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너는 대체 일이 이렇게 되도록……!”
금환궁 앞에 서 있는 이루를 보자마자 홍문이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루야 그저 세워 놓은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이루가 힘만 세고 칼만 잘 쓰고 성품만 바보처럼 우직하지 정작 하진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그를 막아서거나 그에게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 봤자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하여간에, 그놈의 몸에 흐르는 피는 왜 그렇게 미쳐 있어서.”
누가 들으면 목이 달아날 정도로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지금 홍문도 거의 제정신이 아니다.
황궁의 모든 궁녀, 그리고 내관들의 목을 벤다니.
그게 어디 제정신으로 할 짓인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대체 뭣 때문에 또 화가 나셨는지…….”
성군은 아니더라도 현군을 제 손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저 폭군도 아니고 희대의 광군을 옥좌에 올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시니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이루의 대답은 그저 묵묵했다.
그런 이루를 홍문이 노려봤다.
키가 장대처럼 큰 이루와 평범한 수준에 불과한 홍문은 나란히 있으면 꼭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홍문이 이루를 보려면 고개를 바짝 쳐들어야 했다.
“널 쳐다봐야 목만 아프지. 너는 머리가 장식으로 달린 놈이니 너와 대화를 하려는 내가 바보다.”
이루로 말할 것 같으면 하진이 사슴을 보며 토끼라고 해도 토끼라고 말할 놈이다.
하진이 해를 가리켜 달이라고 하면 의심도 하지 않고 그저
‘달입니다.’
라고 충분히 말할 그런 성격이다.
그런 놈에게 뭘 묻겠는가.
“폐하께서 하시는 일을 막으려는 거냐?”
금환궁이 코앞이었다.
계단만 뛰어 올라가면 된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는 홍문의 뒷목을 이루가 툭, 잡았다.
“놔라.”
“금환궁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은 받은 것이냐?”
이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설마, 너.”
홍문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루를 노려봤다.
“폐하께서 날 들여보내지 말라고 한 것이냐? 그래서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알면, 그냥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려.”
“허.”
홍문이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하진은 기어이 그 미친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를 여기에 세워 두고 자신을 막으라 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 폐하께서 뭘 하려고 하는지나 알고 이러는 거냐?”
“너도 비슷한 것을 하려고 했잖아.”
“…….”
갑작스런 이루의 말에 홍문의 가슴이 뜨끔거렸다.
‘어, 어떻게 안 거지?’
물론 홍문도 지금 하진이 하려는 것과 비슷한 것을 하려 하긴 했다.
홍문은 후궁들을 전부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고, 하진은 지금 궁녀와 내관들을 전부 죽이려는 것이 다를 뿐, 몰살은 같다.
“그러니까 적어도 네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문의 뒷목을 잡고 있는 이루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궁은 전부 죽어도 달라질 건 없지만 생각을 해 봐. 궁녀들과 내관들을 하루아침에 전부 죽이면. 황궁 안의 일은 누가 해? 니가 다 할 거야? 빨래도 밥도 전부 니가 다 할 거야?”
“새로운 궁녀와 내관들을 들이시겠지.”
“황궁 안의 궁녀 내관들이 무슨 열 명 스무 명인지 알아?”
“언제부터.”
이루의 목소리는 높낮이의 변화가 없다.
그게 이루의 특징이기도 했다.
감정적인 요동이 거의 없는 성격이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사람의 목숨에 신경을 썼다고 그래.”
이루의 말에 홍문이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물론 이루의 말이 맞다.
정확한 말을 했다.
자신은 한 번도 사람의 목숨에 신경을 쓴 적이 없다.
누가 죽든, 몇 명이 죽든 그런 것은 항상 염두에 둔 적이 없다.
타인의 일이다.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까지 감정을 섞을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건 타인의 일이 아니다.
이건 하진의 일이다.
하진이 타인인가?
아니다.
자신과 하진은 하나다.
적어도 자신이 하진에게 운명을 건 순간, 하진이 하는 모든 일은 곧 자신의 일이다.
“좀 놔주겠어? 내가 지금 꼭 들어가 봐야 하는데 말이야.”
“폐하의 명이 없으면 놔줄 수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좀 놔라.”
홍문이 목을 휙휙 움직였다.
하지만 이루의 손힘을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황명이 아니면 놓아줄 수 없다.”
“빌어먹을 개자식.”
이건 이루에게 하는 욕인 동시에 하진에게 하는 욕이다.
폭군이라는 오명이 씌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정당한 방법으로 황위에 오르게 하려고 애썼던 것을 하진은 대체 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폭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거였다면 애초에 어렵게 오지도 않았다.
