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어두컴컴한 구름이 달을 삼킬 무렵 주황빛 등은 방 안을 환히 밝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사뿐사뿐 침대로 걸어갔다.
“엘레나….”
침대 위엔 양손을 가지런히 괴고 잠든 엘레나가 보였다.
꼭 이제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데카루스는 곤히 잠든 그녀의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
“춤 연습하자더니.”
그는 콧바람을 내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그 순간 작은 무언가가 손목을 죄었다.
“카루스….”
목이 깊게 잠긴 목소리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프를 연주하듯 맑은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데카루스는 그대로 멈춰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꼭 아기 새처럼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게 퍽 귀여웠다.
“더 자.”
그는 눈꺼풀 위에 손을 얹으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엘레나는 고개를 흔들며 그의 손을 끌어 내렸다.
“춤 연습….”
그녀는 마치 주문을 외는 사람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내일 해.”
“안 돼.”
순간 엘레나는 땅속에서 환생한 좀비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졸린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개망신당하기 전에 빨리 해야 돼.”
그녀가 무얼 걱정하는지는 잘 알겠다.
탄신연회 때 생일을 맞이한 사람은 파트너와 함께 꼭 춤을 춰야 하는 전통이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일으켜 줘.”
엘레나는 엄마에게 안기는 어린아이처럼 손을 쭉 뻗었다.
안아서 일으켜 달라는 말인가 보다.
그는 볼록한 엉덩이와 등을 받쳐 그녀를 안아주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게 아무래도 좀 더 먹여야겠다.
“으음….”
엘레나는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듯 가늘게 눈을 껌뻑였다.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쩌억, 하는 모습이 꼭 하마 같았다.
탄탄한 가슴에 기댄 작은 얼굴이 깃털처럼 가볍다.
“언제까지 자려고.”
“조금만 더….”
분명 자기가 춤 연습을 하자고 했으면서 품 안에서 자는 건 뭘까.
데카루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곤 살며시 다가가 볼록 튀어나온 이마에 짧게 입술을 맞추었다.
“뭐야….”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웅얼거렸다.
아무래도 잠결에 키스를 많이 해 두어야겠다.
눈을 뜨면 싫다고 난리를 피울 게 분명하니.
그는 이마부터 코와 뺨, 입술까지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엘레나는 눈꺼풀을 번쩍 떠올렸다.
“당신 뭐 해….”
“하도 안 일어나길래.”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막 비비며 품 안에서 파닥거렸다.
놔달라는 신호겠지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을 테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들어 창가에 살며시 앉혔다.
“뭐 하는 거야.”
심술 난 고양이처럼 뚱한 얼굴이 꽤 귀여웠다.
창가에 팔을 짚은 데카루스는 조심히 몸을 기울였다.
“아…!”
그대로 입술을 맞추자 그녀는 놀란 듯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얼굴을 보니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한 번 더 입술을 부딪쳤다.
“저리 비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모습도 귀여웠다.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을까.
“조금만 더.”
이번엔 천천히 입술을 삼키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물기 어린 촉촉한 눈빛이 꼭 바다를 담은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지 눈을 꼭 감은 엘레나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아….”
입술을 빨자 목울대에선 앓는 소리가 났다.
멈추려 했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이 마음보다 앞선다.
“카루스….”
이름을 부르는 작은 새소리가 귓가에 사근거린다.
결국 그녀의 양 뺨을 잡고 모든 걸 삼켜버렸다.
그렇게 자신 있게 당신을 물들일 거라고 외쳤지만, 결국 물들어 버린 건 그 자신이었다.
날카로운 덫에 발이 묶여버린 것처럼, 더 이상 그녀에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더 삼켜버린다면 사라질까.
그는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고르며 입술을 뗐다.
“사랑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사라질까 두렵다.
자그마한 당신을 놓쳐버릴까 무섭다.
다신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눈을 깜빡이면 사라지는 잔상처럼.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
“사랑해, 엘레나.”
“…….”
부름에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당신은 어차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이 거대한 새장에서.
영원히.
“이리 와.”
“응….”
데카루스는 작은 몸을 다시 안아 들어 방 중앙에 섰다.
살며시 품에서 내려선 엘레나는 어지러운지 조금 휘청거렸다.
“아…!”
하지만 그의 반응속도는 그보다 더 빨랐다.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오뚝이처럼 움직이는 게 귀여웠다.
“잡아.”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가슴은 앞으로 내밀고 머리는 뒤로. 어깨엔 힘을 빼고.”
“뭐 이렇게 하는 게 많아. 그냥 추면 될 것이지.”
어색한 포즈가 꼭 목각인형처럼 보였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그를 간질였다.
“발은 항상 나와 붙어있어야 해.”
“어떻게 계속 붙여?”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모습이 성난 참새 같았다.
