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73화 (73/117)

73화.

“으음….”

왜 이렇게 머리가 띵하고 몸이 으슬으슬하지.

또 속도 더부룩하고 토할 것 같아.

“우욱….”

어제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아.”

기억났다.

어제 와인을 목구멍에다가 때려 박았지.

근데 이 정도로 알코올 쓰레긴 줄은 몰랐는데.

“그 이후로….”

엘레나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리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와, 설마 나 어제 그렇게 미안하다고 외치고 쓰러져 버린 거야?”

그 뒤로 기억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데카루스가 뭐라고 했는지 잘 듣지도 못했는데.

침대에 있는 걸 보니 직접 옮겨준 걸까.

“죽을 만큼 센 걸 원했던 거지 진짜 죽는 걸 원한 게 아닌데….”

이 술은 정말 사람을 죽일 만큼 세잖아!

왜 하필 골라도 이런 독주를 골라서.

“내 팔자야….”

눈을 뜨니 햇볕이 쨍쨍한 게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이젠 꽤 더워져서 반팔을 입고 나가야 할 것 같다.

근데 속이 너무 더부룩해서 움직이질 못하겠어.

똑똑-

“응….”

목에선 긁는 듯한 미음이 퍼져 나왔다.

기운이 완전히 소진되어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다.

“아가씨? 안 계세요?”

제인이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무래도 너무 작게 말해 바깥까지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나 여기 있어….”

“어머, 아가씨!”

제인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깡총거리며 뛰어왔다.

아무래도 술에 곤죽이 된 시체를 발견한 것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아가씨, 왜 이러세요!”

“제인. 난 괜찮아…. 이 정도로 죽지 않아….”

“괜찮긴…!”

제인은 한숨을 쉬며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그냥 물은 아닌 것 같았다.

“뭐야?”

“꿀배차예요. 쭉 들이켜세요.”

엘레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컵을 받아 들었다.

달큰한 꿀과 배의 과즙이 입 안 깊숙이 퍼졌다.

따끈한 찻물이 위장을 잠재워주는 것 같았다.

“하, 이제 좀 살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제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 붙잡았다.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매번 잘 챙겨주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마워, 제인. 신경 써줘서.”

“뭘요, 그런 인사는 대공님께 하세요. 대공님께서 직접 지시한 거예요.”

“응? 카루스가?”

화가 풀린 걸까.

그렇게 금방 풀릴 것 같지 않았는데.

어제 설마 술 먹고 진상 짓이라도 한 건가.

막 무릎 꿇고 바짓가랑이 붙들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 건 아니겠지.

“아가씨…?”

그녀가 깊은 상념에 잠기자 제인은 걱정스레 입을 뗐다.

“아니, 아니야. 제인, 아무튼 고마워.”

“네,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 푹 쉬세요.”

“응.”

* * *

대공저, 회의실.

몸서리치게 차가운 회의실 내부엔 원탁에 둘러둘러앉은 행정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가운데 데카루스는 손가락을 탁탁 치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엘레나를 자문 위원으로?”

“예, 전하. 영애께서 생각보다 일 처리에 능하십니다. 저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시더군요.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엘레나를 자문 위원으로 선정한다라.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정도로 행정관들의 신임을 얻을 줄이야.

하지만 위원직 얘기를 꺼내면 또 징징거릴 게 뻔하겠지.

퍽 재밌는 상상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가 미소를 짓자 행정관들은 실색하며 눈알을 굴렸다.

“전하, 무슨 문제라도….”

“생각해 보도록 하지, 다음 건.”

그의 말에 입을 달싹이던 한 행정관이 재빠르게 발언했다.

“전하, 요새 황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황후 쪽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병력이라….”

데카루스는 괘념치 않는 듯 손톱을 보며 입을 뗐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거들었다.

“황후가 어떠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황제 폐하의 동의 없이 병력을 꾸리다뇨. 이건 분명한 황제에 대한 도발입니다.”

“맞습니다, 전하. 우리 친 황제파에서도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지금 당장 군대를 꾸려….”

“그만.”

데카루스는 한 손을 들며 소란을 중재했다.

각 행정관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킬리언은 그 사실이 확실한지 알아보도록 해. 섣부른 판단은 오히려 독이다. 황후를 건드려 봤자 좋을 게 없어.”

“예, 전하.”

“그리고 로건, 귀족파를 꾸리고 있는 명단을 가져와. 그중에서 황제파에 우호적인 자는 곧바로 편입한다. 비우호적인 자들 또한 강제로라도 데려와. 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충직을 뽐내듯 고개를 푹 숙이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 모든 건 전부 황후 쪽에서 알지 못하게 처리한다. 뭐,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예!”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 * *

“…레나.”

