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단의 꽃-33화 (33/108)

33.

“이건 뭐지?”

“앗……!”

숨겨 뒀던 목검을 들킨 은호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휘장 뒤에 잘 숨겨 뒀다고 생각했는데 하진은 침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그걸 찾아냈다.

“그, 그건…….”

“설마 나를 죽이려고 여기에 숨겨 둔 것은 아니겠고…….”

“아, 아니에요……!”

하진을 죽이려고 목검을 숨겨 놨다니!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목검으로 사람을 죽이겠는가.

“이걸로 내가 잠든 사이에 심장이라도 찌르려고 했던 것이냐?”

“아니에요……!”

심장이라니! 사람의 심장을 어떻게 찌른단 말인가.

“아니라고 펄쩍 뛰는 걸 보니 더 수상하군.”

하진의 말에 은호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 것을 보며 하진이 더 짓궂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를 죽이려는 용도가 아니라면, 이것으로 자위라도 하려고 했나?”

목검의 손잡이를 내밀며 꺼낸 말에 은호의 귀가 달아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목검의 손잡이는 그 끝이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웠다.

게다가 길이는 한 자 정도.

하진이 말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말을 하는 순간 손잡이가 하진의 음경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 버린 나머지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음란하다는 건 진즉에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정말 그게 아니라…….”

뭐라고 변명을 해도 안 믿어 줄 분위기다.

이미 자신을 놀리려고 작정을 한 표정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어떻게 하나 한번 구경해 볼까?”

“네?”

순간 은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뭘 한다고?

구경?

무슨 구경?

“저, 저, 전하?”

은호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겨우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난 것이 전부였다.

“꺄악!”

하진의 손이 은호의 몸을 번쩍 들어 그대로 안고 가더니 그녀를 침상 위로 내던졌다.

“전하!”

침상에 쓰러지자마자 은호가 제 옷자락을 손으로 눌렀다.

그러나 그보다 하진의 손이 더 빨랐다.

“아……!”

은호의 양쪽 손목을 꽉 누른 하진이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이미 옷자락은 아랫배 위로 걷어 올려진 후였다.

하진의 하체에 눌린 몸 아래로 하얀 다리만 버둥거렸다.

“전하, 놔주세요…….”

하진에게 눌린 채로 은호가 애원했다.

“오늘 웃음소리가 태자궁 밖에까지 들리더구나.”

“그건…….”

“다른 사내들이 너를 그리 즐겁게 해 주더냐?”

“전하,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 이루와 위연을 끌고 와서 여기에 무릎을 꿇려 놓고 그놈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누구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 줄까?”

하진의 말에 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와들와들 떠는 그 얼굴을 보며 하진이 짓궂게 웃었다.

자신의 호위인 이루에게 은호를 제 목숨보다 더 귀하게 지키라고 명령한 것은 자신이다.

그리고 은호가 혼자 적적할까 봐 위연에게 은호를 즐겁게 해 주라고 한 것 역시 자신이다.

그리고 이루와 위연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서 오늘 하진은 문밖에서 은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괜히 은호의 즐거움을 방해할까 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환하게 웃는 은호를 밖에서 지켜봤었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담고 웃는 은호는 이 어두운 황궁에 어울리지 않는 눈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결심을 부추겼다.

이 황궁에서 그녀가 항상 웃게 해 주자는 결심, 조금 더 빨리 그녀가 웃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결심이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지금 은호에게 이러는 건 그냥 심술이다.

목검을 보는 순간 짓궂은 놀이가 생각나 심술을 부려 보는 것이다.

오늘 자신이 머리 아프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동안 은호는 즐거웠으니 이제 자신이 즐거울 차례다.

이루나 위연을 들먹이며 겁을 주면 은호는 분명 하라는 대로 다 할 것이 틀림없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물들이면서도 음란한 짓을 하는 은호를 보고 싶어졌다.

이건 오늘 하루, 몇 번이라도 태자궁으로 돌아와 은호의 손목을 끌고 와 함께 침상에 몸을 던지고 교접하고 싶던 것을 잘 참았던 자신에게 주는 상이다.

“그렇게 해 줄까?”

“전하…… 그것만은…….”

“그러면 내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하는 거다. 내가 볼 수 있게, 다리를 활짝 벌리고, 이것을 가지고.”

은호의 위에서 내려온 하진이 놓아준 그녀의 손에 목검을 쥐여 줬다.

제 손에 쥐여진 목검과 하진의 짓궂은 얼굴을 번갈아 보던 은호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앉았다.

머뭇거리며 일어난 은호가 돌아앉아 하진의 눈치를 보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촛불이 너무 밝았다.

