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에드윈의 뜨거운 손이 디아나의 눈물을 닦아 냈다. 수도원에서 빌려준 좁은 마차라서 둘의 간격이 유난히 좁았다. 에드윈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질수록, 새로운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 번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덩어리가 되어 뒤늦게 눈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에드윈은 울지 말라는 말 대신, 따스하게 디아나를 다독였다.
“내가 있고, 그대의 사람들이 있어.”
오히려 그 다정함이 더 눈물을 쏟아지게 했다. 에드윈은 그럴 때마다 손을 뻗어 디아나의 뺨을 닦아 주고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넘겨 줬다.
아무리 디아나가 의지를 굳혀도 감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던 것같이 침착한 몸짓이었다.
“우리가 언약을 나눴던 밤을 기억하겠지?”
디아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목이 메어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난 그날 밤부터…… 디나, 그대를 내 아내라고 여겼다.”
에드윈이 담담한 고백을 내려놨다. 결혼을 미루는 탓에 서로 반려라는 언약만 맺은 줄 알았는데, 에드윈의 마음에서 디아나는 이미 아내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니 그대는 내게 반려일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기도 해.”
“전하.”
“둘이 있을 땐 그리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에드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마음이 같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내 마음이 먼저 그렇게 정해 버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그대의 질책은 듣지 않겠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드윈은 일부러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조금이라도 디아나가 마음을 풀고 웃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세상에 사내로 태어나 아내와 가족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내게 짐을 지운다고 말하지 마라. 그건, 내 긍지에 맞지 않으니까.”
대공과 공작이라는 지위는 이 좁은 마차 안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마치 버려진 예배당에서 언약식을 올렸을 때와 같았다. 명예롭고 반짝이는 것 모두를 저버리고 오로지 서로만을 마주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상대가 마녀든, 황태자든……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이라 해도 전부 내 손으로 멸할 자신이 있다. 그래야 그대가 안심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에드윈의 검은 눈동자엔 무거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역모까지 망설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였다.
그 결심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디아나는 잘 알았다. 참 이상하게도 에드윈의 결심을 듣자 마음 한구석이 아파 오면서도 그의 체온을 닮은 온기가 번져서 안심되는 것 같았다.
“전하, 아니…… 에드윈.”
디아나가 말을 쉬이 잇지 못했다. 에드윈은 끈기 있게 그런 디아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에드,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내 인생에도 의미가 생겼어요.”
항상 원망과 서러움이 얼룩진 삶이 반복됐다. 디아나 카를이 견뎌 왔던 고통은 정작 타인을 위한 희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에드윈을 다시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디아나의 인생은 달라졌다. 처음으로 이 책의 큰 흐름을 바꾼 것도 전부 에드윈을 만난 덕분이었다.
“난 그동안……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황태자비가 되는 것을 피하고 트리샤를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디아나는 트리샤에게 살해당했다. 소극적으로 싸운 결과였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디아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땐, 깨닫지 못했다.
“이건,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그렇게 믿었거든요.”
에드윈은 디아나가 몇 번의 생을 거듭해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 심경의 변화는 공감할 수 있었다.
몇 번의 생을 거듭하는 것과 한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디아나는 지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에드, 당신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나선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반드시 혼자 싸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내겐 믿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제야 디아나의 사람들은 책 속의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한 명의 사람이 됐다. 그리고 고독에서 벗어나자, 지독한 운명의 사슬이 끊어졌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그 증거였다.
“난, 아마 약해졌을 거예요. 아니. 약해요.”
살해당했던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희미해졌다. 원한은 그대로 남았지만, 증오심과는 달랐다. 대신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이제 두 번 다시 성유물의 힘을 빌려서 죽음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그게 두려워졌어요.”
이제 가장 두려운 것은 루카스나 트리샤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에드윈을 잃는 것. 그 모든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잃어버리고, 다시 혼자가 되어서 영원히 이 기억을 간직해야 할 고독이 두려워졌다.
이전의 생에서 너무 쉽게 죽음을 택했던 디아나에게 커다란 미련이 생겼다. 이제 죽음은 편안한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이미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래서 후회하나.”
“아니요.”
디아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두렵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여태 디아나가 살았던 의미 없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군.”
디아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생의 소중한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에드윈도 마찬가지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이젠 말릴 수 없었다.
“나도 그대를 만나서,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에드윈이 평생 몰랐던 감정이었다. 디아나를 루카스에게 빼앗기는 것이 두려웠고, 알 수 없는 사악한 힘이 디아나를 해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을 알아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있어.”
결코 양보나 타협을 할 수 없는 것.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인생의 의미가 되는 존재.
