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아가, 아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사샤는. 자주 아팠다. 아니, 자주라는 말을 붙이기 힘들 만큼 매일
아팠다.
열은 잘 떨어지지 않아서 항상 몸이 불덩이 같았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헐떡였다
. 해열제를 먹여도 효과가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잘 울지 않는 게 더 마르가리타
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리타가 며칠을 수소문해 어렵게 불러온 의원이 몇 달간 약을 먹였지만 조금도 차도는 없었다
. 결국 의원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대체 뭐가 문제인데…….”
“그게 확인이 안 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종류의 약은 다 먹여봤잖아. 나로서는 더 이상
….”
“흑….”
몇 명의 의원을 더 사정해서 데려왔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똑같았다.
절망적이었다. 그럼 난 나의 사샤가 조금씩 죽어 가는 걸 그냥 지켜만 보라는 거야?
리타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내 아가를 보낼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돈을 꿨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마르가리타와 눈을
마주치면 대놓고 외면하거나, 조금 더 인정 있는 사람은 안타까운 낯빛으로 살짝 고개를 흔
들며 거절의 표시를 했다.
결국 리타는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사채업자의 밑에 있는 불량배들이 집을 뒤집어엎던 날,
가뜩이나 아프던 사샤가 그 밤 내내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우리 아가는 버틸 수 있다고. 세뇌하듯 진실을 외면했지만 이제 리타도 받아들여
야 했다.
아이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과 엮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는데.
내 운명은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마지막 남은 한 줄기 희망이, 제가 예전에 죽어도 찾지 않으리라 걷어찼던 족쇄였던 피의 저
주라니. 마르가리타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어.
“…도와주세요, 제발.”
“이게 누구야. 우리를 떠난 자매님 아닌가.”
마르가리타는 무릎을 꿇은 채 여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아이가 낫지 않는다고. 어떤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고. 제발 살릴 방법을 알려 달라고.
“그 아이가 앓고 있는 건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이 맞아.”
"대체 왜……."
이를 악문 사이로 신음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왔다.
“나도 몰라,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비술을 써서일까. 왜 온갖 마법은 허해주면서 우리 일
족에게만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지. 신이라는 자는 공평치 않아.”
여자는 제 일이 아니기에 여상하게 대답했지만, 그 어조의 아래에는 일말의 안타까움도 옅게
나마 깔려 있었다.
“마르가리타, 나의 자매여. 난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이라고 했지, 아예 고칠 수 없다고 하지
는 않았어.”
“정말, 정말인가요?”
“네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없는 이유는 몸에 생긴 병이 아니기 때문이야,”
“뭐라고…?”
“네 딸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어.”
“….”
“애초에 이걸 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마, 우리 일족이 쓰는 저주의 반작용 아
닐까.”
“그게 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나의 하나뿐인 보물에게
왜 이런 일이. 이 아이는 저주의 근처로도 간 적이 없는 아이인데, 어째서.
“…그래서 치료를 하는 것도 몸이 아니라 영혼을 고쳐야 하는 거야.”
“어떻게 하는 거죠. 제발, 제발 알려줘요.”
“내가 아는 건 단 하나뿐이야.”
여인이 보랏빛 입술이 달싹이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마르가리타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
하더니 우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혼을, 바꿔야 한다고요.”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이 세계와 다른 곳에서 똑같이 그 아이처럼 영혼이 죽어가는 아이
가 있어. 반드시 존재해.”
"……."
“영혼을 담을 그릇이 맞지 않아 생기는 병이니까, 제 영혼에 꼭 맞는 몸으로 바뀐다면 해결
되지.”
“하지만….”
그 아이는 더 이상…. 사샤는, 내 사샤는. 사샤가 아니게 되잖아요.
“그렇다 해도…. 그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아
이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을 테니까."
"……."
여인의 말 대로였다. 사샤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의학적 지식이 없는 누군가가 봐도 이
아이는 오래 살 수 없겠구나, 안타까워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만약에, 정말 영혼이 바뀌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내 사샤가 되는 건가요."
"네 아이의 몸에 꼭 맞는 영혼이겠지."
네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어찌 보면 네 진짜 아이를 되찾는 것일 수도 모르지. 그릇에 맞는 영혼을 되찾아오는 것이니
까.
