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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58화 (58/117)

58화.

“엘레나, 천천히 걸어. 그러다 넘어져.”

“네가 느린 거겠지! 빨리 와, 빨리! 수가 기다리겠어.”

에이든은 미끼에 낚인 생선처럼 그녀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엘레나는 어찌나 신이 났는지 방방 뛰며 광장을 누볐다.

길거리는 상인들로 가득 차 어딜 가든 붐볐다.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커플들의 말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가 온 광장을 가득 채웠다.

“꺄악, 이거 너무 예뻐. 그치!”

그녀는 장신구 가게 앞에서 눈을 반짝거렸다.

하지만 거울을 보며 몇 번 대보지도 않고 이내 다른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아저씨, 이거 하나 주세요.”

“이것도! 이것도 너무 예쁜데?”

“이것도 주세요.”

그렇게 사들인 장신구만 50개가 넘었다.

그녀가 손에 쥐었던 건 전부 다 샀다.

에이든은 한숨을 푹 쉬며 그녀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제 그만 가지? 수가 기다린다며.”

“조금만 더!”

에이든은 장신구가 든 가방을 등에 인 채 터벅터벅 걸었다.

아무래도 그녀를 말리기엔 너무 신이 나 보였다.

“어? 에이든, 여기. 이리 와 봐!”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 에이든은 또 무슨 일이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엘레나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저기, 저 골목 끝에 보여?”

“뭐가 보인다는 거야.”

“저기! 저기 마담 럭스가 하는 점집!”

마담 럭스는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점술가다.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죽는 날까지 정확히 짚어 맞힌다고.

게다가 저주까지 해준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있다.

“가보자!”

엘레나는 에이든의 동의도 없이 그냥 그를 끌고 갔다.

그는 외마디 대답조차 뱉지 못한 채 허무하게 잡혀갔다.

딸랑-

“계세요…?”

가게 안은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카운터 위엔 보라색 빛이 일렁이는 이상한 마법구부터,

뱀을 한가득 담은 병과 크기가 다른 나무 지팡이까지.

기이한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온통 짙은 보랏빛 베일로 발이 쳐져 있어 햇빛 하나 들지 않고 어두컴컴했다.

걸을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 또한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계세… 악!”

그렇게 가게 안을 둘러보며 생각 없이 걸음을 내디딘 순간, 이상한 게 발에 챘다.

“왈!”

짖는 걸 보니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발에 차인 게 기분 나쁜 듯 왈왈 짖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주위를 빙빙 돌며 뛰어다녔다.

“야, 왜 이래. 무섭게…!”

“무슨 일인 게냐, 스파우스.”

그 순간 베일 뒤에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온통 베일로 둘러싸여 있어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분간이 안 됐다.

엘레나는 무서웠는지 에이든에게 팔짱을 꽉 끼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카운터 옆에서 웬 검은색 망토를 쓴 키 작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슬금슬금 나왔다.

“꺄악!”

놀란 엘레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아이고, 귀청이야. 거, 다 늙은 노인네 고막 터지게 할 셈이야!”

허리가 다 굽은 노인은 짜증을 내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게슴츠레 눈을 뜬 노인의 얼굴엔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점 보러 왔으면 어서 들어와! 지금 막 시작했으니.”

그녀는 백발 마녀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그대로 늘여놓은 모습이 꼭 하얀 명주실 같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엘레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며 머쓱하게 웃었다.

여전히 그의 팔을 꼭 잡은 채로 말이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흰자위 삼면이 모두 드러난 삼백안에 코 옆엔 진한 점이 있었다.

세 개의 등불에 의지한 방 안은 주황빛이 일렁였다.

“참 특이하구나, 특이해.”

붉은 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자마자 점사가 시작되었다.

의뭉스러운 얼굴을 한 노파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이든은 의아한 듯 정중히 그녀에게 물었다.

“넌 대체 어디서 온 거야.”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을 희번덕 뜨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왔냐니, 설마 다른 세계에서 온 걸 눈치챈 것일까.

당황한 엘레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이 세계 사람이 아니구나.”

그녀는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한데 어째서 황제의 얼굴이 보여.”

“황제… 요…?”

엘레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황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노인은 뭐가 우스운지 낄낄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하얀 눈썹을 찌푸리던 노인은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에이든을 가리켰다.

“그리고 너…! 천벌을 받겠구나. 신이 무섭지도 않은 게야?”

긴 손톱이 그를 향하자 에이든의 표정은 싸하게 굳어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사람을 죽여놓고 조용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셈이야?”

그때부터 느꼈다.

이 사람은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다는 것을.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도 그냥 어쩌다가 얻어걸린 것 같았다.

“에이든, 나가자. 여기 이상해.”

기분이 나빴다.

다짜고짜 사람을 가리키면서 누굴 죽였다느니 천벌을 받는다느니.

아무래도 소문은 다 거짓인 것 같았다.

엘레나는 노파를 홱 째려보곤 갈걍갈걍한 손을 잡고 잽싸게 나갔다.

“얘야, 조심하거라. 그 아이와 같이 있어선 안 돼. 너도 곧 화를 입을 게야.”

그녀가 남긴 뒷말에 등골엔 소름이 돋았다.

꼭 저주를 퍼붓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괜히 왔어. 기분만 나빠지고. 완전 돌팔이 아니야.”

