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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뽑힌 자리-16화 (16/97)

16화.

철컥대는 소리가 울리고 하의가 벗겨짐과 동시에 그의 성기가 퉁겨져 나왔다. 헤일라 또한 처음으로 그의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잊고 멀거니 그의 성기를 응시했다.

“어, 어, 어, 어, 그거…….”

흉측하다고 느낄 정도의 크기. 입에도 다 넣을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몸의 그 어디와도 맞물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헤일라는 겁이 와락 나서 훌쩍였다. 리안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 보면 조금 상처받는데…….”

“어, 아냐, 안 돼, 안 되는 거…….”

잠시 아래를 내려다본 남자는 꺼덕거리다 못해 제 뱃가죽에 닿아 있는 살덩이를 손으로 훑었다. 검붉은 기둥에 투두둑 불거져 있는 퍼런 핏줄들이 흉한 인상을 주기는 했다. 그래도 좆의 생김새는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조금 억울함이 올라왔지만 헤일라를 달래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미 멈출 수도 없었다.

“미안해, 헤일라 건 다 예쁘기만 한데 내 자지는 흉해서.”

그래도 금방 좋아하게 될 거야. 리안은 발긋한 눈가를 휘면서 붉게 달아오른 뺨에 짧게 입 맞췄다.

“조금만 참자.”

리안이 입을 떼고 은근하게 속삭였다. 머릿속이 충격으로 푹 퍼져 빠르게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여자의 동공이 확장됐다.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커다란 귀두가 미끌대는 질구를 관통해 경계를 넘고 있었다. 칼로 생살을 가르는 아픔이 헤일라의 아래를 짓이겨 놓았다.

“흐, 아아! 아악!”

“쉬이, 아픈 건 금방, 끝나.”

“아, 리안, 리안! 아파! 아파아!”

그는 여전히 유한 음성으로 여체를 도닥이고 있었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흑색 눈동자는 여자와 완전히 결합한 것에 대한 음험한 만족감을 여과 없이 내비쳤다. 자비 없이 내벽을 넓히는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흐, 흐아, 아아…….”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기둥은 하반신이 벌벌 떨리도록 만들었다. 헤일라는 쉼 없이 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리안, 리안, 하고 애처롭게 울어 대는 여자의 음성은 한계까지 확장되어 빠끔거리는 그녀의 아랫구멍만큼이나 그를 자극했다.

“나 못, 하, 으응, 못하겠어…….”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몸짓이 리안의 손에 막혔다.

“다리 닫으면 혼나.”

그는 여자의 무릎을 잡아 빼고 허벅지 아래를 눌러 다리를 들게 만들었다. 해부당하는 개구리처럼 몸이 열려 아래가 훤히 보이는 자세에도 수치심이 들고 일어날 새가 없었다. 리안이 순식간에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쑥, 하고 무언가 빠지는 듯,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배꼽 아래에 퍼졌다.

“아, 아, 아으, 흐…….”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입만 빠끔빠끔 댄다. 꼭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처참한 얼굴이었다. 리안은 그 모습이 가여우면서도, 또……

미치게 좋았다.

“헤일라.”

그녀의 우둘투둘한 내벽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기둥을 조이고, 귀두 구멍까지 감싸 품었다. 힘겹게 오물오물 삼키는 아래가 꼭 귀여운 헤일라 본인과 닮았다. 리안은 점막을 스치는 모든 감각을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잠시 여체를 꽉 안고 멈춰 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남자가 움직이는 대로 숨소리 하나까지 휘둘리며 할딱였다.

“헤일라, 헤일라, 헤일라.”

내장이 짓눌려 배 안쪽이 엉망으로 짓이겨지는 감각에 헤일라가 힉힉거리며 침상을 더듬었다. 그런 여자가 가여울 법도 하건만, 리안은 허리를 뒤로 뺀 뒤 다시 강하게 쳐올렸다. 그리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여자의 이름만 반복해서 읊었다.

헤일라의 얼굴이 눈물과 타액으로 점차 흐려졌다. 남자는 그저 박고, 박고, 박다가 여자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찌그러진 눈에서 나오는 눈물까지 샅샅이 핥으며 흘레붙었다.

“흐앗!”

“윽.”

순간 헤일라의 내벽이 강하게 수축했다. 쾌감 한 점 받아먹지 못하고 가혹한 두께의 양물에 학대당하던 여체가 찌릿한 감각에 튀어 올랐다. 리안은 홀린 듯 그녀가 반응한 지점을 다시 찔러 넣었다. 이불보만 쥐고 있던 손이 그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절벽 끝에 다다른 사람처럼 절박한 얼굴이었다.

“괜찮아, 응? 조금만 힘 빼 봐, 아, 제발…….”

“힉, 히익, 시, 싫…….”

어르는 음성이 작위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리안은 헤일라가 반응하는 안쪽을 부드럽게 누르고 비비면서 자극했다. 어깨를 밀어내는 손을 잡아채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핥아 대는 행동들이 가증스러울 정도로 다정했다.

“아앙……!”

결국 헤일라의 배가 둥그런 모양을 띠며 튀어 올랐다. 착해. 리안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휘었다. 쾌감에 표정이 풀려 턱 끝이 떨리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참 동안, 교접 부위에 포말이 일 정도로 오래 정사를 이어 나갔다.

