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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꽃-32화 (32/108)

32.

옹주는 초한의 도읍인 동묘에서 이틀 길이 걸리는 곳에 자리를 잡은 곳으로 동묘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옹주를 통하지 않고는 동묘로 들어올 수는 없다.

동묘라는 도읍 자체가 거대한 절벽을 뒤로 세워진 도읍이기에 폐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에서 완벽한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동묘는 초한이 세워진 이래 단 한 번도 외부의 공격에 무너진 적이 없다.

외부의 공격에서 동묘를 보호하는 가장 마지막 방어선이 바로 옹주였다.

옹주는 천 리에 이르는 장벽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초한의 땅을 가로로 가로지르는 천리 장벽은 그 높이가 사람이 넘을 수 없는 높이라 동묘, 옹주를 통해 장벽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옹주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반대로 외부에서 옹주 안으로 들어와 동묘로 향하기 위해서도 옹주의 관문은 필수다.

그런 까닭에 옹주에는 항상 중앙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철옹성과 같은 옹주의 관문 역시 무너진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옹주의 장벽 주변으로 옹주에 주둔하던 병력이 아닌 황제의 본진이 진을 치고 있다.

장벽 너머 서북에서 밀고 올라온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황제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옹주까지 와 있는 까닭이었다.

“마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성벽에 서 있던 진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휘하에 있는 장수가 등 뒤에 와 있었다.

“무슨 일이냐?”

“폐하께서 마마를 찾으십니다.”

“아바마마께서?”

진원은 황제의 장자다.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이지만 황후의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진원은 자신이 태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동생이지만 하진이 태자가 된 것도 이미 마음으로 수긍을 했다.

진원은 황궁 내에서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욕심이 없다.

다만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는 아들일 뿐이다.

죽은 호련 황후에 대해서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다른 후궁들의 몸에서 태어난 배다른 형제들과도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대해 주는 까닭에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고 있지만 그것으로 어머니의 욕심을 채워 주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자신이 태자가, 나아가서 황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건 무리한 욕심이다.

어머니는 하진이 황제가 되면 자신들 모자를 죽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진원은 하진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아무리 하진이 피도 눈물도 없다 할지라도, 형제를 죽이겠는가.

자신들은 어렸을 때 꽤 우애가 좋은 이복형제가 아니었던가.

비록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로 입장 차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서로를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성벽에서 내려온 진원이 황제가 머무는 관사 안으로 들어섰다.

옹주의 지방관이 머무는 관사는 지금 황제가 사용하고 있다.

원래 있던 기물들을 전부 버리고 새로운 기물들을 채워 놓았다.

반란 진압을 위해 옹주로 온 황제이지만 병기보다는 황제가 사용할 물건들을 실어 온 수레가 더 많을 정도였다.

처소의 이불 하나까지 전부 바꾸고 벽과 기둥도 색을 다시 칠했다.

관사의 관원들 대신 황궁에서 데려온 상궁과 나인들, 그리고 내관들이 황제의 수발을 들고 있는 것은 당연했고 수랏상에 오르는 식기까지도 황궁에서 옮겨 왔다.

음식에 독을 탈지 모른다는 이유로 수라간 상궁들까지 전부 옹주에 동행했다.

아직까지 황제는 옹주의 성벽에 오른 적이 없다.

병사들의 지휘는 진원이 맡았다.

황제는 이곳에

‘친정’

을 온 것으로 이미 할 일을 다 했다.

황제가 직접 왔다는 표면적인 목표만 달성하고 나면, 그다음은 전부 진원의 몫이다.

진원이 이 싸움에서 이기면 그 공은 황제의 것이 되고, 만약 진다면 그 책임은 진원이 져야 한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상황이지만 진원은 그런 것에 불만이 없었다.

“아바마마. 소자를 부르셨습니까?”

황제가 머무는 처소 안으로 들어선 진원이 살짝 눈살을 찡그렸다.

황제가 사용하는 넓은 침상 위에 벌거벗은 여자 두 명이 축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야장의만 걸치고 아랫도리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황제가 침상에서 내려와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옹주의 계집들이 제법 쓸 만하구나. 환궁할 때 옹주의 어린 계집들을 궁으로 데려가 금환궁의 나인으로 삼아야겠다.”

물론 이건 진원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황제의 음탕한 놀음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환관 조운에게 던진 말이었다.

조운은 금환궁의 환관으로 주로 황궁에서 어리고 미모가 괜찮은 처녀들을 찾아내어 황제의 침전 안으로 넣어 주는 일을 담당했다.

