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단의 꽃-11화 (11/108)

11.

“그 어린 계집의 얼굴을 봤습니까? 세상 물정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새파랗게 겁에 질려서는.”

“그러게 말입니다. 그 아비가 주이염만 아니었으면 감히 황궁에 발도 못 들일 계집이, 새파랗게 질리기만 했습니까? 가까이에서 보니 아주 손을 덜덜 떨더이다.”

두 명의 여인이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며 깔깔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연환궁의 후궁인 조비와 강귀인이었다.

조비는 황제에게 왕자 두 명과 공주 한 명을 낳아 주었고 강귀인은 공주 두 명을 낳아 주었다.

오래 황후의 자리가 비었던 황궁, 특히 후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후궁 화비였다. 황제에게 첫 아들을 낳아 준 후궁으로 죽은 황후보다 먼저 아들을 낳았지만 정비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들을 태자의 자리에 올리지 못한 여인이다.

화비의 아들인 왕자 진원은 장자이지만 정비 태생이 아닌 탓에 태자는 되지 못했다.

화비의 가문은 황제를 좌우에서 모시는 좌우복야 중 좌복야 허연의 가문이다.

허연은 정치적으로는 주이염의 정적이고, 황궁 안에서는 태자와 적대점에 선 인물이기도 했다.

지금 황궁 안은 두 패로 갈라져 있다.

한 패는 태자를 지지하는 편이고, 다른 한 편은 왕자 윤을 지지하는 편이다.

지금까지는 태자 하진의 세력이 우세했지만 오늘 황제가 새 황후를 들였으니 판이 변할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변수는 주이염이다.

주이염이 태자와 행보를 같이할 것인지 아니면 화비의 편에 설 것인지.

만약 주이염이 화비의 편에 선다면 황후 역시 화비와 손을 잡는다는 뜻이다.

오늘 책봉된 황후는 젊고 황제는 늙었다.

늙은 황제가 유명도 없이 세상을 떠나면 차기 황제를 지목하는 것은 황후의 손에 달렸다.

황후가 화비의 아들 왕자 윤의 손을 들어 주면 태자는 눈뜨고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황후의 책봉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황궁 안팎에는 황제의 마음이 태자에게서 떠났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황제가 태자를 견제하기 위해 20년간 비어 있던 황후를 들인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쯤 그 계집은 기겁을 하고 있겠군요.”

“놀라지 않고 배기겠어요? 분명히 초야를 기대하며 옷을 벗었다가 난데없이 봉변을 당하게 될 터인데.”

“하지만 그 물건이 폐하의 물건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조비의 말에 강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낫다마다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폐하의 양물이 제 구실을 못 한 지 벌써 몇 년인지…… 일전에 제가 모실 때 잠깐 보니 이젠 흐물거리는 것이 고개도 들지 못하더이다.”

“하체가 그러하신데도 성욕은 여전히 시들지 않으셔서 어린 궁녀들의 다리 사이를 그리 탐하시다니, 사내들의 성욕은 죽어야만 사라지는 것인가 봅니다.”

“사내들의 탐욕이 어디 성욕뿐이겠습니까? 권력욕에 명예욕에, 그리고 정복욕까지…… 하긴, 그건 사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겠네요.”

강귀인이 조비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술잔을 마시는 조비를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흘겼다.

지금 이렇게 맞장구를 쳐 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강귀인이 조비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공주 두 명 외에는 낳지 못한 강귀인의 처지에서는 왕자를 두 명이나 낳은 조비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이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이 황궁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힘 있는 자에게 붙어야만 한다, 그게 누가 되었더라도 말이다.

‘새 황후에게나 붙어 볼까?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눈에 들어야…….’

조비를 향해 환하게 웃은 강귀인이 너무 늦기 전에 황후를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사람은 자기 살 길을 알아서 챙겨야 하니 말이다.

*

‘이런 건…… 무서워…….’

대체 황제가 제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은호의 눈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손을 묶어 놓다니, 게다가 지금 황제가 손에 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흉측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 분명한데 끝이 뭉툭하고 울퉁불퉁한 것이 돌기처럼 돋아난 시커먼 목기였다.

‘저것으로 무얼 하려고…….’

황제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손에 들린 그 시커먼 목기를 보는 순간 은호는 와락 겁을 먹었다.

“늙으면 양물이 서지도 않는 법. 하지만 양물을 세우지 못한다고 해서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황제가 손에 쥔 것을 은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기름까지 발라 그 목기는 번들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이건 사내의 양물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걸 네 안에 넣을 거란다.”

황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눈에 봐도 굵고 긴, 게다가 단단한 목기를 제 몸 안에 넣겠다고 하는 말에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미쳤어…….’

은호의 눈에 비친 황제는 미쳤다.

