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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뽑힌 자리-6화 (6/97)

6화.

“수거할 애들도 생각해 줘야지.”

베드디안은 낄낄대면서 마음에 없는 말을 뱉었다. 그 또한 정상은 아닌지라, 이런 광기 짙은 순간들이 견딜 수 없이 즐거웠다. 소금에 절여진 미꾸라지처럼 팔딱거리는 고깃덩이의 다리 사이에 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

“미안.”

리안은 베르디안의 타박에 성의 없이 사과했다. 기척 없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베르디안의 수하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가뿐하게 일어서서, 남자의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피 냄새가 밴 공기가 다시 폐부에 들어찼다. 헤일라의 말간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시에 괴물의 피가 흐른다는 아비의 저주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물론 환상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죽 웃은 리안은 피로 절여진 몸을 씻기 위해 동굴을 나섰다. 아마 그는 살육을 저지른 밤이 다 가기도 전에 헤일라의 침상 옆에 자리할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 * *

리안은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의 나무 문을 잡아 열었다. 기름칠이 덜 된 문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다행히 이 집에 사는 자매들은 잠귀가 아주 어두운 편이라, 누구 하나가 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리안은 저가 머무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헤일라에게로 향했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문을 여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여자는 곤히 자고 있었다. 꼭 이불을 덮고 베개에 오른쪽 얼굴을 파묻고 자는 게 습관인지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다. 말랑한 볼이 보드라운 천에 눌려 입술 모양이 오므라든 게 가슴을 간질일 정도로 어여뻤다.

약간 드러난 얼굴은 달빛이 반만 비추어도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아래, 이불 위로 나붓하게 휘어진 굴곡이 그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낮에 보았던 동그란 가슴이 저도 모르게 그려졌다.

리안은 천천히 이마 선을 쓰다듬다가 눈 옆을 문질렀다. 반짝거리는 금발 때문에, 헤일라는 태양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모래알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실선의 감촉을 아끼면서 여자의 머리카락 한 움큼에 입을 맞추었다.

“하…….”

아래가 도독하게 차올라 있었다. 리안은 헤일라가 새근거리며 내쉬는 숨이 닿는다는 상상만 해도 서는 사내였다. 그는 침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제 바지를 내렸다. 퉁겨져 나온 성기는 이미 투명한 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리안은 종종 하던 대로 헤일라의 무구한 얼굴을 앞에 두고 수음할 작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바지춤에서 삐져나온 투박한 천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낮에 그녀에게서 받았던 손수건이었다. 그걸 들어 제 코끝에 가져다 대니 헤일라의 품 안에서 나는 깨끗한 향기가 퍼졌다. 손안에 있는 성기가 점점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흐읏…….”

리안은 그 천으로 제 아래를 감쌌다. 꼭 헤일라가 작달막한 손으로 자신을 자극하고 있다는 착각이 일었다. 볼에 오도독 소름이 돋으면서 눈 아래가 발긋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위아래로 놀리면서 엄지로 귀두 끝 구멍을 깔짝거렸다.

헤일라가 직접 벌려 쑤셔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멀었다. 리안의 목에서 신음이 샜다. 아무리 오래 기둥을 쓸고 쥐어짜도 쉽게 다다를 수가 없었다. 그는 헤일라의 침대에 얼굴을 묻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부볐다. 그녀의 향기가 더 필요했다.

“아, 헤일라…….”

으음. 그때 헤일라가 뒤척거렸다. 리안은 침대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인 채로 제 한 손과 방정하지 못한 아랫도리를 가렸다. 헤일라의 촘촘한 속눈썹이 팔랑거리면서 선명한 금안이 드러났다. 그녀는 제 침상 옆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남자를 보고도 그다지 놀란 낯이 아니었다. 리안의 방은 외풍이 심해서, 추운 날이면 그는 종종 헤일라의 방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아파……?”

잠에 푹 빠진 목소리가 몽롱했다. 헤일라는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리안을 보고는 열이 오르는 거냐고 물었다. 꿈과 현실 그 어딘가를 착각하며 웅얼거리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아니, 그냥 추워서. 나 오늘 여기서 잘래.”

“응…….”

그녀는 배시시 웃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리안은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꺼덕거리는 제 성기를 쓸었다. 잔뜩 새어 버린 투명한 물 때문에 축축해진 손수건은 윤활제처럼 그의 움직임을 도왔다. 척척대는 소리가 조금씩 방 안을 울렸다.

헤일라의 눈이 다시 뜨이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찌릿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아…… 헤일라.”

“으응?”

“손수건, 못 쓰게 됐어.”

리안이 정액 범벅이 되어 버린 손수건을 손으로 주무르며 생긋 웃었다. 허연 액체가 나무 바닥에 느릿하게 떨어졌다. 비린 향이 조금씩 올라온다. 이 천진한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찡긋거리면서 웅얼거렸다.

“괜찮아.”

그리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리안은 나른하게 웃으면서 다시 침대보에 제 얼굴을 묻었다.

“헤일라…….”

인내하는 밤이 너무 길었다.

* * *

“아, 오늘은 사과가 좋다고 해서 이걸로 사 왔어. 엄청 달지?”

