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음악도 성가대도 없었다. 그저 어두운 예배당에서 제단 근처에만 밝힌 촛불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제단에 올려진 꽃은 이름도 없는 들에서 딴 꽃이었지만, 무척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지금부터 시아 수녀원은 신의 이름으로 그대의 존재를 심판하리니, 그대는 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모으라.”
미리엄이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아나는 그 말대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대는 이제부터 카를가의 영애가 아닌 신의 여식 디아나로서 답하라.”
“예.”
“디아나, 그대는 신의 여식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정결한 마음을 지켰는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디아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신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감히 정결한지 모르겠으나,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분만을 사랑했고, 그분만을 품었으니 그 마음만은 정결했다고 믿습니다.”
디아나가 눈을 감았다. 적어도 진실을 말했다. 에드윈을 사랑했고, 그에게 안긴 것은 후회가 없었다.
“그대의 여생에도 그 마음만을 지킬 수 있는가.”
“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굳이 신의 심판을 받지 않더라도 다른 이를 마음에 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시아 수녀원은 신을 대신하여 그대의 정결함을 믿겠다.”
토독, 차가운 성수가 디아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디아나는 한참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또 다른 그대여, 신의 자식으로 답하라.”
그때,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뜨지 않아도 그 체취로 알 수 있었다. 에드윈이 지금 디아나의 곁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대도 이 여인과 같은 마음으로 정결을 지켰는가.”
“예, 그렇습니다.”
에드윈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자 디아나의 가슴에 온기가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언약의 말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함께 무릎을 꿇고 앉으니 어째서인지 경건한 기분이 들었다.
“저와 함께 무릎 꿇은 여인을 사랑했고, 이 여인만을 품었으며, 여생 역시도 그럴 것을 맹세합니다.”
“그대 또한 신의 이름으로 정결함을 믿겠다.”
디아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같이 꿇어앉은 에드윈의 무릎이 보였다. 그사이, 에드윈이 살며시 디아나의 한쪽 손을 잡았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진심이 체온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심판은 끝났다. 둘은 고개를 들라.”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들자 제단의 은은한 빛이 보였다.
“그대들은 일평생 서로만을 사랑하고 서로만을 품으며 서로의 유일한 반려가 될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가.”
디아나의 손을 잡은 에드윈의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맹세합니다.”
이제 디아나의 차례였다.
“맹세……하겠습니다.”
한마디의 언약이었으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시아 수녀원이 증인으로 그대들의 인연을 인정한다. 어느 나라의 법도 권세도 이를 해칠 수 없으며, 그대들은 신의 앞에서 죄가 없는 연을 맺었노라.”
수녀 둘이 향로를 들고 둘의 곁에서 축복의 연기를 쐬였다.
“이 순간 이후, 무엇도 그대들을 갈라놓을 수 없으며…….”
그러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여생 신의 자비를 기억하며 반려로서 살아갈 것이다.”
한때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것이 신의 뜻이니…… 서로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지어다.”
어쩐지 울컥해서 눈가가 시렸다. 에드윈은 묵묵히 디아나의 손을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신의 자식으로 무릎 꿇었으나, 일어설 때는 영원의 반려로서 하나가 된다.”
이것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하나가 될 각오를 마치면 일어서도록.”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서로를 봤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 마음은 같다는 것이 눈동자를 통해 비쳤다. 디아나는 촉촉한 눈동자로 에드윈을 봤고, 에드윈 또한 깊은 눈동자로 디아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둘은 천천히, 그러나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의 앞에서 하나로 다시 태어난 것을 축복합니다.”
미리엄 수녀가 진심 어린 말을 건넸다. 디아나는 아직 목이 메여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의 역할은 이제 끝났습니다.”
“뭐라 감사해야 할지.”
에드윈의 말에 미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저희도 다시 침묵을 지키러 가야겠습니다.”
“이걸로…… 전부인가요?”
“그래요. 우린 영애의 정결함을 확인했다고 고할 겁니다.”
미리엄이 결론을 확실히 지었다.
“그리고 우리 수녀원은 오늘 밤, 지하실에서 머물 준비를 마쳤습니다.”
“……네?”
디아나가 영문 모를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은 오늘 밤을 이곳에서 보내셔야 합니다. 아침이 되어야……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저희는 지하실로 들어가 밤을 보내고 결론을 보고한 후,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리엄은 익숙한 듯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속세의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하시지요.”
작별의 말을 하기도 전에 미리엄이 손을 모으고 축복의 인사를 건넸다.
“두 분의 행복을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수녀들을 데리고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정말로 이게 마지막인 것 같았다. 디아나와 에드윈은 손을 잡은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도 적막이 찾아왔다. 그제야 버려진 예배당이 자세히 보였다. 시아 수녀원이 정리하고 꾸며 준 제단 근처엔 이 밤을 고려한 천이 깔려 있었다. 아마 그곳에서 머물라는 배려 같았다. 에드윈은 찬 바닥에 디아나를 앉힐 수 없어서 자신이 먼저 제단 옆의 계단에 앉은 후, 디아나를 끌어다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실감이…… 잘 안 나요.”
디아나의 등을 끌어안은 에드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평생, 내가 실감 나게 해 주겠다.”
