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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71화 (71/117)

71화.

(뉴*토*끼*지*나*가*던*행*인)

“…뭐?”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한번 되물었다.

황제가 되겠다니,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황제.”

엘레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황제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건가?

“너, 무슨 소릴….”

“욕심이 생겼거든.”

에이든은 우수에 찬 얼굴로 끝없이 먼 바다를 응시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욕심.”

“…….”

“예전엔 그저 옆에 있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더라고.”

그의 옆모습은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우주 어느 행성에 홀로 남은 마지막 생존자처럼.

“그 대가가 무엇이든 상관없어.”

어느새 그의 시선은 그녀와 마주했다.

깊은 심연에 잠긴 것처럼 진한 눈빛이었다.

“난 네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

그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왜 그것을 지키기 위해 황제라는 원대한 꿈을 품었는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꼭 지금 에이든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낯설었기에.

“가자.”

에이든은 싱긋 웃으며 살며시 손을 잡아끌었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덕분에 기분이 조금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엄청난 고민을 품고도 왜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래도 명색이 친군데, 그런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데.

“무슨 생각 해?”

“어? 아, 아니. 별생각 안 했…. 아!”

순간 당황한 탓에 발이 꼬였다.

바보같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돌길 위에 넘어졌다.

“아야….”

엘레나는 한껏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었다.

덕분에 엉덩이는 욱신거리고 다리엔 생채기가 조금 났다.

“너 괜찮아?”

에이든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그녀를 살폈다.

“응, 엉덩이가 좀 아픈 것 빼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리 와. 업혀.”

“아니, 됐어. 뭘 업히기까지….”

“업어준다고 할 때 업혀. 빨리.”

엘레나는 어쩔 수 없이 짧은 숨을 내쉬며 그의 등에 업혔다.

언제 컸는지 널찍한 등판이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너 남자다?”

“뭔 소리 하는 거야.”

“짜식, 많이 컸네.”

엘레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의 등짝을 마구 내리쳤다.

그러자 그는 아픈지 짜증을 내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 아파. 좀! 그만 때려!”

“넌 때리는 맛이 있어.”

“변태 같은 인간….”

“뭐, 뭐? 변태 같은 인간?”

분노한 엘레나가 손가락뼈를 사용해 날개뼈를 찍어 내리자 에이든은 곧 죽을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알았어. 미안해. 미안. 미안!”

그는 억울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아등바등했다.

하여간 같이 있으면 재밌다니까.

그렇게 언덕을 내려와 별장에 다다른 순간.

“근데 저건 뭘까.”

저 멀리 동상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엘레나는 망원경처럼 손을 동그랗게 만 뒤 게슴츠레 뜬 눈에 갖다 댔다.

무시무시한 검은 오라를 뿜어내는 게 꼭 악마의 형상 같았다.

“혹시 이 세계에는 악마도 있니?”

“뭔 소리… 형?”

“뭐…?”

X됐다.

진짜로 X됐다.

그가 이곳에 함께 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머리를 가지고 대체 어떻게 살았지?

“에이든… 나 빨리 내려줘.”

“왜? 엘레…!”

끝까지 업혀 가는 것보단 지금이라도 내리는 게 살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았다.

괜히 건드려 봤자 제 명에 못 살 걸 알기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입 안이 마르고 어지러워서 환청이라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다리가 후들거려서 걸을 수가 없었다.

“나 어쩌지. 어떡해….”

“왜 그래. 다리 아파서 업힌 거잖아.”

에이든, 제발 눈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런 변명 따위 통하지 않는다고, 저 남자한테는.

그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열 걸음, 이 속도라면 대략 7초.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를 지어 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뭐라도 씹은 사람처럼 굳어있었다.

“하하… 안녕? 카루스, 오랜만이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엘레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환하게 인사했다.

“기분이 좋아 보여.”

그에게선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 산 속에 버려진 별장에 사는 마녀처럼 말이다.

“아니, 별로 하나도 안 좋아. 어서 들어가자.”

