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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장엔 열쇠가 없다-6화 (6/117)

6화.

그를 마주한 순간 온몸이 싸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질러야 할까 아니면 도망가야 할까.

머릿속에선 폭죽이 터지듯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부인께서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시다니.”

그는 무릎을 꿇고 살며시 손등 위에 키스했다.

“너무나도 영광인데.”

엘레나는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그는 이 상황이 즐겁기만 한 듯 미소를 띠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오지 마….”

“벌써 이렇게 내외하기야? 서운하게.”

탁-,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벽과 닿은 몸은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 이곳저곳을 해부하듯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뜨거웠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응? 말만 해.”

“비켜.”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이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반쯤 감긴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에게서 좋은 향이 나.”

어깨에 닿은 그의 얼굴은 시향이라도 하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먹고 싶게.”

놀란 엘레나는 목을 감싸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러자 그는 재밌는 걸 구경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겁나?”

바깥 공기를 품고 온 그의 이마가 차갑게 맞닿았다.

미끄러질 듯 날카로운 코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내가 정말 당신을 먹어 버릴까 봐?”

그는 나른한 표정으로 그녀의 볼과 입술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에 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보고 싶었어, 엘레나.”

“나가….”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의 투정이라도 받아주는 것처럼 볼을 살짝 쥐어 흔들었다.

“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

“당장 나가.”

“당신과 더 오래 있고 싶어.”

그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 그녀의 손을 맞잡아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밀가루처럼 새하얀 피부는 비단결같이 고왔다.

“이 손 치워.”

“거부하지 마.”

그는 나른한 눈빛으로 입술 위에 손을 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곧 좋아지게 될 테니까.”

달빛에 비치는 눈동자는 빛이 나듯 형형했다.

꼭 구미호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러운데.”

그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꼭 야한 동영상을 보다가 부모님께 들킨 기분이었다.

“그만해.”

엘레나는 그의 손을 세게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무참히 떨어진 손은 반동으로 인해 추처럼 흔들렸다.

그는 짧게 코웃음 치며 그녀를 응시했다.

“고개를 들어.”

“아…!”

그는 그녀의 턱 끝을 잡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앙증맞은 입술에선 저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흘렀다.

호수를 담은 푸른 눈빛이 처량하게 흔들렸다.

“버릇없게.”

두 뼘은 더 큰 키 차이 덕에 고개를 빳빳이 세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호흡이 가빠왔다.

“똑바로 봐야지.”

그의 눈동자 속엔 떨고 있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비쳤다.

“앞으로 매일 볼 얼굴인데.”

끈적하고 음습한 목소리가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점점 커지는 압박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불안한 듯 입술을 달싹거리자 그는 입매를 틀어 올리며 비소를 흘렸다.

“왜.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어?”

그는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본 것처럼 입을 열었다.

목을 졸리는 듯한 중압감에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데카루스 드 스큘러스.”

“…….”

“어때, 실감이 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인정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꼼짝없이 그와 결혼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치안국으로 가 귀족을 멸시했다며 벌을 받게 되는 걸까?

“대답.”

“…….”

온몸을 휘감을 만큼 웅장한 위압감에 몸이 살짝 떨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대답하라고 했어.”

“…닥쳐.”

그는 아랫것을 보듯 하찮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어디서 기어오르는 거냐는 무언의 압박이겠지.

“누누이 말했지.”

두꺼운 엄지손가락이 입술을 아래로 세게 잡아당겼다.

이와 맞닿은 여린 살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

“당신은 입버릇이 안 좋다고.”

그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마주쳤다.

“뭐 하는 짓이야.”

“닥치라고 해서.”

눈을 깜빡일 때마다 좁혀지는 그와의 거리에 숨을 참았다.

곧 닿을 것만 같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호흡이 오고 갔다.

“닥쳐주려고.”

“읍…!”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가운 입술이 거칠게 맞닿았다.

본능적으로 입술을 감추었지만 무력하게 벌어진 입술은 어느새 그에게 삼켜져 버렸다.

“당신…!”

순간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그는 재빠르게 허리에 손을 감아 그녀를 지탱해주었다.

그 덕에 마주 닿은 얼굴이 더욱 가까워졌다.

“숨소리가 거칠어.”

“놔…! 읍…!”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가당치도 않았다.

맞닿은 입술은 뜨거운 초콜릿처럼 천천히 녹아들었다.

두터운 혀가 입 안을 부드럽게 탐하자 그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들어왔다.

