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이 뽑힌 자리-15화 (15/97)

15화.

“부끄러워?”

그는 눈물이 맺힌 눈을 보고 수치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물었다. 정작 모욕을 받은 사람처럼 이를 악물고 있는 것도 그였지만.

“한 번 먹고 떨어지라고 한 건 너야.”

한기가 스민 말투였다. 리안은 미아르가 나간 직후, 헤일라가 저에게 했던 말을 토시 하나 빼먹지 않고 기억했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 없어.”

훌쩍거리면서도 막힘없이 제 할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억울한 모양이다. 그러나 리안은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걸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날 좋아한다고 했어. 그래서 몸은 섞고 싶은데, 여길 나가면 헤어지자고 했잖아. 틀려?”

딱딱했던 음성에 감정이 섞이고 있었다. 용암의 기포가 폭, 폭 터지는 소리가 헤일라의 귓가에 환상처럼 울렸다.

“이런 눈으로.”

순식간에 잡힌 볼이 그의 한 손안에 모두 들어왔다. 꽉 잡힌 탓에 입이 조금 벌어졌음에도 리안은 금안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헤일라는 그의 분노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서러워져서 입 안쪽의 살을 깨물었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남자가 미웠고 또 그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한 자신의 멍청함이 싫었다.

그래도 제 말을 물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헤일라는 리안의 첫 여자가 되고 싶었다. 욕심이었지만 그랬다. 영영 헤어질 날이 머지않았는데, 이대로 그와 헤어지면 금세 잊힐 게 분명했다. 언니 말대로 영원한 건 없으니 리안처럼 조건이 훌륭한 남자라면 좋은 여자를 만나 언젠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테다. 너무 당연하고 뻔해서 비참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첫 관계를 맺어서라도 마음속에 남겨 두고 싶었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나를 잊지는 않았으면.

참으로 이중적이고 몰염치하다. 알면서도 그에게 요구한 건 자신이다. 이건 살면서 한 번도 부려 본 적 없는 욕심이라는 것이었다. 미아르가 자극한 헤일라의 간헐적인 욕망은 훌륭한 방식으로 리안과 헤일라 사이를 파고들었다.

“……네 말이 맞아.”

“맞다고?”

흡사 으르렁거리는 맹수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그러나 헤일라는 그에게 얼굴이 잡힌 채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너랑 자고 싶어. 하고…… 싶어.”

“…….”

“한 번은 하고 끝내고 싶어.”

그리고 이후에는 보지 말자. 작게 덧붙인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을 고르느라 얇은 천 안에 가려져 있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

오랜 침묵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헤일라의 가슴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기쁜지 슬픈지 알 수가 없었다. 눈꺼풀을 들어 그를 마주했다. 관계 중에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을 작정이었다.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리안의 눈이, 조금…….

리안은 헤일라의 오목한 배 양옆에 제 무릎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가녀린 상체가 눌리지 않도록 몸을 띄운 상태로 채 벗겨지지 않은 헤일라의 윗옷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방금보다 훨씬 신사적인 태도였다. 그녀는 일순 느꼈던 기괴한 위화감을 금방 잊었다.

“네가 그걸 원하면…….”

“흣…….”

“난 뭐든 하는 병신이니까.”

너도 알지? 리안은 가는 목덜미를 주욱 핥으며 속살거렸다. 파드득 떠는 몸체는 리안의 등에 가려 뒤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완전히 잡아먹히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한 번 하면 못 멈추는데, 괜찮아?”

그건 헤일라도 바라는 바였다. 그녀는 오늘 리안의 처음을 완전히 가지고 싶었다. 순진한 처녀는 그쪽이 저에게 좋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리안이 멈추지 않는 게 첫 관계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의 정상적인 사고로는 추론해 낼 수 없는 정보였다.

어쨌든, 당연히 괜찮다는 씩씩한 대답을 얻어 낸 그는 묘하게 안쓰러움을 느끼는 사람처럼 여자의 머리며 이마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손길을 받으며 그녀는 리안에 대한 죄책감을 누르려 부단히 애썼다.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고 헤일라의 옷이 완전히 벗겨졌다. 치마만 들쳐 두었던 방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투명하다고 느낄 정도로 하얀 피부와 동그란 어깨선이 유독 도드라졌다. 리안은 헤일라가 겨우 가슴만 가려 둔 몸을 샅샅이 훑었다. 만지고 핥는 접촉보다 시선이 닿는 게 더 강렬한 자극처럼 느껴졌다.

“손 치워야지.”

이제 와 별 고집을 다 부린다는 투였다. 리안은 그대로 제 윗옷을 훌렁 벗어 침대 아래로 던졌다. 그런 뒤에 바로 자신의 가슴을 어설프게 가리고 있던 작은 손을 잡아 치워 버렸다. 헤일라는 남자의 몸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로 파드득 떨었다.

“하…… 끝내주네.”

차가운 공기에 발딱 서 있을 법도 한데, 그녀의 젖꼭지는 옅은 색소가 퍼진 유두 안쪽에 푹 빠져 있었다. 가슴에 집중된 리안의 시선을 느꼈는지 헤일라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릴 적부터 민감하게 여겼던 치부를 들킨 기분이었다.

“예뻐.”

다시 가슴을 가리려고 하는 헤일라를 저지하며 리안은 퉁명스러웠다. 기분은 저조한데 쓸데없이 어여뻐서 불만이 그득한 얼굴이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아래에서 위를 쥐었다가 쏙 들어간 유두 끝을 뭉근하게 돌려 누르니 등허리가 약간 휜다.

“흐…… 거긴 싫…….”

