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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60화 (60/117)

60화.

“아가씨! 정숙하게 행동하세요! 칠렐레팔렐레 그게 뭐예요!”

“아, 드레스가 너무 불편하단 말야. 코르셋 조인 것도 너무 답답해!”

오늘은 대망의 탄신 연회 날이다.

엘레나의, 엘레나에 의한, 엘레나를 위한 날이라니!

어찌 사랑스러울 수 없는 날이겠는가!

“너무 좋아! 연회다! 연회!”

엘레나는 드레스를 부여잡고 온 방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 덕에 나풀대는 먼지를 치우는 건 전부 제인의 몫이다.

“아가씨!”

“아, 빨리 들어가고 싶어. 그냥 데카루스 없이 들어가면 안 돼? 왜 그놈 때문에 못 가는 거야!”

“대공 부인으로서 참석하시는 거니 당연히 대공님이 계셔야지요, 아가씨. 조금만, 제발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제인은 지쳤는지 의자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었다.

“결혼도 제대로 안 했는데 무슨 대공 부인이야! 그리고 그런 거 하기 싫어! 난 걔 부인 따위가 아니라고!”

“부인이 아니면 뭐야.”

“스큘러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제인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전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언제 또 슬그머니 기어들어 왔는지.

어떻게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왔지?

“뭐야, 사람 놀라게.”

그는 오늘따라 조금 달라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노란색 술이 있는 견장에 펄럭거리는 새하얀 망토를 제복 위에 걸치고 있었다.

또 금장 단추와 직위를 상징하는 듯한 작은 배지들이 검은 재킷에 달려있었다.

“아무튼! 가자! 빨리!”

데카루스는 펄쩍 뛰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제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예절 선생을 잘못 들인 것 같군. 그 후작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제인?”

“율리우스 후작입…!”

“아, 아니. 됐어.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가만히.”

선생님 이름 알면 뭐 하려고!

가서 잘못 가르쳤다고 벌이라도 줄 건가.

엘레나는 입을 댓 발 내밀며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그럼 이만 가지. 제인, 너도 구경만 하지 말고 내려와.”

결혼식과는 달리 이번 탄신 연회에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시종들도 참석한다.

원래는 고위 귀족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지만 제인과 함께 있고 싶었기에 데카루스한테 미친 듯이 졸랐다.

또 비밀리에 진행되면 사람도 없고 휑하니, 영 보기 싫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자고로 파티라 하면 사람이 북적북적해야지!

“가자!”

연회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홀의 1층엔 투명한 유리창이, 2층엔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붙어있었다.

빛이 비칠 때마다 여러 색깔을 내뿜는 유리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또 금실로 수놓아진 붉은빛의 커튼은 홀 전체에 화사함을 더해주었다.

메인홀인 1층 입구에는 아르데오를 상징하는 하얀색 사자 석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창문이 없는 오른쪽 벽에는 아기천사와 신들이 모여있는 신전 그림이 위용을 뽐냈다.

그리고 천장 가운데에는 수십 개의 투명한 크리스털이 붙어있는 샹들리에가 걸려있었다.

“스큘러스 대공 전하와 헬리오스 영애께서 드십니다!”

위병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엘레나는 그의 팔을 꽉 잡으며 소곤거렸다.

“뭐야… 왜 다 쳐다봐?”

이런 상황은 익숙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오다니.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밖에서나 보던 진짜 귀족들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선생님이 알려준 예절 따위 전부 까먹어버린 것 같았다.

“카루스, 나 토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무슨 결혼식이라도 하듯 레드카펫을 밟고 지나 단상 앞에 섰다.

수백 개의 눈들이 일제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선, 여기까지 와준 경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눈보라를 뚫고 온 막시우스 경이 가장 고생했겠군.”

눈보라를 뚫고 왔다면 북부 프루아에서 왔다는 것일까.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 좌중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직 공식 석상에서 발표되진 않았지만 다들 잘 알겠지. 엘레나 헬리오스. 내 약혼녀.”

엘레나는 억지 눈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들은 마치 선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발설할 경우, 그자는 즉시 처형된다. 뭐, 경들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말야.”

결혼식에 이어 탄신 연회 역시 비밀리에 진행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쩐지 보안에 철저히 신경 쓴 것 같았다.

연회장 내부를 비롯해 외부까지 위병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시종들에 섞인 정예기사들 또한 눈에 띄었다.

“그럼.”

데카루스가 날렵한 위스키 잔을 들자 좌중들 역시 모두 팔을 높여 잔을 들어 올렸다.

쭈뼛거리던 엘레나도 슬그머니 손을 뻗어 분위기에 어우러졌다.

익숙하지 않은 연회 분위기에 잠시 움츠렸지만 왠지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잔을 내려놓은 데카루스는 슬그머니 팔짱을 끼고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스큘러스 공.”

그때 그를 부르는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황자님…!”

“전하.”

에이든이었다.

