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연회를 준비할 거야.”
“연회?”
연회라면 사람을 불러놓고 하는 파티?
귀족들만 한다는 그 무도회를 말하는 건가?
평소에 집에 사람 하나 부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왜?
“무슨 연회?”
“탄신 연회.”
엘레나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 생일이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탄신 연회라니.
설마 이 남자 생일인가?
“당신 생일이야?”
“아니, 당신 생일.”
“내… 생일?”
그의 말에 잠시 손이 멈추었다.
엘레나는 갑자기 포크를 놓고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생일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6월 6일.”
그는 마치 생각이라도 읽어낸 듯 정확히 날짜를 읊었다.
뒷조사를 했다더니 설마 거기까지 알아낸 것일까.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부인께서 태어나신 날인데 그것도 모를까.”
엘레나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그게 황자님 만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바빠. 드레스도 맞춰야 하고, 춤 연습도 해야 하고. 귀족들과 대화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아, 그만. 그만. 듣기만 해도 머리 아파.”
저 많은 걸 대체 어느 세월에 한담.
자고로 생일 파티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생일자가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거냐고!
“안 할래. 하기 싫어. 그냥 케이크에 초나 꽂고 노래나 부르고 말래.”
그리고 황자님이랑도 매일 만날 거야.
순간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그럼 선물은 없을 텐데.”
“선물?”
“생일 선물.”
그는 여우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저렇게 웃는 걸 보면 분명 뭔가 꾸미고 있다는 이야긴데.
“뭐야, 왜 웃어.”
“당신은 항상 기회를 줘도 못 잡아.”
“뭔 소리야.”
“줄곧 나가고 싶어 했잖아, 당신.”
“그게 무슨….”
엘레나는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까 말했던 선물이란 게 밖에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다는 건가.
데카루스는 피식 웃으며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당신이 생각하는 거 맞아. 뭐 그게 다는 아니지만.”
“뭐? 또 있어?”
엘레나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알려줄게. 아마 당신도 좋아할 거야.”
생일 선물을 받아버리면 에이든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방법은 많다.
밖에서 몰래 만난다면 들킬 일은 없다.
“좋아!”
엘레나는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웃었다.
“그럼 오늘 일찍 자. 내일 드레스 맞추러 가야 하니까.”
* * *
그토록 바라왔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자유롭게 밖을 드나들 수 있게 되다니.
이곳에 와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목표 의식을 잃은 기분.
분명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왜 이제 그의 곁이 이토록 익숙한 것일까.
에이든을 만나게 돼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돼서?
“아니야….”
정말 그의 말대로 그에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데카루스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 갇혀버린 것 같다.
“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분명 얼마 전만 해도 그가 싫어서 발악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떠날 수가 없는 몸이라니.
“한심해.”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가 눈앞에 있는데.
왜 몸은 망설이고만 있는 걸까.
끼익-
육중한 나무문이 열리자 그의 모습이 모였다.
방금 막 씻은 듯 물기 어린 검은 머리카락.
저를 봐 달라는 듯 아우성치는 단단한 근육.
수건으로 머리를 털 때마다 움직이는 등 근육이 섹시해 보였다.
“아니, 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엘레나는 순간 확 차오르는 열기에 이불을 푹 덮었다.
얼굴이 불타는 토마토처럼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미친, 엘레나….”
“뭐 해?”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걸 보니 그가 바로 앞에 있다.
당황하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목이 잘게 떨렸다.
“피, 피곤해서. 나 먼저 잘게. 잘 자.”
옆으로 돌아누운 엘레나는 몸을 둥글게 말며 눈을 꼭 감았다.
제발 빨리 저리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침대 맡에 걸터앉은 데카루스는 이불 위를 천천히 쓸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나 잘 거라니까.”
“잘 자라고. 이렇게 하면 잘 자잖아, 당신.”
“응…. 뭐 그렇지.”
하지만 이불 너머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덕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크고 단단한 손이 팔을 쓸어내릴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다.
피식,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몸이 반응하는 걸 들킨 모양이다.
그는 팔을 쓸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곤 한 손가락으로 등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야!”
굵은 손가락이 닿자마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온몸이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만해, 카루스. 나 잘 거…!”
그때 묵직한 무언가가 몸 위에 들어앉았다.
