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러다 문득 헤일라는, 몇 년 전 그에게 너는 결코 괴물이 아니라고 말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걱정 마, 기분 좋게 해 줄게.”
그랬다면 리안에게 괴물이라고 말하며 돌을 던질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엉망으로 그의 아래에 깔려서, 배신감에 절여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헤일라의 우두망찰한 얼굴을 감상하던 리안이 눈을 곱게 휘더니 여체를 아래로 끌어내려 두 다리를 위로 넓게 벌렸다. 두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다리를 들어 올리자, 그녀는 해부된 채로 시장에 널려 있는 생선이 된 것 같았다.
“아, 아아, 리안…….”
“곧 여기 맛있는 물이 찰 거야.”
리안은 구멍에 대고 숨을 뱉으며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옴찔대며 떨리는 음부는 조그마하고 귀여웠다. 제 것 하나 받기도 버거워하는데 애를 빼낼 수 있을지 걱정이 일었지만, 그것은 우선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헤일라의 아래에 입술을 묻었다.
“하읏!”
“움직이지 마. 흐르잖아, 아깝게.”
물렁하다가 꼿꼿하기를 반복하는 살덩이가 음부 전체를 핥고 빨아 들였다. 혀로 옅은 주름들을 쓰다듬으면서 손은 가랑이를 도닥거렸다.
힘이 풀리다가 바짝 들어가며 액을 뱉어 내는 아래가 느껴져 수치스러웠다. 헤일라의 얼굴이 축축해졌다. 수치를 모르는 몸은 그가 원하는 애액을 착실하게 내뱉었다.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하지만 이런 사고도 학습된 쾌감에 금세 옅어졌다.
“아, 아흐, 아앙……!”
리안은 이제 콧날을 벌어진 틈에 파묻고 미끈거리는 회음부를 지분거렸다. 달뜬 교성과 질퍽거리는 소리만이 방을 울렸다. 그는 손을 내려 제 성기를 쥐었다. 눈을 내리감고 위로는 헤일라의 음부를 빨아 먹고 아래로는 그 음부 안으로 삽입하는 망상을 피워 내며 수음했다. 엎드려 행하는 꼴이 꼭 짐승과 비슷해 보였다.
“아, 헤일라, 헤일라…….”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은 투명한 액체로 엉망이었다. 그는 제 시선을 빗겨 가는 여자를 응시하다가 급히 입을 맞추어 얽어 두었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타액에 애액이 섞여 있는지 찝찌름한 맛이 났다.
그것이 역겹다고 생각한 순간 거대한 남근이 질구를 천천히 넘었다. 안이 빠듯하게 차오르는 감각에 습윤한 아래가 조물조물했다. 일순 헤일라의 동공이 확장됐다.
“으, 으웃, 안…… 안 된다고…….”
“조금만, 아, 조금만…….”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흩뿌렸다. 평소보다 얕은 삽입만이 그의 실낱같은 참을성을 방증하고 있었다. 뭉툭하고 거대한 성기가 꿈질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피가 아래로 쏠리는 것 같았다. 벌름대는 질구가 리안의 성기를 착실하게 조인다.
남자의 축축한 눈이 저에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절망이 핥고 지나간 자리가 희게 질려 눈앞이 흐려졌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헤일라.”
그때, 망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자 언니가 침대에 손을 올린 채 재미있다는 얼굴로 생긋거리고 있었다.
레테. 입을 달싹여 속엣말로 혈육의 이름을 불렀더니 레테는 더 천진한 얼굴이 되었다. 헤일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 위에서 헉헉대는 남자를 봤다. 흐릿한 잔상 속 그는 여전히 정사에 심취해 있었다.
“찔러. 그 방법뿐이야.”
언니의 음성은 여전했다. 레테는 쿡쿡대며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와 리안과 헤일라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으로 손을 뻗었다. 희끄무레한 손은 존재감 없이, 그러나 정확히 움직였다.
헤일라의 가슴, 심장을 감싼 표피 위를 가리킨 손이 새하얗다.
“여기를.”
지독했다.
01. 뱀 하나
“오백 다르트라뇨? 저번 달에는 백이면 됐잖아요!”
얼핏 분이 서린 목소리가 신전 앞 약재상에 퍼졌다. 길게 늘어진 줄 가장 앞에서 목까지 시뻘게진 계집애 하나가 두 손을 옹골지게 쥐고 따졌다.
“한 달 새에 다섯 배를 올리면……!”
“미안하지만 신전 방침이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를 지키는 노인은 매정하게 항의를 쳐 냈다. 귀찮음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에는 노련함마저 엿보였다. 그는 앞을 막고 서서 귀찮게 구는 여자애 뒤를 흘긋 살폈다. 소매가 다 닳아빠진 남루한 옷이 계집애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듬성듬성 무성의하게 잘려져 눈을 덮고 있는 덥수룩한 앞머리. 얼마나 추녀이면 저렇게 얼굴을 가리고 다닐꼬. 굳이 머리칼을 들춰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행색이 말도 아니었다. 노인은 짜증을 섞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안 살 거면 그냥 가지. 너 말고도 사려는 사람은 넘쳐.”
