하게 경직되고 말았다.

“맛있는 건 먹는 거라며.”

이런. 10여 년 전에 가족 외식을 했던 스테이크 집에서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하긴 질래 역시 돌아보니 은우와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은우야, 우리 이러면 안… 흐읏.”

여자의 경고성 메시지에도 남자의 애무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귓불에서 턱선까지 츄읍, 츱, 맛보는 남자의 음탕하고도 야릇한 혀 놀림에 여자의 전신도 흐물흐물 풀려갔다.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맛이구나?”

“적당히 해, 안 그러면.”

“적당히 부드럽고 고급지게 향긋해, 여기까진.”

그러면서 제 손등으로 여자의 목선을 부드럽게 훑어 내리는 남자. 그 온기 가득한 손으로 여자의 턱을 감싼 채 붉은 입술을 할짝할짝, 주름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맛보는 그였다.

“그래, 여기가 달달하네.”

“저기, 은우… 앗!”

남자가 여자의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이에 여린 신음과 함께 벌어진 입속으로 그의 혀가 거칠게 밀고 들어온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여자의 혀를 풀어내듯 남자가 그 안을 질퍽하게 적셔갔다. 이내 화답하듯 서서히 남자의 혀 밑을 파고드는 여자의 오톨도톨한 혓바닥이 그의 것과 마찰하며 비비어졌다.

그래, 키스까지만. 사실 궁금했잖아. 그때의 감정이 뭔지. 알아보고 싶잖아.

은우를 강하게 밀어내던 질래의 손이 침대 시트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내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가 끝내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말았다. 제법 서로의 타액을 빨아 먹는 소리가 야해지고 있었다. 제대로 꼴리게.

어느새 침대에 뒤엉켜 서로의 침샘을 자극하는 색정적인 모습이 벽거울을 통해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은우는 미칠 것 같았다. 그녀와의 키스가 처음도 아니건만, 남자의 허리 밑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뻐근함을 호소했다.

제길! 뭔데 이렇게 특별해? 고작 키스 따위가 뭐라고.

그렇다고 여자의 스킬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분명한 건 어릴 때 엄마처럼 늘 리드하던 여자의 강단 있던 모습과 달리, 키스하는 자세는 매우 어설퍼 보였다. 그 어색함이 오히려 은우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말랑말랑해졌다가 빳빳해졌다가. 그가 이끄는 감촉대로 반응하는 몸이 돌았구나 싶던 그때. 하필이면 그녀의 눈에 남자의 꿀렁이는 울대뼈가 들어왔다. 왜지? 볼록하게 솟은 저게 뭐라고 은우가 왜 이렇게 섹시하지.

그는 마치 고기 맛을 알아버린 새끼 사자와도 같았다. 그 숨결만으로도 치명적여서 질래를 점점 아득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 목울대에 손을 뻗을 만큼.

그렇게 남자의 목젖에 손끝이 닿는가 싶더니.

“다른 덴 어떨까? …궁금하다.”

여자보다 한발 앞선 남자의 손이 질래의 코트 틈새를 파고들었다. 젖은 블라우스 위로 더듬더듬, 그녀의 가슴을 찾아가는 아슬아슬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져서 발끝이 동그랗게 말려버린 질래였다.

“이러지마.”

“말캉해…. 보고 싶다.”

“누나가 경솔했어, 여기까지만 하자. 응?”

이성을 되찾은 질래가 있는 힘껏 그를 밀쳐내 보지만 결단코 밀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저 팔뚝에 선 푸르딩딩한 핏줄만이 그가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여자를 품고 있는지 알려줬을 뿐.

“너무 젖었다. 벗자 질래야.”

“그만하라고!”

“똑똑한 거 다 아는데, 이런 건 잘 못 알아듣네?”

“은우야!”

이런, 목소리 끝에 바이브레이션이 생겼다. 똑 부러지게 말했어야 했는데 뚝심 있게 버티고 있는 남자의 위엄에 질래는 그만 졸보가 되고 말았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이 방에 적용된다고 생각해 봐. 누가 약자일까? 가질래 씨.”

늘 제 위에 있던 여자가 제 밑에서 상기된 얼굴로 애원하는 모습이 마치 덫에 걸린 한 마리의 노루 같았다. 그럼 구해줘야 정상일 텐데, 왜 자꾸 사냥이 하고 싶지?

은우의 마음도 사실 복잡했다. 가녀린 듯 풍만한 몸매에서 풍기는 고혹적인 암컷의 향. 이걸 어떻게 모른 척하지?

하. 힘들다.

“너랑 내가 무슨 약육강식이야, 장난 그만 쳐!”

“장난? 이게 장난 같아 보여?”

“…그럼, 뭔데.”

“참았다 무너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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