점점 빨라지는 숨소리에 그가 무언가 눈치챘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침대로 갈까?”

그의 말에 아득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악마 같은 속삭임에 잠시 넘어간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당신…!”

끊임없이 덮쳐오는 입술은 말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았다.

그가 목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블랙베리 향이 진하게 퍼졌다.

“난 좋은데, 당신은?”

“이거 놔!”

“쉿, 사용인들이 깨겠어.”

그는 손에 깍지를 끼고 그녀의 입술에 갖다 댔다.

“엘레나, 소중한 나의 신부. 나의 천사.”

“난 당신 신부 따위가 아니야.”

그녀는 으름장을 놓듯 강하게 말했지만 그에겐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장난이었다.

데카루스는 가녀린 몸을 들어 올려 곧장 침대로 향했다.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진한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에게 향했다.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놓인 몸이 침대 시트에 폭, 하고 감겼다.

여린 살을 파고드는 손끝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단추가 두세 개 정도 풀린 셔츠 틈으로 적나라한 근육이 드러났다.

짝-

“하아. 하아….”

찰나였다.

그의 고개는 완전히 꺾인 채 미동조차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엘레나의 작은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하.”

탄식 속에선 악마의 미소가 피어났다.

코웃음 치는 그의 얼굴은 마치 폭군 같은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는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쓸며 고개를 돌렸다.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 눈에 비친 푸른 눈동자가 애처롭게 흔들렸다.

“맞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나가.”

그는 자세를 틀어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엘레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봐줄 거라 생각해.”

“나가라고!!!”

엘레나는 눈을 꼭 감고 목청껏 소리쳤다.

고요했던 방 안이 메아리치며 울리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내게 너무 박해.”

“하….”

그의 헛소리에 터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녀는 마치 우는 것처럼 웃었다.

“난 당신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장난감이 아니야.”

이를 악물고 곧 죽일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

그는 그녀의 반항적인 태도에 조소를 짓더니 뼈 소리를 내며 목을 두어 번 꺾었다.

“그럼 더욱더 결혼식을 앞당겨야겠네.”

“…뭐?”

방 안은 시공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놀란 엘레나는 입을 비죽 올리며 눈꺼풀을 빠르게 움직였다.

“결혼식. 당신과 나의.”

그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하…!”

사람이 어이가 없을 땐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지금이 딱 그렇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협박을 해도 이런 식으로 하다니.

“내가 정말 당신과 결혼이라도 할 것 같아?”

“잊은 것 같은데.”

그는 그녀의 몸을 한 번에 일으켜 세워 시선을 똑바로 맞대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

“대체 무슨 소릴…!”

“내기.”

그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

순간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얼굴을 찡그렸다.

아, 설마 그가 대공인지 아닌지 물었던 내기를 말하는 것일까.

‘그 고귀하신 대공 나리가 나면 어쩌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자신 있나 봐?’

‘그래. 만약 그렇다면 그 망할 결혼 내가 직접 해주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내기를 정말 믿는 사람이.

“졌잖아. 당신이.”

정말 있다.

그런 하찮은 내기를 믿는 사람이.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서 두통약이 필요했다.

왜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몸져눕는지 알게 되었다.

“책임져야지.”

“하, 그건 그냥 장난….”

“난 장난 아니야.”

확고한 그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난 당신과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당신이랑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서 죽겠다고. 그러니까 제발 이상한 소리 좀…!”

“잘 자.”

그러자 그는 더 이상 뒷말은 듣기 싫다는 듯 굿나잇 키스를 하곤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쾅-.

“하, 하하….”

엘레나는 한참 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러곤 손을 들어 입술을 마구 부비며 그의 흔적을 지워냈다.

“결혼? 아니야… 아니야.”

결혼이란 단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뇌에 입력이 안 된 낱말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이건 완전 조선 시대에 팔려 가는 어린 소녀가 아닌가.

“말도 안 돼.”

미친 듯한 그의 말에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기뻐서, 슬퍼서 나오는 웃음이 아닌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가 말한 신부가 이런 거였다니.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가엾게 떨어져 침대 시트를 적셨다.

“돈 주고 사 온 신부라….”

그가 미친 자인 줄은 진작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공일 수가 있는지.

사람들은 그의 허우대에 모두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하….”

아무리 당당하려 해도 그의 앞에선 처참히 무너졌다.

엘레나 헬리오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걸까.

설마 평생을 그의 품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대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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