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여전히 웃는 모습이 어여뻤어. 그래서 타델리아가 좋아하던 라넌큘러스로 정원을 하나 만들라 일렀지. 언젠가 리안과 거기 앉아 다과를 나눌 생각이다.”
모든 게 끝난 다음에…….
나른함인지 울적함인지 모를 진득함이 배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폐하께서는 정말로 리안을 아끼시는군요.”
공주가 리안을 낳으면서 죽었는데도. 베르디안이 굳이 덧붙이지 않았어도 의미가 전달되었는지, 황제는 오른쪽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러나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곧 극의 마지막이 시작되겠어. 경은 이만 물러가도록.”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베르디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예법에 따라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뒤 방을 빠져나왔다.
신전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하앙!”
음란한 교성과 함께 얇은 물줄기가 주름진 침구 위에 흩뿌려졌다. 리안은 침상에 기대앉아 헤일라를 안은 채로 낮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에 깔려 있던 여유로움마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지나친 욕정과 흥분만이 리안을 움직이게 했다.
흐려진 눈을 하고 입도 다물지 못하는 여자가 사랑스럽다는 듯 뺨을 핥아 올리는 혀가 뱀의 것처럼 길었다. 리안은 헤일라를 다리 위에 올린 채로 다시 손을 움직였다. 구멍에서 빠져나와 둔덕을 활짝 벌리는 손길에 여자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저도 모르게 반응하며 벗어나려 하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얌전히.”
“흐, 아아, 힘들, 힘들어요, 힘들어요…….”
리안의 입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샜다. 헤일라는 이제 애원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이성이 마비됐다. 그 모습이 자못 사랑스러워 볼에 입을 찍어 누르자 고개를 돌려 허겁지겁 입을 맞춰 왔다. 며칠간 시달리며 몸이 배운 바가 있는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라, 입술을 문대고 혀를 내밀어 휘젓는 정도에 그쳤지만,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대견해 둔부를 꽉 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했어.”
“흐, 아앙…… 아아앙…….”
“조금만 더 하자. 좋아하는 거 해 줄게.”
리안의 손가락이 다시 작은 공알 주변을 문지르고 동시에 다른 쪽 손의 손가락이 작은 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섰다. 힉힉대는 소리와 함께 얇은 허리가 튀어 올랐다.
“아으, 흐으, 못, 더 못해요, 못하겠어…….”
“이런.”
“쉬, 쉴래, 쉬고 싶어, 힉…….”
“쉬고 싶어?”
“으응, 응, 응…….”
쾌락에 취해 풀린 눈으로 고개만 열심히 끄덕인다. 리안은 헤일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힘주어 꽉 안았다. 며칠 동안 반수면 상태로 미음과 물만 마신 여인의 몸은 아주 얇았다. 그럼에도 찝찔한 남녀의 땀 냄새와 정사로 인한 온갖 음란한 체액들이 섞여 만들어 내는 헤일라의 체취는 지독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엎드려.”
탁한 한숨을 뱉은 뒤 다정함을 벗어던진 리안이 명령했다. 흡사 엄격한 훈련사 같기도 했고, 소동물을 가차 없이 찍어 누르는 포식자 같기도 했다. 헤일라는 우우, 하고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어기적어기적 몸을 움직였다. 혹독하게 훈련한 결과였다. 삽입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녀도 은연중에 학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취하라는 자세는, 너무…….
“더.”
“으…… 아…….”
헤일라는 엎드렸으나 두 손으로 앞을 짚지 못했다. 배운 대로, 엉덩이와 음부를 힘껏 벌려야 했기 때문이다. 수북한 체모를 비집고 앞쪽 구멍을 벌린 뒤 다른 손으로 오른 둔부를 슬쩍 가르는 손이 달달 떨렸다. 푹신한 베개에 박힌 얼굴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더 벌려.”
그럼에도 여전히 가혹하기만 한 남자는 거칠게 명령했다. 헤일라의 수치심, 아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완전히 뭉개는 방식으로 그녀를 길들이는 남자다웠다.
헤일라가 첫 경험을 대가로 그와의 이별에 관해 이야기한 뒤, 리안은 마지막 방어선이 허물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방어선은 포악하고 잔인한 자신에게서 헤일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행복한 헤일라를 가지기 위해서.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헤일라는 자신의 손으로 리안 휴리트라는 폭탄을 터트렸다.
요컨대, 리안은 완전히 돌아 버린 상태였다.
“옳지.”
그제야 만족스러울 정도로 활짝 쪼개진 두 덩어리 사이에 옴찔대는 구멍이 귀여웠다. 리안은 잘했다며 헤일라의 등허리에 입 맞췄다. 불뚝 선 성기의 선단을 엉덩이 사이에 슬쩍 비비자 여체가 바짝 굳는다. 이 무자비한 남자가 혹시나 저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하지 마, 으응, 거기, 시러…….”
리안은 잠시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으로 헤일라의 몸을 훑다가 이내 다시 상냥한 투로 말했다.
“그래. 오늘은 착하게 굴었으니까 힘든 거 안 해.”
