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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7화 (7/117)

7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곳을 탈출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수인 것 같다.

밤에 이렇게 큰 저택을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비가 어찌나 삼엄한지 이 밤에도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시종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필요해.”

탈출하기 위해선 이것저것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선 이곳의 지리를 먼저 파악해야겠지.

아무래도 출구 자체를 모르니 말이다.

제인에게 부탁해서라도 이곳의 설계도를 가져다 달라고 해야겠다.

“하… 다크서클….”

거울을 보니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눈은 충혈됐다.

어제 그가 방을 마구 헤집어 놓고 간 탓이다.

생각만 해도 낯부끄러운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 피곤해….”

아침부터 시녀들이 들어와 부랴부랴 그녀의 몸을 치장했다.

이유는 그와의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종아리까지 오는 연보라색 원피스에 허리엔 아이보리색 리본을 달았다.

원래 바지만 입고 다녔던 터라 이런 옷은 어색했다.

“아, 어쩌지….”

그와 대면하며 아침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해 봤다.

말조차 섞기 싫은데 마주 보고 식사까지 해야 하다니.

생지옥도 이런 생지옥이 따로 없지.

“하….”

털썩-.

“고분고분하게….”

어젯밤 생각한 것 중 하나다.

어차피 맨몸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으니 우선 고분고분 그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그렇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게 되면 기회가 있을 테다.

털썩-.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니….”

침대에 누운 엘레나는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곳에 떨어졌을 때부터?

아님 노예상에 팔렸을 때부터?

“머리 아파.”

생각하면 할수록 애꿎은 머리만 아파왔다.

샤워기로 머릿속을 씻어내고 싶었다.

똑똑-

때마침 들리는 노크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들어와.”

아마 제인이겠지.

어제 일러준 대로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해놨으니까.

“아가씨, 잘 주무셨어요?”

“응, 뭐….”

얼굴을 빼꼼 내민 제인은 천천히 문을 닫고 들어왔다.

“아가씨, 기운이 없어 보이세요.”

그녀는 시체처럼 침대에 덜렁 누워있는 엘레나를 보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야.”

괜히 죄 없는 그녀까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엘레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내려가자.”

마른오징어처럼 누워있던 엘레나는 힘없이 일어났다.

그와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지.

“아가씨, 겁내실 필요 없어요.”

제인은 긴장한 듯한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응, 고마워. 나 괜찮아.”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꼭 수능을 앞둔 고3처럼 긴장한 엘레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끼익-

거대한 문이 열리자마자 단정한 제복 차림의 그가 보였다.

삐딱하게 고개를 든 대공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앉지.”

엘레나는 그를 힐끗 보곤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잠을 설쳤나 봐. 어여쁘던 얼굴이 다 상해버렸어.”

“…….”

그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먼저 쉬었다.

이 남자는 자아 성찰이란 건 하지 않는 것일까.

원인은 다 당신에게 있는데 왜 모르는 척 되묻는 걸까.

그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깨져버린 손톱에 시선을 맞추었다.

“혹 식사가 입에 맞지 않는 건가.”

“…….”

걱정스러운 투로 말하는 그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침묵을 유지하자 그는 약간 거슬린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귀머거리가 아니란 것쯤은 사용인들조차도 다 알 텐데 말이야.”

“…….”

“엘레나 헬리오스.”

“송구하옵니다, 대공 전하.”

그는 조용히 들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경어 사용에 놀란 것일까.

대공은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뗐다.

“그대가 내게 존대를 할 줄이야.”

“그저 전하께 예를 차리는 것뿐입니다.”

“예의라….”

그는 어이가 없었는지 입매를 올리며 비소를 흘렸다.

드르륵. 의자가 거칠게 밀려나자 이윽고 그의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일정한 마찰음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예의라, 예의 좋지.”

“…….”

“한데 그대의 눈엔 반항심이 가득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그는 가녀린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불만이 아주 많아 보여, 엘레나.”

귓가에 사근거리는 짙은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엘레나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그저 앞에 놓인 그릇만 바라보았다.

“감히 내게 도전하는 건 아닐 테고.”

“읏…!”

순간 거칠게 당겨진 턱 끝이 그를 향했다.

떨리는 눈동자는 그와 가까이 마주했다.

“그 연유가 뭘까.”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엘레나는 이를 악물며 그에게 말했다.

“이거 놓으시지요….”

데카루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매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내게 명령이라도 하는 건가, 엘레나 헬리오스.”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식당 내 분위기를 압도하는 중압감에 침만 꼴깍 넘어갔다.

