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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꽃-79화 (79/108)

79.

옹주로 향하던 황제의 어가는 황궁을 떠난 지 한나절이 지날 무렵 금와라는 곳에 멈췄다.

길조라고 불리는 금색의 두꺼비가 많은 곳이라 금와라고 불린다는 곳에서 어가가 멈춘 까닭은 아무리 크고 편안하게 만들어진 가마라고는 하나 그 가마에 한나절이나 타고 있어야 하는 연비의 몸을 걱정한 황제가

‘천천히 가라.’

고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몸은 좀 어떠하냐?”

가마에서 내려 금와의 관청에서 미리 준비한 객잔의 방으로 안내받은 은호의 곁에는 하진이 앉아 있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손수 은호의 손을 닦아 주며 하진이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홑몸이 아니다.

황궁이라면 모르겠지만 옹주까지는 꽤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천천히 이동한다고 해도 가마를 타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갈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쉬어 가면서 갈 생각이다.

어차피 옹주는 빨리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옹주 시찰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열흘이 걸리든 한 달이 걸리든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천천히 유람한다 생각하며 은호의 나들이 삼아 다녀갈 생각이다.

“여기서 하루를 묵어 가도 좋고 아니면 이곳보다는 상현의 객잔이 더 크고 편안하다고 하니 조금 쉬었다가 상현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어도 좋겠지.”

황제의 어가가 통과하는 모든 곳의 관에는 이미 황명이 닿았다.

그 지역의 가장 크고 깨끗한 객잔을 정돈해서 황제가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준비를 해 놓으라는 명이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작 사용하는 물품들은 전부 황궁에서 가져온 것이고 객잔 주변의 호위 역시 황제의 군대가 하기 때문에 지방관들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장소만 준비해 주면 그만이었다.

물도 황궁에서 떠 온 것으로 사용하니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길이 지체가 되는 것은 싫습니다.”

은호가 제 손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 주는 하진에게 빙긋이 웃어 보였다.

“황궁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바람이 좋으니까요. 가마 밖으로 스치는 풍경도 좋고…….”

“그래?”

“저는 황궁에 들어가기 전에도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했던 탓에 그런 풍경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주이염이 딸을 담장 안에 꼭꼭 감추고 키웠지.”

“아버님은 제가 다칠까 항상 그것을 걱정하셨거든요. 집 밖으로 나가면 세상에는 온통 위험한 것뿐이라며 절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도성 안의 풍경도 보지 못했고 도성 밖의 풍경도 보지 못했어요. 제가 아는 풍경이라고는 담장 안의 풍경뿐이라서…… 그래서 강인사가 무척이나 좋았어요.”

“강인사가 좋아?”

하진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궁들이 평생 갇혀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강인사가 좋다고?

강인사는 후궁들의 감옥이다. 그런 강인사가 좋다고?

“산은, 처음이었거든요. 하루 종일 시원한 바람이 불고, 바람에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어요. 산새가 울고 가끔은 다람쥐와 토끼도 볼 수 있었어요. 비가 내리면 숲이 청명하게 젖고 달이 뜨면 숲 전체가 은사를 뿌린 것처럼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꿈을 꾸듯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하는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던 하진이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렸다.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그 손끝으로 그녀의 콧잔등과 입술까지 선을 그었다.

“자주 데리고 나와야겠구나. 이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또 처음이니 말이다.”

“하지만 저 때문에 폐하께서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을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

“폐하께서 황궁을 나오시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또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니 그것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고작 제가 좋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우리 둘만 나오는 것도 좋지. 아무도 데려 나오지 말고 우리 둘만.”

“폐하께서 위험하시잖아요.”

“너는 내가 아무에게나 쉽게 당할 그런 놈으로 보이느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폐하께서 강하시다고 해도 수십 명이 폐하를 에워싸면 그것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나는 서른 명에 둘러싸여서도 살아남았던 적이 있단다.”

“서른 명이나…….”

그 숫자에 은호가 놀라 입을 벌렸다.

“어떻게 서른 명을, 아니 어쩌다 서른 명을, 호위는 어쩌시고…….”

“나도 가끔은 혼자서 다니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서른 명을 만날 때도 있지. 서른 명의 자객 정도.”

