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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110화 (110/117)

110화.

“당신 대체 왜 그래.”

그는 여린 어깨를 붙들어 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살짝 구겨진 그의 얼굴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당연히 보고 싶었지.”

거짓말.

마음속에서 나쁜 단어들이 맴돌았다.

정말 보고 싶었다면 그렇게 반응할 리 없었다.

그래, 그는 확실히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날 보고 먼저 안아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 안아주기는커녕 내치기만 하잖아.”

“엘레나, 이건 내치는 게 아니라….”

“이럴 줄 알았으면 황태녀 같은 거 안 했어. 다른 사람들이 변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당신마저 변하면 어쩌자는 거야.”

“엘레나, 난….”

“갈게.”

“엘레나.”

“놔.”

다시 꽉 잡힌 손은 쇠고랑을 찬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문으로 향하던 몸을 돌려 세웠다.

“얘기 좀 해.”

끈덕진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블랙홀에 빠질 것처럼 유혹적인 눈빛이었다.

“당신이랑 할 얘기 없어.”

“엘레나.”

“귀찮게 하지 마.”

입에선 모진 말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두 번 다시 상처 주지 않기로 했지만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내 말 들어.”

“싫어.”

“엘레나.”

“왜. 무슨 얘기? 정치? 사회? 경제? 어디 뭐든 해 봐. 나 이제 지긋지긋할 정도로 면역력이 생겼거든.”

우리의 대화는 이미 끝이 나버렸다.

질질 끌어봤자 더 이상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엘레나, 그런 말이 아니잖….”

“그럼 뭔데. 난 내 시간 쪼개고 쪼개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당신이 하는 말이라곤 고작 황태녀 체면이야. 그럼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해? 황궁에 쥐 죽은 듯이 숨어 있을까?”

“…….”

“아님 그새 다른 여자라도 생긴 거야? 이제 내가 지겨워? 다 갖고 노니까 재미가 없어졌어?”

마음속 응어리진 나쁜 말들을 홧김에 내질렀다.

입 밖으로 내뱉을수록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러려고 한 말이 아닌데 자꾸 후회되는 행동을 반복한다.

“엘레나, 그만해.”

쥐어 잡힌 손을 세게 뿌리치고 그의 너른 어깨를 때렸다.

주먹을 쥐고 최대한 힘을 실어 세게 때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싫어. 당신이 뭔데 그만하래. 대공 따위가 뭔데 날 막아. 감히 나를, 당신 같은 게…!”

“그만.”

“놔! 놔!!!”

보다 못한 데카루스는 가느다란 팔을 잡아 발악하는 몸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몸부림치는 그녀를 마냥 잡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엘레나.”

그는 너른 품에 그녀를 끌어다 안았다.

단숨에 폭 들어오는 작은 생명체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데카루스는 등을 토닥이며 천천히 그녀를 진정시켰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어.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엘레나.”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가슴팍에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그를 간질였다.

데카루스는 그녀의 머리 위에 얼굴을 파묻곤 말을 이었다.

“난 여전히 당신을 너무 사랑해.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보다 더.”

“…….”

“매일 보고 싶고, 매일 안고 싶고, 매일 입을 맞추고 싶어.”

“…….”

“대답도 없는 당신 이름을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부르기도 해.”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묻어났다.

마치 그가 사랑을 속삭일 때처럼 따듯했다.

“그만큼 나도 당신이 그리웠어, 엘레나.”

“근데, 근데 왜 그래. 왜 자꾸 날 내치려 하는 거야.”

조그마한 입술에선 시무룩한 목소리가 흘렀다.

데카루스는 작게 숨을 내쉬며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

“난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황제가 되면 지금처럼 바쁘게 돌아다니지도 못할 테지. 늘 체통을 지키고 앉아서 듣고 정해진 일만 해야 해. 그때는 옆에 내가 항상 있을 테고.”

“…….”

“비록 지금 날 많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어. 그럴 때 당신이 가장 행복해 보이니까.”

하고 싶은 일.

마음속에 품어 두고 꺼내 보진 못했던 일.

황태녀가 되고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던 일.

바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

그녀가 현재 운영 중인 어린이집 사업처럼 부모를 잃은 아이 혹은 주거지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등을 위한 일이다.

아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감히 나서서 실천할 수 없었을 테다.

“그래도 난 일보다 당신이 더 소중한걸.”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신이 더 소중하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전부 제쳐두고 당신에게 달려갈 수 있을 만큼.

“나도, 엘레나. 당신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해.”

“정말?”

“응, 정말.”

뾰로통했던 얼굴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배시시 예쁜 미소를 띤 그녀의 모습은 따듯한 햇살 같았다.

“그럼 내가 봐주는 거야.”

“그래.”

그는 입을 빼죽 내민 그녀가 귀여웠는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꽤 나쁘지 않았다.

