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이건 몰이다.
겁을 먹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궁녀를 보며 하진의 입술이 서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하진은 사냥을 좋아한다.
황제가 된 후에는 한 번도 사냥에 나간 적이 없지만 태자 시절에는 꽤 자주 사냥을 다녀오곤 했었다.
사냥의 묘미는 몰이다.
큰 사냥감이든 작은 사냥감이든 그것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며 느끼는 희열이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짜릿한 쾌감을 주곤 했었다.
제가 죽을 줄도 모르고, 저는 달아난다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지만 결국에는 막다른 끝에서 죽어 가는 사냥감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때의 희열.
그 죽어 가는 짐승의 마지막 숨통을 끊을 때 그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쾌감의 극치다.
그리고 지금 하진은 몰이를 하고 있다.
사냥감은 이 황궁에 있는
‘모든 이들’
이다.
아니,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
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하다못해 홍문에게도 숨겨 왔지만 이것은 하진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사냥이다.
울창한 숲에서 여우 사냥을 하며 달아나는 여우를 향해 활을 쏘며 언젠가는 다른 것을 사냥할 때를 기다렸다.
몰이는 처음부터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달아날 길을 꽤 많이 보여 준다.
그런 다음 그 달아날 길을 하나씩 막아 버리는 것이다.
다섯 개에서 세 개로, 세 개에서 두 개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로 좁혀 버리면 사냥감은 제가 몰이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그곳이 살 길인 줄 알고 뛰어드는 법이다.
그러나 살 줄 알고 뛰어든 곳이 죽을 곳이라는 건, 목에 화살이 꽂히기 전까지는 모른다.
심은송도, 그녀의 궁녀도 지금 살 길이 열린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먼저 자백하면, 아니 먼저 고자질을 하면 살려 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담은 말을 흘리는 순간 그녀들의 얼굴에 살아날 구명줄을 찾아냈다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하진이 서늘하게 웃었다.
참 가련한 사냥감들이다.
가련하지만 동정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진은 오래전에 동정이라는 것은 이미 버렸다.
동정, 연민, 그런 것들은 일찌감치 도려냈다.
그런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 황궁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자신의 모후가 숨을 거둘 때 단 한 명이라도 그녀에게 연민을 품어 주던 이가 있었던가.
홍문도 말했지만 이 황궁은 벌레들의 소굴이다.
항상, 이 소굴의 벌레들을 사냥할 날을 기다려 왔다.
이건 주은호 때문이 아니다.
아니, 주은호 때문이다.
주은호를 이 독기 가득한 황궁 안에서 피게 할 수는 없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은 주은호가 웃으면서 잘 버티고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황궁은 본색을 드러낼 것이고 은호는 이 황궁에 먹혀 버릴 것이다.
이 독기, 이 살기들, 틈만 나면 물어뜯으려는 자들, 먹고 먹히는 이 지독한 소굴 안에서 은호의 머리카락 하나 상하는 것을 하진은 원치 않는다.
심은송이 은호에게 한 짓은 별것 아니다.
그건 예전의 후궁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한 짓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오히려 귀여운 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귀여운 짓만 저지를까.
심은송도 다른 후궁들도 지금 막 황궁에 들어왔다.
그 말은 아직 황궁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아직은 황궁의 독기에 물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기들 딴에는 교활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모함하고 위기로 몰아가고 상대의 기를 꺾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은 점점 더 독해질 것이고, 점점 더 악랄해질 것이며, 점점 더 괴물이 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괴물이 되어 은호를 삼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까 하진은 이제 사냥을 준비하고 있다.
이 황궁의 모든 것들을 싹 쓸어 버릴 것이다.
그 단초는 지금 제 앞에서 덜덜 떨며 살아날 궁리만 하고 있는 저 궁녀가 제공할 것이다.
마른 짚단에 불씨가 붙는 순간,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타들어 간다.
하진이 할 일은 불씨를 붙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불씨가 불길이 되고, 그 불길이 황궁 전체를 태우기를 기다리면 된다.
다 타고 남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 태워 버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나는 자비로우니 네가 진실을 자백하면 네게 긍휼을 베풀어 줄 것을 약속하마. 이건 황제의 약속이다.”
하진의 말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던 궁녀가 은송을 한 번 힐끗 돌아보고 다시 하진을 쳐다봤다.
지금 궁녀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단 하나,
‘긍휼을 베풀어 준다’
는 말밖에 없었다.
살 길은 단 하나뿐이다.
남을 죽여서라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소, 소인에게 그 말을 한 것은 예전 화비전에 있던 궁녀들이었습니다.”
“예전 화비전의 궁녀들?”
하진이 내금위장에게 손짓했다.