에이든도 오늘을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멋들어지게 꾸미고 왔다.

상, 하의를 전부 하얀색으로 입었는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자님처럼 잘 어울렸다.

데카루스는 예를 차리며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눈치 보던 엘레나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를 힐끔 쳐다봤다.

아무래도 귀족들이 많이 있는 자리라 이렇게 예를 차리는 것 같았다.

“탄신일을 축하드립니다, 엘레나.”

“감사합니다, 전하.”

“아, 선물을 미리 드리도록 하지요.”

에이든은 작은 상자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매번 생일 때마다 케이크나 먹을 걸 사 주곤 했는데 이번엔 무엇일까.

엘레나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상자를 손에 꼭 쥐었다.

“지금 풀어보시지요.”

에이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럼.”

엘레나는 작은 상자를 쥐고 빨간 리본을 잡아당겼다.

탁-

하지만 그 순간 데카루스의 손이 독수리처럼 선물을 낚아챘다.

“뭐야! 줘.”

치사하게 갑자기 선물을 빼앗아 가다니.

엘레나는 높이 들린 상자를 빼앗기 위해 콩콩 뛰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키 차이 때문에 손이 닿질 않았다.

“선물은 다음번 증정식에서 함께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편히 즐기시길.”

데카루스는 정중히 묵례를 하고 뒤로 돌았다.

팔짱을 낀 엘레나 역시 자동으로 그에게 끌려갔다.

“가지.”

“황자님…!”

에이든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아니, 마치 당장 누군가라도 죽일 것처럼 싸늘해 보였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카루스. 선물 줘.”

엘레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중에, 지금은 바빠.”

“뭐가 바쁘다는….”

“대공 전하.”

그 순간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그를 불러세웠다.

우락부락한 눈매와 그 옆에 진 가느다란 주름이 그의 나이를 얼핏 짐작게 했다.

“아, 플라베르 공작. 간만이군.”

그는 단둘이 있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조금 더 어둡고 딱딱한 목소리랄까.

플라베르라 불리는 공작은 악수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곤 옆에 있던 그녀를 슬쩍 보더니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영애.”

“아, 안녕하십니까. 엘레나 헬리오스입니다.”

예절 선생님께 배운 대로 허리와 목을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최대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공작의 표정을 보니 잘한 것 같았다.

둘은 무슨 할 얘기가 있는 듯 잠시 조용히 수군거렸다.

심심해진 엘레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에이든을 찾았다.

“저분이 황태녀 전하….”

“그래.”

“하… 정말 올곧게 자라셨군요. 이제 전하를 뵈었으니 이 늙은이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플라베르 공작은 가슴을 쥐어 잡으며 한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황후 때문입니까.”

데카루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일을 실행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다 황후가 죽기 전에 제가 먼저 죽겠습니다.”

“말은 참 쉽지, 플라베르. 황후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 황제와 동등하다고 봐도 될 정도지. 지금 나서는 건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이야.”

“하지만 그 전에 폐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플라베르는 손에 든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 전엔 죽일 거야. 황후를. 반드시 없앨 거다.”

“저희 친 황제파는 무조건 공을 따를 겁니다. 언제든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데카루스는 공작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뭐에 홀린 듯 메인홀로 다가갔다.

“엘레나.”

그녀의 앞엔 키가 크고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훤칠하고 인물이 좋은 게 딱 보니 물랑 가의 영식이다.

데카루스는 까득, 이를 물며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처럼 그에게 다가갔다.

“응? 잠시 바르센과 얘기 중이었어. 나랑 동갑인데 정말 재밌으신 분이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물랑 가의 영식 바르센…!”

“얘기는 이쯤 하면 되겠군.”

데카루스는 어두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곤 그녀의 손에 보란 듯이 깍지를 끼며 빠르게 뒤로 돌아섰다.

당황한 엘레나는 깍지 낀 손으로 그를 마구 치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한창 재밌게 대화 중이었….”

“그쯤 하면 됐어. 이제 무도 시간이야.”

그가 악사를 향해 손을 들자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바뀌자마자 사람들은 각자 파트너와 자연스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메인홀로 이끌린 엘레나도 얼떨결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와 발을 맞추었다.

“대체 왜 그래? 나도 새로운 친구 좀 사귀자.”

“남자는 안 돼.”

“하…!”

질투를 해도 적당히 해야지.

이 남자는 뭘 해도 과해.

“여긴 여자가 별로 없잖아. 그리고 다들 날 불편해 한단 말야. 모처럼 새로 사귄 친구였는데… 당신 때문에 다 망했어!”

엘레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짜증이 났다.

친구도 마음대로 못 사귀게 하고.

아주 다 자기 멋대로야.

“평생 친구는 세 명이면 족해. 제인, 수, 에이든 됐네.”

“하…!”

이 억지 논리는 대체 언제쯤 끝날 건지.

엘레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근데 왜 요새 에이든 이야긴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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