단단한 기둥에 갇힌 엘레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몸은 이렇게 솔직한데.”
이불 위로 부드러운 무언가가 맞닿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점을 찍듯 뺨을 타고 내려가 쇄골에 맞닿았다.
“카루스…!”
이번엔 부드러운 것 대신 딱딱한 무언가가 뼈를 짓눌렀다.
점점 축축해지는 이불이 쇄골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하, 하지 마…!”
엘레나는 손으로 세게 그를 밀어냈다.
그러자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자락이 스르륵 벗겨졌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그의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미끄러지듯 곧게 뻗은 콧날과 불그스름한 입술.
그리고 달빛에 비친 루비를 닮은 눈동자.
꼭 사람을 유혹하려 내려온 악마 같았다.
“뭘 하지 마?”
그는 씨익 웃으며 습기 찬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날 갖고 무슨 상상 했어.”
그의 독촉에 붉어진 얼굴이 더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일순 민망함이 차올라 고개를 홱 돌렸다.
“아무 상상도 안 했… 아!”
그는 이를 세워 귓바퀴를 살짝 깨물었다.
용암처럼 뜨거운 입김이 귓가를 가득 채웠다.
“당신은 거짓말이 습관이야.”
단단한 손이 뒷덜미를 받치며 머리를 살짝 들었다.
그의 입술과 가까워진 귀는 점점 더 축축해졌다.
두꺼운 혀는 장난치듯 귓가를 간질였다.
“이런 거 상상했어?”
“아니… 읏…!”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왔다.
건반을 치듯 간질이는 손가락에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카루스…!”
얇은 속옷은 손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당신은 너무 예민해.”
그가 닿을 때 때마다 몸이 조금씩 들썩였다.
허벅지는 제멋대로 움직여 서로 달라붙으려 애썼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손에 무력하게 벌어졌다.
엘레나는 그를 떼어내려 팔을 잡고 세게 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더 강한 자극뿐이었다.
“그만…!”
그는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어대며 뜨거운 호흡을 내뱉었다.
덕분에 몸은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렸고 온몸엔 찌릿찌릿한 전율이 올랐다.
그는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듯 씨익 웃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말 그만?”
“흐으….”
그녀는 가녀린 신음만 남긴 채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입을 꼭 다물어 봤지만 작은 틈 사이로 소리가 마구 새어 나왔다.
“당신 몸은 이렇게 솔직한데 자꾸 거짓말할 거야?”
엘레나는 연신 머리를 저으며 흐느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배 속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의 입술은 온몸에 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내려왔다.
촉촉한 살덩이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몸이 뱀처럼 꿈틀댔다.
“카루스….”
“응.”
조용히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관능적이었다.
엘레나는 새카만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몸에 맞닿은 손길을 느꼈다.
이내 붉은 입술은 크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타액으로 범벅된 살덩이는 입 안에서 뜨겁게 달궈졌다.
단단한 혀가 말랑거리는 살점을 핥자 목구멍에선 앓는 소리가 났다.
그는 뜨거운 손으로 다른 한쪽을 세게 쥐어 잡았다.
온몸에 맴도는 야릇한 기분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팔과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여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를 눈치챈 데카루스는 두 다리를 들어 제 어깨에 걸치곤 한 손으로 양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렇게 족쇄에 채워진 엘레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이 교성만 내뱉을 뿐이었다.
통통 튀어 오르던 허리는 호선을 그리며 굽어 갔고 절정에 다다른 여체는 경련하며 신음을 내질렀다.
“하아… 하아….”
침대 시트는 물컵이라도 엎은 것처럼 축축했다.
격한 운동이라도 한 듯 거친 호흡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엘레나는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지친 듯 축 늘어졌다.
“그만할까?”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 안에 안겼다.
맞닿은 가슴 사이로 서로의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의 온기를 전신으로 받아들였다.
노곤노곤해진 몸은 천천히 하강하며 평지에 내려앉았다.
데카루스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더니 피식 웃으며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잘 거야?”
엘레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더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는 새하얀 이불을 턱 끝까지 덮어주었다.
덕분에 발가벗은 몸이 더 따듯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의 따스한 손길에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창가를 타고 들어온 밤바람은 살포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풀벌레들은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듯 서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었다.
데카루스는 그녀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