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단의 꽃-81화 (81/108)

81.

“너희 둘.”

이루가 두 명의 부하에게 손짓했다.

“이곳을 떠나지 마라.”

하진은 가까이에 병사들을 두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하진을 지척에서 지키는 것은 항상 이루의 몫이었다.

이루는 하진의 그림자와 같아서 밤에 잠이 들 때도 항상 곁을 지켜 왔지만 그 외에 다른 병사들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온 하진이다.

말이 새 나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중요하면서도 은밀한 대화들을 자주 주고받는데 그때마다 병사들을 물릴 수 없어서 아예 근처에 오지 못하고 멀찍하게 떨어져서 경계를 서게 하는 것으로 굳혀진 지 오래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이루 한 명이 열 명, 스무 명의 병사보다 낫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진도 칼을 잡을 수 있지만 이루는 지금까지 하진이 칼을 잡게 내버려 둔 적이 없다.

이루가 하진과 함께하기 전에는 하진이 직접 칼을 잡았던 적이 있었지만 이루가 하진의 호위를 맡은 후로는 하진이 칼을 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건 이루의 긍지이기도 했다.

자신이 지키는 자는, 적어도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다치게도, 죽게도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긍지는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지켜야 할 대상이 하진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주은호까지 두 명으로 늘었다.

아니, 주은호의 태중의 아이까지 전부 세 명이다.

지난번에는 주은호를 지키지 못했었다.

하진이 특별히

‘누구도 들이지 마라.’

고 엄명을 내렸었고 주은호를 지키는 임무를 맡겼건만 자신은 주은호가 황제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었다.

주은호가 스스로 태자궁을 나와 황제가 보낸 자들을 따라갔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주은호가 어떤 선택을 했건 간에 그녀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각각의 선택이 있고, 각각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각각 책임져야 할 몫이 있다.

주은호가 하진에게 해가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태자궁을 나서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면, 이루 자신은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은호가 황제의 태감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수상한 일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희 둘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두 명의 병사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이루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열 명가량의 병사들과 황제의 시중을 들기 위한 궁녀와 내관들이 열 명 정도 머물고 있었다.

객잔 안쪽에 들어올 수 있는 자들은 그게 전부였고 나머지 인원은 객잔 밖에 대기 중이었다.

병사들이 객잔 밖을 두 겹으로 진 치고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이 객잔 안으로는 쥐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곳에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았느냐?”

“외부인이요? 아니요, 보지 못하였습니다.”

기둥마다 서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루는 분명 낯선 옷자락을 봤었다.

황궁의 궁녀들은 남색의 옷을 입는다.

내관들은 그보다 조금 짙은 남색, 그리고 궁녀들은 하늘색에 가까운 연한 남색.

그러나 조금 전에 본 옷은 연한 노란색이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었는데 병사들이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노란색 옷을 입은 여자가 분명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노란색이라면…….”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뭔가 아는 눈치였다.

“누가 지나간 것이냐? 허락도 받지 않…….”

“장군.”

병사들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옵니다.”

“사람이 아니라고?”

“네, 장군.”

“사람이 아니라 아무래도 지금 밖에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어두워진지라 연비마마의 가마가 젖을 것을 우려해서 금와 현감이 보낸 가마용 우장을 내관들이 살펴보기 위해 안으로 가져온 것이옵니다.”

“가마용 우장?”

“네, 장군. 그것이 노란색이었습니다. 워낙에 긴 것이라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였으니 옷자락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병사 한 명이 손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객잔 한구석에서 내관 세 명이 노란색의 천을 살펴보는 것을 그제야 이루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가마의 우장이냐?”

비가 내리면 가마에 빗물이 닿는 것을 막기 위해 기름을 먹인 천으로 만든 우장을 가마의 위에 덧씌운다.

가마보다 커야 하기 때문에 가마용 우장은 보통 그 한쪽의 지름이 성인 남자의 두 배는 된다.

제법 길고 넓은 천을 둘둘 말아 가지고 들어오다가 그 끝자락이 끌린 것이 이루의 눈에는 여자의 옷자락처럼 보인 것이다.

‘그나저나…… 비가 내릴 것 같다면…….’

내관들을 눈으로 한 번 살핀 다음 이루가 객잔 밖으로 나왔다.