굳이 에둘러 빙빙 돌아오는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냥 군사를 일으켜 선황을 죽이고 역모로 황위에 올라 아비의 자리를 빼앗은 패륜의 황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한번 폭군으로 각인이 되면 그가 어떤 선한 일을 하든 간에 그가 남긴 모든 것이 폭군의 기록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만들고 싶었던 건 현군이다.
폭군이 아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은 죄다 자신이 했다.
더러운 이름도 자신이 짊어지면 되는 것이었고, 추악한 오명도 자신이 가져오면 그만이었다.
어느 황제가 깨끗한 황제가 있었겠는가.
흠이 없는 황제도 없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황제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선하다 어질다 현군이다라고 평가를 받는 역대의 황제들은 그들의 허물과 실수와 죄를 뒤집어써 줄 이들을 곁에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일은 홍문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중에 턱을 날려 버릴 거다, 이 개자식.”
“나중에, 얼마든지.”
홍문의 뒷목을 꽉 쥔 채로 중얼거리던 이루가 등 뒤로 다가서는 발소리에 돌아섰다.
금환궁에 홍문이든 누구든, 절대 아무도 들이지 말라던 하진의 황명이 있었다.
이루는 그 명령을 반드시 이행해야만 했다.
“황명이 없이는 금환궁 안으로는 들어갈…….”
거기까지 말한 이루의 목소리가 그쳤다.
이루가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는 것이 느껴져 홍문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누가 이루를 당황하게 만들었는지 얼굴이나 보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홍문이 아는 한 황궁 안에서 이루를 당황하게 만들 사람은 없다. 하진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있었다. 딱 한 명이 더.
“마마.”
홍문의 뒷목을 잡은 채로 이루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졸지에 홍문까지 허리를 굽히게 되었다.
“마마. 황명이 없이 연환궁을 나오시면 아니되십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루의 목소리에는 불손함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금 그가 허리를 굽히고 예의를 갖추는 상대가 다름 아닌 연비, 주은호였기 때문이다.
‘간이 부었나?’
이루 때문에 덩달아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홍문이 혀를 찼다.
후궁은 어떠한 경우에도 황명이 없이는 연환궁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금환궁의 출입은 더더욱 불가하다.
그런데 지금 주은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황명을 어겼다는 뜻이다.
황제의 총애를 믿고 간이 커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황궁의 법도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일까?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무지한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전자의 이유이리라.
황제의 총애를 믿고 자신은 특별하다 여겨 연환궁에서 나와 금환궁으로 온 것이 분명하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어리석은 여자였나?’
이건 바보 같은 짓이다.
물론 주은호가 연환궁을 황명 없이 벗어났다고 해서 하진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정하게 금환궁으로 맞아 주겠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황궁의 법도를 깨뜨린다고 하진을 소리 없이 비난할 것이다.
연비 자신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장군님.”
은호가 담담한 표정으로 이루를 바라봤다.
“황명 없이 금환궁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죄에 따른 벌은 제가 받을 것이니 장군님께서 잠시 제게 길을 열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마. 송구하오나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황명이 내려진지라…….”
“제게 빚을 지셨잖아요, 장군님.”
은호의 말에 이루가 움찔거렸다.
빚.
그녀의 말이 맞다.
자신은 그녀에게 빚을 졌다.
그것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러니 그때의 빚을 갚는다 생각하시고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군님.”
선황이 숨을 거두던 그날, 하진은 이루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태자궁 안으로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은호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이루는 그날 은호를 지키지 못했다.
태자궁을 스스로의 발로 벗어나는 은호를 끝내 지키지 못했던 것이 이루의 마음에 남겨진 처음이자 마지막 빚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루가 숙였던 허리를 들어 은호를 바라봤다.
은호의 뒤로 연환궁의 책임 상궁도 서 있었다.
책임 상궁이 이루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금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달라는 뜻이 분명했다.
책임 상궁과 눈빛을 한 번 나눈 후 이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홍문의 뒷목을 잡은 채로 옆으로 비켜섰다.
금환궁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뜻이었다.
*
“감히 내 황궁에서 나를 헐뜯고 비웃고 조롱하는 무엄한 것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금환궁의 뜰은 가끔 국문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가끔은 연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피비린내와 고통스러운 비명이 가득하고, 어떤 날에는 춤사위와 노랫소리, 술잔을 돌리는 소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곳에 친국 때나 모습을 드러내는 황제의 어좌가 놓여 있고 그 아래로 황명에 의해 불려 온 연환궁의 심 부인과 그녀의 궁녀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어좌에 앉은 황제의 얼굴은 무척이나 불편한 심기를 담고 있었다.
그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그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져, 그곳에 있는 이들의 등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금단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