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이 뽑힌 자리-46화 (46/97)

46화.

고맙다고 외치는 동료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를 스쳤다. 루이스는 하녀장에게 자신이 말할 테니 얼른 가 보라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노데이나가 마음을 바꿀까 봐 몹시 서두르는 게 분명했다.

노데이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주인의 방 앞에 다다랐다. 그녀는 루이스가 쥐여 준 환을 잽싸게 씹어 삼켰다. 씁쓸한 맛이 역했지만 방 안의 최음 향을 견디기 위해서는 해독약을 미리 음용해야 했다. 약을 겨우 씹어 삼킨 뒤 노데이나는 식은땀이 밴 손으로 문을 열었다.

“아악, 악!”

안쪽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거기에 더해지는 아찔한 최음 향이 코를 찔렀다. 미리 환약을 먹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졌으리라. 노데이나가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아흐흐, 윽, 싫, 싫어…….”

쇳소리가 섞인 듯 탁한 여자의 애원과 사출된 액체가 찔벅이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른 사용인 하나가 다가와 노데이나에게 턱짓했다.

침상 옆에 던져져 있는 수건을 치우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놓으라는 명령이다. 가장 직급이 낮은 하녀가 하는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모두가 꺼려 하는 일이었다.

꿀꺽, 노데이나는 침을 삼키고 새 수건을 받아 든 뒤 침상 쪽으로 향했다. 방의 가장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자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울렸다.

“힉! 힉!”

여자는 정확한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저택 안의 그 누구도 그녀를 섣불리 동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 죽은 하녀 하나 때문이었다. 발이 잘려 죽었다는 하녀. 노데이나는 그날 휴가를 낸 유일한 사용인이었고 그래서 도끼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모두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리안 휴리트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말에 복종했다. 주인의 말 한마디면 죽는시늉까지 할 기세였다.

그가 그날 도끼질한 이들에게 거액의 돈을 준 일 또한 사용인들의 입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일을 그만둔 이는 무어라더라,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하던가.

과연 사고였을까? 사용인 모두가 침묵했다. 그리하여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은 아주 충실해졌다. 씨받이 마냥 매일 남자의 아래에 깔려 엉엉 우는 여자를 모두가 외면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흐우우, 사람들…… 리안…… 너한테도…….”

움찔. 노데이나의 어깨가 들썩였다.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 그렇게 벌리고……”

뒤로는 주인의 목소리였다. 노데이나는 침대 아래 널브러진 수건을 개어 옆으로 놓아두고 새로운 수건을 협탁에 올려 두었다. 손길이 다급했다.

“시러…… 시러어…….”

“응? 싫어?”

“흐…… 응…….”

“그럼…….”

남자가 귀엣말로 무어라 속삭였다. 노데이나가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뒤, 여자가 경기를 일으키듯 파드득댔다. 캐노피를 사이에 두고도 그 격렬한 몸짓이 느껴질 정도였다.

“안 돼! 안 돼!”

“응, 그런데 네가 싫다고 하니까…….”

“흐, 아, 나, 내가…….”

“응, 네가 싫다고 해서. 그래서.”

“……나, 때문, 나 때문에…… 언니랑, 아…….”

등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노데이나는 저도 모르게 침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부러 본 것이 아니다. 미친 주인이 여자를 어떤 식으로 길들이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소름 끼치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벌어진 침상 캐노피 사이로 리안 휴리트와 눈이 마주쳤다.

* * *

“눈 떠.”

감은 왼쪽 눈 위에 축축한 혀가 닿아 눈꺼풀을 밀어 올리듯 핥았다. 생경한 자극에 헤일라가 경련하듯 떨었으나 그 움직임도 찍어 눌린 소동물의 것 마냥 박약해 보였다.

침대의 사면에 처져 있는 캐노피 사이로 빛이 흘러 남자의 얼굴 윤곽을 비껴갔다. 몽롱한 눈을 한 헤일라는 겨우겨우 숨을 내쉬면서도 리안의 명을 착실히 따랐다.

방금 젖은 천이 훑고 지나간 보드라운 살결 위에 큰 손이 얹어졌다. 그는 방금 자신이 손수 닦아 준 여체를 탐음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러 끈적했던 목덜미 아래로, 긴장으로 바짝 서서 단단해진 젖꼭지를 지나 오목한 배꼽, 깊고 은밀한 사타구니 안쪽을 더듬었다.

부스럭 소리와 인기척이 침대의 캐노피 밖에서 느껴졌다. 그가 침대 밖으로 던진 젖은 천을 수습하는 하녀의 움직임일 테다. 방 안에 있는 것은 헤일라와 리안 둘뿐만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향을 피우고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을 수행하기 위한 사용인들이 자리를 지켰다.

게 중에는 남자도 있었다.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잡한 정사를 치른다는 게 상식 밖의 일처럼 느껴지는지, 헤일라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항상 울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리안이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남자는 선뜻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건 제 것이었다. 스스로를 내어준 것도 헤일라였다. 몸을 섞을 때마다 경매장에 끌려가는 노예 마냥 추연하게 굴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둔덕에 머물던 제 중지를 음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몬드처럼 예쁘게 빚어진 눈이 크게 뜨였다.