리안은 거부를 흘려들을 채로 함몰된 유두 주변을 마사지하듯 주물럭댔다. 보드라운 정점은 존재를 드러낼 듯 말 듯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는 세상 아름다운 걸 보는 눈으로 유륜을 쓰다듬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위에 입을 가져다 댔다. 기겁한 쪽은 헤일라였다.

“아아!”

살점이 사정없이 빨렸다. 흡입되는 정점에 열감이 몰리면서 아랫배가 확 죄는 감각이 선연했다. 남자는 난잡한 소리를 내면서 가슴을 빨다가 입에 가슴을 한가득 문 채로 헤일라를 올려다봤다. 눈이 맞았다.

탁한 눈동자가 유려한 곡선으로 휘어졌다.

그는 보란 듯이 입을 떼고 저가 빨아 들이던 살갗을 혀로 핥아 올렸다. 헤일라는 그가 종용하는 대로 그곳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나오니까 더 예쁘다.”

함몰되어 있던 꼭지를 기어이 빼낸 남자는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다른 쪽도 해 줄까?”

반절은 진심, 반절은 희롱이었다.

히끅.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샜다.

이런 건 이상해. 중얼거리려고 했는데 목이 막혀 색색 소리만 나왔다. 헤일라는 이런 변태적인 행위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남녀 간의 섹스는 그저, 그저 거기에 그걸 넣고, 또 그거를 조금 흔들다가 끝나는 거라고…… 꼴딱꼴딱 넘어가는 침이 그녀의 혼란을 대변했다.

“그래. 여기는 조금 이따가.”

뭘? 헤일라는 멍청하게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그대로 먹혔다. 큰 손이 작은 뒤통수를 잡아 가뒀다. 얽어내는 입술에는 자비가 없었다. 이제까지의 귀여운 입맞춤은 연기였다는 듯 도톰한 입술을 빨아 들이고 깨물다가 안쪽으로 진득하게 파고들었다.

숨이 막혀서 눈물이 줄줄 흐를 때가 되어서야 리안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그가 뉘어 준 대로 베개에 파묻혀 숨만 색색 흘리는 여자를 감상했다. 입가에 타액을 잔뜩 묻히고 벌건 눈가에 눈물은 그렁그렁 달고 있으면서, 헐벗은 가슴은 한쪽만 잔뜩 빨려 퉁퉁 불어 있다. 귀여운 젖꼭지는 그가 살살 달래 꺼내 놓은 것 하나만 비죽 솟았다.

그 난잡한 모습이 남자의 흥분을 부채질했다. 헤일라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리안의 혀가 살짝 내밀어져 그의 윗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 * *

리안은 우아한 손짓으로 병의 꼭지를 따고는 진득한 액체를 제 손 위로 쏟았다. 엄지와 검지를 마찰한 뒤 천천히 간격을 넓히니 쩌억 소리가 나며 죽 늘어났다. 아래에서 그걸 지켜보던 헤일라가 바르르 떨었다. 겁을 먹은 소동물 같은 표정이다.

“그, 건…… 뭐야?”

“아, 이거.”

그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진즉 벗겨 낸 헤일라의 갈라진 둔덕 쪽을 내려다봤다. 미처 다리를 오므릴 생각도 하지 못한 여자의 왼쪽 다리를 낚아챈 리안이 능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훤히 벌려진 다리 사이. 보슬보슬한 음모를 한 번 쓰다듬자 헤일라가 그러지 말라고 웅얼거렸다.

“괜찮아. 안 아프게 해 주려는 거야.”

쓴 약을 먹이기 전 아이를 달래는 말투다. 친절하지만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는.

“흐, 으응…….”

리안은 손을 여자의 가랑이에 얹고 두 엄지로 음부를 활짝 벌렸다. 도톰한 살덩이가 결대로 갈라지며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속살을 내비쳤다. 그는 잠시 동안 넋을 놓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데 열중했다.

“그렇게 보지 마…….”

수치심에 발발 떨면서도 모든 게 처음인 헤일라는 그저 몸을 내맡겼다. 귀까지 벌게져 울먹울먹하는 모습이 더러운 가학심을 충동질했다. 분명히 보드라울 살 주름을 핥아 올릴까, 하는 고민이 그를 덮었다.

뒷구멍까지 졸아들 정도로 기겁하면서 엉엉 울겠지.

리안은 충동을 내리누르며 욕망을 갈무리했다. 앞으로 즐길 날이 많은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입술을 갖다 대는 대신, 헤일라의 선홍빛 음부에 윤활제를 치덕치덕 문댔다.

“하아…… 으응!”

손가락은 느리게 움직이며 조그마한 구멍 위를 살살 돌리고, 또 그 위로 더듬더듬 올라가 툭 튀어나온 알맹이를 뭉그러트렸다. 헤일라는 생에 처음으로 듣는 자신의 교성에 놀라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짓궂은 손끝은 구멍 안을 건드리지 않고도 자극점을 찾아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질질 흘러, 헤일라.”

“흣, 아냐, 아니…… 아아!”

“아까워. 정말, 맛있을 텐데.”

옴칠대는 구멍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던 리안이 고개를 꺾어 들어 시선을 마주해 왔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허락을 구하는 신호. 헤일라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다리를 오므리려 바동댔다. 결국 가볍게 웃으며 물러난 쪽은 리안이었다.

사실은 이제 그도 참기가 힘들었다. 빳빳하다는 감각만 존재하던 아래가 이제 얼얼했다. 선단에서 쿠퍼액이 질질 새는 바람에 아랫도리가 꿉꿉해진 지 오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