엘레나는 그의 팔을 꽉 잡고 정문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어깨에 실린 팔이 어찌나 무거운지.

그를 끌고 가는 건지 아니면 끌려가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먼저 들어가 있어.”

그는 함께 들어가려는 에이든를 저지하였다.

그러곤 엘레나를 바라보며 고개로 문 쪽을 가리켰다.

“아니, 같이 들어….”

“들어가, 당장.”

그의 목소리는 당장 누구라도 죽일 것처럼 싸늘했다.

그러자 에이든은 한숨을 푹 쉰 뒤 입을 열었다.

“형, 여기 사람 많아. 얘기할 거면 안에서 해.”

“넌 가만히 있어. 엘레나, 들어가.”

“응….”

쾅-

엘레나는 불안한 듯 그들은 힐끔 보곤 문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빛 철문은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듯 거칠게 닫혔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지금 네 행동 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손톱이 패도록 세게 쥔 데카루스의 주먹이 얕게 떨렸다.

분노를 삭이려는 듯 앙다문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호흡이 새어 나왔다.

“엘레나가 넘어져서 업어준 것뿐이야. 아픈 사람을 놔두고 올 순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데카루스는 단전에 맺힌 호흡을 내뱉으며 크게 외쳤다.

조용했던 공기의 파동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노아.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게 있어.”

그는 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수없이 깜빡이는 눈꺼풀과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노아는 풀이 죽어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랑하는 동생을 이런 식으론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선을 넘었다.

“하….”

그는 큰 손으로 앞머리를 거칠게 넘겼다.

거센 바닷바람이 그의 머리를 검푸른 파도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자. 가서 저녁 먹고….”

탁-

노아의 어깨를 쥔 순간, 강한 반동과 함께 손이 허공에 떴다.

데카루스는 나가떨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

노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선은 형이 먼저 넘었어.”

“…뭐?”

그는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 얼굴은 꼭 황후를 보는 것처럼 기이하고 묘했다.

“형이 빼앗아 갔잖아.”

그의 떨리는 입매가 괴이하게 호선을 그렸다.

“형이 내게서 엘레나를 빼앗아 갔잖아. 안 그래?”

“…….”

“먼저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싸한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살갗을 스쳐 지나간다.

귓가엔 길거리 악사가 연주하는 고장 난 바이올린의 연주 소리가 가득했다.

“형은 그렇게 다 가졌으면서 왜 내 것까지 욕심내.”

“…….”

“왜 내게 남은 하나마저 빼앗아 가려 해.”

그의 얼굴은 얼룩덜룩한 찰흙처럼 일그러져있었다.

곧 무너질 것처럼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너 대체….”

“난 형이 좋은데, 그런데 왜 자꾸 형이 미워질까.”

“…….”

“그 누구보다도 동경했던 형이 지금은 너무 싫어. 끔찍해. 없어졌으면 좋겠어.”

“노아….”

붉은 핏줄이 얼기설기 꼬인 눈엔 원망과 미움만이 가득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붉은기 대신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

데카루스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를 바라만 보았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눈동자는 꼭 인형 눈을 박아놓은 것 같았다.

“착한 척은 그만해도 좋아. 역겨우니까.”

노을에 비친 그의 모습은 꼭 타락한 천사를 보는 듯했다.

붉게 물든 새하얀 피부는 마치 온몸을 피로 흠뻑 적신 살인귀 같았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까맣게 핀 장미처럼 가시가 돋아 있었다.

“왜, 당황했어?”

“…….”

“귀엽고 착하기만 했던 동생이 이런 모습이라서?”

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피에로처럼 웃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안개 낀 목소리가 꼭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난 좀 더 형이 고통스럽고 아파했으면 좋겠어.”

그의 표정은 고장 난 인형처럼 자유자재로 바뀌었다.

“형의 모든 걸 다 빼앗아버리고 싶어. 형을 지옥 끝까지 밀어 넣고 망쳐버리고 싶다고.”

“너, 누구야….”