데카루스는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나를 따라와.”
“벌써부터 어려워.”
“당신 춤 많이 춰봤다며.”
“그건 혼자고. 다른 사람이랑 춰본 적은 없단 말야.”
그럼 남자랑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란 말인 건가.
기분이 썩 괜찮았다.
처음이라니.
“오른발부터 시작할 거야.”
“아…!”
그녀가 따라올 수 있게 천천히 움직였다.
전신에 힘을 풀고 최대한 익숙해질 수 있게끔.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어렸을 때 선생님께 배웠어. 기본이야.”
아무래도 춤을 못 춰서 혼이 많이 났다는 건 비밀에 부쳐야겠다.
못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한쪽 발이 움직이면 다른 쪽 발이 따라와야 해.”
“이렇게?”
“응. 잘하고 있어.”
집시 시절 춤과 노래로 돈을 벌었다더니.
재능이 있긴 한가 보다.
썩 나쁘지 않게 잘 따라왔다.
“시선은 위로 향하게. 눈을 아래로 내리지 마.”
이렇게 집중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배울 때 당신은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방 안을 아늑히 밝히는 등에 그녀의 얼굴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눈, 코, 그리고 입술.
앙증맞은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순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맞춰버렸다.
푸른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당황한 모습조차도 이렇게 귀여울 줄이야.
이건 모두 당신이 사랑스러운 탓이다.
그런 얼굴, 그런 표정을 짓지만 않았어도.
“춤 연습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아.”
보드라운 입술이 다시 한번 맞닿았다.
벗어나려 애쓰는 몸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양 뺨을 잡고 거칠게 그녀를 삼켜버렸다.
맞닿은 이마와 코끝이 반복적으로 부딪쳤다.
“하아….”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입 안에서 터져 나오는 숨결은 자연스레 음악이 되었다.
그렇게 야릇한 음악 사이에서 그들은 마치 춤을 추듯 방 안을 맴돌았다.
“갑자기 왜….”
엘레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달빛에 비친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는 천천히 그녀를 침대로 몰았다.
마치 사냥을 앞둔 짐승이 먹잇감을 몰 듯 말이다.
털썩-
침대 맡에 걸터앉은 그녀는 작은 다람쥐 같았다.
이 사랑스러움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데카루스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쓰러트렸다.
“비켜. 이상한 짓 하려고 하지.”
“응.”
손을 들어 벚꽃처럼 흐드러지는 머리칼을 쥐었다.
그녀에게선 항상 복숭아 향이 났다.
머리카락에서든, 몸에서든.
그곳이 어딜지라도 항상 향긋한 향이 나.
“먹고 싶어.”
“뭐?”
탐하고 싶다.
갖고 싶다.
채우고 싶다.
당신에게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당신이 너무나도 맛있어 보여.”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비켜라. 진짜.”
그래, 일단 그 툴툴거리는 입술부터.
“읍…!”
엘레나는 주먹을 쥐어 가슴팍을 쾅쾅 쳐내렸다.
“놔! 놔! 이 미친놈아!”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소용없었다.
팔이야 묶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데카루스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양 팔목을 저지했다.
“그렇게 거칠면 못 써.”
거칠게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어 갔다.
두 입술을 집어삼킬 듯이 빨아들였다.
앙증맞은 혀를 휘감아 삼켜버렸다.
색색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에선 점점 힘이 빠졌다.
“하아….”
그의 손은 천천히 그녀의 허벅지 언저리의 얇은 잠옷을 말아 올렸다.
복숭아처럼 봉긋한 몸이 탐스럽게 빛났다.
살짝만 닿아도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의 반응이 귀여웠다.
“그만….”
그의 입술은 여전히 그녀를 놓지 않았다.
이를 바짝 세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가 하면, 저 끝에 숨겨진 혀를 찾아 사탕을 빨 듯 집어삼켰다.
그의 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뱀이 여행을 하듯 그녀의 살갗을 간질였다.
그러곤 익숙한 곳을 찾아 어루만졌다.
“아…!”
그녀가 무릎을 굽히며 탄식을 내뱉었다.
움직일 때마다 나는 낑낑거리는 소리가 꼭 강아지 같았다.
데카루스는 입술을 지나 턱, 목, 쇄골 그리고 가슴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카루스…!”
그녀의 허리는 점점 활처럼 휘었다.
데카루스는 그녀를 세게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은 다 예뻐.”
그녀의 목구멍에선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몸을 부르르 떨던 엘레나는 그의 어깨를 꼭 잡았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아….”
방 안을 울리는 거친 숨소리는 새벽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다.
가녀린 여체 위를 올라탄 짐승의 몸짓은 거칠었다.
달빛에 비친 두 사람의 실루엣은 춤을 추듯 아름다웠다.
그렇게 그들의 격정적인 밤은 무수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