깊은 심연 속에서 들리는 희미한 음성.

담심한 어둠 속을 비추는 말간 빛.

잘만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꾸 깨우려 든다.

“엘레나.”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아직 눈조차 다 못 뜬 새끼 고양이 같다.

“카루스…?”

홍옥을 박은 듯한 붉은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자 새하얀 얼굴이 비쳤다.

“식사해야지.”

“안 먹을래….”

엘레나는 아직 잠에 취한 듯 웅얼거렸다.

그 모습이 꽤 귀여운 듯 데카루스가 피식, 하며 웃었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볼록한 뺨을 어루만졌다.

“일어나.”

그러자 엘레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왜, 싫어?”

“아, 아니….”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새삼스레 달라진 분위기가 의심스러웠다.

어제 같았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텐데.

“내가, 밉지 않아…?”

오밀조밀한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당신이 왜.”

“거짓말해서 화났잖아.”

“안 났어.”

부정의 대답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마음속에 묻어둔 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응.”

엘레나는 몸을 쭉 떼더니 그를 이리저리 훑어봤다.

어제보다 표정이 좋아진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어제 이상한 짓 했어?”

“아니.”

“흠….”

그녀는 탐정처럼 턱 아래 손가락을 받쳤다.

그러곤 깊은 상념에 빠진 사람처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무튼… 거짓말한 건 미안해.”

“상관없어.”

순간 입술엔 촉촉한 무언가가 맞닿았다.

엘레나는 토끼 눈을 하고 입술을 오므렸다.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돼.”

그는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응시했다.

활활 타는 듯한 눈빛에 온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맛있어.”

두툼하고 말랑거리는 혀가 아랫입술에 닿았다.

위아래로 할짝거리던 축축한 살덩이가 입가를 따듯하게 적셨다.

“밥 먹자며….”

“이따가.”

은사처럼 투명하게 늘어진 타액이 야릇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는 사탕처럼 제 입술을 핥았다.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혀는 입 안 깊숙이 들어왔다.

그 모습은 꼭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강아지 같았다.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검은 강아지 같아.”

그러자 데카루스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의아한 눈빛이 생경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만 껌뻑였다.

“왜?”

“그냥.”

그 순간 그는 그대로 돌진했다.

격하게 파고드는 입술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몸 아래 깔린 몸이 바르작거렸다.

“그만…!”

그는 거칠게 입을 맞추며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얇은 잠옷 원피스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밥 먹자면서…!”

“잠옷 입고 갈 순 없잖아.”

억지스러운 언사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렇다고 벗겨놓으면 뭘 입고 가라고!

“장난해? 당신….”

“응, 알았어.”

그는 입막음이라도 하는 듯 입술을 꽉 물었다.

잘근잘근 여린 살을 씹어대는 탓에 목구멍에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당신 그런 목소리도 좋아.”

끈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짓뭉개진 입술엔 따듯한 타액이 흥건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거친 입맞춤이었다.

그는 밑에서 파닥거리는 그녀를 들어 올려 허벅지 위에 앉혔다.

“당신을 어쩌면 좋지.”

그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칠 것 같아.”

커다란 손이 그녀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턱, 목, 어깨를 타고 물 흐르듯 내려갔다.

꼭 만지면 깨지기라도 하는 유리를 다루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이 닿는 곳곳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렇게 나체인 상태로 따가운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그만할래.”

아무래도 이 이상은 위험했다.

그의 눈을 보니 이미 맛이 간 상태였다.

엘레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향했다.

탁-

하지만 그의 올가미를 벗어날 순 없었다.

뒤로 돌자마자 몸이 자석처럼 끌려갔다.

“아…!”

“어딜 가려고.”

어깨 사이로 불안정한 호흡이 감돌았다.

그는 예민한 귀를 핥으며 허리를 끌어당겼다.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엉덩이 사이로 불룩 튀어나온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는 숨소리를 내며 어깨를 깨물었다.

엘레나의 입에선 높은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허벅지 사이로 큰 손이 파고들었다.

“그, 그만.”

화들짝 놀란 엘레나는 그의 손을 저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더니 손을 뒤집어 깍지를 꼈다.

그러곤 그녀의 등에 머리를 기대며 크게 호흡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살갗에 닿아 간지러웠다.

“참기 힘들어.”

깍지를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등에 대고 얼굴을 비비더니 등줄기를 따라 입을 맞추었다.

살갗에 닿는 입술의 감촉에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 예뻐.”

낯부끄러운 말을 어쩜 저리 잘하는지.

엘레나는 금세 뒤를 돌아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가슴 위로 그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오늘 아침도 못 먹었단 말야.”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내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곤 그녀를 번쩍 들어 침대 밖으로 옮겼다.

“옷 입고.”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