황제가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어떻게 사람의 몸에 저런 목기를 넣으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자, 어디 젖 좀 보자. 살결이 하얀 것이 젖도 하얗겠지. 음문은 또 무슨 색일까. 사내를 모르는 처녀의 음문은 맑은 분홍색인데 네 음문도 그렇겠지.”

황제의 손이 제 야장의를 벗기려고 하자 은호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에 황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엔 다들 너처럼 굴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엉덩이를 흔드는 요부가 되기 마련이지. 내가 잘 길들여 주마.”

다가오는 손이 마치 괴물의 손처럼 느껴져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였다.

“폐하.”

황제를 부르는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황제가 손을 멈췄다.

“무슨 일이냐?”

즐거움을 방해받은 황제의 얼굴에 짜증이 번졌다.

“지금 좌복야께서 급히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허연이?”

좌복야라는 말에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좌복야 허연은 행동거지가 가벼운 인물이 아니다.

오늘이 황후의 책봉식이 있는 날이었고 지금이 그 초야를 치르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을 허연이 굳이 이 시간에 알현을 요청한다는 것은 황제의 합방을 방해할 정도로 위급한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군.”

황제가 침상에서 내려가자 은호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은호를 여전히 묶어 놓은 채로 황제가 밖으로 나갔다.

간신히 고개를 든 은호의 눈에 닫히는 문만 보일 뿐이었다.

“하아…….”

안도의 숨을 내쉰 은호가 제 옆에 놓여 있는 시커먼 목기를 쳐다봤다.

황제가 두고 간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황후가 되어 황궁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떨렸다.

그런데 이 황궁에서 그 사내를 다시 만났다.

태자 하진.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에 놀라는 것도 잠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황제의 모습은 은호에게는 두려움 그 이상이었다.

‘아버님…….’

도망치고 싶고 부친을 만나 황궁에 있기 싫다고 울며 애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은 그저 마음을 단단히 먹는 수밖에는 없다.

부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는 황제다. 어떻게 청혼을 거절하겠는가.

눈앞에서 딸을 달라 하는 황제에게

‘그럴 수 없다’

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아아…….”

은호가 눈을 감았다.

여전히 손은 머리 위로 올려진 채 묶여 있었다.

언제 황제가 돌아올지 모르나 밖의 궁녀를 불러 이 묶인 손을 풀어 달라 할 수도 없다.

은호의 눈이 스르륵 감기기 시작한 것은 황제가 침전을 나간 지 반 식경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책봉식의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고,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지낸 탓에 급격한 피로가 몰려든 그녀의 눈꺼풀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태자…… 하진…….’

눈꺼풀이 감기며 잠이 드는 와중에도 은호는 그 사내를 생각했다.

대담하게 황궁 안에서 자신을 탐하려던 사내.

칠석의 밤, 자신의 몸을 범하려 했던 그 사내.

자신을 바라보던 그 사나운 시선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

‘하진…….’

그 이름을 생각하며 은호가 마침내 깊은 잠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은호가 눈을 떴을 때 침전 안은 어두웠다.

방을 밝히고 있던 촛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 하나 없는 침전 안은 촛불이 꺼지자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결국 돌아오시지 않으셨구나…… 폐하께서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좌복야의 알현 요청을 받고 나간 황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늙은 황제에게 안기는 것만 해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황제는 이상한 도구를 제 몸에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오늘은 넘어갔지만 내일은…… 내일은 어떻게 될까…….’

[어마마마.]

문득 그 사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쳤어…… 왜 하필 지금…….’

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왜 지금 그 사내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일까.

자신을 희롱하고 사납게 밀어붙인 그 사내가 왜 하필 지금 떠오르는 걸까.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일찍 청혼을 하였더라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내는 곧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에게 청혼할 마음이 있었다는 뜻이다.

칠석의 밤에 정분을 나눈 남녀가 혼인을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 사내가 조금만 더 빨리 자신의 부친에게 혼담을 넣었더라면 어쩌면 자신은 황후가 아니라 태자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태자비…….’

그 사내의 아내.

만약 황제가 아닌 그 사내의 아내가 되었더라면…….

‘미쳤어. 왜 이런 생각을…… 그 사내의 아내라니, 나는 이미 황후가 되었는데…….’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전부 그 사내 때문이다.

오늘 낮에 그가 자신에게 한 짓과 자신의 귀에 속삭인 말 때문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사내를 다시 만나서는 안 된다.

될 수 있으면 그 사내를 피하고…….

‘헉……!’

그때였다.

‘뒤에…… 누가…….’

자신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은호가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어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알게 되었다.

자신의 바로 뒤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미세한 숨결이 지금 제 목을 살며시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경직된 그녀의 긴장을 알아차린 듯, 뒤쪽에서 천천히 올라온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더듬었다.

크고 단단한 사내의 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