“아닙니다, 대공 전하.”

“그렇다면 그 버릇없는 행동부터 고쳐야 할 것 같은데 말야.”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와 마주 닿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눈을 피하고 말았다.

“지아비의 얼굴을 똑바로 봐야지.”

“…….”

그는 얼어붙은 엘레나의 얼굴을 보며 코웃음 쳤다.

“먼저 심기를 건드린 건 그대인데 말이야.”

“…….”

“왜 그리도 겁먹은 표정을 짓는 걸까.”

그의 시선은 비우지 않은 그릇을 향했다.

“수프는 손을 대지도 않고. 오늘 주방장에게 특별히 당신이 좋아하는 수프를 주문한 것인데 말야.”

“상관하실 일 아닙니다….”

“그대는 손이 참 많이 가.”

그러자 데카루스는 피식하곤 웃으며 앞에 놓인 스푼으로 양송이 수프를 한 숟갈 떴다.

“먹어.”

“읏…!”

거칠게 들어오는 스푼에 그녀는 입을 닫아버렸다.

입가에 묻은 수프는 입술에 묻어 뚝뚝 떨어졌다.

엉망이 된 원피스는 당장이라도 빨아야 할 것처럼 더러워졌다.

“이게 대체…!”

“아, 미안. 흘렸군.”

그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 피식, 하고 웃으며 수프로 더러워진 원피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얼굴을 숙여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잘 먹이고 잘 키우는 게 남편의 도리인데…. 우리 부인께선 잘 드시질 못하시니 직접 떠먹여 드릴 수밖에. 안 그래?”

“하….”

그의 당당함에 실소가 터져 흘렀다.

누가 누굴 맘대로 남편이라 정의하는 걸까.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묻은 수프 자국을 닦아주었다.

놀란 엘레나는 재빨리 몸을 뒤로 빼보았지만 의자를 꽉 잡은 단단한 손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칠칠치 못하게, 엘레나.”

탁-

“만지지 마.”

그녀는 손을 들어 입꼬리를 쓸던 그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사나운 것을 길들이는 재미도 있고 말야.”

“닥쳐.”

“이제야 좀 당신답군.”

그의 손이 어깨를 아프게 꽉 쥐었다.

그러더니 다시금 수프를 떠 입 앞에 갖다 대었다.

“먹어야지.”

“읏…!”

어깨를 죄는 고통에 그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수프는 어이없게도 맛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지?”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일주일 가까이 어딘지도 모르는 차가운 공간에 짐승처럼 갇혀있었다.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괴로웠나.

빛조차 잘 들지 않는 회색빛 공간에서 그녀는 홀로 버텼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아픈 기억들은 생각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때를 똑똑히 기억해, 엘레나.”

스푼을 내려놓은 대공은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쓸었다.

“언제든 그곳에 돌아갈 수 있으니.”

수프가 흘러내린 앙증맞은 입술이 잘게 떨렸다.

다시 차가운 곳에 갇힐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리고 허튼수작 부리지 마.”

머리에 닿은 손의 악력이 점점 세졌다.

“당신이 날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는 마법이라도 부린 듯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엘레나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악마야.”

그는 악마란 말에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더한 것도 될 수 있어.”

“하…!”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대화하면 할수록 진절머리가 났다.

엘레나는 의자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어딜 가려고.”

그는 팔로 휘감아 그녀를 꼼짝 못 하게 안았다.

“이거 놔.”

“내가 여기 있는데 당신이 어딜 가.”

“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여버린 엘레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에겐 한낱 객기에 불과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을 힘으로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당신은 늘 이런 식이지.”

“…….”

“반항을 해도 제풀에 지쳐버려.”

맞는 말에 반박조차 할 수가 없었다.

먼저 주먹을 날리는 건 그녀였지만 맞는 것도 그녀라는 것.

“시끄러워….”

“날 똑바로 봐, 엘레나.”

그는 여린 어깨를 붙들고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곤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입을 떼었다.

“난 당신을 오랫동안 찾았어.”

“…….”

“그런 당신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가 않아.”

답답했다.

대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오랫동안 찾아왔다는 건지.

“난 당신을 몰라.”

“몰라도 괜찮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는 작은 머리를 천천히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놓아달라고 해도 놓아주지 않을 거야.”

“…….”

머리칼을 쓰다듬는 온기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당신이 망가져도 상관없어.”

“…….”

“그저 내 곁에만 있으면 돼.”

우리는 서로 같은 곳을 보았지만 결국 다른 곳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처음으로 진심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겐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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