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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105화 (105/117)

105화.

“이미 몇 주간의 심의를 걸쳐서 나온 사안이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데카루스는 뛰쳐나가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엘레나는 그의 손을 잡아떼며 크게 소리쳤다.

“당신 동생이잖아…. 어떻게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있어!”

종잇장처럼 구겨진 그녀의 얼굴은 하염없이 떨렸다.

데카루스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다시 한번 쥐어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내 동생이지. 하지만 노아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

“난 더 이상 노아를 용서할 수가 없어, 엘레나.”

그는 체념한 듯 말했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그의 심정은 전부 이해가 갔다.

에이든을 변호하는 그녀의 행동에 실망감도 클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멈추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비켜. 당신이 안 가면 나 혼자라도 가.”

“아니, 난 이대로 당신 못 보내.”

데카루스는 순간 그녀를 번쩍 들어 방으로 향했다.

깜짝 놀란 엘레나는 몸을 옭아매는 팔을 거칠게 잡아뗐다.

“놔, 놔!!!”

“…….”

“놓으라고, 데카루스!”

“조용히 해.”

엘레나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의 단단한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톱으로 꼬집어도 보고 주먹을 쥐어 때려보기도 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에이든 죽으면 나도 죽어. 죽어버릴 거라고!!!”

“…….”

“난 걔 그렇게 못 보내. 어떻게 내 눈앞에서 에이든이 죽는 걸 봐.”

엘레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구슬피 흐느꼈다.

부모라도 잃은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데카루스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중한 이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 또한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하, 그래…. 그래, 가자.”

짙은 한숨을 내쉬던 데카루스는 체념한 듯 몸을 틀어 황제의 궁으로 향했다.

* * *

황제궁.

황후의 죽음으로 황제 역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며칠 전, 장례식에서 봤을 때보다 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하긴 서로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한평생을 같이했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게다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아이의 부모로서 살아왔으니 말이다.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엘레나.”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침상에 앉은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장례식 이후로 황태녀의 몸이 안 좋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아마 많이 걱정하셨겠지.

“그래, 그럼 어쩐 일로 우리 따님께서 다 찾아오셨는지 그 이유나 한번 들어볼까.”

황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띠며 활짝 웃었다.

에이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니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엘레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말문을 텄다.

“에이든, 아니. 8황자에 관련한 일로 찾아왔어요.”

“아, 그래. 8황자. 내일이 아마 사형 집행일이지.”

“재고해 주세요.”

일순간 그의 얼굴엔 잿빛이 돌았다.

다짜고짜 찾아와 사형수의 형 집행을 재고해 달라니.

아무리 딸이어도 어이가 없을 테다.

엘레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고해 달라니?”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몹쓸 이야기라도 들은 듯한 표정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8황자의 사형 집행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폐하.”

“내가 듣기론 8황자가 오랜 기간 널 죽이려 했다고 하던데.”

그의 목소리가 대번 어두워졌다.

항상 미소가 가득했던 얼굴엔 처음 보는 차가운 표정이 서렸다.

“네가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들이 많더구나. 일부러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런 것이냐.”

“…….”

“선대 스큘러스 대공비를 죽이고 네 탄신연회 땐 스큘러스 공을 살해하려 했다더구나. 또 널 납치한 건 물론 그 아이가 이번 전쟁의 주범이라고 하던데. 맞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놀랄 정도였다.

엘레나는 바닥에 고정한 얼굴을 두어 번 끄덕였다.

“한데 그런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세요, 폐하.”

엘레나는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황제는 딱딱하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딸의 무릎이 아플까 걱정도 됐지만 쉬이 청을 들어줄 도리는 없었다.

“이미 몇 차례 심의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란다, 엘레나. 더 이상 바꿀 순 없어.”

“이렇게 빌게요, 아빠. 제발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더.”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쉬고 싶구나.”

“안 돼. 아니야. 안 돼요.”

“스큘러스 공, 엘레나를 부탁하네.”

“예, 폐하.”

황제는 그녀를 한번 흘낏 보더니 혀를 차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위병들은 커다란 문을 쾅 열며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데카루스는 엘레나를 짐짝처럼 들고 천천히 문밖으로 나섰다.

“폐하! 제발, 제발 한 번만 재고해 주세요. 폐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에이든을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엘레나는 그의 어깨를 때리며 악을 썼다.

“카루스, 제발. 카루스.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가자, 엘레나.”

“폐하! 폐하!!!”

* * *

“오늘도 못 주무신 거예요?”

“응, 잠이 안 와서.”

엘레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에이든의 사형 집행일인데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리가.

밤새도록 그의 목이 잘려 나가는 망상에 혼절할 뻔했다.

