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황후 책봉식은 화려하게 치러졌다.
젊고 아름다운 황후를 자랑하기 위함인지 황제는 꽤나 오랫동안 황후를 귀족들의 앞에 내보였다.
책봉식이 끝난 다음에도 연회가 이어지고 황후는 연회 자리가 거의 끝나 갈 때까지 황제의 곁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황후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다들 어린 황후가 자리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그 부담감에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라 수군거렸지만 그 정확한 내막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황후의 아비가 되는 승상 주이염도 딸의 창백한 얼굴색이 과도한 부담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승상 어르신.”
책봉식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주이염을 붙잡은 것은 태자의 측근 홍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주이염은 홍문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때 태자에게 딸을 주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이염이 태자 하진을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편이 되었을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겠지만 등을 지고 섰을 때는 더없이 위험한 인물이 태자라는 것을 주이염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태자보다 더 믿을 수 없고, 더욱더 경계해야 하는 위험인물이 바로 홍문이다.
홍문의 외모는 별것이 없다.
평범한 사람의 키지만, 늘 같이 다니는 태자에 비하면 작은 키에 마른 체형, 그리고 웃는 인상의 눈매. 가무잡잡한 피부에 깨처럼 앉아 있는 주근깨까지, 홍문이라는 사내는 외모로만 봤을 때는 결코 잘난 인물이 아니다.
게다가 등은 살짝 굽은 꼽추다.
심한 꼽추는 아니지만 등이 살짝 튀어나와 있고 그 덕분에 항상 허리를 조금 숙이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외면당하기 딱 좋은 외모를 가졌지만 머리는 비상했다.
간교하기가 이를 데 없고,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그런 사내이기도 했다.
태자가 정적을 제거할 때면 항상 홍문 이 사내가 움직인다는 것을 주이염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불러 세우자 주이염이 탐탁잖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전에는 같은 배를 타려고 했지만 이제 서로의 길이 달라졌다.
더 나눌 이야기라고는 원망 외에는 없다.
“감축드립니다. 황제 폐하의 장인이 되셨으니 이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다셨지 않습니까.”
“호랑이가 날개를 달아 봤자 기형이라는 소리밖에 더 듣겠나. 호랑이는 땅을 밟고 살아야 하고 날개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나 필요한 법. 필요치 않는 것을 굳이 욕심내어 좋은 것은 없지.”
“고사에 나오는 영춘이라는 신은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 그리고 새의 날개를 가졌다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두루두루 다 갖춰 좋은 것도 있는 법이지요.”
“내게 할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네만.”
“먼저 약속을 어기신 것은 승상 어르신이십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주이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따님을 맡길 테니 지켜 달라 하시던 분은 어르신이셨습니다. 그 대가로 태자 전하의 즉위를 돕겠다고 하셨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저버리고 따님을 의탁할 다른 상대를 찾았다 하여 태자 전하를 버리실 생각이라면, 그 판단이 옳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는 이제 중립을 지킬 생각이네.”
“황궁에 중립은 없습니다, 어르신.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이제 와서 중립 운운하시는 것이 저는 그저 우습습니다. 지금까지 어르신께서 비수를 꽂은 정적이 몇 명인데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웃는 눈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말속에는 신랄한 비난이 담겨 있다.
‘너는 잘못 선택한 것이다.’
라는 경고가 그 말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주이염도 알아차렸다.
“이 황궁은 말입니다…….”
홍문이 뒤로 보이는 외궁의 뜰을 천천히 둘러봤다.
“고의 항아리와 같은 곳입니다. 어르신, 고독을 아십니까?”
“주술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고독.
주이염도
‘고독’
이라는 주술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건 일종의 주술인 동시에 암살 도구의 이름이다.
잘 만들어진 항아리 안에 독을 가진 온갖 것들, 그러니까 지네, 뱀, 전갈 따위의 독을 가진 것들을 수십 마리 집어넣고 항아리를 밀봉하면 그 안에서 갇힌 것들끼리 서로 죽이고 물어뜯게 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 봉인한 항아리를 열면 그 안에는 단 한 마리만이 살아남아 있는 법이다.
단 한 마리만이.
몇 마리가 들어가든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항상 한 마리다.
다른 것들을 잡아먹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그것을
‘고’
라고 부른다.
“항아리에서 만들어진
‘고’
를 죽이고자 하는 자의 집에 풀어놓으면 기특하게도 주인이 죽이고자 하는 자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숙주 삼아 그 피와 정기를 먹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대가만 지불하면
‘고’
는 언제까지라도 제 주인을 위해 주인의 적을 죽이고 파멸시키겠지요. 저는 어르신이 고의 항아리 같은 이 황궁에서 만들어진
‘고’
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을 품은 충들이 서로 물고 뜯은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고’
처럼 어르신도 이 황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고 힘을 얻으셨으며 그 힘으로 주인의 적을 죽이고 파멸시켜 왔잖습니까.”
