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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끝까지 읽었어야 했다-162화 (162/184)

162화

남자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지만, 에드윈은 기다릴 수 없어 턱짓해서 그를 재촉했다. 데클란은 떨리는 남자의 손을 가만히 잡아 줬다.

“그녀의 말대로 그곳엔 촌락처럼 생활하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모두 붉은 머리카락이었지만, 남자들은 전부 달랐어요……. 힘을 쓰는 온갖 잡일은 남자들 몫이었고, 그때부터 기억이 드문드문 끊겼습니다.”

막연히 그 집단이 존재하는 건 알았지만, 직접 그곳에서 나온 목격자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종종 사라졌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건 최면이나 주술이었을 것이다. 트리샤 하나가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데 그들이 단체로 생활하면 남자가 몇이든 통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셋인가, 넷……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나…….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딸을 낳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고요. 그러고 보니 처음에 태어난 아들들은 어떻게 됐는지. 전 그 애들이 없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럼, 딸을 낳기 전의 아이들은 없어진 건가?”

“모르……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딸과 아들이 각각 하나 남았다는 것. 딸은 어미를 닮아 붉은 머리카락이었고 아들은 무슨 쓸모가 있다면서.”

그건 트리샤와 니콜라의 관계와 같을 것이다. 우선 힘을 이을 붉은 머리카락의 딸을 낳고 그 힘과 공명할 수 있는 제물이 되는 아들을 선별한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아무튼 아이들이 뛰어다니게 되니까 그녀가 저와 함께 약초를 캐러 가자고 하더군요. 정신을 차려 보니 전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의 기억은 온전치 않은 것 같았다. 미약을 사용하는 트리샤를 떠올렸을 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루카스에겐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었다.

“용기 내 줘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제가 고해도 될까요?”

데클란의 말에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 경과 저는 그 숲을 계속해서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지도도 소용이 없이 이상하게 같은 지점을 돌게 됐어요. 저 너머에 뭔가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는데 도착 못 하는 기묘한 경험……. 그러다 그 경계에서 저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제롬은 그들 집단이 사는 곳이 어떤 사악한 힘으로 지켜진다고 믿었다. 그곳엔 사람의 감각이나 인식을 조종하는 어떤 주술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다행히 떨어지는 도중 나무에 걸려서 천운으로 큰 부상 없이 깨어났지만, 처음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수도원에서 개발한 약이 있어서 차츰 나아지는 중이죠. 이것도 많이 나아진 겁니다.”

데클란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를 발견한 지점에서 더 아래쪽에는 인골이…… 꽤 많았습니다. 아마 그와 같은 희생자들이겠죠. 제롬 경은 그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 남자를 데려온 후에 목적을 달성하면 버리는 거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주술로 통제되는 사람의 수는 한정적이겠죠.”

남자의 몸엔 혹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데클란도 에드윈의 시선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 경은 인골에 골절 같은 상처를 입은 흔적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 남자도 신체 능력은 거의 노인 수준입니다. 학대에 가까운 노동 착취였을 겁니다.”

“그리고 무능해지면 버리는 건가. 사악한 것들다운 짓이야.”

“사실, 우리가 발견한 건 두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다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의식이나 기억이 이자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에드윈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럼 그자를 데려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제롬 경은 그와 함께 그들의 본거지로 들어갈 작정입니다. 이미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그들의 영역엔 접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예. 하지만 한 번 접근했던 사람에겐 방어가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를 나침반 삼아서 들어가려는 거죠. ……혼자선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제롬 경의 의견이 워낙 확고해서 이자를 데리고 온 겁니다.”

에드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생각에 잠긴 것이다.

“물론, 그쪽의 남자에게도 진술을 받아서 적어 왔습니다.”

과연 제롬의 일 처리였다. 데클란은 품에서 너덜너덜한 종이를 꺼내서 에드윈에게 건넸다. 현장의 조사가 얼마나 열악한지 보여 주듯 종이의 여기저기가 마모됐고 잉크도 흐릿했다. 그러나 읽을 수는 있었다. 에드윈은 다급하게 서신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서신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기에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한다.」

매사 합리적인 제롬다웠다. 이걸 읽을 사람이 대공과 공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드윈은 차라리 이편이 좋았다. 제롬의 말처럼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우리는 일족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숲의 영역 근처에서 두 남자를 각기 다른 날 발견했다. 부상이 적은 쪽의 갈색 머리카락 남자를 데클란과 수도로 보낸다. 약이 효과가 있다면 그도 점차 기억을 되찾아 증언이 가능할 것을 기대한다.

내가 맡은 남자는 다리에 부상이 있지만, 기억력과 인지력이 일반인과 거의 같았다. 타고난 체질이 강한 것인지 이상함을 느끼고 스스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하는 그의 진술을 그대로 적는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빼곡한 글자가 이어졌다.