자비로운 목소리에 헤일라의 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흐아앙!”
그리고 곧바로 질구가 꿰뚫렸다. 단숨에 뿌리 끝까지 치고 들어온 성기가 유약한 자궁구를 밀어 올렸다. 이미 그가 싸질러 놓은 정액들이 삽입을 도왔으나 억센 자극을 견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리안은 입술을 벌리고 발발 떠는 하얀 여자의 목덜미와 어깨선을 핥듯이 관음했다. 다닥다닥 달라붙어 뜨끈한 정액을 갈구하는 내벽에 영영 나를 파묻고 싶다. 짙은 황금색 동공이 광기 서린 남자의 얼굴을 반사해 비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참지 말걸.”
“흐, 우으, 흣…….”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리안이 툭 튀어나온 골반을 가볍게 쥐었다. 동시에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덩어리진 모양으로 흘러내렸다. 불쾌한 배설감에 헤일라의 손이 아래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녀는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른 채 팔을 얼굴로 가져다 대고 훌쩍였다. 리안의 규칙적인 움직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터억, 터억 소리가 과하게 커져 갔다.
“찔끔찔끔 맛만 봤던 게 돌아 버릴 정도로 후회돼.”
“욱…… 으윽…….”
“자지 껍질이 벗겨졌을 때부터 널 찾아서 박아 넣었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씹어 뱉은 말은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저가 뭐라 지껄이는지 몰랐다. 그만큼 강렬했으며 광막한 감각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려 하기 전에 먹어 치웠어야 했는데. 처음 봤을 때 목덜미를 낚아채 꼼꼼히 살라 먹어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맛있는 게 제 손에서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거친 손길에 헤일라의 몸이 뒤집혔다. 삽입한 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안쪽 깊숙한 곳이 쓸려 신음이 셌으나 소리는 곧 흩어졌다. 리안이 두 손으로 헤일라의 양 볼을 거칠게 잡고 깊이 입을 맞췄다. 일방적으로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입천장을 훑고 여린 살덩이를 빨아 삼켰다. 간신히 호흡하던 경로를 틀어막고 거칠게 허리를 놀려 저를 박아 넣었다. 음모끼리 비벼져 까끌대는 자극마저 미치게 좋았다.
“아앙, 하아, 아아!”
“여기, 좋아하지?”
“아니, 아니이…… 힉!”
“거짓말.”
허리를 아래로 놀려 질구 아래를 늘이듯 압박하면서 자궁구에서 조금 빗겨 간 지점으로 올려 치자 헤일라가 자지러졌다. 오래도록 집요하게 여체를 탐음해 알아낸 자극점이었다. 그는 만족감이 들어찬 눈으로 들큼한 냄새가 밴 가슴을 쪽쪽 빨아 주었다. 계속되는 자극에 바들대는 쪽은 헤일라뿐이었다.
“또 숨어 버렸어.”
리안이 다시 함몰된 유두를 보고 불만스러운 투를 가장했다. 기실 그는 작고 동그란 유두를 입으로 뽑아내는 걸 아주 좋아했음에도. 그녀에게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가슴을 쥐어짜듯 압박한 뒤 입술을 대서 주욱 빨아 들인다. 헤일라의 안쪽이 바짝 졸아들어 귀두부터 뿌리까지 전부를 쥐어짰다.
“하으으으…….”
“흣…….”
결국 먼저 절정에 달한 헤일라의 몸에서 힘이 죽 빠졌다. 리안은 자극된 성감에 헤일라의 가슴에서 입을 떼고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환이 여린 둔부에 부딪히면서 매 맞는 소리가 났지만, 내장이 짓눌리는 고통에 허덕거리는 여자는 피부에 느껴지는 고통을 몰랐다.
꺽꺽대며 바동거리는 여자와 엉덩이에 골이 파일 정도로 가혹하게 움직이는 남자는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행위가 끝났을 때에도, 리안은 헤일라를 꽉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 * *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뜨기가 유독 힘들다. 헤일라는 코끝을 찌르는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뒤척였다. 이 냄새는 뭘까 잠시 고민하다가 언젠가 고급 살롱에서 일할 때 맡아 본 값비싼 향유 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이런 거 좋아하는데. 헤일라는 반사적으로 레테를 떠올렸다. 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어나야 하는데, 얼른 언니한테 줄 아침을 차려야…….
“아.”
무언가에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헤일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제야 이제껏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몽롱함을 단번에 물릴 만큼 강력하고 충격적인 일들.
‘아흐으으, 그만, 하앙, 리안…….’
‘쉬이, 착하게 굴어야 쉬지. 응?’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다시 온갖 색들이 터졌다가를 반복했다. 기분이 좋았다가 푸욱 꺼졌다가, 하늘을 나는 것 같다가 땅에 처박히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에 리안이 자신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의 첫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이렇게 그가 제멋대로 하는 걸 원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애원하며 매달려도 결과는 같았다. 도망치려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잡히면 더 혹독한, 입에 담기조차 수치스러운 행동을 강제당했다. 그는 탐하고, 탐하고, 탐해서 헤일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