“앞으로는 절대 혼자서 다니지 마세요.”

“내가 이겼다니까.”

하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은호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만, 그때 서른 명의 자객을 보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주이염이었다.

물론 예전의 일이고, 그때의 일 때문에 딱히 주이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주이염이 개인적으로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진은 개인적인 원한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굳이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면 그건 죽은 부왕 한 명뿐이다.

하진의 생애에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하고 증오한 것은 그 한 명뿐이다.

그 외에는 누구도 그렇게 미워한 적은 없다.

어차피 삶은 정치고, 생존도 정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은 싸움터고, 모든 사람들은 그 싸움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찌르고 죽일 뿐이다.

주이염도 그랬을 뿐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부왕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할 때 부왕은 사냥을 했다.

즐기기 위한 사냥이었다.

부왕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이 그저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하진은 안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 위에 군림해서 그 힘을 과시하고 위용을 드러내는 것. 그것을 위해 아내도 죽이고, 자식도 죽이고, 신하도 죽인다.

그런 부왕의 아래에서 그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그와 살을 섞은 여인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손톱으로 할퀴는 짓을 저질러 왔다.

그리고 부왕은 그것을 즐겁게 지켜봤을 뿐이다.

마치 독 안에 가둬 놓고 그 안에서 물고 뜯는 것을 유유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부왕이었고 주이염은 그 유희를 위해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었다.

주이염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었고, 모친의 죽음에 주이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진은 그것을 잘 안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주이염을 미워해서 그를 죽이기 위해 그 집의 담을 넘었던 적이 있었다.

다른 자는 몰라도 주이염만은 제 손으로 죽여 버리기 위해서 그의 집에 숨어들었었다.

모친의 죽음 이후, 그 죽음을 저지른 것이 주이염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제 손으로 죽이고자 그의 집에 숨어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주은호는 모르겠지만, 하진은 그때 은호를 처음 봤었다.

참 모순되게도 주이염을 죽이기 위해 그 집에 숨어들었다가 주이염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주이염의 딸이 제게 각인되었다.

그런 것을 가리켜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운명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나게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비극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만날 수 있게.

물론 주은호는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마세요. 이루 장군님이라도 꼭 데리고 다니셔야 합니다.”

“이루는 너를 지켜야지.”

“저는 위험할 일이 없으니까 폐하는 폐하 자신을 지킬 생각을 하세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실수를 할 때가 있고,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집 밖에 거의 나와 본 적 없었다면서, 칠석의 밤에는 어찌 그리 용감하게 혼자 집 밖으로 나섰던 걸까? 호위도 없이 몸종 하나만 데리고 말이다.”

하진이 슬쩍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적어도 은호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났던 그 밤의 일을 입에 담았다.

그 칠석의 밤.

그날 두 사람은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은호가 혼자서, 아니 몸종만 데리고 그 밤에 집을 몰래 빠져나올 거라는 건 사실은 하진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도 평생 말할 일이 없겠지만 그때 하진은 주이염의 집에 찾아가려 했었다.

그 집에 직접 찾아가서 그 밤에 주은호를 만나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 주려고 했었다.

자신이 청혼할 것이라는 것도 알려 주려 했었고, 그녀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자신이라는 사내를 그녀에게 각인시키고, 그녀를 제 안에 제대로 담아 보고 싶었다.

물론 본의 아니게 다른 방향으로 그녀에게 저를 각인시키고 말았지만, 부왕이 방해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직후에 정식으로 청혼하고 그녀와 혼인했을 것이다.

부왕에게 빼앗기는 실수 따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폐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응?

이건 무슨 말일까?

은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하진이 살짝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은호가 뭐라고 말한 것일까.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그 칠석의 밤에 집을 몰래 나왔다고?

거짓말도 그런 발칙한 거짓말이 또 있을까.

“무슨 뜻이지?”

“이상하게 그날, 나가고 싶었어요. 작년에도, 그 전에도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날은 유독 꼭, 꼭 집 밖에 나가 보고 싶었어요. 마음이 이상하게 설레고 꼭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건 아마…….”

은호가 제 이마에 손을 대고 있는 하진을 올려다봤다.

“운명이 손짓하며 부른 것이 아닐까 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대답이며,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속삭임이었다.

도무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을 정도로.

금단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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