“기사도에서 가르치는 두려움은 약해져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해 나가고 있다는 뜻이지. 난 그 가르침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지키고 싶은 현실이 있기에 필사적으로 싸울 수 있다. 모든 걸음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망설이지 않을 수 있다. 막연히 용기와 오만으로 가득했던 에드윈의 인생은 디아나를 가지면서 달라졌다.
“그리고 그대가 내 품에서 안심하고 눈물을 보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내게만 보여 주는 그 눈물이……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전 당신의 품에서 울 수 있지만. 에드, 당신은요?”
디아나의 물음에 에드윈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난 그대를 안고만 있어도 된다. 이렇게.”
에드윈이 디아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몰래 밀회를 나누던 때에 자주 하던 행동인데, 오랜만에 안기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씬 풍겨 오는 에드윈의 체취나 체온이 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대를 끌어안으면,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깨닫는다.”
“의무만 있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난, 에드 당신의 눈물도 안고 싶어요.”
“누가 의무만 있다고 했지?”
에드윈의 낮은 목소리가 디아나의 귓가를 울렸다.
“내겐 그대를 안을 권리도 있잖아.”
디아나가 대답을 피하자 에드윈의 뜨거운 입술이 일부러 디아나의 목덜미를 스쳤다. 디아나가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마차가 너무 좁아서 더 피할 곳이 없었다.
“내 말이 틀렸나?”
“그건…… 아니지만…….”
말을 하느라 디아나의 입술이 벌어진 사이, 에드윈이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열기를 품은 에드윈의 말캉한 혀가 순식간에 디아나의 입안으로 침범했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며 야릇한 체취가 더해졌다. 에드윈의 손길은 어느새 디아나의 드레스를 들치고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고 있었다.
“안 돼요, 에드.”
디아나가 에드윈의 어깨를 밀쳐 냈지만, 힘이 부족했다. 에드윈은 눈썹을 기울이며 디아나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밀착했다.
“왜?”
허벅지 안쪽을 농밀하게 쓰다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내 아내를 안는 건, 당연한 권리인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 혹시…….”
에드윈이 뭔가를 떠올린 듯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슬쩍 그의 손이 디아나의 속옷을 건드렸다. 저번처럼 월경이 아닌가 싶어 멈칫했던 손은 그대로 속옷 위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아니군.”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다.”
샬롯에게 책망 어린 시선을 받았던 것을 떠올린 에드윈이 답을 피했다. 젊은 대공은 뭇 여인들의 유혹엔 익숙했지만, 제 여인을 가진 적이 없었던 탓에 오롯이 디아나를 통해 여인의 몸을 배웠다. 즉, 아직은 여인에게 찾아오는 월경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그, 그만해요.”
속옷의 경계를 문지르는 에드윈의 뜨거운 손길에 디아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여러 번 몸을 섞은 사이라지만,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좁은 마차에서 정사를 벌이는 것은 어쩐지 너무 부끄러웠다.
“앗, 그만……하라니까요.”
디아나가 다급하게 속삭였지만, 에드윈의 손이 속옷을 젖히고 들어오는 게 더 빨랐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은 능숙하게 매끄러운 디아나의 음부를 찾아서 들어왔다.
이미 체온이 올라서 뜨거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디아나의 도톰한 음부를 어루만지다가 불시에 클리토리스를 어루만졌다.
“으응, 에드…… 그만.”
에드윈의 목을 끌어안은 디아나의 팔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의 귓가에 대고 필사적으로 속삭여도, 더운 숨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에드윈은 약간 가빠진 디아나의 숨결에 자신감을 얻은 듯이 클리토리스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아, 아앗…….”
파르르, 디아나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오랜만에 에드윈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음부는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에드윈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금세 등줄기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난 그대가 내 손길에 젖어 드는 순간이 좋아. 지금처럼 말이지.”
에드윈의 저음이 야릇하게 귓가를 울렸다. 그의 말처럼 디아나의 질구에서 애액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하라는 말로는 어쩔 수 없는 몸의 반응이었다.
에드윈은 제 손가락에 일부러 애액을 묻혀서 다시 젖은 손길로 클리토리스를 매만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민감한 부분이 전신에 쾌락을 퍼트렸다.
“흐으.”
디아나의 몸에 새겨진 감각의 지도를 따라서 저릿할 정도의 쾌감이 퍼졌다. 에드윈이 디아나의 몸에 새겨 둔 것들이었다. 디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이미 팬티가 내려간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에드.”
그러나 멈추기엔 늦었다. 이미 애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에드윈의 손가락이 디아나의 질구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