리타는 울먹이면서도 여인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그럼 우리 사샤는 그, 다른 세계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가요."
"……그래. 네 아이의 혼이 정확하게 정착할 수 있는 몸이니까."
"나에겐 어차피, 선택지가 하나뿐이네요."
"…내일 찾아오겠다고 말할 거지?"
과연 그녀는 리타의 마음을 전부 읽은 듯이 말했다.
"자정에 아이와 함께 와. 의식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의식을 마치고, 다시 아이를 안아 들었을 때 여인은 무릎을 꿇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 마르가
리타의 귓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여주었다.
나 역시 아이를 잃은 적이 있어.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이었지. 너처럼 나도 이 일족의 피
를 혐오하고 거부해서, 범부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었어.
아이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지. 이 운명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내가 일부러 죽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야.
스스로 죽어버리면 내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너 역시 그랬으면 좋겠어.
“안녕….”
의식이 끝나고 마르가리타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듯
눈동자를 굴렸다.
갈색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속눈썹이 파닥파닥거렸다. 마르가리타가 가장 좋아했던 모습이기
도 했다.
“난 마르가리타라고 해.”
아이는 마르가리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여인의 말대로 더
이상 아이는 아파 보이지 않았다.
새하얗게 질려서 메말라 있던 뺨도 원래 색을 찾아 분홍빛으로 생기 있어 보이고, 항상 그랬
듯 고통스러워하며 찡그리고 울고 있지 않았다.
“넌 알렉산…드라야.”
마르가리타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사샤라고 더 많이 불렀단다.”
한쪽 입꼬리를 부자연스럽게 올린 마르가리타의 메마른 입술 사이에서 억양 없는 어조가 이
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해. 사…….”
달달 떨리던 입술이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무너졌다.
“사샤, 사샤, 사샤.”
아이를 안고 그녀가 붙여준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르가리타는 먼 곳의 누군가를 부르듯 애절
하게, 허망하게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날부터 마르가리타는 사샤가 아닌 사샤와 살았다.
그녀의 기분 탓일까. 아이는 정말 눈빛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면서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물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처음 배운 말은, 엄마도 맘마도 아니었다.
"이……따."
"응?"
"이이따아."
아이가 뻐끔뻐끔 입을 벌려 마르가리타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동
안 아이가 했던 옹알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위한 노력이었던 걸 깨달았다.
리타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이 올라왔다.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샤를 고아원에 놓고 가려고 했던 날 눈을 마주쳤을 때의
감정이 다시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디작은 아이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통통한 사샤의 손가락
은 피부 아래까지 전달될 만큼 따뜻했다.
미안해, 나는 너를 또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던 걸지도 몰라.
"……그때 약속했던 말, 꼭 지킬게."
너만을 평생 지킬게.
사랑하는 나의 아가.
사샤, 마차가 뒤집어지고, 순식간에 죽음의 마수가 날 덮쳐왔을 때도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너뿐이었어.
레오폴드를 감싸 안고 지키면서도, 무서운 속도로 마차가 떨어질 때도, 감당할 수 없이 커다
란 충격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통증이 몰려왔을 때도.
아아, 나의 아이가 이번에는 제 운명에서 씩씩하게 살아내길. 그 생각뿐이었단다. 저주 따위
에 져서는 안 돼. 넌 벌써 저주를 이겨냈던 자랑스러운 내 딸이니까.
네 옆에서 지켜주려 했는데.
며칠 안에 네게로 돌아가려 했는데. 엄마는 아마 힘들 것 같아.
그래도 사샤, 나의 사샤.
엄마는 널 지켜낸 걸까?
엄마의 딸로 살아서 행복했다는 말 정말로 고마워. 나는 그 말만으로도 모든 걸 보상받았어.
그 사람에게 널 맡기지만,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이 세상 모든 행복이 전부 네 것이었으면.
눈앞에 네가 있네, 바구니 가득 설탕 케이크와 우유,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넣고.
풀밭에 자리를 잡고 이젠 네가 더 맛있게 구워내는 설탕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입에 넣고. 환
하게 비추는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는 거야.
그리고 잠들기 전, 네게 말할게. 너를 만난 이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축복이라고.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