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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꽃-34화 (34/108)

34.

“아, 읏……! 전하……! 하읏! 전하……!”

촛불이 흔들리는 침전 안에 헐떡이는 은호의 신음 소리가 가득 찼다.

들뜬 신음 소리, 그리고 뜨거운 열기, 거친 사내의 숨소리, 사내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울리는 살이 부딪치는 젖은 소리가 침전 안에 가득하다.

하진의 기둥이 제 몸 안에 박혀 들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지르며 은호가 허리를 들썩였다.

그녀의 허벅지를 바짝 당겨 안고 밀어붙이던 하진이 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일어나 앉았다.

“하윽!”

그 덕분에 그에게 안긴 은호가 졸지에 그의 무릎 위로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하윽! 아! 아아!”

은호를 제 무릎 위에 올려 앉힌 채로 하진이 허리를 쳐올렸다.

그가 허리를 꿈틀거리며 쳐올리자 그의 위에 앉은 은호의 몸이 위로 흔들리며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등으로 흘러내렸다.

“아! 아앗! 아!”

안쪽이 찔릴 때마다 은호가 숨을 헐떡이며 등줄기를 떨었다.

아래가 꿰뚫릴 때마다 그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지나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하진의 팔에 매달린 채로 은호가 황홀경에 취했다.

이미 그녀의 가랑이는 하진이 토한 씨물과 그녀가 쏟아 낸 애액으로 눅진하게 젖어 있었다.

초저녁에 한참이나 울어 댔던 은호는 이제 눈물은 그쳤지만 목이 쉬었다.

울어서 쉰 것이 아니라 하진에게 안기며 정신없이 신음을 지르느라 목이 쉬어 버렸다.

하지만 하진은 도무지 은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낮에는 황궁의 일을 봐야 하는 까닭에 함께 있지 못하는 한을 밤새 풀려는 것처럼 보였다.

“전하―!”

다급한 목소리가 침전 밖에서 울린 것은 그때였다.

부르는 목소리에 하진이 허리를 멈췄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그의 팔에 안겨 있던 은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무슨 일이냐?”

은밀한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짜증이 나 하진의 목소리에 노기가 묻어났다.

“잠시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목소리는 홍문의 것이었다.

이 밤중에 홍문이 저를 찾는다는 것은 큰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고 하지만 홍문이 눈치 없이 이 밤에 저를 보고자 할 리는 없다.

“곧 나갈 터이니 일단 거기서 말하거라. 무슨 일이냐.”

은호를 놓아준 하진이 침상에서 내려왔다.

벗어 두었던 야장의를 걸치는 하진을 침상에 쓰러진 은호가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며 하진이 입술을 휘며 웃었다.

은호의 눈동자에 떠오른 불안함을 봤기 때문이다.

“별일 아닐 것이니…….”

“전하. 폐하께서 환궁하셨습니다.”

그 순간 하진의 눈동자가 얼어붙었다.

은호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차갑게 굳으며 그 미간이 뒤틀렸다.

공포에 질린 것은 은호였다.

“폐하께서……!”

지금 황제가 돌아왔다면 자신은, 자신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쉿.”

창백하게 질린 채로 덜덜 떠는 은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하진이 조용하게 속삭였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상궁이 도와줄 거다. 알겠느냐? 무서워하지 마라.”

그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은호의 가슴은 이미 두려움으로 꽉 차 있었다.

황제가 돌아왔다.

이 밤에, 갑자기.

아무런 기별도 없이 옹주에서 황제가 돌아왔다.

*

“어떻게 된 것이냐?”

하진의 목소리는 차갑고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하진이 가장 화가 났을 때라는 것을 홍문과 이루는 알고 있다.

“이루, 너는 여기 남아 아무도 태자궁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거라. 명심해라, 내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태자궁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네, 전하.”

칼을 찬 이루가 굳은 눈을 한 채 하진에게 대답했다.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머리 위의 달이 기울어 자정을 넘어가고 있는 밤이었다.

그러나 황궁은 대낮처럼 횃불로 밝혀져 있었다.

황제의 환궁 때문이었다.

옹주로 친정을 나섰던 황제가 이 밤에 갑작스럽게 되돌아왔다.

정상적이라면 미리 전령을 보내 황제의 환궁을 알렸겠지만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그것도 함께 갔던 병력들은 옹주에 둔 채 황제와 황제를 지척에서 호위하는 금위군만 급하게 말을 타고 돌아왔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간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 하더냐.”

하진의 목소리가 홍문을 질책했다.

하진은 이미 의관을 정제하고 빈틈없는 모습으로 금환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하. 소인도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까닭에…….”

이번만큼은 홍문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평소에 천 리 밖을 내다보고 한 달 뒤를 예측한다고 자부하던 홍문이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았다.

