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08. 송곳니
휴리트 저택은 웅장하지만 으스스하다. 나붓한 곡선이 지붕부터 내려와 건축가의 노고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색은 고궁에 피를 발라 놓은 것마냥 축축했다.
공작의 조모는 장미 넝쿨과 단색의 꽃들로 조경을 꾸며 축축함을 화사함으로 둔갑시켰으나, 타센 공작부터는 그조차 행하지 않아 황량한 분위기를 풍겼다. 해서 행인들은 공작가의 저택을 두고 다소 섬뜩한 집이라 혀를 찼다.
물론 사용인들 또한 이 우중충한 저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안주인이 된 여인이 꽃이라도 가꾸면 좋으련만, 취향이 아니라 했다. 심지어 이전에 공작이 부인을 위해 심었던 장미꽃들도 향이 지독하다고 꺼려 해, 공작이 꽃을 전부 밀어 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공작 부인도 한 번 꽃을 심자 제안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언질을 준 꽃의 꽃잎도 하필 눅눅한 녹색이었다. 결국은 전부 초록이었다.
꽃보다는 푸른 숲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기호에 충성한 주인은 다른 꽃은 한 송이도 저택에 들이지 않았다. 중간이 없는 사낼 모두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언제나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안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침묵했다. 그게 아랫것들이 살길이었다.
“노데이나, 세리아 아가씨 분유 챙겨서 따라와.”
그렇기 때문에 노데이나는 아기 울음소리만이 이 집구석의 한 줄기 희망이라 생각했다.
기실 다른 사용인들은 돌봐야 할 상전이 더 늘었다고, 아니, 리안이 애지중지하는 인간 하나가 더 늘었다고 불안해했지만. 그래도 노데이나는 아기가 좋았다. 사랑할 구석밖에 없는 작은 생명체였다. 귀여운 우리 아기씨.
노데이나는 제 옆의 유모에게 안겨 있는 세리아를 보며 생긋 웃었다. 아기가 꺄르르, 하고 따라 웃음 짓는다. 발그레하고 오동통한 뺨이 보기 좋게 출렁인다. 황금색 눈과 머리칼이 풍성한 밀밭처럼 빛났다. 제 어미만 한 미인이 되리라. 축축한 입술을 오물대며 제 손가락을 빠는 게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
하녀장이 헤벌레하게 풀어진 노데이나를 향해 경고했다. 어리숙한 하녀는 핫, 하고 쥐고 있던 분유를 꽉 쥔 뒤, 고개만 두어 번 끄덕였다.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저택이었다. 얼마 전에는 방에 들어오는 사용인들에 놀란 헤일라가 발코니 밖으로 뛰어들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 공작은 헤일라 님에게…….
노데이나는 애써 생각을 물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굳이 끔찍한 기억을 되살릴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기억해야 하는 건, 사용인들은 언제나 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 모시는 상전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꿀꺽. 옆에 있던 유모의 침 삼키는 소리가 자못 비장했다.
“아우우, 아우!”
포대기에 싸인 채 유모에게 안겨 있는 아기가 팔을 뻗으며 바동댔다. 오늘 하루 딸랑이를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든 탓에, 배가 어지간히 주린 모양이었다. 아기가 주룩, 흘린 침을 유모가 닦아 주었다.
“끼니때마다 이 고생을 해야 하니 원.”
하녀장은 약간 한탄하는 투였다. 노데이나의 호응을 바라는 것이리라.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아랫것들이 하는 일이 다 이렇지, 하고 넘겼다.
기실 가장 안타까운 이는 따로 있지 않은가.
제 손에 들린 젖병을 빤히 보던 하녀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귀족은 제 아이에게 직접 젖을 먹이지 않는다. 그건 유모가 할 일. 그러므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일도 아랫것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리아 아가씨는 매끼 어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아비 때문이었다. 타론 제국의 공작이자 저택의 압제자, 리안 휴리트가 세리아의 아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아가씨는 무슨 죄람.”
물론 하녀장의 이 말에는 동의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으니, 세리아 아가씨는 참 안 되었다.
리안과 헤일라의 아이, 세리아 휴리트.
세리아의 아비는 아기를 사랑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아기에게 공녀의 지위와 온갖 영애를 안겨 주었으나, 모를 일이다. 여자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딸을 내팽개칠 수 있으리라. 그게 진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노데이나는 속으로 쓰리게 한탄했다.
게다가 어미는 제 혈육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알아보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여 노데이나는 세리아의 동생이 태어났으면 했다. 그러면 자신이 먹이고 입히는 아가씨는 외롭지 않을지도 몰랐다. 외로운 아이 둘이 의지하며 커 갈 동화 같은 일을 꿈꾸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리안 휴리트는 헤일라가 난산으로 사경을 헤맬 때 아기를 죽여 꺼내려 한 전적이 있다. 차라리 그가 끔찍한 공포에 까무러쳐 한 행동이라면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 포장해 볼 텐데, 그도 아니었다.