그 말은 정답이었다. 대공비의 왕관이나 화려한 결혼식을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디아나의 마음에 닿는 말이다. 결국, 디아나가 원한 것은 애정이자 연인이었다. 이젠 에드윈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미룰 것도 없지.”
“네?”
에드윈이 품에 안은 디아나의 방향을 틀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에드윈의 손짓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면 이렇게 그의 무릎 위에서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하면…… 실감이 나겠지?”
디아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에드윈이 바로 입술을 맞췄다. 다소 서늘했던 예배당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치솟았다. 디아나의 입술을 기어이 벌리고서 안을 탐하는 에드윈의 혀가 저돌적으로 디아나의 혀를 감았다.
“흐으…….”
디아나가 소리를 흘리다 말고 뚝 멈췄다. 이곳은 신성한 예배당이 아닌가. 비록 폐허가 되긴 했어도 제단이 버젓이 있었고, 지금 그 제단에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전하, 안 돼요.”
에드윈의 가슴을 간신히 밀어낸 디아나가 속삭였다.
“어째서? 이젠 참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우린 이제 신 앞에서 떳떳한 연인이고…….”
그다음, 에드윈이 디아나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왜, 수녀원이 아침까지로 시간을 정했는지. 왜, 지하실로 자리를 비켜 준 것인지 모르겠나?”
“모르겠……는데요.”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를 수 없는 연인을 배려해서, 초야의 기회를 준 거다.”
“그건 아닐 것…….”
하지만 이내 에드윈이 다시 디아나의 입술을 막아 버렸다. 실제로 에드윈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디아나는 그것도 에드윈의 수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으응, 전하.”
엉망으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투명한 타액이 흘렀다. 에드윈은 디아나의 가슴을 움켜쥔 채, 옷 위로 유두를 살살 문질렀다. 그러나 이내 참지 못하겠는지 옷섶으로 손을 넣어 디아나의 가슴골을 따라가다, 다시 콱 가슴을 틀어쥐었다.
“흣.”
“괜찮대도…….”
디아나가 소리를 참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에드윈의 입술이 목덜미를 지분거리며 말했다. 그 사이로도 에드윈의 한 손은 드레스 자락을 제치고 아래를 파고들었다. 샬롯이 몇 겹이나 철저하게 입힌 속옷도 에드윈의 집요한 손길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전하, 아무리 그래도 예배당에선…… 너무…….”
“신이 허락하신 사이인데?”
뜻밖의 논리에 당황한 디아나가 주저하자, 가슴을 애무하는 에드윈의 손길이 더 강해졌다. 그는 풍만한 가슴 전체를 쥐었다가 그대로 손가락 사이에 도드라진 유두를 끼우고는 비벼 대고 비틀어 대고 가만두질 않았다.
에드윈의 손길은 처음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반복될수록 더 자극이 심해졌다. 디아나의 성감이 에드윈에 의해서 길들여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확실한 건, 지금 디아나가 가슴을 자극당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르고 아래로 피가 쏠린다는 사실이었다.
“흐으읏, 전하…… 그만.”
“그런다고 멈춘 적도 없거늘.”
에드윈의 입가에 짓궂고도 야한 미소가 걸렸다. 에드윈은 아예 디아나의 허리를 들어서 제 위에 제대로 앉혔다. 그는 제단 뒤의 벽에 등을 기대고, 디아나의 허벅지를 벌려서 마치 말에 탄 것 같은 자세를 취하게 하고서야 만족한 듯이 검은 눈동자를 빛냈다. 이미 디아나의 앞섶은 엉망으로 풀어져 가슴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한 것이 보였다.
“여기서는…… 왠지, 너무…….”
하필 성스러운 제단에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동시에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에드윈은 디아나의 가슴 근처에 걸린 옷가지를 전부 풀어 헤치고서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뽀얀 가슴을 감상했다. 그의 시선이 워낙 집요해서 괜히 가슴 근처가 아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좋다. 여기까지만 하는 건 괜찮겠지.”
의외로 에드윈이 순순히 물러서는 것 같았다. 에드윈이 디아나의 양쪽 가슴을 전부 쥔 채로 나른한 미소를 흘렸다.
“가슴까지만 탐하겠다. 그 아래로는 손도 안 대겠다고 약속하지. 대신…….”
그의 입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가슴에 닿자 뜨겁고 질척한 것이 느껴졌다.
“아래가 젖으면, 그땐 허락으로 알겠다.”
“그게 무슨.”
“아래엔 손도 안 댈 테니, 괜찮잖나.”
에드윈의 말은 때론 그럴싸했다. 물론 그보다 가슴을 크게 베어 무는 그의 입술이 주는 자극이 더 강렬해서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가슴을 한 입 베어 문 에드윈은 그 안에서 유두를 살짝씩 흡입하다 혀로 굴리다 이로 긁으며 디아나의 몸을 들썩거리게 했다. 나머지 한 가슴도 자유롭진 않았다. 그의 커다란 손에 쥐어진 가슴은 끈기 있게 문질러지고 또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유두를 비틀렸다.
“아읏.”
다소 세게 비틀린 유두의 촉감에 전신이 저릿해졌다. 디아나가 살짝 상체를 떨었다. 하얀 뺨의 벌써 붉게 달아올랐다. 도톰한 입술은 아까의 키스로 에드윈이 묻혀 둔 타액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제단의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 펼쳐지는 참으로 성스러운 광경이었다.