“…….”

심장이 불규칙하게 마구 뛰었다.

분명 돌팔이가 맞는데 왜 안 좋은 느낌이 드는 걸까.

엘레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에이든의 표정 또한 썩 좋지 않았다.

“에이든, 저런 말 믿지 마. 순 엉터리야. 가자.”

* * *

괴상한 점집을 빠져나와 드디어 수의 가게에 도착했다.

에이든과 함께 가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마음이 떨렸다.

딸랑-

“수!”

“어머, 엘레나! 에이든까지! 이게 무슨 일이야!”

변함없이 밝은 수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는 여전히 쨍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근데 너희, 머리 색이 좀 이상하다?”

“아, 가발이야. 가발. 분위기에 변화를 좀 주고 싶었거든.”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엘레나는 자연스레 상황을 무마했다.

하지만 거기서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에이든, 넌 무슨 귀족이라도 된 것…!”

“아, 우리가 돈을 좀 많이 벌었어! 그래서 옷 좀 샀지!”

수는 이상한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래 아무래도 여기를 올 땐 추레하게 입었어야 했는데.

그걸 까먹고 있었다!

“아하하… 근데 제프론은? 안 보이네?”

“제프론 학교 갔지.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가 됐는….”

딸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제프론, 양반은 못 되겠다.

“어? 누나!!!”

제프론은 그녀를 보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뛰어왔다.

또 언제 자랐는지 키가 에이든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누나!”

자연스레 그녀를 품에 껴안으려 하자 에이든이 옆에서 팔을 뻗어 막아주었다.

“제프론, 작작 하지.”

“뭐야, 형. 왜 왔어.”

“그러는 넌 이게 무슨 짓…!”

“자자, 두 사람 싸우지 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으르렁댈 거야?”

수는 갑자기 안 좋아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그들을 널찍이 세웠다.

제프론은 늘 에이든을 경쟁자라며 이를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정작 에이든을 별생각 안 하는 것 같다.

그저 어린애의 장난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제프론! 넌 좀 가만히 있어. 형한테 무슨 짓이야.”

“쫄병 주제에….”

“제프론!”

“네, 네. 알겠네요.”

한바탕 난리가 지나가자 그제야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다들 수가 가져다준 시원한 과일 주스를 홀짝거렸다.

“근데 며칠 전에 사람이 죽었다며? 포레 가에서.”

“아, 들었어. 어떤 놈인지 무시무시하다니까.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

엘레나는 소름 돋는 듯 두 팔로 몸을 꽉 껴안았다.

그러자 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근데 소문이 돌던데?”

“소문?”

수는 누가 들을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황자 중 한 명이라는 소문이 있어.”

“뭐?”

엘레나는 식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쳤다.

그 덕에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엘레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사과했다.

“근데 황자라고? 황자 누구?”

“그거야 나도 모르지. 황궁에서도 숨기려고 애를 쓴다던데?”

“대박….”

순간 머릿속으로 아까 마담 럭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사람을 죽여놓고 조용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설마….”

“왜, 짚이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 아니. 그냥.”

엘레나는 흘깃하며 에이든을 쳐다보았다.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를 의심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엘레나는 고개를 털며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둘은 언제 결혼해?”

“뭐?”

엘레나는 자리에서 펄쩍 뛰며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식당에 있던 손님들이 저마다 각자 짜증을 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엘레나는 울상을 하며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결혼이라니!

엘레나는 눈에 힘을 꽉 주고 조용히 입을 벙긋거렸다.

“결혼?”

“무슨 소리야, 결혼은 나랑 할 건데.”

“넌 철 좀 들어!”

엘레나는 주먹으로 제프론의 머리를 콩 때렸다.

“아!”

제프론은 억울한 듯 머리를 쥐어 감싸며 울먹였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난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는데?”

수는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혼이라니.

이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엘레나는 옆에 있던 에이든을 흔들며 부추겼다.

“에이든 뭐라고 말 좀 해 봐. 넌 왜 가만히 있어!”

“왜, 우리 그렇고 그런 사이 맞잖아. 안 그래?”

“허…!”

“어머!”

“형, 미쳤어?”

테이블을 빙 둘러싼 우리는 서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수는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고 제프론은 테이블을 쾅 치며 분노했다.

그리고 엘레나는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어떡해. 내가 다 설레-!”

“형, 그 말 취소해. 당장!”

금세 테이블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제프론을 골탕 먹이는 데 성공한 에이든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 두 어린애들의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에이든이 먼저 불을 지피다니!

“하, 안 되겠어. 이만 가야지. 너 일어나. 나랑 얘기 좀 해.”

“어머, 사랑싸움!”

“누나, 어딜 가려고!”

딸랑-

결국 야단법석 떠는 둘을 제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단단히 뿔이 난 엘레나는 에이든을 세워두고 말했다.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의심만 샀잖아!”

“뭐, 제프론 표정 보니까 통쾌하고 좋던데.”

“너 진짜 애야? 애처럼 왜 이래!”

속이 답답했다.

무슨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면서 수군거린다.

“응, 나 애야. 그러니까 나만 봐.”

“진짜 너!”

에이든은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엘레나는 그를 손으로 밀쳐냈다.

“너 대체….”

“너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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