뒤를 보라는 듯 턱짓하는 몸짓은 얄밉기 짝이 없다. 계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면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세 시간 넘게 줄을 선 데다가, 약을 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리라. 눈 아래까지 수북이 덮인 앞머리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요.”
내민 돈은 칠백 다르트였다. 지루한 낯으로 앉아 있던 노인은 내밀어진 돈을 보고는 호오, 하고 다시 손님을 훑었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 건 둘째 치고, 웃돈을 얹어 주는 요령까지 익힌 걸 보면 보통은 아닌 여자였다.
약재상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약초나 환약에 잡초 같은 가짜를 섞어 양을 불리는 걸 아는 거다. 자주 거래하는 이들은 웃돈을 얹어 주는 방식으로 제대로 된 약을 얻어 냈다.
“제대로 된 거로 내놔요. 어머니가 많이 아파요.”
사실은 언니였지만, 이쪽이 동정심을 자극하기는 조금 더 쉬웠다. 노인은 알겠다며 주문받은 약재를 찾으러 뒤를 돌았다. 곧이어 약품을 담은 한 묶음의 보자기가 앞에 놓였다.
“13구역의 53번, 104번째 집이에요.”
그녀는 노인의 물음도 기다리지 않고 언제나 읊던 인적 사항을 늘어놓았다. 약을 사기 위해서는 살고 있는 집의 주소까지 하나하나 기록해야 하는 제국의 법도 때문이었다.
“이름.”
“이름은 필요 없었잖아요.”
“신전.”
얼핏 계집의 입에서 심한 욕설 비슷한 것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노인이 고개를 들기 전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헤일라.”
그녀는 제 이름을 말하고 미련 없이 뒤돌아 쌩하니 갈 길을 갔다. 그 뒷모습이 퍽 야무졌다.
* * *
헤일라는 품 안에 보자기를 꼭 안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신전의 앞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호위들은 평민들 따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귀한 약재를 도둑맞는 일이 빈번했다.
뭣 모를 때에는 소매치기에게 당하거나 약재상들의 횡포에 울고불고하기도 했었지. 과거를 떠올리자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때 즈음,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걸 빠르게 깨달은 자신이 조금 대견스러워졌다. 동시에 착잡함이 가슴께를 뻐근하게 만든다.
그녀는 조금 걷다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지점에 다다랐다. 수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세니르 신전의 정문. 부담스러울 정도로 하얗기만 한 건축물의 정문은 그 또한 백색의 철문이었다.
귀족이나 신관이 아니면 감히 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아주 견고한 문. 그리고 그 옆엔 남루한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높은 담벼락 앞에 몸을 말고 신을 향한 경배와 소망을 쏟아 내고 있었다.
“여전하네.”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헤일라는 불쾌감이 인 얼굴로 빠르게 발을 놀렸다. 언니 레테의 약을 사는 일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괜한 것을 봐 기분만 버렸다.
“신전 같은 건 망해 버렸으면.”
부루퉁하게 중얼대면서도 누가 들을세라 빠르게 입을 닫았다. 소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타론 제국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신은 자신의 힘이 담긴 성물과 신전으로 제 존재를 증명해 냈다. 때문에 신실한 제국민들 앞에서 불경한 말을 하는 건 위험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엄연히 말하면 신이랑 신전은 좀 다르지 않나? 게다가 신의 이름을 앞세워 의술을 독점한 비열한 신관들은 비렁뱅이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걸 인정치 않는 게 더 나쁜 거다. 약값을 또 다섯 배나 올린 신전에 대한 분노가 차오르며 헤일라는 보자기를 더 꽉 안았다.
“아……! 사제님……!”
그때 신전의 정문으로 들어가는 마차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신관들이 타고 다니는 백색 마차였다.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돌려 마차 쪽에 대고 몸을 굽혔다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신의 말을 받는 신관을 신처럼 떠받드는 타론 백성들이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흥…….”
웃기지도 않아. 헤일라는 부러 이죽거리고 뒤돌아서 빠르게 걸었다. 예언 조금 받는다고 신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이들에 대한 질투이고 시기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열등감이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헤일라는 저 빈민들과 함께 레테가 신의 선택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신관이 되면 원하는 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으니까. 헤일라는 아픈 언니가 나을 수만 있다면 신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일 정도는 우스웠다.
그러나 신을 고깝게 여기는 헤일라의 미운 마음 때문인지 신은 자매를 굽어살피지 않았다. 예견된 불행이었으나 그 뒤로 헤일라는 신과 신전 둘 다를 미워했다.
“집에나 가자.”
이래서 여기 오는 게 싫었다. 무익한 생각만 하면서 저를 탓하게 되니까. 그녀는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놀렸다. 얼른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레테가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몸을 닦아 준 다음에, 집을 치우고, 또…… 그다음에는…….
“헤일라.”
흙길을 거닐던 발이 멈추었다. 강박처럼 이어 가던 계획의 마지막 즈음에 존재를 드리울 뻔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은 미성으로 헤일라를 멈추게 한 남자는 나긋한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