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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뽑힌 자리-47화 (47/97)

47화.

“이제 들어갈게.”

그가 가슴에서 입을 떼고 은근하게 속삭였다. 머릿속까지 푹 퍼져 빠르게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여자의 눈이 느리게 뜨이다가 이내 꽈악 차오르는 감각에 동공이 확장됐다.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커다란 귀두가 미끌대는 질구를 관통했다.

“하앙!”

“쉬이, 힘 빼야지.”

“아, 리아안! 흑,”

그는 낮은 숨을 깊게 토하며 제 여자와 완전히 결합한 것에 대한 음험한 만족감을 내비쳤다. 매일 그녀를 탐하면서도, 할 때마다 아주 오랜만에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는 여체를 거칠게 찍어 누르면서도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오히려 더 개처럼 박아 헤일라의 교성이 사용인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애썼다. 다시 도망갈 엄두도 낼 수 없게. 그는 무성한 소문을 흩뿌리고 헤일라를 사람들 앞에 내던져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기둥 때문에 하반신이 벌벌 떨렸다. 헤일라는 쉼 없이 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리안, 리안, 하고 애처롭게 울어 대는 여자의 음성은 한계까지 확장되어 빠끔거리는 그녀의 아랫구멍만큼이나 그를 자극했다.

“다리 닫지 마.”

“흐, 흐아, 아아…….”

그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려 자신을 보호하려는 여자의 무릎을 잡아 빼고 허벅지 아래를 눌러 다리를 들게 만들었다. 해부당하는 개구리 마냥 몸이 열려 아래가 훤히 보이는 자세에도 수치심이 들고 일어날 새가 없었다.

그가 완전히 밀고 들어와 내장이 짓눌려 배 안쪽이 엉망으로 짓이겨지는 감각에 헤일라가 힉힉 거리며 침상을 더듬었다. 그런 여자가 가여울 법도 하건만, 리안은 허리를 뒤로 뺀 뒤 다시 강하게 쳐올렸다. 진득하게 꽉 조이는 내벽 때문에 남자가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입술을 벌리고 발발 떠는 하얀 헤일라의 얼굴을 핥듯이 관음했다.

헤일라의 번들대는 눈동자가 광기 서린 남자의 얼굴을 반사해 비췄다. 결국,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리안은 자신의 성기를 품고 있는 배꼽 아래, 아기집 아래쪽을 검지와 중지로 꾸욱 눌렸다.

“나 봐, 헤일라.”

“욱…… 으윽…….”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거야. 네 여기에 쑤셔 박아서 자지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그는 매일 하던 말을 다시 씹어 뱉었다. 그의 말은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싣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는 그도 저가 뭐라 지껄이는지 몰랐다.

그만큼 강렬했으며 광막한 감각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기 전에 진즉 이렇게 묶어 뒀어야 했는데. 처음 봤을 때 목덜미를 낚아채 꼼꼼히 살라 먹어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할걸. 이렇게 맛있는 것을 떨어져 있던 삼 년간 다른 수컷들이 눈독 들였을 상상을 하니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리안이 두 손으로 헤일라의 양 볼을 잡고 깊이 입을 맞췄다. 일방적으로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입천장을 훑고 여린 살덩이를 빨아 삼켰다. 간신히 호흡하던 경로를 틀어막고 거칠게 허리를 놀려 저를 박아 넣었다. 음모끼리 비벼져 까끌대는 자극마저 미치게 좋았다.

헤일라의 얼굴이 눈물과 타액으로 점차 흐려졌다. 남자는 그저 박고, 박고, 박다가 여자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찌그러진 눈에서 나오는 눈물에까지 발정하며 흘레붙었다.

“흐앗!”

“윽.”

순간 헤일라의 내벽이 강하게 수축해 성기의 굴곡에 맞춰 다닥다닥 빈틈없이 달라붙어 자극했다. 쾌감 한 점 받아먹지 못하고 가혹한 두께의 양물에 학대당하던 여체가 찌릿한 감각에 튀어 올랐다.

남자는 그녀가 반응한 지점을 다시 찔러 넣었다. 이불보만 쥐고 있던 손이 그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절벽 끝에 다다른 사람처럼 절박한 얼굴이었다.

“괜찮아, 응? 조금만 힘 빼 봐, 윽, 헤일라…….”

“힉, 히익, 아, 않…….”

어르는 음성이 작위적이었다. 남자는 헤일라가 반응하는 곳을 부드럽게 누르고 비비면서 자극했다. 어깨를 밀어내는 손을 잡아채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핥아대는 남자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다정했다.

결국, 헤일라의 배가 둥그런 모양을 띠며 튀어 올랐다. 착해. 리안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휘었다. 쾌감에 표정이 풀려 턱 끝이 떨리는 헤일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참 동안, 교접 부위에 포말이 일 정도로 오래 정사를 이어 나갔다. 그가 파정하고 아랫배에 뜨뜻한 액체가 고였을 때는, 샅에 부딪혔던 여린 살갗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리안의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중지되었다. 관계 도중 헤일라가 하혈한 날부터였다.