눈을 감고 가슴팍에 기대어 천천히 그를 느꼈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몰라.”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엘레나.”

그는 몸을 살짝 떼어 작은 이마에 살며시 키스했다.

“뭐야.”

마주 본 두 눈동자 위로 서로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고개를 틀어 천천히 입술을 삼켰다.

초콜릿을 먹었는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달달한 맛에 기분이 좋았다.

도톰한 입술은 어느새 타액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말캉거리는 혀는 입 안을 샅샅이 훑으며 장난치듯 움직였다.

“간지러워.”

두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춤을 추듯 움직이는 몸은 어느새 침대로 향했다.

“나 일찍 가야 해.”

“응.”

천천히 풀려나가는 드레스 끈에 등이 훤히 드러났다.

그의 손이 거칠게 어깨 끈을 끌어 내렸다.

새하얀 몸을 가리던 얇은 천 사이로 굴곡진 부분이 도드라졌다.

그 위에 자리 잡은 손은 찰흙이라도 빚듯 쥐었다 폈다.

손가락 사이로 예민한 부분이 맞닿자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온몸에는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조금씩 찌릿찌릿해졌다.

그의 입술은 턱을 타고 내려와 목과 쇄골 사이를 탐했다.

깨물 듯 빠는 탓에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날이 선 이빨은 사탕이라도 씹듯 세게 살을 물었다.

손을 들어 검은 머리를 쓰다듬자 그는 고개를 비비며 살갗을 간질였다.

“간지러워.”

그 말에 입술은 쇄골을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타액으로 물든 몸 위로 바람이 들자 살갗이 차가워졌다.

얕게 신음을 흘리자 그는 혀끝으로 천천히 십자를 그었다.

저도 모르게 그를 밀어내자 데카루스는 두 손을 옭아매 머리 위로 올렸다.

“카루스….”

그의 입술은 그녀를 쉬이 놔주지 않았다.

물고 빨고, 때로는 짓이기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고통과 쾌락 사이의 느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달았다.

그새 데카루스는 드레스를 완전히 벗겨내 빤히 그녀의 몸을 훑었다.

“보지 마.”

민망함에 손을 들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위를 가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힘을 꽉 쥐었다.

“예쁜데 왜.”

“민망하잖아, 그렇게 보면!”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게 좋아.”

일순간 그녀의 얼굴을 불에 타듯 새빨개졌다.

부끄러워하는 게 좋다니, 이 인간 진짜 변탠가?

“당신 변태야.”

변태라는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데카루스는 왈칵 얼굴을 구겼다.

꽤 통쾌한 기분이 들어 혀를 내밀자 그는 다시 한번 입술을 부딪쳤다.

그러곤 요망한 혀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그 순간 허벅지 사이로 못된 손이 슬금슬금 기어들어 왔다.

깜짝 놀라 다리를 오므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못된 손은 둔덕 주위를 천천히 만지며 내려갔다.

“으….”

그의 손이 움직이자 민망한 소리가 났다.

저릿한 기분에 엘레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데카루스는 그녀의 표정을 빤히 지켜보더니 삐딱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발가락이 스프링처럼 말렸다.

“그만….”

“정말?”

“아…!”

배 속을 쿵쿵 울리는 압박감에 몸이 제멋대로 들썩였다.

머릿속은 우주를 부유하는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꽤 즐거운 듯 그녀의 표정을 마음껏 구경했다.

“그렇게 보지 마….”

민망함이 극에 달하자 몸이 확 달아올랐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더욱더 가빠졌다.

엉덩이와 맞닿은 침대 시트는 비에 젖은 것처럼 축축해졌다.

“당신은 너무 예민해.”

“…….”

“조금만 건드려도 침대가 마를 일이 없으니.”

그는 피식 웃으며 다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벌레가 지나가는 듯한 간지러움에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저를 놀리는 듯한 그의 말이 아주 괘씸했다.

표정을 구기며 얼굴을 노려보자 그는 배에 살짝 키스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싫어.”

“그럼 더 괴롭혀주고 싶잖아.”

“당신은 정말, 아….”

순식간에 몸이 가득 들어찼다.

힘줄이 선 목울대에선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표정을 구긴 채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관능적이었다.

엘레나는 그의 등을 꽉 쥐고 우는 것처럼 흐느꼈다.

그의 몸 전체가 새하얀 여체를 끌어안듯 딱 붙었다.

가끔은 세게, 또 가끔은 약하게 밀어붙이는 그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울혈이 남은 자리에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힘줄이 선 손은 그녀의 몸을 쥔 채 거세게 움직였다.

“카루스, 나….!”

배 속을 가득 채운 열기는 거대한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혼이 빠져나갈 듯 정신이 아득했다.

도끼를 찍듯 움직이는 그의 몸이 그녀의 안 속 깊은 곳을 빠르게 찔러넣었다.

그렇게 두 남녀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찬 방안은 어느 순간 조용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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