병사들의 말처럼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며칠은 날이 좋을 거라고 황궁에서 날씨를 점치는 천관들이

‘길일이다.’

고 입을 모아 말했던 것이 전부 빗나갔다.

시작부터 비가 내리면 남은 길이 좋지 못하다.

옹주까지 가는 동안 만약 내내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말과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마를 타고 가는 은호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비가 태풍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매년 이맘때면 태풍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다.

‘쓸모없는 천관들…….’

날을 잡아도 하필이면 이런 날을 잡았다.

천관들 중에서도 실력이 없으면서 돈과 뒷배로 천관이 된 자들이 많다더니 결국은 이런 폐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날씨가 이러니 금와에서 묵어 가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비가 더 거세어지기 전에 상현까지는 가는 것이 좋을까.’

이루의 생각에는 이곳보다는 상현이 낫다.

조금이라도 큰 도성이 낫다.

빨리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하진에게 전하기 위해 이루가 다시 객잔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불이다―! 불이야―!”

“불! 불이야!”

안쪽에서 고함 소리들과 비명 소리들이 터져 나오며 이내 뜨거운 열기가 눈앞에서 치솟았다.

“이게 무슨……!”

치솟는 불길에 이루가 뒤로 물러섰다.

객잔 안쪽은 이미 불길로 뒤덮인 후였다.

“으아아악!”

전신에 불이 붙은 사람 둘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아아악!”

“으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불길에 뒤덮인 이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불이라는 말에 병사들이 달려와 그들의 몸에 망토를 덮어 가며 불을 끄고 나머지 병사들은 물을 길러 뛰어갔다.

“폐하―!”

이루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불길은 객잔 아래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위층에는 불길이 옮겨 붙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불이 옮겨붙었는지 이루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불이 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루가 객잔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것은 고작 숨을 몇 번 돌려 쉴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객잔 안쪽에는 불이 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만일을 위해서 화덕까지 전부 치우게 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불이…….’

하지만 지금은 원인을 찾을 때가 아니다

2층으로 불길이 번지기 전에 하진과 은호를 구해야 했다.

원인을 찾는 것은 나중이다.

“밧줄을 가져와라!”

병사가 가져온 밧줄을 칼에 묶은 이루가 2층을 향해 칼을 힘껏 던졌다.

날아간 칼이 객잔 2층의 나무로 만든 벽에 꽂혔다.

밧줄을 잡은 이루가 땅을 차고 뛰어올라 벽을 다시 걷어찬 다음 곧장 2층으로 몸을 날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객잔은 불길이 안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나무만으로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불이 붙지 않는다.

누군가 불이 잘 옮겨붙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인화성 물질을 미리 사방에 뿌려 둔 것이 틀림없었다.

“폐하―!”

2층의 창문으로 몸을 날린 이루가 창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폐하!”

바닥에 구른 이루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객잔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진도, 은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하진의 칼이 주인을 잃고 놓여 있었다.

“이런……!”

당황한 이루가 밖으로 향하는 문을 벌컥 열었다.

문밖에는 이곳을 단단히 지키라고 일러두었던 병사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아래에서 불길이 벌써 치솟는 것을 보며 이루가 다시 안으로 돌아왔다.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부수고 들어온 창문 외에는 달리 출입할 곳도 없다.

저 아래층 불길 속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어디로든 갈 곳이 없다.

하늘로 솟지 않은 이상 말이다.

“하늘로…….”

그제야 이루가 천장을 쳐다봤다.

천장.

하진의 칼을 집어 든 이루가 그것을 천장으로 던졌다.

그러자 천장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미 부서진 천장에 천을 덮고 그 위로 가벼운 재질을 얹어 막힌 것처럼 꾸며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진과 은호를 납치하고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지 못하게 한 것이 틀림없다.

의자를 가져와 밟고 지붕으로 올라간 이루가 지붕에서 객잔 뒤쪽으로 드리워진 사다리를 발견했다.

줄사다리였다.

그리고 저 멀리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진을 납치한 자들이 틀림없었다.

황제가, 납치당했다.

이루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진만 납치당한 것이 아니라 은호의 태중의 아이까지 납치당했다.

이건, 역모가 틀림없다.

금단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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