‘잘라서 꺼내.’
남자는 너무나 침착하게, 그러나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했다. 그 자리에 있던 노데이나는 남자의 냉연함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결국, 무사히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공작은 백 일이 넘도록 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동안 이름을 주지 않았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하튼 남자는 이후로 피임을 철저하게 했다. 다시는 아이를 보지 않겠다 황제에게 말을 흘리기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데이나는 헤일라의 고통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세리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외로운 아기씨가 앞으로도 외롭게 자라날 것을 그리니 마음이 아렸다.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걸음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주인의 방문 앞이었다. 노데이나의 눈이 유모에게 안겨 있는 아가씨에게 잠시 머물렀다.
똑똑.
“주인님, 세리아 아가씨의 식사 시간입니다.”
하녀장이 나뭇결이 살아 있는 침실 문을 두드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유모가 약간 불안한 눈빛을 하녀장에게 보냈으나 그녀는 예의 그 무뚝뚝하고 차분한 태도로 문만 바라보았다.
노데이나는 꼿꼿이 서서 앞을 보았다. 안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셋은 익숙한 듯 불편한 침묵을 견뎌 냈다.
우당탕! 안에서 요란한 파열음이 울렸다. 아, 오늘도 시작이구나. 하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사, 살려…….”
누군가 안쪽 나무 문을 손으로 드득, 드득 긁어 대며 애원했다.
“문 좀, 문 좀 열어 주세요……!”
뒤늦게 손잡이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손잡이를 헛돌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안쪽에서도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하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흐윽, 제발…….”
여기서 꺼내 달라는 말만 반복하던 여자는 지쳤는지 훌쩍대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는 소리가 뚝, 끊겼다. 리안 휴리트가 여자를 붙잡은 것이 틀림없었다.
사박대는 소리가 들린 뒤에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남자가 헤일라를 껴안은 채 서 있었다. 그는 세 사용인을 보고 들어오라 눈짓했다. 셋은 눈치껏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옆에 조르륵 섰다. 헤일라가 세리아에게 분유를 먹이는 장소가 대부분 침상 위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석상처럼 고정된 자세로 서 있는 동안, 리안은 헤일라를 들어 침상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안긴 여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얬다. 이를 딱딱 부딪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헤일라, 세리아 왔어.”
“…….”
침상 위에 헤일라를 기대 앉힌 남자가 세리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볼에 살이 잘 오른 아기가 눈을 깜빡대며 입술을 오물댔다. 태어난 지 사 개월이 조금 넘은 아기는 방싯방싯 잘도 웃었다.
그러나 어미는 황금색 눈알을 휙휙 굴리며 손톱만 뜯었다. 노데이나는 자신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따뜻한 분유 병을 꽉 쥐었다. 긴장이 방 전체를 감싸고 돌았다.
“자, 안아 줘.”
리안은 유모에게서 아기를 앗아 들었다. 그리고 헤일라를 다정히 어르면서 아기의 뺨에 입 맞추고, 침대에 뉘었다.
그래, 안겨 주지 않고 헤일라의 옆에 눕히기만 했다.
정말 지독한 인간.
노데이나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언뜻 보면 다정한 아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그건 모두 가식일 뿐이다.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 우우…….”
아기는 이불 위에 눕혀져 눈을 깜빡, 깜빡 하다가 안아 주던 이가 멀어지자 칭얼댔다. 포대기에 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즈락대다가 결국은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방에 아기의 울음소리만 가득 찼다. 그러나 아기를 어르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또 시작이라는 얼굴로 눈만 질끈 감을 뿐이었다. 노데이나는 속으로, 제발 헤일라가 아기를 품어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공작은 아주 질이 나쁜 인간이지만 아기는 아기니까.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까.
“헤일라, 얼른.”
리안의 명이 없는 이상, 헤일라 이외에 누구도 아기를 달랠 수 없다. 분유를 먹이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헤일라가 외면하면, 어미가 안아 거두지 않으면 아기는 모두가 있는 곳에서 방치된다.
리안은 헤일라에게 그것을 주지시켜 왔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여인에게 가혹할 정도로 책임을 지웠다. 그것은 어미가 아이를 사랑하게 만들려는 수작이기도 했고 동시에 족쇄를 채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기의 목소리가 점점 간헐적으로 히끅 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얼마 전처럼 열이 잔뜩 올라 세리아가 밤새 고생할지도 몰랐다. 참다못한 노데이나가 손을 덜덜 떨면서 무어라 간언하려 한 순간이었다.
“아, 아기, 아기…….”
헤일라가 빠끔대며 무어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듬더듬 포대기를 만지다가 아기의 얼굴을 스치듯 쓰다듬었다.
“아우으우!”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무어라 옹알이를 해 댔다. 헤일라가 흠칫 떨며 손을 물렸다. 자기가 만져 놓고 되레 더 놀라 몸서리를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안은 헤일라가 아기에게 관심을 가진 게 좋은지 헤벌쭉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