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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끝까지 읽었어야 했다-103화 (103/184)

103화

그 후, 루카스가 두 번 더 황태자비 처소를 찾았다. 그러자 새벽부터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가 은근슬쩍 사라졌다. 황태자가 다녀간 다음 날엔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있어도 누구 하나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비비안은 루카스가 물고 빨아서 곳곳이 붉어진 몸을 커다란 쿠션에 기댄 채로 트리샤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 주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 됐어, 트리샤. 어차피 나중에 또 씻어야 해.”

“응. 오늘…… 많이 피곤해 보인다.”

비비안이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루카스의 관심을 끈 것은 좋았지만, 그의 격렬한 행위는 비비안에게 무리가 됐다. 그러나 어떻게든 루카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자리 잡힌 탓에 비비안은 그런 내색조차 하질 못했다.

‘그리 정숙한 얼굴을 하고서, 이리 내 아래에서 잘 울어 댈 줄이야.’

비비안 위에 올라타서 허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 루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비비안의 가슴을 세게 비틀었다. 비비안은 그럴 때마다 통증에서 나오는 신음을 환희에 찬 교성으로 바꿔 넣어야 했다. 루카스는 혈기왕성한 나이를 증명하듯 하룻밤에도 몇 번의 관계를 요구했다.

‘입으로 깨끗이 빨아 봐라.’

루카스가 그 요구를 한 것은 불과 두 번째 정사에서였다. 비비안은 아직도 쑤시고 아린 아래를 어쩌지도 못한 채로 루카스의 페니스를 입에 머금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트리샤가 속삭여 줬던 이야기로 대강의 이론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액과 정액이 뒤범벅된 페니스를 입에 넣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래 구멍보다 더 깊이 빨아야지. 그래야 다시 아래를 쑤셔 줄 것이다.’

도저히 황태자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노골적 발언이었다. 비비안은 몇 번이나 트리샤의 조언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서는 신분도 고귀함도 필요 없었다.

비비안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목에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루카스의 페니스를 빨았고, 입가로 질질 침이 흐르는 황태자비의 모습을 보며 만족한 루카스가 이내 비비안의 아래를 쑤셔 댔다.

“비비안, 괜찮아?”

“아…… 깜박 졸았네.”

트리샤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멈췄다. 아무리 해도 비비안이 멋쩍은 미소 외엔 답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귀족 영애로서 자란 비비안의 마지막 선이었다. 트리샤의 말대로 부부 사이의 침실에선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참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침실 밖으로 내고 싶진 않았다.

“한숨 더 잘래? 시녀장한텐 내가 깨우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둘게.”

“고마워, 트리샤. 내 생각 해 주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어머니도…….”

후작부인은 지금쯤 황태자비의 어머니가 된 것을 축하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입궁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당사자인 비비안은 서운할 만도 했다. 하필 비교되게 트리샤가 옆에서 부모처럼 자매처럼 챙겨 대니 그 마음이 더 심했다.

“아냐, 비비안. 너무 결혼하자마자 드나드는 모습이 좋지 않아서 일부러 거리를 두시는 거야. 널 위해서 참고 있으실 거야.”

“넌 정말 다정한 말을 잘해.”

비비안의 말에 트리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냥, 난 사실을 말하는 것뿐인데…….”

이제 허름한 블랑 남작가의 가난에 찌든 딸은 없었다. 트리샤 블랑은 황태자비의 정식 시녀였고, 그 지위답게 비교적 고급스럽고 깔끔한 공단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거친 일로 망가졌던 손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트리샤가 손에 물을 묻힐 일이라곤, 비비안의 몸을 닦아 주는 정도였다. 예전에 비할 수 없는 호사였다. 게다가 트리샤가 복도로 나서면 하녀들이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닦다가 일렬로 비켜서서 허리를 숙였다. 그때, 트리샤는 권력의 짜릿함을 느꼈다.

“아니야. 넌 항상 날 위해 다정하게 말해 주는 거잖아.”

그건 쉬웠다. 초라한 자신에게 되뇌던 주문을 비비안에게 들려주는 건 너무 간단했다. 외롭고 엄격한 유년기를 보낸 비비안에겐 그게 그리 따스하게 느껴졌나 보다.

오늘도 트리샤는 비비안의 순진함에 감사했다. 고작 이 정도로 쉽게 파고들 수 있는 비비안의 고운 심성이 퍽 다행스러웠다.

“우선, 한숨 푹 자 둬. 내가 나가서 시녀장에게 얘기할게.”

트리샤의 말에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야 또 찾아올 밤을 견딜 힘이 날 것이다. 그러나 트리샤가 몸을 일으킨 순간, 뜻밖의 소리가 울렸다.

“황태자 전하 납십니다!”

비비안과 트리샤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졌다. 하지만 루카스의 행차를 막을 수는 없었다. 트리샤가 다급히 비비안을 침대에서 부축했지만, 이미 루카스가 빠른 걸음으로 침소에 들어온 후였다.

“전하…… 이런 모습을 보여서 송구합니다.”

트리샤가 나머지 부축을 거들자 비비안이 예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런 비비안을 태연히 봤다.

“피곤할 법도 하지.”

그 말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이 묻어났다. 밤새 비비안을 범한 제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비비안이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편히 있어라.”

루카스답지 않은 관용이었다. 비비안은 오히려 불편한 마음으로 침대 끝에 앉아서 고갯짓으로 감사를 전했다. 트리샤는 그 곁에서 비비안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부축을 하며 머물고 있었다. 자연히 루카스의 시선이 낯선 시녀에게 향했다. 드물게 젊고, 눈에 띄는 머리 색의 시녀였다.