이곳에 와서도 조운은 옹주의 귀족들의 딸뿐만 아니라 인물이 좋다고 소문이 난 처녀들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매일 밤 처녀를 바꾸어 두세 명씩 황제의 처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양물을 쓰지 못하는 황제이지만 그 성욕만은 어지간한 젊은 사내보다 더 넘치는지라 가학적인 도구들을 사용해서 처녀들을 범하는 것을 즐겨 했다.

특히 황제가 즐겨 하는 놀이는 처녀들의 피 섞인 애액을 빠는 것으로 그것을 빨아 마심으로서 젊음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목간을 이용해서 처녀들의 음문을 탐하고 질척질척하게 젖은 처녀들의 다리를 벌리고 그 음문을 게걸스럽게 빠는 모습은 항상 조운이 지켜봤었다.

“오늘 밤에는 다른 년들을 데려오거라. 한 번 먹은 년들을 두 번 먹는 건 맛이 없으니 말이다.”

매일 밤 처녀로, 상대를 바꾸는 아비의 모습에 진원이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아비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역겨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신도 그 피를 받아 태어났으니 어찌 아비를 미워하겠냐만은, 부모 자식의 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황제는 도무지 제정신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지금 바깥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느냐?”

술잔을 든 황제가 진원의 앞으로 다가섰다.

황제의 손에 든 술잔에서 술이 찰랑거렸다.

잔에서 넘쳐흐른 술이 황제의 손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오늘 새벽 좌장군이 이끄는 병력이 관문 앞에 진 치고 있던 반란군의 진영을 격파하는 것에 성공해서 현재 저들은 관문 밖에서 백 리 떨어진 곳까지 밀려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 그거 잘되었구나. 며칠이면 진압을 마치겠느냐?”

“아바마마.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싸움에 곤란을 겪는지라 소자의 생각에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모든 병력을 집중해서 단번에 밀어붙이면 저들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옵니다. 저들은 훈련받은 병사들이 절반이 채 되지 못하고 대부분이 양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란에 동참은 했지만 전세가 밀리면 두려움을 느끼고 각각 흩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거라.”

술잔을 입에 대려던 황제가 문득 손을 멈추더니 진원에게 그 잔을 내밀었다.

“마시거라.”

“소자는 아직…….”

장벽을 더 살펴야 할 곳이 많다.

대낮에 술을 마시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그렇게 되면 병사들에게 위엄이 서지 않는다.

하여 술잔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황제가 내리는 술이다.

“반나절 동안 성벽 위에 올라 있느라 목이 탈 것 아니냐. 아비가 주는 술잔이니 받거라.”

“네, 아바마마.”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받아 든 진원이 기둥 옆에 서 있는 조운을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조운의 표정이 이상했다.

저를 쳐다보는 조운의 눈빛이 이상하다 여기며 진원이 두 손으로 받쳐 든 술잔을 입술에 대고 술을 마셨다.

독한 술이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빈 술잔을 내려 황제의 앞으로 공손히 내밀며 진원이 아비에 대한 연민을 담아 말했다.

“아바마마. 술이 좀 독한 듯하옵니다. 옥체를 생각하셔서 독주보다는…….”

그때였다.

“쿨럭!”

갑자기 진원의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밀고 올라왔다.

진원은 자신이 무엇을 토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에 허리를 숙이고 입 안에서 쏟아지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그대로 토했다.

“아…….”

제 발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것은 검붉은 핏덩이였다.

속에서 핏덩이가 울컥울컥 밀고 올라와 그것이 입으로 통해 아래로 쏟아졌다.

“이, 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입을 막아 봤지만 또다시 울컥, 하며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독이 아니냐?!”

소리치는 황제의 목소리가 진원의 귀에 빙빙 울렸다.

더는 저를 보고 소리치는 황제의 얼굴도, 조금 전까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조운의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며 눈앞이 새카맣게 물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쿵―!

진원의 몸이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마마―!”

조운이 소리를 치며 달려와 쓰러진 진원의 목과 손을 살피더니 황제를 올려다봤다.

“숨이 끊어졌습니다, 폐하.”

그 말에 황제의 시선이 제 손에 쥐어진 술잔을 향했다.

술에 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술은 원래 자신이 마시려던 술이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술에 독을 탔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핏덩이를 쏟고 죽게 만드는 지독한 독을.

“술을 가져온 놈이 어떤 놈인지 찾아내거라!”

이미 황제의 머릿속에 저를 대신해서 독을 마시고 죽은 아들은 없었다.

싸늘하게 식어 가는 아들의 주검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황제가 노기 가득한 얼굴로 처소를 빠져나갔다.

독의 기운이 물씬한 곳에 단 한 순간도 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제가 나간 후 그가 사용하던 처소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축 늘어진 처녀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은 젊은 왕자의 싸늘하게 식어 가는 시신만이 남겨졌다.

욕심 없고 모두에게 어질게 대했던 왕자의 죽음이었다.

금단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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