노아는 몸을 잘게 떨며 튀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형, 형도 이미 알고 있잖아. 왜 자꾸 외면해?”

입술을 막던 그의 손이 데카루스의 어깨에 닿았다.

그대로 주먹을 쥐자 빳빳했던 하얀 셔츠에 주름이 졌다.

노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데카루스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그렇게까지 날 소중하게 여기는 줄은 몰랐네.”

“네 입으로 말해….”

데카루스는 손톱이 팰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시끄럽던 소음이 잔잔해졌다.

마치 오래된 악몽을 꾸듯 머릿속이 새카매진다.

길거리 악사의 바이올린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뭐부터 말해줄까? 난 이름이 너무 많아서 말야. 노아, 황자, 살인자 그리고….”

“…….”

“에이든.”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부모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늘 그래 왔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길 바랐다.

이 모든 의심이 제발 단지 신의 장난에 불과하길.

“허…. 별로 놀라지도 않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노아는 팔짱을 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형도 참 대단해. 난 당장이라도 나를 죽이고 싶어질 것 같은데.”

“…….”

“형이 날 얼마큼 사랑하는지는 이제 잘 알겠어. 조금 감동받은 것 같아, 나.”

그는 비아냥대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레 웃는 모습이 꼭 천진난만한 노아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형?”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분노, 슬픔, 좌절이라는 기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말이라도 좀 해 봐. 충격 먹어서 말조차 잃은 거야?”

“누가 시켰어.”

“하….”

노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곧 실성이라도 할 것처럼 제 몸을 떨었다.

“왜, 그렇게라도 끝까지 날 사면해주게? 그렇게도 내가 소중한 거야? 응?”

“…….”

“내가 형 등에 구멍을 내버렸는데도 아직도 내가 좋아?”

그는 가슴에 칼을 박는 시늉을 하며 입매를 올렸다.

저주 인형처럼 소름 돋는 미소가 뇌리에 박혔다.

“이야, 진짜 눈물겨운 우애네.”

“…….”

“이야기가 엘레나로 넘어가면 좀 달라지려나?”

“그 입 다물어.”

데카루스는 이를 부드득 깨물며 그를 노려봤다.

곧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은 표정에 노아는 기함했다.

“왜, 이제 내가 좀 죽이고 싶어졌어? 엘….”

스릉-

찰나였다.

데카루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긴 검을 빠르게 꺼내 그의 목에 갖다 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안 그래?”

노아는 이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입을 놀렸다.

“난 엘레나를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거야. 그 대가가 내 목숨일지라도.”

“…….”

“더 이상 나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만은 않아.”

* * *

“아. 어쩌지….”

밖에 두고 나온 두 남자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상상도 안 간다.

애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가 이곳에 함께 있는 사실은 당연한 건데.

바보같이 방심해버려서 에이든만 난처해지고.

“하아…. 진짜 바보같아.”

엘레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뒹굴었다.

덕분에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는 건 비밀이다.

“설마 에이든을 때리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래, 그 인간도 생각이란 걸 하는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때리거나 하겠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지성인이라면 그럴 리가 없지.

“그래, 그럴 리가 없….”

끼익-

그때 고요한 적막을 깨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카루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너도 양반은 못 되는구나.

엘레나는 눈과 입꼬리가 맞닿을 만큼 해맑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왔어?”

“나와.”

“뭐?”

순간 그는 침대에 있던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굴러떨어질 뻔한 엘레나는 그의 목덜미에 손을 감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돌아갈 거야.”

“뭐? 돌아가?”

돌아간다니.

대체 어디로.

설마 집으로?

“돌아가긴 어딜 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손에 짐가방을 쥐고 문밖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표정이 사뭇 좋지 않았다.

“당신, 설마 전하와 싸운 거야?”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말 좀 해 봐. 싸운 거냐고! 갑자기 왜 이러는데? 전하는? 황자님은!”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말은 해줘야 알 거 아니야!”

“앞으로 노아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금지야.”

“뭐? 야!!!”

단단한 가슴을 마구 때려봤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딱딱하게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왜 그러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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