「그는 본래 대장장이로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가족의 허락을 받으러 산에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 보니 산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아들과 딸 쌍둥이를 동시에 얻었다. 딸만이 붉은 머리카락이었으며 아들은 딸과 비교해서 성장이 무척 뒤떨어졌다고 했다. 그 촌락의 아이들은 전부 똑같았고 남편으로 끌려온 이들은 모두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서신은 뒤 페이지까지 이어졌다.

「그는 노동 중 도끼에 큰 상처를 입고 격통과 함께 주변의 이상을 감지했다. 그러나 모두 제정신이 아닌 촌락이라 그것을 숨긴 채로 조용히 지내며 관찰했다. 상처가 나아지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래 조사하기 시작했다.」

제롬의 글자가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발견에 흥분한 것 같았다.

「촌락에서 어느 정도 자란 여자아이는 모친에게 이상한 책에 관하여 엄격히 교육받았다. 남자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전부 그랬다. 이윽고 그는 성장의 의식을 몰래 숨어서 엿듣게 됐다. 예상대로 여자아이는 모두 마녀가 될 운명이었다. 다만, 그 힘의 원천은 자신과 동복인 남자 형제여야 했다. 그들의 생명력이 곧 마력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도 제롬은 여기까지 추측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니콜라를 죽이라고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딸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신성한 돌의 곁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섬기는 이유였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트리샤는 모친을 죽여야 온전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디아나도 미리 그것을 눈치채고 사라 블랑을 숨겼다. 만일 그녀가 병사하지 않았어도 트리샤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게 뻔했다.

아마 그 바위를 떠나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고, 사라가 트리샤를 두려워한 이유였을 거다.

「그때쯤 그는 일족에서 수상한 혐의를 받게 됐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묘연히 사라지게 되는 게 두려워 밤을 틈타 미리 봐 둔 탈출로로 탈출을 감행, 우리와 만났다. 우리의 목적을 들은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 저주받은 일족을 없애는 것에 동의했다. 그는 아직 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사악한 힘에 물들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서신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거점으로 잠입할 것이다.」

꾹 눌러 쓴 글씨에서 제롬의 각오가 느껴졌다.

「그들의 거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추후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디 우리가 성공하고 데클란 쇼가 나의 뜻을 옳은 이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마지막 문장이었다.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의 유서처럼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 후, 제롬 경에게서 연락은?”

“없었습니다. 그 산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 전서구가 같은 곳을 자꾸만 맴돕니다. 아마 무사하다고 해도 연락이 되진 않을 겁니다.”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이 효과가 있으니 곧 이자도 증언할 만큼 회복될 거라고 믿습니다. 실제로도 많이 나아졌으니까요.”

“자꾸 증언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황제가 홀린 만큼 정당한 재판은 무리다.”

“이건 세속적인 재판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황청에 이단 심문을 요청할 겁니다.”

이단 심문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안과 증인 그리고 증거가 있다면 당연히 부활할 수 있었다.

“저는 각지의 수도사와 사제들에게 이 이야기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이런 식의 이단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교황청엔 고유의 권한이 있으니 설령 황제 폐하가 마녀의 지배에 당한다고 해도…… 처분이 가능합니다.”

한 가닥씩 구체적인 희망의 빛이 보였다. 하지만, 디아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카를 공작이 황실로 넘겨졌다.”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유감입니다. 그러나 영명하신 분이니 틀림없이 위기를 잘 견뎌 내고 계실 겁니다.”

그런 위로는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 데클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중에 다니엘이 황실에 잠입한 상태입니다. 저희 모두 같은 수도원 출신이죠.”

제롬은 단순한 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보를 수집하는 집단의 후계자에 가까웠다.

“우선, 대공 전하는 니콜라라는 아이를 납치해 주십시오. 공작님이 안 계시는 공작저보다 대공 전하의 감시하에 두는 게 낫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다. 공작저의 사람은 모두 나와 공모자니까.”

“다행이군요.”

“하지만 디아나는 어떻게 되지? 난 당장이라도 입궁해서 그녀의 무사를 살펴야겠다.”

“공작님은 아직 무사하십니다.”

데클란이 수도사다운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증거로 다니엘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 같은 수도사의 신분으로 그를 만나고 올 겁니다. ……그거면 안심하시겠습니까?”

“디아나가 무사하다는 확신을 가져와라.”

데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에게 들었던 것 이상으로 에드윈의 사랑이 깊은 것 같았다. 수도사로 자란 데클란으로선 낯선 감정이었다.

“그리고 동쪽 땅에 병력을 보내겠다. 우선, 내 기사단 한 조를 파견하고 후발로 대공령에서 병사를 차출해서 그곳을 에워싸면 되겠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당장 루카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한 개의 조를 잃는 것만으로도 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전부를 걸고 있었다. 물론, 에드윈의 각오도 그에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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