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이 뽑힌 자리-67화 (67/97)

67화.

그는 기쁜 낯으로 아기를 들어 올려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생기 없는 눈동자가 멍하니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리안은 가녀린 여자가 아기를 떨어트리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 작은 포대기를 받쳐 안아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해 있었다.

“우, 아아, 우응.”

엉거주춤 안긴 아기가 불편한지 옹알대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 조금 정신이 돌아왔는지 헤일라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아기의 입술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잊었던 사실이 생각난 양 말했다.

“아기, 밥.”

젖병을 든 노데이나를 빤히 보는 헤일라의 얼굴이 멀겋다. 헤일라가 가는 손을 내밀었다. 분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노데이나는 침착하게 품 안의 따끈한 분유를 꺼내 전달했다.

아기는 무예 좋은지 어미의 품에 안겨 방싯대고 있었다. 이 방에서 행복한 듯 웃고 있는 건 아기와 리안, 둘뿐이었다.

헤일라가 한 손에 아기를 받쳐 들고, 한 손에 분유 병을 들자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입을 오물댔다. 얼른 밥을 달라는 투정이다. 그녀는 아기의 입에 젖병을 물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녀의 눈매 끝에 아롱아롱 매달린 옅은 음울만이 불행한 삶의 편린을 대변할 뿐이었다.

꼴깍꼴깍, 분유 삼키는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저렇게 제 새끼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흐뭇할 법도 하건만, 헤일라는 그저 초연해 보였다.

그러나 노데이나는 헤일라를, 아니 주인마님을 감히 이해했다. 그녀는 헤일라가 저택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떻게 아이를 잃고 다시 수태했는지 아는 인간 중 하나였다. 차라리 미쳐 버리는 게 편했으리라.

마침내 아기가 젖병을 모두 비웠다. 리안은 대견하다는 듯 아기의 볼에 한 번 입을 맞추고, 헤일라의 등을 쓰다듬었다.

“잘했어. 같이 산책도 할까?”

남자가 가증스럽게 떠들어 댔다. 헤일라는 몸을 옹송그리며 으응, 하고 읊조린 뒤 노데이나 쪽을 흘깃댔다. 얼른 품 안의 아기를 거두어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제 엄지를 쪽쪽 빨고 있는 세상 무해한 아가씨를 조금 두려워하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사용인들이 따르는 건 리안 쪽이었다.

“데려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유모가 아기를 받아 들었다. 노데이나와 하녀장, 그리고 유모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를 느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부산스럽지 않게, 그러나 부지런히 방문 쪽으로 발을 놀렸다.

노데이나는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고 나왔다. 아주 살짝 뒤돌아 확인한 문 안에, 헤일라의 곁으로 다가가는 리안의 뒷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 * *

“세리아가 이제는 엄마를 알아보나 봐.”

말은 언제쯤 하지? 리안은 혼잣말을 하며 헤일라의 머리칼을 손으로 꼬았다. 헤일라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앞만 응시했다. 그럼에도 리안은 계속 세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좋아하는 모빌의 모양과 장난감 종류 따위를 늘어놓으며 헤일라를 관찰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기에 대한 애착을 더 붙여 주려 안달하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이미 미쳐 버렸는데도, 리안은 헤일라가 아기를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을 떠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으면 했다. 오늘처럼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고 쪼르르 문에 붙어 훌쩍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리안이 건조한 입술을 혀로 축인 뒤 헤일라의 목선을 할짝댔다.

“아, 아아…….”

헤일라는 단어가 되지 못한 이상한 소리들을 흩뿌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익숙한 광경이다. 아이를 낳은 뒤부터 정신을 놓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리안은 애틋한 얼굴로 여자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그러다가 손이 약간 내려가 가슴에 닿았다.

“아!”

그 순간 헤일라가 미간을 확 좁히며 앙알댔다. 끙끙대며 어깨를 둥글게 말아 상체를 수그리는 게 가슴 통증이 도진 모양이었다.

“아직도 아파?”

웃음 섞인 물음에 헤일라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이럴 때 보면 정신이 아예 나간 건 아닌 것도 같았다. 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얇은 여체를 뒤로 눕혔다.

언제나 헤일라의 고통에 민감하던 리안은 요즘 들어 그녀의 가슴 통증을 퍽 반겼다.

“젖 짜자.”

통증의 근원이 젖몸살이었기 때문이다. 리안은 그녀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손수 가슴을 주물러 젖을 뽑아냈다. 얼마 전에는 유모에게 그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헤일라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정성을 쏟는 남자다웠다.

헤일라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고개만 도리도리 돌려 가며 반감을 표했다. 리안은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몸통 위에 가볍게 올라타 윗옷의 앞섶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여자는 팔을 뻗어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찌릿하게 퍼지는 유방 통증 때문에 이내 모든 걸 포기하고 축 늘어졌다.

“아.”

곧이어 헤일라의 가슴이 드러났다. 리안은 출산 이후 더 부풀어 오른 젖가슴과 함몰된 짙은 유륜을 보고 탄성을 터트렸다. 매일 보면서도 한결같은 반응이다. 헤일라의 얼굴이 조금씩 달아올랐다. 아롱아롱 맺힌 눈물은 덤이었다.