“아아!”

뻑뻑한 아래가 이물질의 침입에 더욱더 조여들었다. 헤일라는 파드득 떨면서도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침대보만 꽉 쥐었다. 천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통하지 않는 침대 안쪽의 공기가 후끈거렸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여자를 찍어 누른 채로 음부의 털을 헤집으며 음핵을 더듬었다. 물기가 부족해 문지르는 것만으로는 자극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 안을 더듬기를 멈추지 않는다. 고운 목소리가 엷게 갈라져 울릴 신음을 매 순간 고대하기 때문에.

“히익, 시러, 시러어…….”

그러나 헤일라는 옅은 신음만을 내뱉으며 고개만 도리도리 내저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득바득 버티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한숨 쉬듯 웃는 리안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내리깔렸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

“모두 우릴 위해 준비된 것들이야.”

기실 세워 놓은 하녀들은 구체적인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얽어 수도의 모든 이가 하나의 사실을 알도록 하려는 장치였다. 살생 이외에는 흥미를 두지 않던 리안 휴리트 공작에게 연인, 또는 정부, 그도 아니면 노예가 있다더라. 공작이 그녀와 밤을 보내고 숨길 생각도 없이 난잡하게 성교를 하며…….

“내 부인이 되어 주겠다고 했잖아, 헤일라. 고집부려도 소용없어.”

말을 마친 뒤, 리안은 쪽 하는 소리를 내며 헤일라의 안에 넣었던 중지를 핥고 빨았다. 그의 중지와 입술 사이에 실처럼 가느다란 점성이 이어져 있다가 죽 늘어났다. 리안이 눈웃음을 치고서 헤일라의 뺨에 입 맞췄다.

“사람들을, 으응, 내보내…… 리안…… 너한테도, 흣, 나빠아…….”

“다리 벌려.”

헤일라가 퍽 온전한 문장을 내뱉었다. 최음 향이 옅어졌나. 리안은 가볍게 혀를 찼다. 마치 아이를 어르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녀의 애원을 투정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손수 허벅지 안쪽을 잡아 벌리고서는 헤일라를 칭찬했다.

“그래, 그렇게 벌리고…….”

“시러…… 시러어…….”

거부의 몸짓이 이어졌다. 동그란 둔부를 뒤틀어 남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애쓴다. 리안의 얼굴이 웃은 채로 멈추었다. 싸늘함이 감돌았다. 그는 상냥함을 가득 바른 목소리로 물었다.

“응? 싫어?”

“흐…… 응…….”

“그럼…… 내 마음대로 해?”

헤 하고 벌어진 입이 몇 번 빠끔댔다. 황금빛 눈알이 몇 번 흔들리다가 이내 몸 전체가 파들파들 떨렸다.

“안 돼! 안 돼!”

“응, 그런데 네가 싫다고 하니까…….”

“흐, 아, 나, 내가…….”

“응, 네가 싫다고 해서. 그래서.”

“……나, 때문, 나 때문에…… 언니랑, 아…….”

“응, 너 때문이야.”

리안이 캐노피 바깥의 하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자, 저기 봐 봐 헤일라. 누가 널 훔쳐보고 있지?”

갈색 머리의 하녀는 젖은 수건을 손에 쥔 채 달달 떨었다. 차마 눈도 피하지 못하고.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헤일라에게까지 닿았다.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저 여자도…….”

“아아악! 싫어! 싫어!”

그녀는 하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싫다며 비명을 질러 댔다. 하녀는 재빨리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헤일라의 발작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쉬이, 쉬, 괜찮아. 안 죽일게. 응, 착하게 굴면…….”

너만 착하게 굴면…….

리안은 요즈음 매일같이 하는 말을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헤일라는 무익한 반항을 멈추고 엉엉 울기만 했다. 굴복의 의미이기도 했다. 체념의 빛을 비추는 눈이 늪처럼 깊고 우울했다.

남자는 그런 헤일라를 보면서 뿌듯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느리게 움직여 아래에 가져다 댔다. 조그마한 구멍 위를 살살 돌리고 또 그 위로 더듬더듬 올라가 툭 튀어나온 알맹이를 뭉그러트렸다.

여자는 선득함에 몸을 달달 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가슴이 씨근댈 때마다 색이 옅은 유두가 봉긋거리는 것이 퍽 마음에 찼는지 급히 가슴을 크게 베어 물고 빨았다. 안쪽에 예쁜 꼭지가 숨어 있음을 알기에 혀로 달래듯 파내다가 다시 강하게 빨아 들이기를 반복했다.

헤일라는 매일 학대당하는 젖꼭지와 음부에 다시 자극이 쏟아지자 고개를 꺾고 숨을 골랐다. 아프다. 하지만 참아야 해. 착하게 굴어야 해…….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사실만 존재했다. 다른 건 없었다. 그가 그렇게 가르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