그날도 리안은 정신을 잃은 헤일라의 아래에 붙어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리고 있었다. 얇은 다리를 양옆으로 벌린 채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축 늘어진 몸에도 반응하는 억센 몽둥이 모양의 성기는 쉬지 않고 작은 구멍을 농락했다. 철퍽 철퍽 살 부딪히는 소리와 남자의 낮은 신음이 섞여 방을 메웠다.

리안은 손에 쥔 허벅지 안쪽 살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폭 파인 배꼽을, 그 위에 퉁퉁 불어 젖꼭지가 쏙 비져 나온 가슴을 훑었다. 관음은 남자를 파정의 늪으로 이끌었다. 리안이 다시금 퍽, 하고 헤일라의 안쪽을 찍어 눌렀다.

그런데 일순 뜨거운 무언가가 그의 성기를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애액은 이렇게 묽게 흐르지 않는데. 리안은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꺼덕이는 성기가 폭, 하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허연 정액만 흘러야 할 구멍에서 다른 색의 무언가가 비죽비죽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였다.

“무슨…….”

그가 멍청하게 말을 내뱉었다. 명백히 달거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주기는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 리안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헤일라를 약간 흔들었다.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항상 그랬듯 그냥 거친 행위에 지쳐 잠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몸도 조금 차가웠다. 냉기가 등허리를 스쳤다.

무언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했다.

리안이 급히 헤일라의 몸을 이불로 감쌌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여의원 몇을 불러 상태를 살피게 했다. 행위는 간결했고 빨랐으나 명백히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그때 공작의 눈이 어떠했더라. 리안의 모습을 본 그날의 가신들은 다시금 치를 떨었다. 주인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실수로 망가트린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차라리 의원을 들들 볶거나 윽박질렀다면 덜 두려웠을 텐데. 그는 그저 여자의 옆에서 눈을 굴리고, 머뭇거리면서 손을 툭, 건드렸다. 슬금슬금 손을 꼭 잡는데도 여자가 반응이 없자 숨을 가쁘게 쉬었다. 표정이 일그러진 건 그다음이었다.

헤일라. 약간 쉰 소리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리안이 반 미친 사람처럼 조금씩 쥔 손에 힘을 가할 때 즈음, 헤일라의 아래를 확인하고 상태를 살피던 의원들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리안은 멍한 눈으로 그들과 눈을 맞췄다. 이성이 나가기 직전의 눈동자였다. 의원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큰 병은 아닙니다.”

방에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왜 안 일어나지?”

내가 부르는데…… 그는 헤일라의 이름을 중얼대며 손끝을 만지작댔다. 남자는 얇은 가운을 제대로 여미지도 않은 채 헤일라의 이름만 불러 댔다.

공작이 이미 미친 건 아닐까. 이 말을 했다가 이 여자도 나도 죽는 것 아냐? 의원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말을 지금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잠시 갈등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말해야 했다.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숨겼다가 더 큰 화를 부르리라.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기님을 품고 계시는 듯합니다.”

리안의 눈이 반짝, 하고 뜨였다.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방금과의 간극이 너무 커서, 주변의 모든 이들은 더욱 바짝 긴장했다.

“임신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리를 하셔서 하혈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유산되지는 않으신 듯하나, 최대한…….”

“아이.”

“…….”

의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 있던 모두가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작이…….

“헤일라.”

전에 없이 격양되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잠든 여자를 불렀다. 그는 계속해서 헤일라, 헤일라, 헤일라, 헤일라, 하고 하나의 단어만을 입에 담았다.

“드디어…….”

환희에 차 잠든 헤일라의 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면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랫배에 손끝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손을 떼어 버렸다. 다시 천천히 팔을 뻗어 배에 손바닥을 뭉근히 비벼 보았다.

“아…….”

그는 자고 있는 헤일라의 조막만 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가장 단단한 족쇄를 그녀의 발목에 채워 두었다는 안도, 그리고 행복이 그를 감쌌다.

“헤일라…….”

폭력과 갈취를 일삼는 무법자에게 신이 선물을 내린 날이었다.

* * *

리안은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오롯이 다정해졌다. 그렇게 변화하고 스무날 정도가 지났다. 이제 저택의 사람들도 리안의 변화에 발맞춰 약간 숨을 틔었다.

이전처럼 주인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일을 떠넘기는 하녀들도 사라졌다. 조금 무섭기야 했으나, 주인은 더 이상 미친 짓거리를 일삼지 않았다. 모두가 일상을 되찾아 가는 듯하였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남자는 흐뭇한 얼굴로 묽은 수프를 후후 불어 스푼으로 떠올리고 헤일라에게 가져다 대었다. 멍한 얼굴의 헤일라는 베개에 기댄 채로 입술을 약간 벌렸다. 그는 요령 좋게 그 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입가에 약간 묻은 수프는 혀를 할짝여 닦아 주었다.

“아기 같다.”

귀여워. 그는 나른하게 속삭였다. 지금의 상황에 더없이 만족하는 사람 같았다. 헤일라는 그가 뭐라고 하든 멍한 눈으로 앞만 응시했다. 최음 향이 걷힌 지 꽤 여러 날이었는데도 머릿속이 윙윙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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