“예전에 화비전의 궁녀였던 것들을 전부 끌고 와라.”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기들끼리 물어뜯을 것이다.
지금 하진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고독의 항아리다.
판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리고 그 판 위에 먹음직스런 먹잇감 하나를 던져 주면 저것들은 알아서 서로를 물어뜯고 싸울 것이다.
제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제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그렇게 벌레처럼 들러붙어서 자기들끼리 물어뜯다가 결국에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 눈에 보였다.
“그게 전부냐? 네가 그 말을 했을 때 그걸 듣고 웃은 것들은 누구냐.”
“그, 그건……”
궁녀의 시선이 은송을 향했다.
“아, 아닙니다 폐하!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허무맹랑한 말을 함부로 퍼뜨리지 말라고 오히려 엄히 단속을 하였습니다!”
제게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은송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냥 단순한 한마디였을 뿐이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한마디의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 황제는 쉬지도 않고 저를 몰아붙이고 있다.
‘덫…….’
은송이 직감했다.
황제는 자비를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황제는 왜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일까.
단순히 황제를 모독한 일이라면 자신을 벌하고 궁녀 몇 명을 벌하면 되는데 왜 굳이 자신을 이곳 금환궁으로 부르고 궁내 관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몰아가는 것일까.
이건, 덫이다.
무엇을 위한 덫?
황제 스스로를 위한 덫? 아니다.
이건 주은호를 위한 덫이다.
주은호를 위한 사냥이다.
주은호를 위해 황제는 지금 자신을, 자신들을, 적어도 주은호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전부 사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미친 거야…….’
은송의 등줄기로 소름이 가로질렀다.
이 사냥에서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이미 옆의 궁녀는 겁을 먹은 나머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떠벌리고 있었다.
제가 내뱉는 말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도 모르는 채 닥치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 은송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
궁녀를 저렇게 몰고 간 것은 황제다.
자신이 그렇게 몰렸고 궁녀가 지금 그렇게 몰리고 있고, 저 궁녀의 자백으로 인해 끌려올 나머지 다른 궁녀들과 내관들도 저 궁녀가 그러했듯이 살기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부 끌려 나오면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은송이 현기증을 느꼈다.
도무지 살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식은땀과 공포가 그녀를 지배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자신감은, 오만함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저 완벽한 포식자 앞에서 자신은 얼마나 어리석은 초식동물이었던가.
발톱도 이빨도 없이 감히 포식자의 흉내를 냈던 것을 은송이 후회했다.
욕심을 부린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냥 장사꾼의 딸로 남아 있을 것을.
황궁에 들어오지 말 것을.
심 씨의 양녀가 되지 말 것을.
이제 와서 때늦은 후회지만, 은송이 진심으로 후회했다.
금환궁의 뜰로 겁먹은 궁녀들이, 그리고 내관들이 끌려오고 있는 것이 은송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은송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또 있었다.
내금위의 병사들이었다.
금환궁에 내금위 병사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들은 전부 손에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칼집에 칼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칼을 빼 들고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이 쥐고 있는 칼날의 빛이 섬뜩하게 일렁거렸다.
칼을 빼들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내금위의 병사들.
구경꾼처럼 둘러서 있는 내궁의 관원들.
그리고 겁을 먹고 속속 끌려오고 있는 궁녀들과 내관들.
그리고 후궁들까지.
‘죽었구나…… 살려 줄 생각이 없구나…….’
절망을 느낀 은송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후회했다.
만약 과거의 자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절대로 심 씨의 양녀가 되지 말라 당부했을 것이다.
그냥 장사꾼의 딸로 만족하며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살아가라고.
절대적인 포식자가 존재하는 이 황궁에 절대로 발을 들이지 말라고.
“이게 전부냐?”
하진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울렸다.
그는 이게 전부냐고 물었지만 황궁 안의 궁녀와 내관들의 팔 할 이상이 끌려왔다.
넓은 금환궁의 뜰이 내관과 궁녀들로 가득 찼다.
그들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이 살기 어린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들의 얼굴에 공포가 번져 갔다.
“너희들의 죄를 알 것이다.”
옥좌에 앉은 하진이 깍지를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잔인한 포식자의 눈으로 제 사냥감들을 노려봤다.
“너희들의 죄는 하나다. 황제를 기만한 죄.”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사나운 이가 드러났다.
“황제를 업신여긴 죄.”
그 말이 하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내금위의 병사들이 칼을 들어 올렸다.
허공을 향해 무수히 솟은 칼날이 뿜어내는 서늘한 빛이 금환궁의 뜰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하진이 마지막 선고를 했다.
“참형에 처해라.”
일말의 자비심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금단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