“자네…….”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고는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주인을 공격하는 법이지요. 어르신의 주인이 어르신께 더는 대가를 주지 않게 된다면, 어르신은 주인을 물어뜯을까요, 아니면…….”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
주인을 물어뜯는다, 다시 말해 그 말은 역모를 의미한다.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주이염이 주위를 둘러봤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지만
‘역모’
의 느낌을 풍기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주위를 경계할 만했다.
“머잖아 어르신의 주인께서 더는 어르신께 대가를 공급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때 어르신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그게 무척이나…….”
“말을 함부로 하는 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혀를 그렇게 함부로 놀리다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네. 내가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이게 전부네. 그리고 태자 전하께는 전하께서 내 딸아이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나 역시 전하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거라는 말만 전해 주게. 혼담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전하께서 내 딸을 지켜 준다면 나 역시 전하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일세.”
그 말을 마친 주이염이 그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주이염을 바라보던 홍문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르실까요……. 흑 아니면 백, 적 아니면 동지. 이런 이분법적인 구도는 원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고의 항아리이기 때문이라는 걸 아실 만한 분이…….”
홍문이 다시 한 번 황궁을 돌아봤다.
솟은 지붕이 횃불에 반사되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전부 이 항아리 속의 충에 불과한 것을 왜 모르실까…….”
홍문의 중얼거림이 붉은 어둠 속에 흩어지고 있었다.
*
은환궁에는 수백 개의 홍등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초야를 맞이하는 황후를 위해 장식된 홍등들이 은환궁의 밤을 화려한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은환궁의 침전 안 역시 붉은 장식으로 가득했다.
부귀와 장수를 불러온다는 붉은색으로 신방을 장식하는 것은 전통이다.
초야를 치르는 침상도 붉은색, 침상의 휘장도 붉은색, 바닥의 양탄자 역시 붉은색으로 모든 것이 붉은 와중에 침상 위에 얌전하니 앉은 은호의 예복 역시 붉은색이었다.
책봉식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무거운 가채와 황후의 관을 벗었고, 몇 겹이나 되는 대례복을 벗었다는 것이다.
지금 은호가 입고 있는 옷은 얇고 투명한 붉은 천으로 만들어진 야장의였다.
붉고 투명한 야장의 속으로 그녀의 속살이 은근히 내비쳤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가슴으로 드리워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유두까지 비쳤을지도 모른다.
무릎 위에 얹은 은호의 손이 눈에 띄게 덜덜 떨고 있었다.
초야.
이 밤은 은호에게 있어서는 초야다.
물론 사내의 손을 탄 적은 있다.
지난번 칠석의 밤과 그리고 오늘 낮.
그러나 진짜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아직 몸 안으로 사내의 양물을 받아들인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태자와 한 짓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아직 자신은 순결하다고 은호는 믿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사내와 합방을 하게 되었다.
상대는 황제.
“…….”
은호가 살며시 눈을 들어 술잔을 기울이는 황제를 훔쳐봤다.
술잔을 든 손에 주름이 잔뜩이다.
주름은 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도 가득했다.
부친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내.
조부뻘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아니, 정말 조부뻘인 사내와 오늘 밤 초야를 치르게 된다.
[뜨겁고 눅진눅진하군.]
하필이면 이런 때 그 사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그 사내의 숨결, 손길까지 떠올랐다.
저를 만지던 손길, 희롱하던 목소리.
그리고 그 사내의 손길에 녹아내리던 자신의 몸까지 전부 지금 떠올리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보거라.”
술잔을 내려놓은 황제가 손을 뻗어 은호의 드러난 쇄골을 쓰윽 만졌다.
미지근한 손끝이 닿자 은호가 어깨를 움츠렸다.
“풋풋하구나.”
그 반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황제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이 황궁의 모든 계집들이 전부 나만 바라보고 있지. 후궁이라는 년들은 이제 닳고 닳아서 다리 사이에서 암내가 날 지경인데 너는 풋풋한 냄새가 날 것 같구나.”
가까이에서 본 황제의 얼굴은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얼굴, 기괴한 욕심으로 얼룩진 얼굴, 그런 얼굴을 한 황제가 은호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녀를 넘어뜨렸다.
“아앗……!”
황제의 손에 의해 떠밀린 은호의 몸이 침상에 쓰러졌다.
이윽고 머리 위로 올려진 양쪽 손목에 뭔가 칭칭 감겨진 것은 그때였다.
“폐, 폐하?”
당황한 은호가 저를 묶고 있는 황제를 올려다봤다.
황제는 붉은 밧줄로 은호의 손목을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어째서 황제가 이런 짓을 하는지 은호는 알지 못했다.
“이제부터 재미있는 놀이를 할 텐데 몹쓸 손이 저항을 하면 곤란하니 잠시 묶어 두자꾸나.”
황제가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은호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