한 겹 한 겹 입고 있는 옷을 벗는 사이에도 하진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 놓지 않았다.

그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은호가 몸에 걸치고 있던 것을 전부 벗었다.

몇 번을 몸을 섞어도 벌거벗은 몸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웠다.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음문을 가린 은호가 베개에 기대어 앉았다.

무릎을 오므린 채로 세워 덜덜 떨고 있으니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하진이 음란한 요구를 해 왔다.

“다리 벌려.”

“전하…….”

“전혀 보이지가 않아.”

“전하…… 제발 이러지 마세요…….”

하려면 그냥 할 것이지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루와 위연 왕자와 함께 즐겁게 지내서 질투하는 것일까.

고작 그런 것으로 질투를 하다니, 이 사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뜨겁다.

그 시선 앞에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하다니, 이대로 바람이 불어와 모든 촛불을 꺼뜨리고 어둠이 순식간에 내려앉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신히 무릎을 벌린 은호가 가랑이 사이로 제 손을 내렸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는 것이 전혀 없지만 하진이 제게 해 준 것을 애써 기억해 냈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제 둔덕을 더듬어 내려가 살짝 벌어진 틈새의 위쪽을 조심스럽게 문지르자 저릿함이 허리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전하…….”

제 손의 움직임을 따라 하진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은호가 가쁘게 숨을 뱉었다.

아직 손가락으로 제 음문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전신이 달아오르는 까닭은 하진의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이 지금 저를 범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도 틈새에서 젖은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빙글빙글 문지르고 있는 손가락에 미끈거리는 젖은 것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네가 숨겨 놓았던 칼을 써야지?”

“전하…….”

은호의 얼굴이 엉망으로 얼룩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상을 짓던 은호가 하진이 쥐여 준 목검의 손잡이를 제 음문 앞에 가져다 대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전하……! 이것만은…….”

뭐라고 위협을 해도 이것만은 할 수 없었다.

벌을 준다고 해도, 내쫓는다 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이라는 게 있다.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은호의 어깨를 붙잡은 하진이 제 품 안에 그녀를 끌어당겼다.

넓은 가슴에 안기자 은호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스스로 해 보라고 했지 누가 울라고 했더냐.”

하진의 손이 은호의 등을 다독거렸다.

“쉿, 울지 말라니까. 울면 화를 낼 거다.”

화를 낸다고 해도 이제 소용없다.

화는 은호가 낼 판이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왜 이렇게 짓궂게 구는 걸까.

정말 좋아하는 건 맞는 걸까.

위연은 하진이 자신을 위해 꽃창포의 꽃밭을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하면서 이 사내는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걸까.

심술을 부려서 자신을 울리고 싶은 걸까.

“울지 말라니까. 울지 마라. 어허, 울음을 그치라니까.”

자기가 울려 놓고 울음을 그치라니.

울음을 그치길 바라면 애당초 울리지나 말지.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고, 그다음에는 당황스러워서 눈물이 났고, 그다음은 서러워서 눈물이 났지만 이제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자신은 화도 못 내는 바보인 줄 아는 걸까.

겁만 주면 무조건 바보처럼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한마디도 대꾸를 못 하고, 자신은 화도 못 내는 그런 바보로 생각한 것일까.

자신도 싫은 것이 있고, 서러운 것이 있고, 화나는 것이 있다.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일로 심술을 부리면 자기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거짓말로 들릴 정도로 화가 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은호야. 주은호. 울지 마라.”

하진이 아무리 울지 말라 말하며 등을 다독여 줘도 은호는 엉엉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 울음이 터지자 그동안 쌓여 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고 올라오며 설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런, 이런…….”

은호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이제 당황한 것은 하진이었다.

울릴 작정이 아니었는데 일이 잘못되었다.

그냥 은호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며 즐길 작정이었는데 이렇게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는 여자를 달래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서럽게 울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울 거라. 내가 잘못했다니까. 내가 전부 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울지 말거라. 은호야, 울지 말라니까.”

결국 그날 은호의 울음이 그친 것은, 하진이 그녀에게

‘가볍고 날카로우며 소지하기 좋은 단도’

를 선물한 후였다.

죽은 호련 황후의 유품인 손바닥만 한 작은 칼을 선물받은 후에야 은호는 울음을 그쳤다.

“만약 내가 다시 너를 울리면, 그때는 이 칼로 나를 찔러도 좋다. 너를 울리는 날에는 기꺼이 네 칼에 찔려 줄 것이다.”

울어서 새빨갛게 된 눈을 한 은호에게 하진은 그렇게 약속했다.

두 번 다시는 그녀를, 장난으로라도 그녀를 울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약속이자 맹세였다.

금단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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