“너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황태자 전하께 인사가 늦어 송구하옵니다. 저는 트리샤 블랑, 황태자비 전하를 후작가에서부터 모시던…….”

“아, 그래.”

루카스가 됐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시녀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는 몸짓이었다.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트리샤는 왠지 가슴 한구석이 따끔했다. 괜히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비안의 옆얼굴이 가식적으로 보였고, 황태자의 낯선 체취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들은 부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고귀한 신분이었고 비비안이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둘이어서 좋다면, 셋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황태자비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러 왔다.”

“새로운 친구요?”

“그래. 오늘 공물을 진상받았거든.”

오늘 루카스의 기분이 좋은 이유였다. 이른 오전부터 제국 밖에 갔던 무역선의 공물이 도착한 것이다. 신기한 동물을 좋아하는 루카스의 취향을 살펴서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오는 길에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꼬물거리는 하얀 털 뭉치는 루카스의 사냥개들과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비비안에겐 퍽 어울릴 것 같았다.

“시종장.”

“예, 전하.”

곧 시종장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바구니엔 천이 덮여 있었는데 열기도 전에 삐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척 가냘프고 작은 소리였다. 비비안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바구니를 놓칠 뻔했는데 그 모습에 루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트리샤, 네가 열어 줄래?”

“네, 전하.”

트리샤가 공손하게 바구니에 덮인 천을 치웠다.

“어머, 귀엽기도 해라…… 전하, 보세요. 새끼 고양이예요.”

순간 비비안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동물과 익숙하지 않은 비비안에게 고양이는 동화에서 마녀가 기르는 동물에 불과했다.

“하하, 저 작은 것이 두렵나?”

“그것이…….”

루카스는 불쾌해하는 대신, 움츠린 비비안을 보며 웃었다. 초야의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서 고작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를 보고 호들갑이라니,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거기, 시녀.”

“트리샤라고 하옵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트리샤가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언급했다.

“그것을 꺼내서 황태자비의 무릎에 올려 줘라.”

“전하! 그건…… 조금 이따가.”

“겨우 저게 두렵다고 인정하는 건가?”

비비안이 울상을 했다. 그때 트리샤가 부드러운 손길로 바구니 안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전하. 아직 어려서 정말 작고 귀여워요.”

“혹시 할퀴면…….”

“발톱도 제대로 안 났을 텐데요? 제가 못 할퀴게 손으로 감싸서 보여 드릴게요.”

어린 시녀가 제법 황태자비의 비위를 맞출 줄 알았다.

“그래, 꺼내 봐라. 어서.”

루카스는 비비안을 놀릴 작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삑, 삑, 울어 대던 고양이가 놀랍게도 온순하게 트리샤의 손에 담겨서 비비안의 무릎에 놓였다.

고양이는 간신히 눈을 뜬 것 같았는데 푸른 눈동자가 구슬 같기도 하고 보석 같기도 했다. 트리샤의 두 손바닥에서 제 솜뭉치 같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비비안의 눈에도 퍽 귀여웠다.

“아직도 저 미물이 두렵나?”

“……아뇨, 예뻐요.”

비비안이 분홍빛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어미와 같이 태어난 형제는 죽었다.”

“저런…… 혼자로군요.”

비비안이 용기를 내서 손을 뻗어 고양이를 만졌다. 포근한 촉감이 두렵기는커녕 사랑스러웠다.

“이름은 그대 뜻대로 지어라.”

“황태자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중히…… 보살피겠어요.”

루카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로서 공물을 받고 그것을 새로운 자신의 부인에게 나누기까지 하다니, 그 관대한 처사로 오늘 하루 황실이 떠들썩할 것을 생각하자 뿌듯한 웃음이 났다.

“거기, 시녀.”

“예, 트리샤입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말해야 루카스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줄까. 확실한 건 트리샤가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막 시작된 둘의 결혼 생활에 황태자비의 시녀라는 처지는 무척 유리한 고지였다.

“황태자비와 저 털 뭉치를 함께 잘 돌봐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부분 황태자의 안전에선 긴장하기 마련인데, 새로 온 궁인치곤 제법 말솜씨가 유려했다. 아마 후작가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딸려 보낸 시녀이리라.

“그럼, 난 이만 의회에 가야 해서.”

루카스가 제법 점잔을 빼고 말했다. 국혼 이후 완벽한 성인으로 인정받자, 의회에 그제야 그의 자리가 생겼다. 모후로서 더 미룰 핑계가 없어진 것이다. 루카스는 뒤늦게 제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마구 과시하고 다니는 꼴이었다. 그게 가장 어리고 유치한 짓이라는 건 모를 것이다.

“배웅할 것 없다.”

트리샤가 돌아서는 루카스의 등에 대고 예를 갖췄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트리샤였다. 루카스에 대한 궁인들의 평가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지금 같은 모습이 오래가지 못할 것도 알았다.

경우는 달랐지만, 제 아버지인 블랑 남작도 가끔 관대한 아버지를 연기하곤 그런 제 모습에 도취되곤 했으니 말이다.

“트리샤!”

황태자가 사라지자마자, 비비안이 다급하게 트리샤를 찾았다. 돌아보자 비비안은 그 솜뭉치 같은 고양이에 손을 대지도 못하는 채로 트리샤를 바라봤다.

“이것…… 이것 좀 가져가 줘…….”

비비안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무래도 저 솜뭉치는 트리샤의 차지가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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