옹주로 떠난 황제의 주변에 간자를 여러 명 붙여 뒀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에게도 황제의 환궁에 대한 연락은 받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옹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황제가 돌아왔지만 그것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형님은 함께 돌아오셨느냐?”

하진이 말하는 형님이란 진원 왕자를 가리킴이다.

“폐하 혼자 돌아오셨습니다. 진원 왕자께서는 옹주에 남아 계시는 것 같습니다.”

“형님을 남겨 두고 아바마마 혼자 돌아오셨다…….”

불길함이 스쳤다.

그 중요한 옹주에 진원을 남겨 두고 황제가 혼자, 그것도 이 밤에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옹주에서 이곳 동묘까지는 말을 타고 쉬지 않고 달려오면 반나절 길이다.

황제는 이제 노쇠해서 말을 타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옹주로 갈 때에도 가마를 타고 갔었다.

그런 황제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변고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옹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연환궁 화비전의 움직임은 어떠하더냐?”

“그곳 역시 지금 영문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신들에게는 알렸느냐?”

“지금 막 대신들에게 전령들이 출발했습니다. 아마 반 시간 안에 모두 입궁을 할 것입니다.”

“너는 지금 곧장 병사들을 무장시켜라.”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병사들을 무장시키라는 것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무력으로 옥좌에 오르겠다는 뜻이다.

하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사들을 준비해 왔다.

다만 무력으로 옥좌에 올랐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최악의 사태는 피하려 했을 뿐이다.

피가 묻어 있는 옥좌는 귀족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초한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황제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동묘의 귀족들, 그리고 지방의 호족들이 황제를 지지해 줘야만 한다.

지방의 호족들이 반기를 들고 동묘의 귀족들이 등을 돌리면 황제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관을 쓰고 있지만 아무런 권세도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현 황제는 지방 호족들과 동묘의 귀족들의 힘을 얻기 위해 그들의 딸을 후궁으로 받아들이는 거래를 했다.

그 결과 지금 연환궁은 수백 명의 후궁으로 가득 찼다.

하진은 연환궁에 후궁을 들일 마음이 없다.

그러니까, 최대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며 동묘의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순간에는 칼을 들어야 하니 말이다.

“병력을 무장시키고 내 지시를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전하.”

금환궁으로 향하는 하진과는 반대 방향으로 홍문이 걸음을 돌렸다.

하진은 금환궁으로, 홍문은 황궁 밖으로, 그리고 이루는 태자궁에. 각각의 역할을 위해 흩어지는 밤이었다.

*

금환궁의 경비는 전에 없이 삼엄했다.

하진은 금환궁이 이렇게까지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겹겹이 서 있는 금군들을 통과한 하진이 금환궁 현무전 앞에 멈춰 섰다.

금환궁 현무전은 황제의 침전이다.

침전과 집무를 보는 정전이 함께 있는 곳으로 어전에 나가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이곳에서 대신들을 만나 독대를 가진다.

“아바마마, 소자 하진이옵니다.”

현무전 앞에 선 하진이 큰 목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고했다.

“아바마마,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고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현무전의 문이 열리고 환관 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운의 얼굴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황제를 따라 그도 쉬지 못하고 말을 타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전하.”

“아바마마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조운을 따라 현무전 안으로 들어서며 하진이 그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폐하께서는 무척이나 상심한 탓에…….”

“상심?”

“네, 전하.”

“무슨 일이냐? 말하거라.”

“전하…….”

조운의 표정은 심상찮았다.

변고가 확실했다.

조운이 입을 열기 전 하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함이 있었다.

‘설마……’

물론 이건 예상일 뿐이다.

급하게 돌아온 황제.

함께 돌아오지 않은 진원.

상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조운.

‘형님께서……?’

그리고 조운이 입을 열었다.

“진원 왕자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불길함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형님께서? 싸움에 나가셨다가 그리되신 것이냐?”

“아니옵니다 전하. 진원 왕자께서는 독살을 당하셨습니다.”

독살.

순간 하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체 누가……’

누가 진원을 독살한단 말인가.

홍문이?

아니다.

자신의 허락도 없이 홍문이 진원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러면 대체 누가 진원을 노린 것일까.

‘설마, 그 독이……’

만약 그 독이 진원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황제를 노린 독에 진원이 죽은 것이라면?

“전하. 진원 왕자께서 드신 술은 원래 폐하께서 드실 술이었습니다.”

조운이 덧붙이는 말에 하진이 상황을 파악했다.

노려졌던 것은 황제였고, 희생당한 것은 진원이다.

그리고 제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아차린 황제가 득달같이 돌아온 것이다.

저 대신 죽은 아들을 버려두고.

금단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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