헤일라는 레테의 옆에서 조잘거리면서 한 입 크기에 맞춰 잘라 둔 사과를 포크에 찍어 주었다. 레테는 따분한 얼굴로 그걸 조금 받아먹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며칠 내내, 장 볼 때를 제외하고는 시중드는 동생이 옆에 있어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평소라면 시끄러우니 입 닫으라고 일갈했을 텐데 오늘은 그저 듣고만 있다.

“그리고 또 엄청난 소식도 들었어. 수도에 소문이 쫙 퍼졌다고 하더라고. 펠든 백작이라는 사람 이야기인데…….”

“신의 검을 쓴다고 선언한 사람 이야기라면 이미 알아.”

헤일라의 입이 조가비처럼 딱 다물렸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끔뻑대는 동생의 멍청한 얼굴에, 레테는 혀를 차면서 침대 옆 협탁의 일간지를 턱짓했다.

“이미 대문짝만하게 실렸어.”

“아아! 그렇구나.”

내내 집에만 있어야 하는 레테 때문에, 일간지는 항상 구해 두었는데 그걸 빠짐없이 읽고 있었나 보다. 레테는 일간지 쪽을 보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멍청한 놈이지. 배가 부르니 정신 나간 짓을 해 대는 거야.”

“음, 그래도 뭐…… 정말 좋아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최근 수도를 달군 이야기의 주인공인 펠든 백작은, 저가 구애하며 쫓아다니던 리아이 영애가 사랑을 받아 주지 않자 신전에서 검을 쓰겠다고 공적인 자리에서 밝혔다. 너무 충격적인 선언이었기 때문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신의 검은 세니르 신전에 꽂혀 있는 신의 전유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흑색과 백색이 오묘하게 섞여 칼날의 빛이 울렁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검이었다. 그것을 사용자의 심장에 꽂아 넣으면 상대를 향한 특정 감정을 구슬의 형태로 도려낼 수 있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물건 중 하나로 꼽혔다.

“구슬을 여자한테 바치겠다고 했다며? 그러다 숨넘어가 봐야 정신 차리지.”

레테가 푸석한 머리칼을 꼬아 넘기며 조소했다. 헤일라는 언니가 심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는 힘들어 입을 다물었다.

신은 전능하지만 자비롭지는 않아서, 자신의 신물을 허락 없이 사용한 인간을 용서치 않는다. 타론 제국의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신의 검을 사용하는 데 성공하면 원하는 감정을 없앨 수 있지만 검을 쓴 대가로 저주를 받는다. 상대를 향한 마음을 도려내면, 그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영영 느끼지 못하는, 감정의 영원한 소멸. 그것이 저주였다.

그러나 제 감정과 마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복수심에 치받는 이들이 종종 신의 검을 쓰겠다 나서고는 했다.

“안 죽을 자신 있으니까 일을 벌인 거겠지, 뭐.”

“흐응.”

그러나 귀족들이 사용을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진짜 문제는 실패했을 때였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거짓이어서 검을 쓰는 데 실패하면 그대로 심장이 꿰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검이 뽑힌 자리에 구슬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그래서 신의 검을 사용하는 의식은 제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제 목숨을 걸고 증명하는 사랑, 뭐 그런 건가…… 유치한데.”

레테는 나른하게 눈을 내리감다가 사과 하나를 더 포크로 찍어 건네는 헤일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말간 눈에는 다른 사심 따위 비치지 않았다.

“너는 어때.”

“응?”

“넌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

“뭘?”

“세니르 신전에 있다는 검.”

헤일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이내 언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물었다는 데 조금 감격해서 숨을 가득 들이켰다가 푸우, 하고 내쉬었다.

“음, 아니. 딱히 없어.”

“왜.”

“응?”

“……아냐.”

레테는 시선을 사선으로 긋고는 사과를 우물거렸다. 헤일라는 조금 갸웃거리다가 사과를 하나 더 깎기 시작했다.

“오늘 사람이 하나 왔던데.”

문득 생각이 났다는 말투였다. 헤일라는 움찔 떨다가 손에 쥐었던 큼직한 사과 하나를 떨어트렸다. 그 반응에 레테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는 동생이 긴장을 숨기는 데에는 재주가 없음을 잘 알았다.

“뭐야?”

“음…… 별건 아니고,”

“마을에 사람이 하나 없어져서, 그 가족들이 수소문하는 중이거든.”

둘 사이에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리안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문가에 섰다.

“미안. 너무 오래 안 나오길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리안은 토끼 눈이 된 헤일라를 보고 부드러이 덧붙였다. 언제나 레테의 방에서는 삼십 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는데 한 시간도 넘게 방 안에 있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리안은 몇 년간 레테의 횡포를 생생하게 지켜본 이였으니까.

“아, 응. 언니랑 이야기하느라.”

“하.”

그래도 이런 상황은 곤란해…… 헤일라는 레테와 리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를 봤다. 레테는 바짝 벼려진 시선으로 리안을 쏘아 봤다.

“멀쩡한 거 봤으면 알짱거리지 말고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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