“시러, 시, 시러…….”

“응, 응…….”

헤일라의 거부에도 리안이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흣…….”

리안은 우둘투둘 잡히는 갈빗대를 손으로 감싸 안은 채 함빡 입안에 살을 물었다. 혀를 써서 부드러운 살점을 핥아 올린 뒤 가볍게 빨아들였다. 헤일라가 신음을 참으면서 부들대는 게 혀로도 느껴졌다. 남자가 곧바로 유륜을 쪽, 빨아들였다.

“하앗!”

고통이 섞인 목소리였다. 리안은 몇 번 흡입을 반복했다. 즈읍, 츱, 외설적인 음률이 섞이고 흩어졌다. 다만 짙은 속눈썹을 반쯤 내리깔고 신중하게 가슴을 빠는 남자는 성애적인 욕구를 채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는 안쪽으로 푹 빠져 있는 꼭지를 빼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헤일라의 가슴은 유두가 안쪽으로 움푹 패 있었기 때문에 젖이 돌게 하려면 꼭지를 밖으로 빼내야 했다.

리안은 오른쪽 가슴의 유두를 빼낸 뒤 젖꼭지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왼쪽에 입을 댔다. 유두가 모두 삐져나온 뒤에는 부드러운 크림을 손에 양껏 펴 발라 두 살덩이를 정성껏 치댔다. 며칠 해 댔다고 요령이 생겼는지 짙은 유두에 진한 모유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

곧이어 퓩, 퓩 하고 희멀건 액체가 공중에 흩어졌다. 리안의 볼에도 몇 가닥이 튀었다.

“흑, 아파, 아! 아파요!”

그는 멈추지 않고 손을 놀렸다. 마냥 자신을 괴롭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는 것인지 헤일라도 더는 몸부림치지는 않았다. 돌고 있는 젖을 뽑아내지 않으면 밤 내내 가슴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리라.

“흐읏…….”

돌던 젖을 어느 정도 빼낸 뒤 리안이 손을 뗐다. 얼굴에 젖이 잔뜩 흐르는 리안은 혀를 빼내 제 입술 위로 흐르는 젖을 할짝였다.

“이제 안 나오네.”

헤일라의 볼에도 젖이 튀어 주룩 흘렀다. 그걸 본 리안은 흰 모유와 자신의 정액을 겹쳐 보았다. 아, 당장 헤일라의 몸 곳곳에 정액을 사출하고 싶다. 저급한 욕망이 대가리를 들고 꺼덕대기 시작했다.

팔랑대는 황금색 속눈썹 위, 흰 볼, 옴폭 팬 겨드랑이와 둥근 목덜미, 부푼 가슴과 도독하게 올라온 갈빗대…… 여기저기 뿌려서 제 냄새와 헤일라의 체취를 섞어 두고 희롱하고 싶었다.

리안은 홀린 듯 헤일라의 얼굴에 손끝을 갖다 대었다. 쓰다듬어 마음껏 어여뻐해 주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히익!”

비쩍 마른 손이 그녀의 얼굴 위로 교차 되었다. 헤일라가 지레 겁먹고 자신을 방어하는 모양새였다. 리안이 주춤하고 그녀의 곁에서 약간 물러났다.

“헤일라.”

“힉, 잘, 잘못, 잘못했…….”

“괜찮아. 응? 괜찮으니까…….”

리안은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흥분할 이유가 없었다. 헤일라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지만 이유 없이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소매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고 등을 토닥였다. 그럼에도 헤일라는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졸지에는 엉엉 울면서 엉덩이 걸음으로 그에게서 떨어지려 안간힘을 썼다.

“죄송, 아흐, 그,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 애원하며 차마 그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여인은 무언가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처럼 보였다.

아.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짚이는 게 있는 것이다. 리안의 얼굴에 옅은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아니야, 아프게 하려는 거 아니야. 응?”

“흐, 어엉, 어어엉…….”

결국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헤일라는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다행히 떨림은 시간이 지나자 사그라들었다.

“미안해.”

“…….”

“미안해, 헤일라.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는 다짐하듯 속삭였다. 내뱉는 숨의 온도가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러나 헤일라는 제 손톱만 뜯으며 눈알을 굴렸다.

리안이 답지 않게 허둥지둥하며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이전에 자신이 그녀 앞에서 보였던 광증과 폭력성을 다정한 단어들로 어찌 무마해 보려는 수작이다. 그는 조급증이 나 입술을 빼어 물었다. 헤일라를 달랠 수 있을 만한 말을 고르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이제는, 절대로…….”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리안은 확신할 수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눈이 돌아 방 안의 온갖 물건을 부수며 자해하는 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기실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한 조각도 기억해 내지 못했으니까.

술을 마신 것도, 화를 참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리안은 그런 이유로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최초의 순간은 헤일라가 그에게 ‘괴물’이라며 저주의 말을 꺼냈을 때. 그리고 최근에는 헤일라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려 했을 때였다. 순간 머리에 무언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들면서 완전히 암전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헤일라는 울고 있었다. 리안, 리안 하며 그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그의 큰 손을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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