* * *

“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소. 검을 주시오.”

“제발, 리어, 제발 멈추어요.”

묵직한 선율과 함께 예스러운 구색을 정갈하게 맞춘 주인공들이 무대를 누볐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극의 분위기에 맞춰 수십의 연주자들이 사력을 다해 가락을 짜낸다.

“아아! 그대의 구슬이 우리의 사랑만치 빛나고 있어요. 나는 이제…….”

단 한 명을 위한 무대의 마지막 대사였다. 탐스러운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은 벨벳 카우치에 눕듯이 앉아 여주인공을 지켜봤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가 노란 조명을 받아 더 매끄럽게 빛났다.

“당신과 하나 되는 것이겠지요…….”

연인을 잃은 비운의 여인이 구슬을 삼킨 채 쓰러졌다. 그것으로 두 번째 막이 내린 공연장에는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마지막 막을 남겨 두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임에도, 극의 하나뿐인 관객은 미동조차 없었다.

“폐하.”

지루한 공연의 이 막이 끝나자 갖은 인내심을 끌어모아 입을 닫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베르디안이었다.

“……벌써 경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었나 보군.”

베르디안은 능구렁이처럼 거짓말을 일삼는 황제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도 세워 둔 장본인이면서 미처 몰랐다는 얼굴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공연단을 죄다 독점해 혼자 즐기는 악취미도 그다지 고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살갑게 말을 거는 베르디안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미안하게 됐어. 그냥 부르지 그랬나?”

“아닙니다. 제국의 태양을 뵙는 자리인데, 기다리는 것 또한 기쁨이지요.”

입에 발린 말이 듣기 나쁘지는 않았는지, 페이네리아는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그래, 내 조카님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들어 볼까.”

페이네리아는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황족 특유의 여유로움과 고아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베르디안을 보면서 눈꼬리를 휘었다. 보고를 시작하라는 의미였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저가 알고 있는 바를 읊었다.

“여전히 신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헤일라라는 여인을 끼고?”

“……예.”

“단단히 씌었나 보구나.”

그녀는 꽤 유쾌하다는 투였지만 베르디안은 황제의 심기가 얼마나 어지러운지 잘 알았다. 그런 만큼 더 이상 첨언하지 않았다. 대신에 리안이 황제에게 쓴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올해 안에 모두 끝내겠다……라.”

흰 종이에 적힌 정갈한 글씨를 모두 읽어 내린 황제는 손가락을 들어 시종을 불렀다. 시종은 황제가 보는 눈앞에서 곧바로 편지를 태워 재로 만들었다. 제 아비를 올해 안에 죽이겠다는 조카의 서신을 굳이 세상에 남겨 둘 이유는 없었다.

“내 조카님은 참으로 배짱이 좋아. 아니 그런가, 루데인 경.”

미간을 모은 채로 웃는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의뭉스러웠다.

“짐을 상대로 이리 여유로워서야.”

“방만함을 꾸짖으실 셈이십니까?”

고저 없이 물었으나, 그 얼굴에 피어난 감정은 명백한 기쁨이었다. 약간의 희열 또한 묻어 있음을 페이네리아도 모르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유희만 쫓는 남자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베르디안은 지난 며칠간 리안의 뒤를 봐주며 참아 왔던 지루함이 싹 가실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붕 떠올랐다.

어떤 식으로 벌을 주려나? 리안을 버리는 패로 쓰는 쪽이 가장 흥미롭겠지만, 여동생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했던 황제이니만큼 그 아들인 리안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낮았다. 오히려 헤일라라는 여자를 숨기거나 처리하는 쪽이 더 말이 된다. 혀를 살짝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은 베르디안이 다시 자연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아직은.”

그러나 그의 소망은 황제의 한 마디에 땅에 처박혔다. 페이네리아는 긴 머리를 손으로 꼬았다.

“거진 이십여 년을 기다렸다.”

“…….”

“몇 달 더 인내하는 일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믿고 있어.”

“리안 휴리트를 말입니까?”

그 미친놈을? 베르디안이 뒷말을 애써 삼켰다.

“타델리아의 아들을.”

“…….”

“내 자매의 아들이, 그녀의 복수를 매듭지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오싹. 베르디안의 목덜미에 소름이 일었다. 페이네리아가 히죽 웃는 얼굴은 지독히 아름다우면서도 괴이쩍었다. 하루 이틀 쌓아 온 광기가 아니라는 의미겠지. 방금까지 맛봤던 좌절감이 순식간에 휘발되고 그의 속에 만족감이 추적추적 쌓였다. 역시 이 여자도 재밌는 구석이 한가득이었다.

페이네리아 라이노라 로프라노프. 리안의 어미인 타델리아 공주를 타센 공작에게 빼앗긴 뒤, 제 남자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관을 쓴 여인.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에게도 애정 한 톨 나눠 주지 않으면서 죽어 버린 자매에게만 집착하는 황제.

그녀가 타델리아에게 가지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젠가 베르디안이 이에 관해 물었을 때, 라베이츠 황태자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며 진저리를 쳤었다. 황제가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델리아 공주보다 자신의 가치가 아래임을 잘 알고 몸을 사렸다.

“어제 또 꿈에 그 애가 나왔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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