“아가씨, 오늘 꼭 잘하고 오세요.”

“응. 고마워, 제인.”

제인은 부스스한 머리를 곱게 빗으며 말했다.

그녀의 작은 응원에 조금은 힘이 솟는 듯했다.

“오늘은 공식 행사기 때문에 티아라를 쓰실 거예요.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올려줘.”

“네, 아가씨.”

제인은 수술을 앞둔 의사처럼 비장한 눈빛을 하더니 이내 머리를 쥐었다.

그렇게 꼬고 비비고 돌리기를 반복하던 순간 그녀의 손에서 어여쁜 머리가 탄생했다.

“짠, 어떤가요?”

“예쁘네. 고마워.”

여전히 영혼 없는 눈빛과 말투에 제인은 걱정이 앞섰다.

이 상태라면 집행식에 가서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제인은 드레스 끈을 매만지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가씨, 여기요. 이거 가져가세요.”

“이게 뭐야?”

“초콜릿이요. 행운의 부적이니 꼭 가지고 계세요.”

엘레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초콜릿을 쥐었다.

동그란 사탕처럼 포장된 초콜릿에선 달콤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고마워.”

제인이 이렇게까지 걱정해주는데 계속 울상을 짓고 있을 순 없었다.

엘레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나 진짜 잘하고 올게.”

“좋아요, 아가씨.”

이윽고 시작된 사형 집행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형식은 고위 대신들과 행정관,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에스텔에 사는 국민이라면 모두 볼 수 있는 나름의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황제가 개회사를 마치자 저 멀리서 에이든이 간수들에 이끌려 걸어 들어왔다.

멍한 표정으로 걷던 에이든은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 관중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에이든은 엘레나를 보며 밝은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에이든….”

그는 말할 새도 없이 곧장 사형대 앞에 섰다.

거대한 칼이 달린 기요틴은 상어의 이빨보다도 위협적이었다.

거칠게 받침대에 목을 댄 에이든은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자신의 운명을 기다렸다.

황제가 손을 들어 사형을 집행할 준비를 하자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리려는 순간,

“잠시만요.”

엘레나는 그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 엘레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폐하.”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숨을 푹 쉬던 황제는 이내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매만졌다.

“네 어리광은 더 이상 받아줄 수가 없단다.”

“알고 있습니다.”

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황태녀 엘레나 폰 에스티나의 이름으로 8황자 노아 폰 제네우스를 사면하겠습니다.”

그녀의 발언에 장내는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황태녀가 사형수를 사면해주겠다니.

꽤 논란이 될 만한 가십거리였다.

“엘레나.”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황제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예, 폐하.”

“황태녀의 사면권은 평생 단 한 번밖에 없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할 거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폐하.”

엘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담대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허공을 향해 나지막이 외쳤다.

“그리고 황족의 명예를 실추한 대가로 이 자리에서 황족의 이름과 모든 직권 박탈을 요청합니다.”

황제는 손가락을 튕기던 팔 받침대를 짚고 일어나 관중들을 향해 섰다.

그의 기립에 웅성거리던 관중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짐이 고하니, 모두 듣거라. 지금 이 시간 이후로 8황자 노아 폰 제네우스의 이름과 직권을 모두 소멸한다. 폐황자 노아는 황제의 이름을 받들어 답하라.”

장내에 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에이든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황제 대신 엘레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오늘 집행식은 여기서 마치겠다.”

황제는 시종들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나자 데카루스는 엘레나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잠깐만.”

엘레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관중석 밑으로 내려갔다.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에이든의 모습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레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목소리에 에이든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허공을 향한 그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렸다.

입을 달싹이던 엘레나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엘레나.”

“평생.”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데카루스는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맹수처럼 사나운 표정에 에이든은 비소를 흘렸다.

“난 더 이상 너를 제대로 마주 볼 자신이 없어.”

“…….”

“그러니까, 사라져.”

엘레나는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붉게 물든 눈동자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목이 메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평생 네 죄를 반성하며 살아.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야.”

“…….”

“난 네가 끔찍해.”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내뱉었다.

생채기가 난 것처럼 가슴이 저렸지만 엘레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마지막을 바라보았다.

상처뿐인 이 잔인한 게임에서 에이든, 넌 결국 진 거야.

“끌고 가.”

“예, 전하.”

“레나, 엘레나!!!”

엘레나는 단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뒤를 돌았다.

살짝 비틀거리며 걷는 그녀는 조금 위태로워 보였다.

“이대로 괜찮겠어.”

“응.”

아니,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비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은 발걸음을 따라 툭툭 떨어졌다.

살며시 등을 떠미는 약한 바람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엘레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의 향기가 사라질 때까지.

“안녕, 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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